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목의 문학처방전
‘세로토닌’과 함께 힙합을 -장 트러블에 백민석의 소설 「멍크의 음악」(『버스킹!』, 창비, 2019년)을 처방합니다       이건 뭐지? 장은 건강하지 않은데, 멘탈은 건강하다 우현이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장 트러블 분야의 ’대표선수’이다. 장은 스트레스와 연관이 깊은 장기이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은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세로토닌의 90%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장은 제2의 뇌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신경세포가 분포되어 있고, 이 장신경세포들은 뇌의 신경세포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기 때문에 더욱 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잘 안 돼 체하거나 복통으로 고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는 당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고지방 식품, 밀가루 등이 있는데,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대부분의 음식들이다. 장은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음식들로 장 건강은 더욱 악화된다.   이십대 초반의 래퍼 우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래퍼로서의 생활에 학교생활이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닌 우현의 라이프스타일은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불규칙적이다. 주5일 출근하거나 등교해야 해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일상의 강제력이 느슨한 편이다. 그리고 춘천에 있는 집을 나와 자취를 하고 있는 우현의 식생활도 균형 있는 식사를 하기 어려운 조건이고,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춘천 시내에 있는 모든 건물의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언제든 신호가 오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세로토닌’과 함께 힙합을 -장 트러블에 백민석의 소설 「멍크의 음악」(『버스킹!』, 창비, 2019년)을 처방합니다       이건 뭐지? 장은 건강하지 않은데, 멘탈은 건강하다 우현이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장 트러블 분야의 ’대표선수’이다. 장은 스트레스와 연관이 깊은 장기이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은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세로토닌의 90%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장은 제2의 뇌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신경세포가 분포되어 있고, 이 장신경세포들은 뇌의 신경세포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기 때문에 더욱 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잘 안 돼 체하거나 복통으로 고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는 당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고지방 식품, 밀가루 등이 있는데,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대부분의 음식들이다. 장은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음식들로 장 건강은 더욱 악화된다.   이십대 초반의 래퍼 우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래퍼로서의 생활에 학교생활이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닌 우현의 라이프스타일은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불규칙적이다. 주5일 출근하거나 등교해야 해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일상의 강제력이 느슨한 편이다. 그리고 춘천에 있는 집을 나와 자취를 하고 있는 우현의 식생활도 균형 있는 식사를 하기 어려운 조건이고,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춘천 시내에 있는 모든 건물의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언제든 신호가 오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겸목 2021.07.05 조회 339
겸목의 문학처방전
조동진의 노래를 듣는 시간 -바람의 유방암에 하명희의 단편소설 「종달리」를 처방합니다     우리는 다르게 도는 행성이었지만 내가 바람과 알고 지낸 기간은 십여 년이 넘었지만, 바람은 나의 ‘절친’이 아니다. 함께 세미나를 하거나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다른 주기로 도는 행성들처럼 문탁네트워크라는 같은 공간을 다르게 오고 갔다. 내가 기억하는 바람의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초록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나타났을 때의 산뜻함, 10박11일 동안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 깔끔한 글씨체로 써내려간 이문서당 노트를 보았을 때의 정갈함, 주방지기를 맡았을 때의 상냥함 등. 대체로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모습들이다. 내 생각에 바람은 알고 지내면 좋은 이웃이지만, 속내를 털어놓고 지내는 친구는 되지 못할 것 같은 ‘거리감’이 있었다. 예의 바르고 깔끔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다. 정말 나와는 다른 주기로 돌고 있는 행성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서로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부대낄 일은 없는 무해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언젠가 바람이 남편을 따라 필리핀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가기 직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유방암소식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 밖에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바람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5~6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바람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는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바람의 ‘환자’생활이 궁금해졌다. 바람은 수술과 그 이후의 시간을...
