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약방 에세이
  1.모범생 딸의 방황과 탐색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 엄마 입장에서는 27년간 모범생으로 속 한 번 썩이지 않던 딸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집안일을 잘 돕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다를 같이 떨어주고 미주알고주알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잘 말해주는 딸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서울의 4년제 대학도 나오고 중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직장도 잘 다니는 딸이기도 했다. 그러던 딸이 갑자기 주중에는 무역회사에서 퇴근하고 술 마시느라 연락도 없이 밤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거나, 주말에도 2030등산동호회를 다니느라 또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엄마는 딸이 방황하고 있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는 모두 엄마 탓을 해대는 통에 엄마는 이중고를 겪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은 고려하지도 않고 나는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라는 엄마 말을 듣고 그동안 애써 유지해오던 가면을 이제야 깬 것 같아서 시원하고 통쾌했다. ‘나는 나래가 공부 못 할 줄 알았는데, 곧잘 하네.“ 중학교 1학년 때쯤 아빠가 엄마에게 말을 듣고나서 나는 줄곧 반 1등의 모범생 모드를 약간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편하고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시험 때 잠깐의 벼락치기가 아닌 1년을 공부해야 하는 고3때 나는 오히려 한,중,일 드라마에 빠지고 친구들을 꼬여내어 노래방에서 놀며 보내다 당연히 명문대는커녕 서울의 4년제 대학에 겨우 붙었다. 딱히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재수는 하기도 싫었으면서, 당연히 돌아온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가장 불만족스러워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1.모범생 딸의 방황과 탐색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 엄마 입장에서는 27년간 모범생으로 속 한 번 썩이지 않던 딸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집안일을 잘 돕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다를 같이 떨어주고 미주알고주알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잘 말해주는 딸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서울의 4년제 대학도 나오고 중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직장도 잘 다니는 딸이기도 했다. 그러던 딸이 갑자기 주중에는 무역회사에서 퇴근하고 술 마시느라 연락도 없이 밤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거나, 주말에도 2030등산동호회를 다니느라 또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엄마는 딸이 방황하고 있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는 모두 엄마 탓을 해대는 통에 엄마는 이중고를 겪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은 고려하지도 않고 나는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라는 엄마 말을 듣고 그동안 애써 유지해오던 가면을 이제야 깬 것 같아서 시원하고 통쾌했다. ‘나는 나래가 공부 못 할 줄 알았는데, 곧잘 하네.“ 중학교 1학년 때쯤 아빠가 엄마에게 말을 듣고나서 나는 줄곧 반 1등의 모범생 모드를 약간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편하고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시험 때 잠깐의 벼락치기가 아닌 1년을 공부해야 하는 고3때 나는 오히려 한,중,일 드라마에 빠지고 친구들을 꼬여내어 노래방에서 놀며 보내다 당연히 명문대는커녕 서울의 4년제 대학에 겨우 붙었다. 딱히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재수는 하기도 싫었으면서, 당연히 돌아온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가장 불만족스러워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나래 2023.06.07 조회 181
인문약방 에세이
새로운 계절   남편과 결혼한 지 올해로 29년차이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적도 거의 없다.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래 함께 살았다. 우리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났고 이미 모두 성인이다. 두 아이가 독립했으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막내가 있으나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갈 길을 찾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자라주었고,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은 아직 건재하시며, 풍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늘 안정되어있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에 충실했고, 커다란 결격사유가 있다고도 여기지 않으며 서로가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외형적으로 보기에 우리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남편도 늘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불행을 예감하는 나름나름의 문제가 늘 잠복해 있음을 느껴왔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행복한 가정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나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막내가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도시로 가던 날 커다란 트렁크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30년을 당신과 살아온 이전처럼 살라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었고, 홀가분했고, 이제는 지금까지와 같이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제 날개 달겠네”하며 빈정거리고는 곧 잊어버렸지만, 나는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계절이 도래했음을 예감했다....
