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

묘선주
2023-11-04 23:00
77

*작년 여름부터 뛰기 시작하면서, 산책 시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달리기에 대한 저의 이야기입니다.

 

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

 

런린이(달리기 입문자를 일컫는 말: 어린이+Run) 2년 차. 아직 달리기가 몸에 붙지 않았다. 주 2회 또는 3회 정도 달리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아직은 더 많다. 풀코스(42. 195km)를 뛰어야 진정한 마라토너라며 동호회 선배들은 풀코스 경험담을 무용담처럼 들려주곤 한다. 뛰어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나는 그 무용담을 가진 선배들이 마냥 존경스럽다. 누구는 무엇이든 가능하다지만, 내 평생 풀코스 경험은 가질 수 없는 일찍이 내려놓아야 할 것 중 하나다. 이유는 몸쓰는 것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미 중년을 넘기는 나이에 와 있으며, 나는 여전히 체력 부실이다. 장장 4시간 이상을 뛸 체력이 내겐 없다.

학창 시절 내내 나의 평균 점수를 까먹던 과목이 바로 체육이었다. 초등학교 내내 체육 시간마다 벤치에 앉아 친구들의 뛰는 모습을 부럽게만 바라봤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어금니 꽉 깨물고 용써봐도 1초 이상 철봉에 매달려 본 적이 없는 종이짝 몸뚱이였다.

그러기에 나는 가볍게 오랫동안 달리며 달리길 자체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풀코스 무용담은 가질 수 없지만, 이렇게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매번 나의 한계를 넘고 있는 기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느긋하게 걷는 산책의 재미를 아낌없이 버렸다. 회사에 다니고 있고, 아직 육아 중(둘째 아이가 올해 10살)으로, 나에게는 뛸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그러기에 산책하던 시간에 나는 뛰게 되었다. 종종 같이 산책을 즐기던 남편도 혼자서는 산책에 나서지 않는다. 내가 뛰기 시작한 이후, 가끔 뛰는 내 뒤를 따르며 자전거를 탈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산책하며 남편과 나누던 소소한 대화마저 사라졌다. 아직은 이 소소한 대화가 주던 정감이 그리 아쉽지는 않다.

나에게 달리기와 산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달리는 동안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의 몸에 집중하게 된다.

‘왼쪽 발가락에 왜 이렇게 힘이 들어가지!’, ‘아~~ 무릎 정강이는 왜 아프지!’, ‘오늘은 다리가 넘 무겁네.’, ‘오늘따라 숨은 왜 이리 가쁘지!’라는 생각으로 1km, 2km, 3km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몸은 뛸만한 컨디션을 갖춘다.

그리곤 달리는 속도에 집중하게 된다. 스마트워치가 km마다 알려준다. 현재 총 몇 km를 달리고 있으며, 총 몇 분 뛰고 있는지, 현재는 몇분대로 뛰고 있으며 심박수는 얼마인지를. ‘나의 심박수가 이렇게까지 올라갈 수 있구나’, ‘지금 속도가 너무 느리네’, 때론 ‘오호 지금의 이 속도로 20km를 달리고 싶다’든지. 이렇게 나의 달리기가 숫자로 기록된다.

이러다 보면 5~6km 정도쯤을 달리고 있다. 그때야 비로소 나를 스치는 주위 사람들이 느껴진다. 산책할 때와 달리 그들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뚱그려진 채로 인식된다. 마치 사진에서 모자이크 처리 되듯 세세한 모습으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그저 아주 가볍게 나를 그들이 스쳐 간다. 나도 그들을 스쳐 갈 뿐이다. 때론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던 타인들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아쉬운 건 단 하나,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나무나 들꽃이나 주위 공원의 변화를 제때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의 풍경마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덩어리가 돼버린다.

6km를 넘어설 때쯤 이젠 더 달릴 것인지 멈출 것인지를 생각한다. 당장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는지, 내일 회사에서 중요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를 머릿속으로 나열해 본다.

그러다 보면, 일상 속 ‘나’를 떠올린다. 달리면서 떠올려지는 나는 조금은 객관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관찰자 시점이 되어 내가 나의 행동, 나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곤 그 상황을 곱씹어 본다. 아주 잠시 나를 성찰하기도 한다.

아직 나의 습으로 자리 잡지 못한 달리기지만, 달리는 동안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느끼는 달리기의 매력이다.

주변에 뺏기던 시선을 거두고 나의 몸 상태와 나의 달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뛰고 나면 흘린 땀만큼이나 머릿속의 생각들도 한결 가벼워진다. 물론 몸에는 여기저기 근육통으로 여운이 남긴 한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를 달리면서는 떠올릴 수 없지만, 달리면서 나는 나를 자세히 마주한다. 달리면서 나는 나를 오래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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