조동진의 노래를 듣는 시간 -바람의 유방암에 하명희의 단편소설 「종달리」를 처방합니다     우리는 다르게 도는 행성이었지만 내가 바람과 알고 지낸 기간은 십여 년이 넘었지만, 바람은 나의 ‘절친’이 아니다. 함께 세미나를 하거나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다른 주기로 도는 행성들처럼 문탁네트워크라는 같은 공간을 다르게 오고 갔다. 내가 기억하는 바람의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초록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나타났을 때의 산뜻함, 10박11일 동안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 깔끔한 글씨체로 써내려간 이문서당 노트를 보았을 때의 정갈함, 주방지기를 맡았을 때의 상냥함 등. 대체로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모습들이다. 내 생각에 바람은 알고 지내면 좋은 이웃이지만, 속내를 털어놓고 지내는 친구는 되지 못할 것 같은 ‘거리감’이 있었다. 예의 바르고 깔끔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다. 정말 나와는 다른 주기로 돌고 있는 행성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서로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부대낄 일은 없는 무해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언젠가 바람이 남편을 따라 필리핀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가기 직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유방암소식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 밖에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바람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5~6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바람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는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바람의 ‘환자’생활이 궁금해졌다. 바람은 수술과 그 이후의 시간을...
겸목 2021.05.02 조회 435
겸목의 문학처방전
마음의 롤러코스터 -권여선의 단편소설 「재」(『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년)를 처방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절편과 식혜, 누룽지와 순두부, 데친 브로콜리와 양배추에 연한 초고추장 또는 발사믹소스……’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먹는 생각뿐이다. 학교 개강을 앞두고 바뀐 정보처리시스템이나 학사일정을 확인하면서도, 틈만 나면 ‘뭐 먹지?’라는 생각에 꽂힌다. 머릿속으로 냉장고를 스캔하고, 언제 먹어도 좋은 도토리묵과 두유가 남아 있으면 안심이 된다. 냉장고 한켠에는 소금 간을 하지 않은 무생채가 한 통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옆에는 저염 간장과 저염 소스가 구비되어 있다. 책상 위에도 병원 진료 후 받은 영수증과 환자교육용책자가 아무렇게나 쌓여가고 있다. 이번 겨울 나는 만성신부전 3단계 진단을 받았고, 포털사이트에 있는 ‘신장병환우회카페’에 가입했다. 카페에 올라오는 내용 중에서도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이런 식재료는 어떻게 요리하면 신장병 환자가 먹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가장 유용하다. 이런 카페에는 광고도 환자가 되면 알아야 하는 환자 전용 식사 대용품이나 전문병원에 관한 것들이 주로 올라온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데 무언가 툭 떨어졌다. 국수집 보너스 푸른 용지였다. 열 개의 칸 중 마지막 칸만 비어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빈칸은 그가 들어가 채워야 할 병실의 축도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홉 칸에 찍힌 붉은 무늬 스탬프는 작은 병실에서 저마다 몸을 꿈틀거리며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창을 향해 기어가는 벌레 존재의 궤적처럼도 보였다. 아무 기댈...
마음의 롤러코스터 -권여선의 단편소설 「재」(『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년)를 처방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절편과 식혜, 누룽지와 순두부, 데친 브로콜리와 양배추에 연한 초고추장 또는 발사믹소스……’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먹는 생각뿐이다. 학교 개강을 앞두고 바뀐 정보처리시스템이나 학사일정을 확인하면서도, 틈만 나면 ‘뭐 먹지?’라는 생각에 꽂힌다. 머릿속으로 냉장고를 스캔하고, 언제 먹어도 좋은 도토리묵과 두유가 남아 있으면 안심이 된다. 냉장고 한켠에는 소금 간을 하지 않은 무생채가 한 통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옆에는 저염 간장과 저염 소스가 구비되어 있다. 책상 위에도 병원 진료 후 받은 영수증과 환자교육용책자가 아무렇게나 쌓여가고 있다. 이번 겨울 나는 만성신부전 3단계 진단을 받았고, 포털사이트에 있는 ‘신장병환우회카페’에 가입했다. 카페에 올라오는 내용 중에서도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이런 식재료는 어떻게 요리하면 신장병 환자가 먹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가장 유용하다. 이런 카페에는 광고도 환자가 되면 알아야 하는 환자 전용 식사 대용품이나 전문병원에 관한 것들이 주로 올라온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데 무언가 툭 떨어졌다. 국수집 보너스 푸른 용지였다. 열 개의 칸 중 마지막 칸만 비어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빈칸은 그가 들어가 채워야 할 병실의 축도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홉 칸에 찍힌 붉은 무늬 스탬프는 작은 병실에서 저마다 몸을 꿈틀거리며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창을 향해 기어가는 벌레 존재의 궤적처럼도 보였다. 아무 기댈...
