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3 에세이 초고

비료자
2023-11-11 00:35
74

비밀

 

//사람들은 어떤 비밀을 갖고, 그것을 언제 누구에게 말하며, 듣는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그 관점에서 읽었다.//

 

비밀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걸 말한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게 그렇게 됐구나’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겠네’, ‘그럴 수도 있지’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 했어’ 등의 말로 내 편을 들어주며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달라는 뜻이다. 그걸 믿고 용기를 냈다는 의미인데 용기를 낸 결과는 모두 다르다. 

 

<계시> 에서 나오는 토미의 비밀은 죄의식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실수로 재산을 모두 태우고 가족까지 죽을 뻔했으니까. 자신의 실수라고 공개 자책했으니 화재 자체가 비밀은 아니다. 하지만 그 화재로 내 가족이 무사하다는 것이 ‘토미, 괜찮다’ 라는 신의 계시라는 것은 비밀이다. 올바른 판단이다. 그걸 떠벌렸다면 가족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토미가 잃은 것은 재산이니 돈은 또 벌 수도 있다. 가난하지만 살아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웃집 남자, 캔은 어쩔 것인가? 어쩌면 ‘참전용사’로서 무공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무신경하게 지껄일 수도 있었을 텐데 캔은 그러지를 못했다. 아들의 기억으로, 그는 ‘품위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캔은 어떻게도 포장을 할 수 없는 수치심과 죄책감의 비밀을 가지고 자기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야비하고 비루하게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짐승의 우리처럼 만들며 살았다. 토미는 피트와 대화에서 그걸 느낀 것이 아닐까? 화재에서 자신은 신의 계시 같은 거 받지 않았다는 사실. 신은 그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다는 사실. 사람마다 조절하고 감당해야 할 비밀의 분량이 있지 않을까. 토미는 감당할 만한 비밀을 가진 덕에 선량하고 반듯한 사람으로 자신을 지켰지만 캔의 비밀은 그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피터는 토미에게 비밀을 말했고 (아저씨 헛간에 불을 지른 것은 우리 아빠예요) 토미는 캔의 아들 피터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을 지탱 시켰던 비밀을 말했다. (그 때 신의 계시를 받았다네) 그 결과는 어땠을까? 피터에게는 확실히 좋았다. 자신의 삶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했으니까. 토미는 그 후 어떻게 살게 될까? 80이 넘도록 반듯하게 살았던 토미였으니 막 나가지는 않겠지만 (그 나이에 막 나가본 들 노망이니 다행이랄까.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마음의 폭풍을 경험하게 된 토미가 궁금하다. 

 

