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 3회차 후기] 랭스로 되돌아가다(3-5부)

김지영
2023-06-30 01:37
366

세미나 시간에 논의한 주제별로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 우리 사회는 계급 사회인가?

많은 분들이 ‘계급’이라는 단어를 수용하는데 장벽을 느꼈다고 토로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계급사회로 볼 수 있는가? 프랑스와는 다르지 않은가? (프랑스와 우리 사회를) 유사하게 볼 수 있다 해도 지금 이 시대에 계급이라는 것이 유효한가?

저도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이 좀 걸렸습니다.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분단을 빌미로) 지배세력이 부추겨 온 레드컴플렉스 때문인지(저도 그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한 세대) ‘노동자’ ‘계급’ ‘노동자계급’ 이라는 단어에 마음의 거리가 있어 더욱 수용이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단어의 적합성을 떠나 현상으로 보면, (우리도 계급사회임이) 틀리지 않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었습니다. 모퉁이샘이 해주신 지방 학생의 대학입시 이야기는, 디디에가 말하는 ‘계급에서 오는 차이’가 현재 일어나는 일임을  인정하게 했습니다.

'수저 계급론'이 몇 년 전 청년들 사이에서 한참 회자됐습니다. 봉건시대 신분제에서 전환된 계급이 우리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해도, 화폐 중심의 계급사회는 공고하게 고착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또 이런 쓸데없는 질문도 해봅니다. 지구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의 계급일까?

 

# 노동자 계급은 왜 극우성향의 후보자에게 투표했을까?

여러 분이 지난 대선의 추억을 소환하며, 우리의 지금 정치 세태와 유사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3부를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단박에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끓어 올랐으나, 한번 읽고 소화할만한 능력이 제겐 없더군요(슬픔).

“여러 좌파 정당과 좌파 지식인들, 즉 당 지식인과 국가 지식인들은 그 후로는 더 이상 피치자들의 언어가 아닌 통치자들의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들은 더 이상 피치자들의 이름으로(그리고 그들과 더불어)가 아니라, 통치자들의 이름으로(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스스로를 표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계에 대해 통치자들의 관점을 취하고, 피치자들의 관점을 멸시하며 (이는 그것을 당학 이들에게는 거대한 담론적 폭력으로 경험되었다) 밀어내기에 이르렀다.”(148쪽)

(지난 시즌 함께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한 때(한 때라고 하는 건 비겁한 태도라는 생각도 드네요) 민주당 정부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요즘말로 ‘팩폭’ 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절이 가져다 준 자괴감이 크다는 넋두리만 했지, 그 때의 나를 정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자기기술지를 쓴다면, 30-40대는 3부를 참고삼아 ‘나는 왜 아무 생각이 없이 살게 되었나’를 분석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수치는 어떻게 자긍심이 될 수 있는가?

함께 공부하는 두 분의 퀴어가 계셔서, 텍스트에 서술된 바를 저희들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세미나 시간에 인용했던 문장 "나는 모욕의 산물이며, 수치심의 아들이다." 존재를 부정 당한다는 것은 어떤 고통을 안고 사는 것일까? 내 인식이 나의 경험의 총합 범위에 있을텐데,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은가? 과연 내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데까지 이를 수 있을까?

문탁샘이 '성적 빡침'을 말씀하셨을 때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여성들의 심정에 대해) 100% 이해한다"고 말하는 남성인 친구나 동료에게 제가 했던 말이요. 이렇게 말했죠.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걸!" (웃기시네!, 같은 추임새도 분명 넣었을 거예요)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능한 일일까요? 애당초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서로를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세미나 때 얘기하며 잠시 울컥했던 것은 갱년기로 감정 기복이 심하고 제 맘대로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예요.ㅠ.ㅠ 소수자를 연민-심지어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현 샘과 해성 샘이 혹시 그렇게 느껴져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계속 마음에 걸려서 말씀드려요)

지현샘께서 "내가 나인 채로 괜찮다고 나를 세상에 내보이는 순간이어서 퀴어 퍼레이드를 할 때 자긍심을 느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걸 들으며, 약자성이 몸으로 드러나는 경우(여성, 흑인 등)와 동성애자처럼 소수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 자신들의 취약성에 대응하는 방식도 당연히 달랐을텐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생각을 끌고나갈 무언가가 없어서 그냥 생각만 했어요.(머쓱)