겸목 2021.03.07 조회 746
겸목의 문학처방전
감자전의 ‘초년의 맛’ -감자전님의 거북목에 김세희의 단편소설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년)을 처방합니다     ‘거북목’ 사회 초년생 올해 작은딸은 ‘N포세대’, ‘자본이 낳은 세대’에 이어 ‘코로나세대’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이고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딸은 예술전문대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식도 하지 못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작품 상영회도 취소되었다. 상영회때 전시 부스에서 나눠줄 생각으로 만들었던 딸의 명함은 인쇄소에서 온 박스 그대로 집에 보관되어 있다. 딸의 명함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필명 ‘감자전’의 느낌이 잘 드러난 명함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칭찬에 딸은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러나 나는 그 조막만한 것을 만들려고 딸이 잠을 안자고 날밤을 샜다는 사실을 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없다. 경제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도 박하다. ‘오타쿠’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려고 한다니 지나친 욕심이라고 세상은 생각하는 것 같다. 딸이 명함을 뿌릴 날이 올까?   마지막 학기에 딸은 졸업작품 마무리와 함께 자소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바빴다.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원서를 넣을 데가 있을까 싶었는데, 딸의 전공과 관련 있는 웹툰과 게임시장은 언택트시대를 맞아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딸이 취업을 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자소서를 읽으며 웹툰을 편집하는 일이라면 딸이 잘해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물넷, 딸의 일생에서 만화는 인생의 반을 함께 해온 일이다. 그 긴 시간 그 애가 읽어댔던 만화책의 양과 SNS 친구들과 ‘덕질’하며...
감자전의 ‘초년의 맛’ -감자전님의 거북목에 김세희의 단편소설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년)을 처방합니다     ‘거북목’ 사회 초년생 올해 작은딸은 ‘N포세대’, ‘자본이 낳은 세대’에 이어 ‘코로나세대’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이고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딸은 예술전문대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식도 하지 못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작품 상영회도 취소되었다. 상영회때 전시 부스에서 나눠줄 생각으로 만들었던 딸의 명함은 인쇄소에서 온 박스 그대로 집에 보관되어 있다. 딸의 명함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필명 ‘감자전’의 느낌이 잘 드러난 명함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칭찬에 딸은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러나 나는 그 조막만한 것을 만들려고 딸이 잠을 안자고 날밤을 샜다는 사실을 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없다. 경제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도 박하다. ‘오타쿠’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려고 한다니 지나친 욕심이라고 세상은 생각하는 것 같다. 딸이 명함을 뿌릴 날이 올까?   마지막 학기에 딸은 졸업작품 마무리와 함께 자소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바빴다.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원서를 넣을 데가 있을까 싶었는데, 딸의 전공과 관련 있는 웹툰과 게임시장은 언택트시대를 맞아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딸이 취업을 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자소서를 읽으며 웹툰을 편집하는 일이라면 딸이 잘해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물넷, 딸의 일생에서 만화는 인생의 반을 함께 해온 일이다. 그 긴 시간 그 애가 읽어댔던 만화책의 양과 SNS 친구들과 ‘덕질’하며...