<도티의 민박집> 에서 도티는 셸리의 비밀을 들었다. 자신이 얻어낸 필생의 승리, 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 해 우람하게 지은 호숫가의 별장이 사실은 이웃들이 지나가며 욕을 퍼부을 만한 흉물이었다는 것.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초대받은 남편 친구의 부인은, 젊고 멋진 그녀는 그 별장에 몸서리를 쳤고 셸리를 백치라고 불렀으며 별장은 ‘셸리의 페니스’ 라고 비웃었다는 것이 비밀이었다. 별 것 아닌 그 스토리를 며칠이나 들어주던 민박집 주인 도티는 도저히 연민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천박한 미적 감각과 과시욕이 만족되지 않았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셸리에게 더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둔순이 셸리가 눈치를 챌 만큼 셸리의 비밀을 우습게 여긴 건 잘못이다. 근 백년을 사는 인간이라고 해서 하루살이의 평생 고민을 우습게 여길 권리는 없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장염 때문에 입원을 하셨다. 원인을 못 찾고 거의 보름을 입원해 계셨는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장기간 입원은 욕창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에 맘 졸이며 6인 병동 2인 배정된 간병인 들에게 (나름) 뇌물과 물량공세를 펼쳤다. 우리 아버지 욕창이 생기지 않게 뭐든 듬뿍 사서 쟁여 놓았고, 한번이라도 더 아버지에게 눈길을 주기를, 한번이라도 더 아버지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기를 흰 봉투로 부탁(애원) 했다. 내 자식만 잘 봐 달라고 촌지를 찔러주는 학부모와 다를 것 없는 나도 한심했지만 효과가 없었으니 다행인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치료로 보름을 수액으로 연명하시던 중 아버지는 말을 잊었다. 언제부터 말을 못했냐는 내 질문에 북한 말씨를 쓰던 두 간병인은 명랑하게 웃었다. “아녜요, 말 해요, 말. 아까도 아야, 아야, 했는데요?” 그 순간 뼛속 깊이 울분이 치밀어 당장 퇴원을 했다. 분통을 터뜨리는 나에게 병원 측은 그분들이 탈북을 하면서 험한 고비를 많이 넘겨서 여기 환자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사과를 했다. 이해는 했다. 고비도 넘겼고, 실제로 죽는 모습도 본 그들에게 이들 환자는 아플 나이에, 혹은 아플 병이니 그 정도 고통은 당연해 보였겠지. 내가 도티에게 느낀 유감이 바로 이거였다. 물론 도티가 겪은 유년시절의 수치스러운 기억에 비하면 충족되지 않은 허영심에 우는 셸리가 한심하긴 했다. 을, 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티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도티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 이상으로 이용한 셸리가 못 봐줄 꼴이긴 했다. 그래서 도티는 비웃었고, 멍청했지만 (아마도) 촉이 좋은 셸리는 모욕감을 느꼈다. 이 모욕감을 어떻게 보복을 해야 좋을까? 셸리는 같은 레벨의 남편과 하나도 원치 않는 섹스를 하며 도티의 험담을 해 댔다. 둘은 혼자 사는 도티를 비웃으며 같이 섹스를 한다는 우월감을 즐겼던 것이다. 그래서? 도티도 보복을 했다. 그들의 잼에 (은밀히) 침을 뱉어 먹게 했고, 너희들이 섹스를 하며 내 뒷담화 하던 거 다 들었다, 면서 (대놓고) 셸리의 남편 스몰에게 수치심을 안겼다. 서로 주고 받았으니 됐다. 하지만 안 그랬으면 좋았을 걸, 싶었다. 안 그래도 척박한 셸리의 인품과 기억에 자기 혐오가 될 비밀을 하나 더 보태서 뭐 하겠는가. 타인의 비밀은, 더구나 준비가 되지 않고 그럴 마음도 없다면 안 듣는 게 좋은 거다. 뭔 핑계를 대던 그 자리를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비밀은 내 편이 되 줄 확신이 없는 상대에게는 말 하지 않는 편이 피차 이롭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서로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곳이 세상이지. 셸리가 도티를 믿고 용기를 내어 비밀을 털어놓은 건 아니다. 그냥 감정의 분출로 하수처리를 한 거지. 하수처리를 거부한 도티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이 되었다. 신뢰와 용기가 없는 고백은 이렇다.

 

