시즌3 최종에세

새봄
2023-11-25 21:08
60

제목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묘한 책이다. 처음 책을 들었을 땐 제목이 생뚱맞더니,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저자의 압축적인 요약에 무슨 말을 전하려는 것인지 쉽지 않았다. 노트에 인물들의 관계를 적어 나가면서부터 앰개시 마을에서의 일들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책을 읽고 이야기 시간에 샘들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랬던 우리는 지난 워크숍 시간에 다시금 무엇이든 가능하다에 대해 기나긴 이야기를 나눴고 난 우리를 매료시켰던 이 책을 다시 천천히 읽어 보기로 했다.

  1.  

첫 번째 단편인 계시의 토미는 서른다섯 살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낙농장이 불에 타는 불행을 겪지만, 쇠락한 타운인 앰개시로 이사와 학교 수위로 일하며 그 시간을 버티며 통과했다. 노년의 그는 자신이 아는 사람 가운데 자신에게 잘해주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베트남 참전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닌 찰리와 그의 부인 메릴린에게 연민을 느낀다. 고립된 집에서 단절된 생활을 하는 피트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려고, 그의 불운한 어린 시절이 알기에 아무도 찾지 않는 그를 애써 찾아간다. 과거의 일로 괴로워하는 아이-어른인 피트에게 이미 충분히 많은 것들과 싸워왔다고 말해주고 그만 흘려보내라고 제안한다. 아마도 그런 토미의 말로 인해 피트는 어머니의 바느질과 수선이라고 쓰인 간판을 망치로 때려 부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에 투쟁이 있는 거지. 혹은 다툼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언제나 존재하지. 내가 보기엔 그래. 그리고 자책한다는 것, ,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무엇이든 가능하다, 문학동네, 2022, p41)

 

뭘 할지와 뭘 하지 않을지-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는 것-사이에는 투쟁이 혹은 다툼이 있고, 그런 투쟁 안에서 피트의 아버지 존 바턴은 전쟁으로 끔직한 일들을 했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남자들은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듯 턱에 힘을 주고 화난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었겠지. 토미는 이주일 뒤에 보자고 피트에게 제안하며 두 번이나 자신의 진심이 아님을 느낀다. “진심은, 지금 옆에 앉은 이 불쌍한 아이-어른을 정말로 두 번 다시 찾아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같은 책, p42) 진심이 아님에도 피트에게 “내가 고맙지”라고 말하며 그에게 자신의 곁을 내 주려는 토미의 모습에서 나는 어른-어른을 느낀다.

 

  1.  

11월 초 글쓰기 수업을 빠지고 4박5일의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에코프로젝트 시즌3에서 공부한 루쉰의 고향마을과 항저우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처음부터 문탁샘들과 중국여행이 하고 싶어 신청한 세미나였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 4명이 출발했고 중국통인 L의 인솔(?)하에 움직였다. L이 출발 전에 미리 고심해서 호텔을 예약하고 계획한 일정이었다. 항저우는 처음이라는 L에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럴 때 조금은 당황했지만, 버스 대신 지하철타기처럼 수정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하지만, T는 그런 순간들을 못 견뎌했고 질문을 하며 L과 부딪쳤다. L은 안 그래도 무거운 어깨가 쳐지면서 T에게 곱지 않은 말이 나갔고 다른 샘은 “대장님을 따라야 한다”면서 L에게 힘을 실어줬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여행지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낯선 장소이고 우리는 세미나 때와는 다른 공간과 시간 안에 놓여있었으니. 내가 불편했던 건 호텔방에서 T의 약간의 징징거림 비슷한 말들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L을 편들기도 T를 편들기도 난감한 상황이었고 난 T가 공부를 10년이나 했는데 왜 이러는 거지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동생이 내게 “넌 공부한다면서 왜 그 모양이냐”하는 느낌과 비슷한 것이었다. 뭔지 T의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에 실망스럽기도 하고 L도 굳이 말을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10년이나 공부한 문탁샘들에 대한 낯선 곳에서의 다시 보기였다. 아마도 난 공부가 나를 변화시키고 아직 내가 부족한 건 공부가 충분하지 않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공부가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한편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차분히 생각하며 내가 공부와 어른에 대한 어떤 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하면 타인에게 관대해질 것이라는, 어른스러워질 것이라는 약속 말이다.

  1.  