겸목 2021.02.06 조회 407
겸목의 문학처방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정군에게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문학동네, 2007년)을 처방합니다        “굳이 써야 할까요?”   지난 가을, 나는 정군(닉네임)을 만나러 광화문으로 갔다.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평양냉면을 먹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정군이 가자고 한 식당에서 사람들이 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슴슴한 맛 특유의 감칠맛 같은 게 혀끝에서 느껴졌다. 그와 다음 약속을 잡고, 나는 걸어서 덕수궁으로 갔다. 하늘은 파랗고, 은행잎은 노랗고, 바람은 선선하고, 걷기에 좋은 가을날이었다. 덕수궁의 석조전과 돌담을 거닐며,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라는 정군의 말을. 내가 정군을 만나러 오며 듣고 싶은 말은 “글이 잘 안써져요. 어떻게 할까요?”였다. 사십대 초반의 애아빠인 정군이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지인들로부터 들었고, 나는 사십대에도 소설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문학전공자인 내 주변에 이제 소설쓰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십대 때, 내 주변에는 시와 소설이 안 써진다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이들은 대부분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사, 공무원, 출판사 편집자 등 제 밥벌이는 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소설쓰기를 포기한 인간의 부류에. 그래서 나는 정군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십대가 아니라 사십대에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정군은 가뿐하게 말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정군에게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문학동네, 2007년)을 처방합니다        “굳이 써야 할까요?”   지난 가을, 나는 정군(닉네임)을 만나러 광화문으로 갔다.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평양냉면을 먹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정군이 가자고 한 식당에서 사람들이 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슴슴한 맛 특유의 감칠맛 같은 게 혀끝에서 느껴졌다. 그와 다음 약속을 잡고, 나는 걸어서 덕수궁으로 갔다. 하늘은 파랗고, 은행잎은 노랗고, 바람은 선선하고, 걷기에 좋은 가을날이었다. 덕수궁의 석조전과 돌담을 거닐며,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라는 정군의 말을. 내가 정군을 만나러 오며 듣고 싶은 말은 “글이 잘 안써져요. 어떻게 할까요?”였다. 사십대 초반의 애아빠인 정군이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지인들로부터 들었고, 나는 사십대에도 소설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문학전공자인 내 주변에 이제 소설쓰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십대 때, 내 주변에는 시와 소설이 안 써진다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이들은 대부분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사, 공무원, 출판사 편집자 등 제 밥벌이는 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소설쓰기를 포기한 인간의 부류에. 그래서 나는 정군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십대가 아니라 사십대에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정군은 가뿐하게 말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
겸목 2020.12.30 조회 509
문탁의 간병블루스
프롤로그   아침에 눈을 떴는데 집안이 고요했다. 아주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커피를 내렸고 사과를 깎았다.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으니 조용하다. 엄마가 없어서 평화가 왔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훌쩍거렸고 사과를 우물거리면서 울었다. 결국 그렇게 병원으로 쫓겨 간 엄마가 불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집에서 평화를 느끼는 내 맘이 너무 징그러워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삼십 분간 대성통곡을 했다.   그랬다. 엄마의 션트 수술 후 지금까지 약 3개월간은 내가 엄마랑 같이 산 지난 6년 중 특히 힘든 시간이었고, 최근 몇 주는 그 3개월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수술 이후 생긴 섬망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기는커녕 빈도나 정도 면에서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들에게 계속 SOS를 쳤고, 급기야 얼마 전 이러다가 내가 죽을 것 같으니 누구든 엄마를 모셔 가라고 카톡을 날렸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동생들은 긴급회동을 했고 각자 일주일에 두 번씩, 엄마가 혼미해지는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에 4시간 정도 엄마를 돌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최근 한 달 가량 우리 사남매는 간병 총동원 체제를 구축해서 엄마를 함께 돌봤다. 그런데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욕을 해대고, 차려놓은 밥상을 바닥에 패대기를 치는 엄마를 도저히 어찌 달랠 도리가 없게 되자 난 오후 2시쯤 119 구급차를 불렀다.      ...
프롤로그   아침에 눈을 떴는데 집안이 고요했다. 아주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커피를 내렸고 사과를 깎았다.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으니 조용하다. 엄마가 없어서 평화가 왔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훌쩍거렸고 사과를 우물거리면서 울었다. 결국 그렇게 병원으로 쫓겨 간 엄마가 불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집에서 평화를 느끼는 내 맘이 너무 징그러워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삼십 분간 대성통곡을 했다.   그랬다. 엄마의 션트 수술 후 지금까지 약 3개월간은 내가 엄마랑 같이 산 지난 6년 중 특히 힘든 시간이었고, 최근 몇 주는 그 3개월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수술 이후 생긴 섬망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기는커녕 빈도나 정도 면에서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들에게 계속 SOS를 쳤고, 급기야 얼마 전 이러다가 내가 죽을 것 같으니 누구든 엄마를 모셔 가라고 카톡을 날렸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동생들은 긴급회동을 했고 각자 일주일에 두 번씩, 엄마가 혼미해지는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에 4시간 정도 엄마를 돌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최근 한 달 가량 우리 사남매는 간병 총동원 체제를 구축해서 엄마를 함께 돌봤다. 그런데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욕을 해대고, 차려놓은 밥상을 바닥에 패대기를 치는 엄마를 도저히 어찌 달랠 도리가 없게 되자 난 오후 2시쯤 119 구급차를 불렀다.      ...
