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시 5월 13일 공지

겸목
2023-05-04 09:26
360

지난 공지에서 '긴장감 있는' 글을 써오시라, 주문을 드렸는데, 이번주야말로 저에게는 '긴장감 있는' 며칠이었습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과제글쓰기를 너무 성실히 써주셔서 감동 받고 놀라고 있었는데, 그 감동을 모두가 똑같이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합평때마다 7편의 글을 모두 피드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에 쫓기고 글 써오신 분이 글을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급해서,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있고, 누군가는 불편하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주의하지 않은 사실을 되돌아봅니다.

 

이번주 당최님이 단톡방을 말없이 나가셨어요. 다들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실 거예요. 단톡방을 나가기 전날, 저에게 '여기까지 하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혀주셨어요. 어제 당최님과 통화하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기혼자 다수인 모임에서 비혼자 당최님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점, 서로의 글에 피드백하는 태도에서 서로의 인생을 재단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어요. 당최님은 이런 분위기에서 글을 쓴다는 게 자신에게 안 맞는다고 판단하셨고, 저는 함께 더 부대껴보자는 의견을 드렸습니다. 이상적인 글쓰기 모임이라면, 서로에게 예의 있게,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친밀도도 그것을 요구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에요. 이건 시간이 더 지나야 서로 무르익을 수 있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 애정이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지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요. 어쩜 저의 답변은 무책임합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생각으로 시간이 엄청난 화학작용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사람의 부주의함을 해결하려는 방식이니까요. 시간이 그냥 약이 되지는 않겠죠?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나은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라는 지향을 가지고 마음을 내본다면, 뭔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 '내상'을 입힌 사건입니다. 저의 부주의함이 가장 컸다고 생각되지만, 이런 단죄와 연루를 따져보는 일이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고, 그 결과의 속쓰림도 받아들여야하겠지만, 이런 긴장을 갖고 글쓰기 모임이 지속되었으면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어렵구나, 괜한 일을 시작했나, 아무래도 쉽지 않겠어, 이런 결론은 천천히 내려주셨으면 해요.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서 애정을 드러내는 일은 어떠해야 할까, 이걸 실제로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에 가까이 가는 일은 어떤 방식일까, 모색해보는 일이 글쓰기모임의 윤리학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비비언 고닉의 책에서 우리가 읽어냈던 '거리감'의 설정도 같은 이야기일 것 같고요. 매번 실패하지만 매번 다르게 시도할 수 있기를 다짐해봅니다.

 

5월 13일~14일 평창 인디언샘 집으로 워크숍 갑니다. 8주에 걸쳐 4편의 글을 썼습니다. 그 가운데 1편을 이번 기회에 A4 3쪽 분량으로 고쳐쓰기합니다. 어떤 주제에 나는 꽂혔었나? 그때 쓰지 못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시고요, 우리에게 '선생'으로 자리잡고 있는 네 권의 책들도 다시 살펴봐주세요. 이슬아, 장류진, 캐롤라인냅, 비비언고닉의 책도 다시 재설정된 문제의식을 갖고 읽어보시면 그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함께하는 동학도 있고, 지침이 되는 책도 있어요. 이 둘을 길잡이 삼아 각자의 자기 이해가 깊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내가 자기연민과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내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이야기로 포장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시고 우리가 희망하는 '자기객관화'는 어느 지점에 있는 작업인지 가늠해보셨으면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놓인 위치(젠더, 계급, 취향, 시대)도 함께 고려해주세요. 우리는 무중력상태에 있는 '나만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이걸 모두 사회 탓, 시대 탓 할 수도 없고, 이걸 모두 내 탓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다섯 번째 글쓰기는 5월 12일 금요일 밤 10시까지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12부씩 복사해오세요. 복사가 힘드신 분은 미리 알려주시면 문탁출발조가 출력해서 가겠습니다. 현지샘도 원고 올려주세요. 아쉽지만 저희끼리 합평하고 샘께 의견들 전달해드릴게요^^

 

워크숍 일정 관련해서는 나래님이 다시 한 번 공지 올려주실 거예요~~ 평창에서 하루 종일 합평해야 하니, 복장은 츄리닝패션으로 편하게 오세요. 하루 종일 피드백하고 다음날 아침 평창의 숲과 강을 따라 걸으면 아마 '이 맛'에 여기 왔구나!! 싶으실 거예요. 이후 자잘한 사항은 톡방에서 주고받아요.

