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에세이 초고

겸목
2023-11-10 22:30
51
  1. 내용과 의식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나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이 마니프는 무언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시위가 아니라 말썽꾼들이 주도한 일탈에 불과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뉴욕에서 내가 되지 않으려고 했던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용보다 의식(儀式)에 더 관심 있는 사람, 그것도 너무 쉽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군중 속에서 함께 걷는 행위에는 무언가 야만적인 힘이 있다. 폭력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무리에 속하게 되자 불안해졌다. 어디인지 모르는 곳으로,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 의해, 무엇인지 모르는 일을 하게 이끌려가기가 너무나 쉬웠다. (「파리-저항」, 290쪽)

 

 

2009년 파리에서 대학강사로 일하던 저자는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교육제도와 관련된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대학도 이해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자리와 지원을 줄이는 것을 넘어 학과를 없애려고 하는 개혁정책이 논의되던 시점이었다. 이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참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시위였는데, 어느 순간 저자의 동료들은 아나키스트 집단에 섞여 들어가게 된다. 이때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진다. 아주 쉽게 ‘내용’보다 ‘의식’에 더 관심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출발해 파리, 런던, 베네치아, 도쿄, 다시 파리, 뉴욕,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리에 이르는 저자의 여정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내용보다 의식에 더 관심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가장자리를 걸으며 경계를 바꾼 이야기’.

 

그녀의 부모님이 보금자리를 마련한 롱아일랜드는 아메리칸드림의 견본주택과 같은 동네였다. 신도시 계획에 따른 보급형 주택과 구획 정리된 도로, 대형마트 쇼핑과 도심 직장에 출퇴근하기 위해서는 필수가 된 자동차 운전. 한국의 분당과 일산도 롱아일랜드의 복사판이다. 분당, 용인, 하남, 평촌에서 28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그녀의 롱아일랜드에 대한 지루함을 이해할 수 있다. 바뀔 수 있는 건 아파트의 평수와 브랜드, 자동차 배기량, 자식들 대입성적. 이걸로 인생의 많은 부분이 말해지고, 대부분의 평가는 이걸 넘어서지 못한다. “나를 걷게 하라. 내 속도로 걷게 하라. 삶이 나를 따라, 내 주위에서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하라. 극적인 일을 보여달라. 예상하지 못한 둥근 길모퉁이를 달라. 으스스한 교회와 아름다운 상점과 드러누을 수 있는 공원을 달라.”(「롱아일랜드-뉴욕」, 65쪽) 그러려면 최소한 자동차 로 쌩 지나쳐버리는 자동차전용도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궁금해 기웃거리며 걸을 수 있는 골목과 길이 있어야 한다. 그 골목과 길에서 이야기가 생겨난다.

 

 

  1. 이야기가 있는 사람

걷고 싶다는 저자의 욕망은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기도 하다. ‘사연 많은 여자’라는 말에는 폄하의 의미도 담겨 있지만, 저자가 읽고 매혹되는 여자들은 인생이 수월하게 풀려가지 않은, ‘사연 많은 여자’들이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 고통을 글로 쓸 수 있으라고 자신을 몰아갔던 진 리스가 대표적이다. “아무 일도 겪지 않으려면 어떤 것에도 애착을 주지 않아야 할 텐데, 하지만 애착이 없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파리-그들이 가던 카페」, 75쪽) 진 리스는 저자처럼 집과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옮겨온 여자이다. 낯선 곳에는 기대감과 설렘, 호기심과 함께 위험, 불안, 두려움이 공존한다. 진 리스는 이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과 ‘한뎃잠’을 선택한 여자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착한 딸은 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한 발칙한 어린 여자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진 리스의 앞길은 고되다.

 

 

이런 불행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를 모르는 스무 살 젊은이들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찾아 파리의 거리를 해매고 다니는 스무 살 젊은이들은 경험에 목말라하지만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단지 절망이란 게 어떤 느낌인지 알기 위해서, 혹은 자기가 얼마나 강한지 알기 위해서 절망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든다. (「파리-그들이 가던 카페」, 107쪽)

 

 

그러나 이게 과연 20대들에게 한정된 문제일까? 기존의 방식대로 살지 않으려 할 때 겪게 되는 시행착오에 ‘절망’과 ‘무모함’을 동반되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20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빈도가 높다뿐이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40대와 50대에게도 다르지 않다. 실패하지 않고 우리는 길을 알아갈 수 없다. 네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운전을 해도, 200미터 앞 우회전을 해야 하는 200미터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없을 때는 잘못된 길로 접어든다. 절망과 무모함과 시행착오가 ‘이야기’의 재료다.

 

 

  1. 경계와 이민

 

 

  1.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경계하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모두 기록해야 한다고, (중략)그러고는 침묵의 압박, 기록되지 않은 삶의 축적을 상상으로 느끼며 런던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걸었다. (중략)현관 아래 쭈그리고 앉은 할머니나, 아니면 해와 구름이 떠 있는 날의 파도처럼 오고 가는 사람들과 상점 진열창에서 깜박이는 빛에 따라 얼굴이 환해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떠돌아다니는 젊은 여자들의 삶이라든가. 이 모든 것들을, 손에 횃불을 단단히 붙들고 탐구해야 한다고,” (「런던-블룸즈버리」, 128~129쪽)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자기가 살았던 런던에서 경계를 발견하고 경계를 넘어간다. 경계를 넘는 일이 물리적 이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일로도 새로운 경계와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산책뿐 아니라 독서로도 그러하다. 울프가 자신의 ‘독립’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런던거리의 드러나지 않은 면모를 관찰하고 생각하고 글로 쓰는 일로부터 가능했다.

 

 

또 내가 잘 아는 장소들도, 다시 걸어 다니면서 다른 방식으로 알아갈 것이다. 똑같은 돌길을 두 번 걷는 일은 없다고 말하지 않나? (「뉴욕-귀환」, 411쪽)

우리가 잘 아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전부 다 아는 척하지 않고 늘 약간 안 맞는 채로 있는 게 좋다.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도시 아래에 우리가 알아보는 도시가 겹겹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뉴욕-귀환」, 414쪽)

 

 

파리에서의 시민권 승인이 나기 전, 뉴욕에 잠시 머물며, 저자가 자신의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이다. 익숙한 곳과 낯선 곳은 공존한다. 우리는 걸으며 자신에게 집중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잠시 외부로 분산시킬 수도 있다. 길을 잃기도 길을 찾기도 한다. 저자는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에서 이런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사는 게 아니고 길 잃는 법을 모르면 파멸에 이르게 된다.”(403쪽) 이미 여러 번 길을 잃은 느낌이지만, ‘길 잃기를 두려워 말라’는 저자의 조언을 신뢰해본다.

 

*아직 제목도 없지만, 일주일간 생각해본 내용이라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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