문탁 2020.12.13 조회 1933
겸목의 문학처방전
‘뻔하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을 처방합니다       효숙씨는 ‘일복’도 많지   효숙씨와 나는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여섯 살의 차이는 묘하다. 내가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는 땅꼬마였을 때 그녀는 초등학생이었고,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녀는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서로의 관심사가 겹칠 수 없는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방광염을 하소연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아들었다. “아! 그거 되게 아프고 짜증나잖아요!” 나도 한때 비뇨기과를 들락거리며 방광염을 치료했던 적이 있었다. 비뇨기과 대기실은 내가 갔던 어떤 병원보다도 적막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도 말이 없고, 간호사들에게서도 무심함을 가장한 친절과 어색함을 감추려는 침묵이 느껴졌다.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도 고역이라 빈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나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비뇨기과 인테리어의 포인트는 발기부전의 원인과 전립선의 건강비법을 알려주는 게시물들이었다. 그래서 입 다물고 눈 감고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명상시간처럼 고요했다. 내가 비뇨기과에 갔던 것은 사십대 초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때였다. 의사선생님은 급성 방광염은 항생제로 금방 치료되는데, 이게 반복되면 치료하기 힘든 만성 방광염이 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셨다. 만성 방광염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의사선생님의 ‘주의’가 늘 귓가에 맴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장과 방광의 기능도 노화될 것이고, 요실금도 걱정된다. 가끔 재채기를 하거나 뜀박질을 하다 깜짝깜짝 놀란다.     효숙씨는 나보다 긴 방광염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대학생때 알바로 학비도 벌고 용돈도 벌어야 했는데, 장시간 일을 하다보면...
‘뻔하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을 처방합니다       효숙씨는 ‘일복’도 많지   효숙씨와 나는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여섯 살의 차이는 묘하다. 내가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는 땅꼬마였을 때 그녀는 초등학생이었고,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녀는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서로의 관심사가 겹칠 수 없는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방광염을 하소연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아들었다. “아! 그거 되게 아프고 짜증나잖아요!” 나도 한때 비뇨기과를 들락거리며 방광염을 치료했던 적이 있었다. 비뇨기과 대기실은 내가 갔던 어떤 병원보다도 적막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도 말이 없고, 간호사들에게서도 무심함을 가장한 친절과 어색함을 감추려는 침묵이 느껴졌다.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도 고역이라 빈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나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비뇨기과 인테리어의 포인트는 발기부전의 원인과 전립선의 건강비법을 알려주는 게시물들이었다. 그래서 입 다물고 눈 감고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명상시간처럼 고요했다. 내가 비뇨기과에 갔던 것은 사십대 초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때였다. 의사선생님은 급성 방광염은 항생제로 금방 치료되는데, 이게 반복되면 치료하기 힘든 만성 방광염이 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셨다. 만성 방광염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의사선생님의 ‘주의’가 늘 귓가에 맴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장과 방광의 기능도 노화될 것이고, 요실금도 걱정된다. 가끔 재채기를 하거나 뜀박질을 하다 깜짝깜짝 놀란다.     효숙씨는 나보다 긴 방광염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대학생때 알바로 학비도 벌고 용돈도 벌어야 했는데, 장시간 일을 하다보면...