새로운 계절   남편과 결혼한 지 올해로 29년차이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적도 거의 없다.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래 함께 살았다. 우리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났고 이미 모두 성인이다. 두 아이가 독립했으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막내가 있으나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갈 길을 찾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자라주었고,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은 아직 건재하시며, 풍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늘 안정되어있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에 충실했고, 커다란 결격사유가 있다고도 여기지 않으며 서로가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외형적으로 보기에 우리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남편도 늘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불행을 예감하는 나름나름의 문제가 늘 잠복해 있음을 느껴왔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행복한 가정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나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막내가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도시로 가던 날 커다란 트렁크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30년을 당신과 살아온 이전처럼 살라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었고, 홀가분했고, 이제는 지금까지와 같이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제 날개 달겠네”하며 빈정거리고는 곧 잊어버렸지만, 나는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계절이 도래했음을 예감했다....
윤아 2023.06.07 조회 197
인문약방 에세이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은 16년 동안 거식증을 겪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한올 한올 끄집어내어 정리한 글이다. 신체의 모세혈관 한가닥까지 도려내어 해부하듯이 그녀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하고도 심도깊은 감정과 욕망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직조하여 우리에게 펼쳐 놓는다. 그녀가 선택한 ‘허기’의 키워드는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욕망과 죄책감, 욕구의 솟아오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참혹한 세계에 대한 공포. 이런 양가적 감정 사이에 자리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녀에게 배고픈 상태의 유지는 아우성치는 원함을 걸어 잠그는 열쇠이자,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 외부적 증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거식증’의 극단까지 끌고 간 그녀의 강박스러움과, 그 속에서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는 욕구들, 감정들의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허기’를 욕구했는가? 라는 질문은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태생적 기질은 물론, 시대가 요청한 여성에 대한 억압까지 파헤치기에 충분했다. 개인이 신체에 가한 자해적 억압은 거대한 진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놓쳤던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한다’는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나의 감정을 풀어내어 언어로 옮겨 놓는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포용하며 타인과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 작업의 작은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불안의 내면화 30대 초반부터 거의 십년 동안 나는 공황장애 환자였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고 정신은 아찔하여 죽을 것만 같았던 경험들은 삶이 곧 지옥이 되는 순간들을 선물했다. 흔히 잘...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은 16년 동안 거식증을 겪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한올 한올 끄집어내어 정리한 글이다. 신체의 모세혈관 한가닥까지 도려내어 해부하듯이 그녀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하고도 심도깊은 감정과 욕망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직조하여 우리에게 펼쳐 놓는다. 그녀가 선택한 ‘허기’의 키워드는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욕망과 죄책감, 욕구의 솟아오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참혹한 세계에 대한 공포. 이런 양가적 감정 사이에 자리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녀에게 배고픈 상태의 유지는 아우성치는 원함을 걸어 잠그는 열쇠이자,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 외부적 증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거식증’의 극단까지 끌고 간 그녀의 강박스러움과, 그 속에서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는 욕구들, 감정들의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허기’를 욕구했는가? 라는 질문은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태생적 기질은 물론, 시대가 요청한 여성에 대한 억압까지 파헤치기에 충분했다. 개인이 신체에 가한 자해적 억압은 거대한 진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놓쳤던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한다’는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나의 감정을 풀어내어 언어로 옮겨 놓는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포용하며 타인과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 작업의 작은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불안의 내면화 30대 초반부터 거의 십년 동안 나는 공황장애 환자였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고 정신은 아찔하여 죽을 것만 같았던 경험들은 삶이 곧 지옥이 되는 순간들을 선물했다. 흔히 잘...