하지만 <풍차> 에서 보면, 꼭 사람에게 털어놓고,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지 않아도 된다. 패티는 사람이 아닌 책에게 이해를 받고 세상이 달라졌다. 이해와 공감의 순간은 일상이 아니다. 그건 나란히 도는 풍차의 날개가 열심히 돌다 보니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날개가 일치하는 순간과 같다. 곧 다른 방향으로, 또 언제 그런 순간이 올지 모르지만 그저 돌고 있는 풍차처럼 사람들은 각자 열심히 살다가 ‘날개의 방향이 일치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옆의 풍차들 중에는 사람도 있겠고, 신앙도, 철학도, 책도 있겠고, 가르침도, 스타들도 있겠지. 그걸 느끼면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거다. 나만의 스타를 발견하여 깊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경험하면 패티의 감정이 이해가 된다. 나와 상관없는 별세계의 사람들이지만, 나와 그들의 날개 방향이 일치하는 경험을 하고, 내 삶은 달라지지 않던가. 옆에서 이러고 저러고 재단, 평할 것 없이 법과 상식,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걸 경험한 사람들을 부러워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준호에게 포옥 빠져서 가족을 (강제로) 끌고 일본까지 가서 3회 콘서트를 모두 보고 온 동창을 축하해줬다. 이준호는 너를 모르고, 너도 이준호가 어떤 사람인지 서로 모르면 어떠냐. “예수님을 처음 만나면 예수님이 잠을 안 재우고 성경을 읽게 한다는데, 난 이준호에게 빠지면서 그걸 경험했다니까” 하고 깔깔 웃는 그녀에게 충격을 받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아니, 걔는 어떻게 크리스찬이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어? 예수님보다 이준호에게 더 빠졌다는 말을?” 글쎄,,, 우울증과 무력감에 빠져있던 사람에게 예수님보다 이준호의 풍차 날개가 더 힘이 되는 순간도 있을 수 있지. 그래서 이준호를 예수님보다 더 믿고 사랑한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고~~ 나와 같은 방향의 풍차가 더 대단하고 절대적이라고 순서를 매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의 제일 큰 장점은 호환의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패티의 경우, 책의 저자 루시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지만 글을 쓰면서 치유를 경험했겠고(돈이 되니 더 좋고) 그걸 읽은 패티도 저자에게 팬레터를 쓰지 않아도 괜찮으니 아주 바람직하다. 콘서트에 가득한 열기도 좋은 일이다. 이래서 신앙, 예술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금 간> 에서 린다는 컨테이너에서 노후를 보내기 싫어서, 두려워서 남편이 집에 온 손님을 몰카로 보는 관음증에 강간미수까지 덮어줬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끔찍하다면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며 떠나버렸다. 린다는 어렸을 때, 불륜을 저지르고 온 가족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남긴 엄마가 결국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꼴을 봤다. 도덕(불륜)보다 무서운 게 가난이라고 입력이 된 거다. 컨테이너에서 가난하게 노년을 사느니 혐오스럽지만 부유한 남편과 결혼생활 유지가 낫다. 강간미수를 덮어주며 이 사실이 남편에게 무기가 되리라는 것, 그리고 남편의 관음증을 끝낼 수 있다는 게 결말이다. 린다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용기를 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 남편과 살지 않더라도 컨테이너 신세를 면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자신의 노동으로 찾던가, 좀 더 멀쩡한 배우자를 만나던가, 컨테이너 삶이라고 꼭 비참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최선을 다 해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건 쉽지 않다. 린다는 금 간 접시 같은 삶이 깨진 접시가 되지 않게 나름 노력을 하는 것이다. 금이 간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걸 붙들고 사는 사람들, 많다. 정신과 상담실과 좋은 술집이 왜 붐비겠는가. 그럴 금전적 여유나 넉넉한 인간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금 간 비밀을 적절치 못한 상대에게 털어놓으면 결과는 과히 좋지 않다. 도티와 셸리처럼. 하지만 린다는 셸리보다 영리하니 정신과 의사를 찾겠지. 적어도 린다는 ‘대가’라는 게 뭔지는 아니까.

 

하지만 또, <선물>처럼 간혹 기적은 있다. 서로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만나 강제로 자기의 수치와 괴로움을 듣게 하고, 그랬는데도 상대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둘은 평생 처음으로 ‘진짜 사람’을 만난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다. 혼자 외롭던 동성애의 내리막 배우던, 반듯한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풍요롭게 사는 사업가이던, 자기만의 수치심과 비밀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진짜 사람’이 되어주는 기적. 삶이 주는 선물.

 

나는 누구에게 어떤 비밀을 들었고, 누구에게 나의 비밀을 말했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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