겸목 2020.10.16 조회 451
문탁의 간병블루스
1. 아이고, 내 팔자야....   동영상은 효과가 컸다. 섬망으로 인한 어머니의 욕과 매를 마치 액받이 무녀처럼 고스란히 받아 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한 후, 동생 한 명은 밤새 울었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새벽까지 손발을 덜덜 떨었다고 했다. 근처에 사는 남동생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밤늦게까지 스탠바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하룻밤이 지나자 모든 상황은 급변했다. 어머니는 전날 밤 일을, 사건 전후의 맥락은 상실한 채 어떤 장면들만 스냅사진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자 어제 밤의 “아비 잡아먹은 년”은 오늘 아침엔 “세상에 불쌍한 년”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며 울었고, 집에 오는 사람 모두에게 “내가 000를 때렸는데 말이야..”는 말부터 먼저 했고, 아무나 붙들고 나에게 밥을 차려주라고 채근을 해댔다. 얼마나 나를 챙기는지 이번에 나는 어머니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착된 감정을 재생산시키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를 슬슬 피해 다녀야 했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간병이 무엇까지를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를 실감한 동생들은 비로소 ‘말’이 아니라 ‘액션’을 취하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호캉스라도 다녀오라며 당장이라도 호텔방을 끊어줄 기세였고 여동생들은 나의 휴가에 대비해 자신들이 담당할 간병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등 떠미는 동생들 덕분에 나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운 나쁘게도 딱 그 타임에 ‘하이난’이 상륙한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집과 엄마를 잠시라도 떠날 수만 있다면 태풍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았다. 강원도 바다가 보이는...
1. 아이고, 내 팔자야....   동영상은 효과가 컸다. 섬망으로 인한 어머니의 욕과 매를 마치 액받이 무녀처럼 고스란히 받아 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한 후, 동생 한 명은 밤새 울었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새벽까지 손발을 덜덜 떨었다고 했다. 근처에 사는 남동생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밤늦게까지 스탠바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하룻밤이 지나자 모든 상황은 급변했다. 어머니는 전날 밤 일을, 사건 전후의 맥락은 상실한 채 어떤 장면들만 스냅사진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자 어제 밤의 “아비 잡아먹은 년”은 오늘 아침엔 “세상에 불쌍한 년”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며 울었고, 집에 오는 사람 모두에게 “내가 000를 때렸는데 말이야..”는 말부터 먼저 했고, 아무나 붙들고 나에게 밥을 차려주라고 채근을 해댔다. 얼마나 나를 챙기는지 이번에 나는 어머니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착된 감정을 재생산시키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를 슬슬 피해 다녀야 했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간병이 무엇까지를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를 실감한 동생들은 비로소 ‘말’이 아니라 ‘액션’을 취하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호캉스라도 다녀오라며 당장이라도 호텔방을 끊어줄 기세였고 여동생들은 나의 휴가에 대비해 자신들이 담당할 간병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등 떠미는 동생들 덕분에 나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운 나쁘게도 딱 그 타임에 ‘하이난’이 상륙한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집과 엄마를 잠시라도 떠날 수만 있다면 태풍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았다. 강원도 바다가 보이는...
문탁 2020.10.10 조회 1427
겸목의 문학처방전
나의 '장인'에게 보내는 마음의 소리 -김초엽의 단편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처방합니다     ‘감정의 물성’을 읽다가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50년 후인 2054년의 미래를 보여준다. 5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개봉 당시 가히 판타스틱 했던 미래기술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상용화되었다. 생체인식기술, 멀티터치인터페이스, 홀로그램, 증강현실, AI안경,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영화적 재미를 가져왔던 미래기술들을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이 된 첨단기술들은 영화 속에서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2019년에 출판된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년)에서도 조만간에 출시되거나 상용화될 것 같은 미래기술들을 엿볼 수 있다. 인간배아 디자인, 냉동수면기술, 웜홀 터널, ‘기쁨/슬픔/우울’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팬시상품,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 도서관 등, 비교적 ‘현실적인’ SF판타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중 가장 빨리 상용화 되는 것은 ‘마인드’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볼 때, 곧 납골당과 추모공원은 사이버상의 홀로그램과 가상현실로 대체될 것 같다. 