 

 

댓글 4
  • 2023-05-04 09:51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가 붙들고 있는 고민이 결혼과 출산 관련 일이라 글로 말로 드러내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당최님을 소외시켰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요. 많이 아쉽고 제 행동을 돌아보게 되네요.. 겸목샘도 마음이 불편한 시간이셨겠어요. 좀 더 조심스럽게 하지만 나를 드러내고 상대에게 다가가는 걸 주저하지 않게 그렇게 시즌1을 마무리하고 싶네요. 그 윤리적 방법을 오래도록 고민해야겠어요.

  • 2023-05-04 11:21

    어... 당최님이 정말 글을 잘 쓰셔서 배울 점이 많았는데,
    치밀하고 꼼꼼하고 정확해서 글은 저렇게 쓰는 게 모범이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그만두셔서 충격입니다.
    당최님도 고민하시다가 내린 결론일텐데.... 고민하시는 걸 전혀 몰랐어요.

    모두 '혹시 나 때문인가?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라고 짚어보게 될 거 같아요.
    특별히 소외감이나 상처를 드리려고 한 건 아니기에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그리고 보니 그분이 비혼이었구나, 이제야 생각이 났으니 이게 무례하고 무심했던 걸까요.

    글쓰기를 잘 하려고 모인 건데 여기서도 '관계'라는 것이 생겨서 감정이 생성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글쓰기 모임의 윤리학... 이건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 가치관, 행로 등을 속단하지 않는 건가요?
    하지만 우리가 글로 표현을 하려 모인 것이라 조심은 해야겠지만 아주 안 할 수도 없고....
    저처럼 늙고 둔한 사람은 콧등에 불침을 놓아도 모를테니 정도를 가늠하기가 어렵네요.

    시즌 1이 거의 다 온 이 시점에서 강한 개성을 보이시던 당최님이 그만두셔서 아쉽습니다.

    저도 사실은,
    나이가 제일 많아 혼자 다른 경험과 감각으로, 실력으로 민폐를 끼치는 거 아닌가 걱정도 했지만
    민폐가 걸림돌이 될 정도로 커 지면 그때 어련히 말씀하시려고, 싶어 그냥 뭍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이거... 혹시 그만둬야 할 사람은 질겨지고, 남았어야 할 사람이 그만둔 거 아닌가... ㅠㅠ

    제가 그만두는 건 예상에 있는 일이었지만,
    당최님이, 제일 치열하게 열심히 잘 하시던 분이 갑자기....
    예상에 없던 일이라 약간은 당황스럽네요.

    우리 모임의 글쓰기가 점점 진지해지고 발전한다며 (사실입니다)
    무척 기뻐하셨던 겸목 샘이 '내상'을 입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 2023-05-04 12:01

    지난 시간 샘들의 글에 피드백하는 태도에서 제가 샘들의 인생에 피드백한 게 아니었는지, 저도 마음 한 켠이 불편했어요.
    합평은 처음이라 사람의 인생이 아닌, 글에 피드백한다는 것이 어렵게 느꼈졌고 다음부터는 조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당최님의 그만둔다는 얘기에 마음이 많이 쓰리네요.

  • 2023-05-04 15:56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서 애정을 드러내는 일은 어떠해야 할까, 이걸 실제로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에 가까이 가는 일은 어떤 방식일까, 모색해보는 일이 글쓰기모임의 윤리학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동감합니다.
    정말 애정을 가지고 글을 함께 파헤쳐 보는 합평, 연습해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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