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이런 거구나. 해체와 재조립의 극한 고통! -에세이데이를 마치고 나서

문탁
2023-07-02 12:44
569

1.튜터는 극한직업?

 

마지막까지 서스펜스와 스릴 넘쳤던 에세이데이였습니다. 하하

 

 

 

우리는 지리멸렬한 현재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혹은 자기가 겪었던 상처와 고통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갖기 위해 굳이 ‘어려운’ 공부를 찾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공부가 쉬울 리 없어요. 읽는 것도 힘들고 쓰는 건 더 힘듭니다. 더구나 학인 대부분은 생활인. 밥벌이도 해야 하고, 누군가를 돌봐야 하고, 살림해야 합니다. 그래서 발제 때가 되면 월차를 내거나 반차를 내기도 하구요.

 

에세이 주간에는 정신이 더욱 혼미합니다. 주제를 잡는 것도 구조를 짜는 것도 한 줄 한 줄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것도 힘듭니다. 자기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는데, 그 민낯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도 괴롭습니다. 그렇게 써 갔는데 튜터는 개념 이해가 안 되었다고 지적하고, 구조가 엉성하다고 나무라고, 문장 간의 논리적 연결이 부실하다고 지랄을 떱니다. 드라마 파스타에서 공효진의 관자 요리를 보고, 매번 “다시”를 외쳐대던 세프 이선균처럼 말입니다. 당연히 접시를 집어 던지고 싶지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걍 좀 편안히 살고 싶다!

 

튜터 입장에서도 다양한 정동을 겪습니다. 뻗댐, 잠행, 묵묵부답, 짜증, 한숨, 분노 등과 매번 마주합니다. 어제 정군샘이 그러더군요. 튜터는 극한직업이라고. 네 맞습니다. 이런 감정들과 마주칠 때마다 튜터는 극한직업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래서 튜터도 생각하죠.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걍 내 공부나 하고 싶다!

 

이번 양생프로젝트 에세이주간은 이런 파란과 곡절을 겪으면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는 다함께 이렇게 정리했죠. 이건 다, 주디스 버틀러 때문이야. 그에게 존경을! 동시에 그에게 욕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에세이데이는 평소 세미나와는 좀 다른 밀도를 생산합니다. 우리가 쓴 글로 우리가 읽은 책들을 하루에 쫙~~ 정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복습 효과 짱입니다.

 

또한 에세이데이의 공부 효과를 배가시키는 것 중의 하나가 갤러리들의 질문입니다. 이들은 세미나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신선하고 더 날카롭고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합니다. 답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애매하게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잘 대답하고 싶다,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깁니다. ㅎ

 

 

 

어제 많은 분이 갤러리로 참석해주셨습니다. 요요샘, 진달래샘, 토용샘, 스르륵샘, 인디언샘, 청량리샘, 우현이, 정군샘, 자작샘, 봄날샘, 아렘샘, 진아샘, 언희샘 등 오랫동안 자리 지켜주시고, 좋은 질문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제 2층 대강의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 그리고 창과 방패 같은 질문과 답변, 그 과정에서 뭔지 모를 긴장감. 후끈후끈했던 열기를 보면서, 아, 코로나가 끝나고 문탁 공부가 드디어 돌아왔다, 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거였지? 문탁스러운 공부의 특징이 이런 거였지! 친구들에게 내 공부(밑천)를 까고, 그 친구의 공부를 (부러워하며) 열렬히 응원하고, 그래서 다 함께 어떤 변용을 겪는 것! 신체가 유닛(unit)이 아니라 문턱(threshold)이라고 버틀러가 그랬죠? 문탁이라는 신체도 그러합니다. 어제 우리는 또 다른 문턱을 넘었습니다.

 

 

 

 

 

 

3. 공부, 해체와 재조립!

 

이번에 마지막까지 한편으로는 노심초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이게 당연한 거 아닐까? 공부란, 무릇,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겠다 사이에서 진동하는 게 아닐까, 라고 말입니다. 늘 순조롭다면 늘 화기애애하다면, 그런 공부가 오히려 문제 아닐까? 모름지기 머리 쥐어뜯고, 펜 내던지고, 그만해야겠다고 굳게 맘 먹고,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펑펑 울고.... 그렇게 몸도 마음도 머리도 해체되었다가 어찌어찌 아슬아슬 수습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공부를 몸으로 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우리 모두 (공부에) 취약한 신체로^^, 그걸(취약성) 갖고, 그것(취약성)에 반하여! , 집합적-언어-신체로 공적영역 (에세이데이)에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ㅎㅎ...‘집회 수행성’이 뭔지 말 이전에 몸으로 모두 함께 겪었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하고, 꿀 같은 방학을 보내십시오.