 

# 누가 자기기술지를 쓸 수 있을까?

해성 샘이 이 질문을 던지실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중에 쓴다면 가장 가능성 높은 분이 이렇게 물어보면 어쩌라는 거지?(농담같지만 농담만은 아님요 쿨럭)' 디디에 에리봉의 글은 훌륭했지만, 저 같은 독자에게는 자기기술지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 급격히 의욕이 떨어졌습니다. 계속 공부해야 하고 끊임없는 자기협상의 기술을 발휘(?)해야 하는 것. 이런 얘기들이 기억에 남았을 뿐...

저는 그것과 함께 자기기술지를 쓸 때 내가 가져야 할 마음 가짐, 곧 '나와 정면할 결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내 모습을 감당할 결심(p255)'을 해야 비로소 '나는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를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쓸 준비가 되는 것이라는... 

 

쓰고 나니, 주제와 내용이 따로 국밥이네요. 핑계를 하나 대자면 제가 오늘 아니면 후기를 쓸 형편이 안 돼서요, 허술한대로 썼습니다. 질보다 납기일 맞춤 후기임을 널리 양해해 주시길...  후기가 허술하면 댓글이 흥한다는 지난주 영선샘 말씀에 기대면서 후기를 맺습니다. 

 

댓글 20
  • 2023-06-30 09:30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계급문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지금 시점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 나가야 할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라는 두 축으로 전개된 20세기를 넘어선지 꽤 되었지만
    현실에 대한 담론은 얼마만큼 생산되고 있을까, 대학의 위상과 성격이 달라지면서 지성의 흐름 또한 다르다고 느껴지고,
    제가 잘 모르고 있을수도 있고요.
    문탁쌤이 언급하신 전 세계적 우경화 현상과 함께 우리 사회가 가진 독자성을 함께 고려하면 더 복잡해집니다.

    후기를 읽으니 선생님께서 왜 정면, 마주하기, 혹은 직면하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마주하기 벅찼던 부분이 무엇일까 궁금했거든요.

    몸이 드러나는 경우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의 차별성에 관해 언급하신 부분도 공감이 되어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디디에 에리봉처럼 공간을 찾아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까요, 같이 생각해 보아요.
    한편으론 드러나는 경우에 억압이 더 심할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요.
    조금 다른 측면이긴 한데 예전에 소록도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생각나네요. 몸이라는 부분에서는 같은 맥락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 2023-07-02 18:23

      복잡해진 건 맞아요. 그래서 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헷갈리구요.

      그런데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제가 어제 양생프로젝트 에세이데이 끝나고 오늘 늦잠자고... 후기 쓰고...다시 넘 졸려워서 누워서 유투브로 지락실보다가.. 알고리듬으로 뜬 댄스가수유랑단도 잠깐 봤는데 (근데 이건 제 '취향'은 아니더라구요. ㅋㅋㅋ)...각설하고...갑자기...
      <세미나 유랑단>> 이런거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김해하고 영주, 지도에서 다시 찾아봤거든요?
      솔직히 우린 '지방'에 대해서 너무 모르니까요.
      그래서 제주도 가서 거기 사는 아는 친구들 다 불러서 세미나 한번 하고
      영주가서 모퉁이샘 사는 동네 구경하고 세미나 한번 하고
      김해가서 보헤미안 샘들하고 세미나 한번 하고
      ㅋㅋ
      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몇 년 내로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생긴거에요, ㅋㅋㅋ

      • 2023-07-02 22:40

        문탁샘의 <세미나 유랑단> 프로젝트를 렬렬히 응원함돠~
        제주도, 김해, 영주에 더 갈 수 있는 곳도 찾고 가서
        님도 보고 뽕도 따고....ㅎ

        '유붕이, 자원방래 하니 불역락호' 아~...... 를 실천해 보아요~~

  • 2023-06-30 22:14

    동물이나 인간이나 여기서는 계급이라고 표현하지만 서열화는 언제든지 일어난다.
    다만, 우리사회는 화폐에 의한 서열화와 박탈감이 심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삶의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는것 같다. 옛 세대들에 비해 다르게 살아볼 수 있는 여지는 많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발달은 부작용도 있지만 휴먼 네트워크나 책으로만 알수 있던 것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 보다 선행되니까 걍, 살아버리면 되는것 같다.(그러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맴돌아서 문제지만)
    그러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궁리중이다.
    어떻게 살아버릴까 ㅎ