이것을 관리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우리는 넷플릭스나 왓챠처럼 정액제로 사용요금을 결제하게 될 것이다.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 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나의 '장인'에게 보내는 마음의 소리 -김초엽의 단편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처방합니다     ‘감정의 물성’을 읽다가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50년 후인 2054년의 미래를 보여준다. 5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개봉 당시 가히 판타스틱 했던 미래기술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상용화되었다. 생체인식기술, 멀티터치인터페이스, 홀로그램, 증강현실, AI안경,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영화적 재미를 가져왔던 미래기술들을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이 된 첨단기술들은 영화 속에서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2019년에 출판된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년)에서도 조만간에 출시되거나 상용화될 것 같은 미래기술들을 엿볼 수 있다. 인간배아 디자인, 냉동수면기술, 웜홀 터널, ‘기쁨/슬픔/우울’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팬시상품,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 도서관 등, 비교적 ‘현실적인’ SF판타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중 가장 빨리 상용화 되는 것은 ‘마인드’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볼 때, 곧 납골당과 추모공원은 사이버상의 홀로그램과 가상현실로 대체될 것 같다. 이것을 관리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우리는 넷플릭스나 왓챠처럼 정액제로 사용요금을 결제하게 될 것이다.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 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겸목 2020.09.13 조회 320
문탁의 간병블루스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니체, 「구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엄마가 이..상..해   4월 13일 : 벌써 1년이 되었구나   1년 전 오늘, 엄마가 아파트 안에서 쓰러졌다. 지난한 '간병블루스'가 시작되었다.   4월 15일 : 왜 이를 갈지?    간만에 형제 단톡방에 엄마 소식을 전했다.    하나. 엄마가 몇 주 전부터 이를 조금씩 가셨는데 점점 심하게 가셔. 나의 치과주치의와 의논을 해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네. 치매를 의심하는 듯. ㅠ    둘. 지난 번에 허리 통증 주사를 맞았는데도 여전히 아프신가봐.. 점점 더 “힘들다, 힘들다” 소리가 늘어나네...    셋. 소화를 잘 못 시키심. 아무래도 운동량은 없는 상태에서 약은 계속 드시니까... 일단 일체의 간식을 중단. 그랬더니 변비가...ㅠㅠ    넷. 그동안은 기저귀사용이 좀 줄었는데 요 며칠 기저귀 사용이 다시 늘고 있어. 다시 말해 변기에 앉기 전에 이미 대소변을 보신다는 거지. 왜 그럴까? 인지문제일까? 기능문제일까?   4월 23일 : “이 가는 건 치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입니다”    <00치과> 원장과 전화 상담을 했다. 의사에 따르면 이를 가는 것은 치의학적 원인이 아니라 심리적 문제라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란다. 치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갈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끼우는 것인데, 그것은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장치를 낀 상태에서도 이를 간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쪽에서 상담을...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니체, 「구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엄마가 이..상..해   4월 13일 : 벌써 1년이 되었구나   1년 전 오늘, 엄마가 아파트 안에서 쓰러졌다. 지난한 '간병블루스'가 시작되었다.   4월 15일 : 왜 이를 갈지?    간만에 형제 단톡방에 엄마 소식을 전했다.    하나. 엄마가 몇 주 전부터 이를 조금씩 가셨는데 점점 심하게 가셔. 나의 치과주치의와 의논을 해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네. 치매를 의심하는 듯. ㅠ    둘. 지난 번에 허리 통증 주사를 맞았는데도 여전히 아프신가봐.. 점점 더 “힘들다, 힘들다” 소리가 늘어나네...    셋. 소화를 잘 못 시키심. 아무래도 운동량은 없는 상태에서 약은 계속 드시니까... 일단 일체의 간식을 중단. 그랬더니 변비가...ㅠㅠ    넷. 그동안은 기저귀사용이 좀 줄었는데 요 며칠 기저귀 사용이 다시 늘고 있어. 다시 말해 변기에 앉기 전에 이미 대소변을 보신다는 거지. 왜 그럴까? 인지문제일까? 기능문제일까?   4월 23일 : “이 가는 건 치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입니다”    <00치과> 원장과 전화 상담을 했다. 의사에 따르면 이를 가는 것은 치의학적 원인이 아니라 심리적 문제라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란다. 치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갈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끼우는 것인데, 그것은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장치를 낀 상태에서도 이를 간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쪽에서 상담을...
문탁 2020.08.31 조회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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