여행 이튿날 늦은 시간까지 맥주와 사케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중에 L은 문탁에서 공부하는 20대 청년과 여행 다녀온 일을 물으며 동행한 내게 “어른”이라는 말을 건넸다. 난 화들짝 놀라며 고개 저었고 그는 “그럼 니가 어른이지, 얘냐”라며 한소리 했다. 난 내가 어른이라는 말에 왜 그리 고개 저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내겐 어른이란 말에 허들이 있는 것 같다. 토미가 자신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트를 찾아가는 것처럼 어른이란 자신의 이해를 떠나 타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의 초보직원인 H를 떠올렸다. 시즌2 첫 번째 글쓰기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번 에코프로젝트 마지막 에세이에서도 그를 언급했다. 무엇이 계속 H를 떠오르게 하는 걸까? 그는 또래 직원들로부터 소외되고 상사로부터 업무 지적을 받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고참 직원을 다독이고 함께 하자고 설득했고 그를 따로 불러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손 편지를 보내고 고양이 장난감과 사탕 등을 선물했다. 우린 사장과 직원의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았다.

15여년을 함께 일한 또래 직원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일하고 어울려 놀았고 결혼과 출산, 아이의 입학을 지켜보며 2,30대를 보냈다. 처음엔 함께 일했지만, 어느덧 그들은 야근하고 나는 신고서를 검토하며 틀린 것을 빨간 표시해서 돌려주는 사장이 되어 있었다. 내 소득이 커지는 건 너무나 당연했지만, 그들의 월급은 물가상승과 주위 사무실과 균형을 맞춰 더디게 올랐을 테고, 난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자격증을 땄으니 그게 공정이라 의심하지 않았을 테고, “혼자 고통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미안해할 수 있는 마음" (같은 책, p357)도 무디어졌을 것이다. 그들에게 초보 직원을 가르쳐서 일을 하라고 떠넘기고 일과 관련된 부담감은 애써 무시했고, 나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예고도 없이 돌연 사표를 냈고 나는 서운해 하고 분노했다. 직원들을 신규 채용하며 수습의 시간이 지나가고 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일로써 그들을 대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H는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했다. 그가 차등 지급된 수당으로 항의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의 항의에 다르게 반응했더라면……. 난 더 많은 업무와 자리 배치를 하며 그를 압박했다. 먼저 내밀었던 손을 아이 같은 마음으로 거칠게 뿌리쳤고 나의 감정에만 집중했다. H는 퇴사하면서 내게 미안함을 얘기했지만, 난 분란을 만든 그의 행동을 비난하며 끝내 사과하지 못했다. 그의 퇴사가 단순한 퇴사가 아니라, 일터에서의 다른 시도를 망쳐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의 분노의 감정은 더 커졌다.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을 것이다.

 

  1.  

<도티의 민박집>에서 도티는 불안해 보이는 셸리에게 거의 연민의 증상-잠시 동안 작은 물고기가 뱃속을 통과하며 헤엄치는 듯한 감각-을 느꼈고 그에게 차 한잔을 제안한다. 셸리, 스몰부인은 지나치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 몰두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흔한 불만, 즉 지금껏 삶이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같지 않았다는 불만 (같은 책, p280) 때문에 자신의 고통 안에 매몰된 사람 같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존재인 듯 말하도록 키워졌을 것이고 어린 시절의 도티처럼 여전히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 마땅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근처에 모르는 사람들이 앉은 아침식사 자리에서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세미나 시간 우리 모두는 스몰부인과 같은 면이 있지 않냐는 샘의 말에 난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오히려 스몰부인 같은 사람과는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겠냐는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는 스몰부인과 같은 면이 있다.

지난 주 수요일 문탁 파지사유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함께 하는 북토크”에 참석했다. 책을 잘못 주문하는 바람에 전날 e-book으로 급히 구매했지만,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차 안에서 기계음의 낭독 소리를 들으며 갔다. 기계음임에도 잃어버린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중간 중간 눈물로 콧물이 나고 ”작은 물고기가 뱃속을 통과하며 헤엄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북토크 시간에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말에 샘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훌쩍거리며 감사하며 그 자리를 함께 했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에서 내가 가장 힘들고 아픈 사람은 아니라는 오빠의 말이 마음을 울렸다. 동생을 잃은 오빠로서 충분히 자신이 가장 힘들고 아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그러지 않으려고 다짐을 한다. 내가 스몰부인처럼 내 안의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일정 부분 내 고통이나 내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 면이 없지 않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의 고통이 가장 힘들다고 자기 안에 갇혀 있을 수 있다. 항저우에서 T는 “내 말이 왜 L을 불편하게 하지? 난 그냥 물은 것 뿐 인데…….”라며 그 질문을 곱씹었다. 여행이 끝나갈수록 L이 왜 그곳에 숙소를 잡았는지 이해하게 되면서 그의 애씀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난 H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예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내 불만에만 집중하며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오래전에 퇴사한 직원들과의 관계도 내가 얼마나 그들의 입장에 둔감했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들과의 인연은 이미 끊긴 지 오래고 새삼스레 다시 연락할 일도 아니지만, H에게는 안부를 묻고 싶다. 난 뭘 할지와 뭘 하지 않을지 사이에서 투쟁하며 그를 아프게 했던 일에 대해 미안해 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없지만, 무엇이든 가능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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