    수치가 자긍심으로까지는 쉽지 않은 길일것이다.
    내가 어떤 상태든 나를 안전하게 받아들이는
    ' 교정적 정서 체험'을 하면 가능하다고 상담에서는 말한다. 또한 존재론적 공감은 나의 상황, 혹은 상태는 더 이상 모욕감을 느끼지도 않고 수치스럽지도 않다. 아마, 디디에 에리봉도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한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을만큼 지지를 받았고, 책을 쓴후 더 인정을 받았으니 자신의 과업을 더 성공한것이다.

    댓글이 단 두개이므로 후기는 잘 쓴것으로
    합시다^^. 후기가 올라오면 뭔가 쓰려는
    전투적인 마음이 생기다가 시간이 지나니 점점 사라지더라구요. 부실하게 후기를 가로챌 뻔했습니다^^. 다음날 바로 후기를 쓰는것으로 하죠. 후기 감사합니다.

    • 2023-07-02 18:16

      샘...부캐놀이? 이번엔 핫빛....이야^^

  • 2023-07-02 10:36

    후기 잘 읽었습니다. 요렇게 단락을 나누어주시니 세 시간 동안 나눴던 이야기들이 정리가 됩니다.

    처음 이 책을 휘리릭 읽어내려갔을 때는 90년대 한국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던, 가난한 집에서 독보적으로 똑똑하게 태어난 남자가 거의 본인의 잘난 힘으로 좋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여 어떻게든 신분상승을 이루려 애쓰면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그렸던 그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디디에 에리봉의 글을 백인 남자의 회고록이라 굳이 내질렀던 것은 이런 잔상 때문에 덧붙여 보았던 문장이었습니다.

    신분제 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각각 주어진 위치에 맞게 결정된 것 이외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데 비해 계급 사회는 그것을 경제 자본, 사회적 자본의 보이지 않은 힘과 권력 관계 안에서 스스로 욕망하지 않도록 작용하고 있다고 단순하게 정의 내린다면, 현대의 계급 문제는 신분제 사회처럼 누구나 분명하게 동의하고 혹은 동일하게 지각하는 장벽이 존재하지 않기에 개인적으로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나름 절친해 보이는)부르디외는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걸 보면, 각자의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자기기술지가 더, 더, 더 많이 쓰여지고 공유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럴 때에야 우리의 공동 전선이 만들어져 함께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지금 모여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쓰는 이 시간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격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저자가 가족도 나몰라라 하고 자기 출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그 여정이 드라마의 남주와 어떤 점이 다를까, 그 욕망의 정당성(욕망이 왜 정당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지만 사실 이 책을 읽고 두 번의 세미나를 하는 내내 제게서 떠나지 않았던 문제였음)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제가 내린 결론은 디디에 에리봉의 욕망은 결핍으로서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 발명으로서의 욕망'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끊임없는 결핍에의 욕망이 교차되었겠으나) 내게 없는 것을 채우고 소유하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다르게 존재하는 나를, 그들이 모욕하는 나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정해 주는 세계로의 욕망을 위해서, 그에게 결정되었을 그 미래를 뒤로 한 채 최선을 다해 나아갔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회고록으로만 읽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치심을 자기 변형의 에너지로 삼으며 과거를 현재의 자신과 통합하기 위한 끊임없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이러한 과정을 수행이라 이름 붙이는 그의 해석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사회세계의 폭력(계급 폭력)이 아버지의 모습을 만들었고, 그런 그를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를 사랑하지 못했던 저자의 후회를 읽으며,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각도/입장의 공부가 항상 필요함을 배웠습니다.

    • 2023-07-02 14:02

      멋져요! 저는 언제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지… (부럽). 저는 막바지에서 ‘나는 이렇게 살아온 입지전적 인물이다’라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잠깐 왔다갔어요. 성공신화는 아닌데 이게 뭐지? 라는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있었는데, ‘자기발명으로서의 욕망’이라는 샘의 정리를 보니 마음이 깔끔해지네요 ^^👍

      • 2023-07-02 18:16

        거기 어디? 멋진 사진이나 한장 투척해주시지...ㅎㅎ

        • 2023-07-02 19:47

          아직 프라하입니다. 곧 암스텔담 넘어가는데…
          프라하 무슨 일이래요? 겁나 아름다움😍
          사진 한장 투척함다. 똥손이어도 이 정도 찍힙니다.