 

 

댓글 7
  • 2023-07-02 13:18

    문탁쌤!! 너무 고생많으셨어요.
    다들 툴툴 거리면서도 튜터를 사랑하는거 아시죠??❤️❤️❤️
    하.. 이제껏 맘 불편하게 만화를 보다가 ㅋㅋㅋㅋ 어제 맘 편하게 만화를 보니까... 왜 재미가 없어진 느낌이죠??
    역시 뭐든 몰래 해야... 저는 이래서(?)공부를 해야하나 봅니다... ㅎㅎ
    우리 팀은 진짜 정군쌤 말대로 질척거리면서 끈끈한 느낌이예요! 아주~~ 좋습니다!
    7월은 신나게 놀고, 우리 8월에 다시 머리 쥐어뜯어 봅시다!

  • 2023-07-02 13:39

    이번 세미나데이 후기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문탁쌤이라니 반전 재미가 있네요! ㅋㅋ
    극한직업 튜터님께 저도 감사의 하트 하나 추가요 🥰 ☺️

    참 72년생 김지영씨는 프라하에서 에세이데이와 수박맛을 궁금해 하더이다.

  • 2023-07-02 14:13

    그 서스펜스와 스릴을 제공한 사람들 중 한사람으로서 민망하고 죄송해요. 갑자기 대학원 9년차 때 때려치겠다고 나와 집에서 한달간 버티며 안돌아갔던 그때 전전긍긍하던 엄마가 생각나네요^^;;;
    그래도 이번일은 역장 안에서 보이지않던 그물망을 확인한 계기였습니다~~^^
    튜터님과 다른 동학분들께 감사합니다~~

    문탁샘 말씀처럼 찢어지고 다시 재조립하는 과정이었나싶고 동거인말처럼 뒷심 한스푼이 모지란거 같기도하고 전 갠적으로 눌렸던 기폭발?같기도한~ 이건 약사님과 상담을~ㅋ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채로~~

    지금은 미뤄놨던 <사이렌>을 흔들의자에서 눕방을 하고있으니, 이 느낌 너무 좋네요~! 안했으면 이 즐거움도 덜했겠죠?

    다들 감사합니다~~~

    수박 시원하고 맛났어요~~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 2023-07-02 14:28

    다른 의미로 파란만장한 에세이 준비 기간을 보낸 저는 실은 에세일를 쨀까? 슬쩍 고민했었드랬죠. 어쨌건 에세이를 통해 공부가 조금 정리가 된 것 같아서 좋습니다. 다들 우여곡적을 겪으며 1학기를 마치고 나니 새삼 우리가 어려운 공부를 했구나 싶고 그래서 얻는 게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학들 감사합니다! 😘 그리고 와주신 갤러리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마지막으로 에세이 피드백 때 지랄을 떨어서 튜터님의 수명을 약간 단축시킨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문탁샘께도 끈끈한 하트를! ❤️ ㅋ

  • 2023-07-02 16:16

    전 어려운 공부 온몸으로 통과하는게 약간 체질인듯 헤헷.
    힘들게 역기 들어올릴 때 느낌, 차곡차곡 쌓이지는 공부를 통해 점점 보는 눈이 넓어지는 느낌, 공부든 돌봄이든 몸이든 차곡차곡 벌크업 해나가고 싶습니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갈 도반님들이 있어 즐겁습니다.
    2학기 때는 시작부터 주제를 정하고 쭈욱 생각해가며 참여해야지..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질척거리며 끈끈하게..사랑합니다.
    특히나 문탁쌤 너무너무너무 수고하셨습니다.

  • 2023-07-03 08:32

    공부의 나아감은 참 더딥니다. 가끔은 옆으로 걷고, 많은 경우 뒷걸음을 치지요. 저의 공부는... 이번 1학기에도 영락없었습니다.
    제 짧고 얇은 공부 기간/두께나마 들춰보니, 그래도 함께 한 공부, 한 번 더 한 공부가 결국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3-07-03 15:57

    처음부터 끝까지 우와 우와 하는 한 달이었습니다. 워크숍을 시작으로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튜터 샘은 마치 양몰이를 하는 보더콜리처럼, (혹은 마라톤 러닝메이트) 글 쓰는 양들을 끊임없이 예의주시하며 마지막까지 함께 달려주셨고, 글 쓰는 학인들은 희노애락, 글쓰기의 고됨을 함께 공유한 덕분에 마지막 피니시 라인까지 모두가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발표회 현장이 통과의례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어떤 중간 문턱을 넘었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발표할 때는 고개 푹 숙이고 읽느라 바빴는데 샘들의 웃음 소리 덕분에 약간 안심하고 읽었습니다. 많이 웃어주셔서 감사하고 k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학기에 새로운 사상가들과의 만남도 기대됩니다! 2학기에도 샘들과 잘 해체되고 잘 수습되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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