꿈틀이 2023.06.07 조회 230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어머니, 온실 화분들에 물을 주어야겠는데요?” “.......”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화분이 말라가는데 그냥 그렇게 둔다. 하루 종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만 본다. 아니, 거의 주무신다. 식사는 항상 많다고 덜어 낸다. 말씀도 거의 안한다.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은 뒤로 말씀이 매우 짧다. 얼마 전만 해도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두어 시간 동안, 내용의 반절은 매번 다르게 창작하며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치매가 더 진행된 듯이 보인다.     혼자 사는 게 좋아       고기동 집은 1층에 장인·장모님을 모시려고 설계하였다. 두 분이 살아 계실 때부터 졸랐지만, “내가 밥해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딸네 집에 가서 산다냐!” 하시며, 결국 당신들도 마곡동에 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장모님은 화분핑계, 친구들 핑계 등등을 대면서 혼자 사시겠다고 했다. 하기야 변호사를 불러서 상속문제 등의 행정 처리도 스스로 하고, 우리 가족 ‘톡’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하며 글을 올리는 것은 물론, 블루투스 스피커를 핸드폰에 연결해서 들으실 수 있으시니 충분히 혼자 사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장인이 계시지 않으니...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어머니, 온실 화분들에 물을 주어야겠는데요?” “.......”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화분이 말라가는데 그냥 그렇게 둔다. 하루 종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만 본다. 아니, 거의 주무신다. 식사는 항상 많다고 덜어 낸다. 말씀도 거의 안한다.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은 뒤로 말씀이 매우 짧다. 얼마 전만 해도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두어 시간 동안, 내용의 반절은 매번 다르게 창작하며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치매가 더 진행된 듯이 보인다.     혼자 사는 게 좋아       고기동 집은 1층에 장인·장모님을 모시려고 설계하였다. 두 분이 살아 계실 때부터 졸랐지만, “내가 밥해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딸네 집에 가서 산다냐!” 하시며, 결국 당신들도 마곡동에 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장모님은 화분핑계, 친구들 핑계 등등을 대면서 혼자 사시겠다고 했다. 하기야 변호사를 불러서 상속문제 등의 행정 처리도 스스로 하고, 우리 가족 ‘톡’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하며 글을 올리는 것은 물론, 블루투스 스피커를 핸드폰에 연결해서 들으실 수 있으시니 충분히 혼자 사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장인이 계시지 않으니...
가마솥 2023.06.06 조회 387
인문약방 에세이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문탁 2023.06.02 조회 363
인문약방 에세이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문탁 2023.06.02 조회 108
인문약방 에세이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문탁 2023.06.02 조회 91
인문약방 에세이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문탁 2023.06.02 조회 66
인문약방 에세이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문탁 2023.06.02 조회 102
문탁의 나이듦 리뷰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에이징 솔로>(2023, 김희경)       1. 비혼 이야기가 없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기자, NGO 활동가, 문체부와 여가부의 관료를 두루 거치며 ‘순차적 N잡러’로 살아왔고, 결혼 경험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20년 차 솔로이다. 1967년생이니, 우리 공동체의 기린, 노라, 달팽이, 뚜버기 등과 동년배이다. 이력만 보자면 솔로이긴 해도 (우리와는 달리^^)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네임드 작가이다. 그런 그녀도 솔로여서 종종 열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솔로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녀는 “남에게 폐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 그리고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충분한 매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다 솔로’가 되었지만 아마 특별한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느 날 ‘에이징 솔로’의 ‘현타’가 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뇌변병 장애로 인지증(치매)를 앓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오더라. ‘나도 아버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대리해줄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되게 우울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지는 선택하지 못하잖나. 완벽히 대비가 되는 일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김희경-김은형 대담, ‘중년의 혼자 삶에 대하여’, 2023년 4월22일, 한겨레 신문)   그러나 그녀에게 참고가 될만한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두 가지!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솔로여성의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년’도 ‘솔로’도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들이니 이 세...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에이징 솔로>(2023, 김희경)       1. 비혼 이야기가 없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기자, NGO 활동가, 문체부와 여가부의 관료를 두루 거치며 ‘순차적 N잡러’로 살아왔고, 결혼 경험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20년 차 솔로이다. 1967년생이니, 우리 공동체의 기린, 노라, 달팽이, 뚜버기 등과 동년배이다. 이력만 보자면 솔로이긴 해도 (우리와는 달리^^)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네임드 작가이다. 그런 그녀도 솔로여서 종종 열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솔로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녀는 “남에게 폐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 그리고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충분한 매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다 솔로’가 되었지만 아마 특별한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느 날 ‘에이징 솔로’의 ‘현타’가 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뇌변병 장애로 인지증(치매)를 앓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오더라. ‘나도 아버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대리해줄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되게 우울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지는 선택하지 못하잖나. 완벽히 대비가 되는 일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김희경-김은형 대담, ‘중년의 혼자 삶에 대하여’, 2023년 4월22일, 한겨레 신문)   그러나 그녀에게 참고가 될만한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두 가지!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솔로여성의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년’도 ‘솔로’도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들이니 이 세...
문탁 2023.05.12 조회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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