          IMG_2640.jpeg

          • 2023-07-03 16:46

            프라하...아주 아주 옛날에, 정말 옛날에 한번 갔었음. 이제 유럽은 뱅기 너무 오래 타서 못 갈듯^^

  • 2023-07-02 23:16

    와~ 지영샘~ 멋진 곳에 계시네요.
    부럽습니다~~~.

    < 랭스로 되돌아오다>>의 4부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는 큰 아이 입시 때 일이다. 큰 아이 때부터 정시 외에 수시로도 대학을 갈 수 있게 대입 제도가 바뀌었다. 성적 외에 다양한 경험을 중요시하며 봉사 활동을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있다고 선진 교육 제도에 다가선 듯 국민과 언론들이 환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수시로 대학을 가는 건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부모들에게 훨씬 유리한 입학 제도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딸은 학교 수업 외에 학원을 돌릴 여유도 없는 부모 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곳에서 열심히 하면 그래도 대학을 갈 수 있다고 믿는 도움이 안 되는 부모를 두고 답답했을 것이다.

    10년의 나이 차가 나는 아들은 대안학교에 보냈다. 이반 일리치의 학교 없는 사회와 고미숙의 호모 쿵푸스에 자극을 받아 내린 결정이었다. 초등.중등.고등을 모두 대안학교를 나온 아들은 사회로 입성에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은 증명해야 하는 난관 앞에서 분노했다. 부모의 경제적 자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무학대사(?)로 사는 건 그림의 떡이었다.

    중고등 대안학교에 가서 알았다. 대안학교 부모들의 경제적 문화적 자본은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또 다른 구별을 경험하게 했는데 그게 더 힘이 세다는 걸. 부모의 자본과 의지에 따라 아이들의 자유의 크기가 얼마나 다르던지. 대안학교에 다닐 때에도 방학을 맞아 외국에서 유용한 자격증을 따며 방학을 지내는 모습이 달랐지만 졸업을 하고 나니까 더욱 더 다른 영향 아래 놓였다. 아들 동기들은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기숙형 학원에 입소를 하거나 자유롭게 자기 탐색의 기회를 가지며 지냈다. 하지만 아들은 자기 용돈을 벌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매일 새벽에 눈을 뜨고 일을 하러 나갔다. 이십 대 어린 청년들이 끼니도 못 챙기며 현장을 돌다가 안전하지 못한 현장에서 죽음을 당하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아들은 아는 것 같다. 자신을 도울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 그런 아들에게 딱히 해줄 것도 아는 것도 없는 나는 밥만 열심히 해 먹이고 있다.

    큰 딸이 제도권 학교에서 겪은 패배감은 무시할 수가 있었는데 대인학교의 패배감은 소위 뱁새 따위가 황새를 따라가려고 했던 것일까? 하며 드는 생각으로 한동안 우울했다.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에 의해 선택 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디디에의 진단은 무시 할 수가 없다.

    • 2023-07-03 16:46

      그래서 이 셈나에서 샘이 정말 필요합니다.

  • 2023-07-03 08:48

    -우선 지영 샘, 안심하세요~ 샘이 울컥하실 때 전혀 동정이나 연민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는 그 대목을 읽고 펑펑 울었는데, 각자의 눈물에 담긴 의미는 다르다해도 샘과 교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갱년기 때문이라고 하셔서 서운할 판… ㅎㅎ)

    -지난 세미나가 끝나고 모욕과 관련된 기억들이 떠올라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미나 때 저는 퀴어 퍼레이드에서 자긍심을 느꼈다고 했는데 사실 퀴퍼는 저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안긴 시공간이기도 합니다. 경찰 너머로 손을 뻗은 혐오 세력들에게 맞으면서 행진하던 기억, 앞에 있던 친구들이 똥물을 맞던 장면, 바닥에 자기 몸을 드러누우면서까지 우리의 행진을 막던 사람들, 내가 교정돼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광기 어린 눈빛과 소란과 저주 섞인 말들......(최근 몇 년 간의 서울 퀴퍼는 대중화되고 경찰의 ‘보호’ 아래 이루어지면서 이런 직접적인 모욕을 느끼지는 않게 되었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이랬습니다.) 모욕은 수치심으로 내 몸에 켜켜이 쌓였겠지만 그래도 자긍심을 느꼈던 건 우리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힘을 느낄 수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에리봉이 말한 수치심이 자긍심으로 전환되는 지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또한 ‘유럽의 게이’라는 에리봉의 위치성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과연 당대를 살아가는 한국 퀴어가 자신의 수치를 재해석한다고 해서 수치심이 자긍심으로 변환될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자기 긍정’까지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자긍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나.(자긍심은 훨씬 더 광장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단어거든요, 저한테는.) 계속해서 나의 존재를 지우려 하고 불법화하려는 사회에서 자긍심을 갖는 것이 가능한가. 퀴어가 자긍심을 가지려면 이 사회와 주변인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걸 개인적인 작업으로 떠넘기고 있는 위험성은 없는가....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랭스> 첫 번째 시간에 영선 샘 발제에 동성애에 대한 질문이 담겼는데 그때 문탁 샘이 별다른 얘기 안 하고 넘어가셨어요. 그 질문이 저에게는 제 존재와 관련된 물음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절한 답변이 무엇일지 이 책 저 책 찾아보고 단톡방에 올리고 하면서 아, 소수자는 왜 이렇게 매번 자신을 설명하는 수고를 해야 할까, 왜 누군가는 계속 몰라도 되고 계속 질문해도 되는데 왜 누군가는 계속 답변하면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써야 할까 생각했습니다.(영선 샘을 콕 집어서 하는 말 아닙니다.) 그러고나서 두 번째 세미나 때 또 무슨 얘기가 나올지, 그러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두렵기도 했고 긴장됐어요.
    열 몇 명의 이성애자와 두 명의 퀴어가 퀴어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 나의 소수자성이 탐구의 대상이 되는 시간... 참, 뭐라고 딱 명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 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시즌1부터 저를 드러낸 건 "퀴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요. 저를 보면서 신기하신가요? 아님 불편하신가요?" 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던 셈인데 (해성 샘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게 큰 힘이 됐고요) 괜히 나를 드러내서 내가 마음고생을 하나 싶기도 하고...... 그치만 또 나를 드러내서 세미나 자리에 ‘진짜로’ 함께 하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뭘 어떻게 했어야 했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런 구도에서 생겨날 수 있는 역동, 당사자가 느낄 감정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몇몇 샘들이 본인은 퀴어를 여기서 처음 봤다고 하시는데요. 사실 퀴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4~50년 넘게 사시면서 퀴어를 못 보셨다면 아마 보지 않으려고 하셨거나 샘들 주변의 퀴어가 샘들에게 커밍아웃을 안 했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자리에든 퀴어가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한다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퀴어가 상처받을 일이 훨씬 줄어들 것 같네요. 그러면 언젠가 주변의 퀴어가 샘들에게 커밍아웃을 할 수도 있겠지요.
    이제는 다음 텍스트로 넘어가렵니다.

    • 2023-07-03 16:54

      전 이번 뉴스레터에서 해야샘 글 읽으면서 또 많은 생각을 햇어요. 퀴어 내에서의 차이와 불평등에 대해서요.
      최근에 저와 페친이 된 분 중에 남성 고학력퀴어가 있는데...그분 페북에서는 계속 자신과 파트너의 알콩달콩 글을 올려요.
      그리고 00대학 00대 남성퀴어모임에 대한 글도 자주 올려요.
      한편으로는 보기 좋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퀴어에게 이게 가능한 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자긍심이 수치심에 대한 다른 해석뿐만 아니라 공적영역의 출현과 관계있다는 샘의 이야기는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두 가지는 결국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좀 더 생각해볼게요.

    • 2023-07-05 00:23

      앗. 갱년기 탓을 한건… 세미나에서 발언할 때는 감정을 잘 조절하면서 말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는 뜻이었슴다. 제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건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분노하는 것이어 할텐데, 슬픔으로만 표현된 듯 하야… No 오해 No 서운 ^^;;

      • 2023-07-05 01:34

        첫 문단을 읽고 위 답글을 달았는데… 추가 글을 달지 않을 수 없는 지현샘의 글이네요.
        올해 지현샘이 합류하셨을 때, ‘우리 세미나에 퀴어 비율이 높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연에서 동성애 비중이 10%가까이 된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세미나 구성원은 성비는 지나치게 치우쳤지만, 성적취향에서는 평균적(?)인 거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제 주위에 퀴어가 없는 건 제 인간관계가 좁아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특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수자들이 폭력적 사회에서 취할 수밖에 없었던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겨우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퀴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풀어야 하는 것(지난 시즌 <장애학의 도전>>이 저에게 준 깨우침^^)인데, 오히려 (또!) 지현샘이 좋은 답을 주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2023-07-03 10:53

    콕 집었는데요^^. 매번 어려웠을것 같아요. 퀴어대한 주제?가 나오는데 아닌척하기도 그렇고. 저도 여기저기 찿아봤어요. 최재천 선생님이 유트브에서 말하는 견해도 보았고, 블로거, 퀴어 인터뷰등 지금까지의 생각이 전환되었어요. 완전한 전환은 아니지만요.

    • 2023-07-03 16:54

      연구자세에 박수를 보냅니다. 😁

    • 2023-07-03 18:55

      앗 영선 샘, 진짜 아니에요 ㅋㅋㅋ
      어쨌든 전 편견을 가진 채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질문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물론 어떤 공간이나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생각에 전환이 있었다니 반갑습니다!

  • 2023-07-04 07:01

    멋진 후기 쓰시고 휴가 가신 지영샘, 부럽습니다. 🙂 현재의 제1야당에서 일하셨던 경험을 지영샘이 현재 시각으로 서사화 하시면 정말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제 위치성에서 보면 저에게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현 여당이나 제1야당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져요. 그리고 그 당의 특정 정치인 팬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이건 제 입장이고 다른 위치성을 갖고 계신 분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가 궁금해져요.
    지영샘 세미나 때 반응에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저도 저자가 맨몸뚱아리로 독자에게 다가갔다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를 모두 소환하여 다 "까발리는" 작업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읽으면서 울기도 했거든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5
<여름시즌> 7주차 공지 - 고미숙 <동의보감> 2회차 + 글쓰기 일정 (10)
문탁 | 2023.07.23 | 조회 342
문탁 2023.07.23 342
94
[S2 6회차 후기] 동의보감 전반부 (1부~4부) (9)
해야 | 2023.07.21 | 조회 302
해야 2023.07.21 302
93
<여름시즌> 6주차 공지 - 고미숙 <동의보감> 1회차 - 드디어 '양생'으로! (4)
문탁 | 2023.07.15 | 조회 259
문탁 2023.07.15 259
92
[5회차 후기] <은유로서의 질병> 2.에이즈와 그 은유 (2)
박정은 | 2023.07.15 | 조회 174
박정은 2023.07.15 174
91
[S2 5회차 후기] 수전 손택, 은유로써의 질병 - 에이즈 편 (3)
보헤미안 | 2023.07.13 | 조회 244
보헤미안 2023.07.13 244
90
<여름시즌>5주차 공지 - 수전 손택 (2회차)-에이즈와 그 은유 (4)
문탁 | 2023.07.11 | 조회 232
문탁 2023.07.11 232
89
<여름 시즌> 4주차 후기- 은유로서의 질병
김은영 | 2023.07.09 | 조회 176
김은영 2023.07.09 176
88
[S2 4회차 후기]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4)
지현 | 2023.07.08 | 조회 282
지현 2023.07.08 282
87
<여름시즌>4주차 공지 -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1회차) (7)
문탁 | 2023.07.03 | 조회 216
문탁 2023.07.03 216
86
3회차 후기 <랭스로 되돌아가다>_3-5부 (5)
노을 | 2023.07.01 | 조회 226
노을 2023.07.01 226
85
[S2 3회차 후기] 랭스로 되돌아가다(3-5부) (20)
김지영 | 2023.06.30 | 조회 366
김지영 2023.06.30 366
84
<여름시즌>3주차 공지 - 디디에 에리봉, 귀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6)
문탁 | 2023.06.26 | 조회 338
문탁 2023.06.26 33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