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윤아
2023-11-26 01:04
48

 

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시즌3/ 파이널 에세이/ 20231126/ 윤아

 

어른이 된다는 것

(『무엇이든 가능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2019)를 읽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앰개시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9편의 단편이 느슨하게 연결된 소설집이다. 이탈리아의 바닷가나, 시카고가 배경인 작품도 있지만, 이야기의 발원지는 모두 앰개시다. 한 편의 소설에서 다른 단편의 인물들은 소문으로 등장한다. 소문 속에서 그들의 행동은 쉬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에서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들 그럴 수 있는 인물들로 다가온다.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각자의 아픔과 고통과 수치를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 그저 내 속에도 있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대체로 선량하고, 조금씩 악의적이며, 어찌할 수 없이 미숙한, 무엇보다 상처받은 인물들이다. 상처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어도 아물지 않는다. 「선물」의 주인공 에이블은 그것을 사지가 절단 된 후에도 있는 것처럼 통증을 느끼는 ‘환각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이나 가정폭력, 극심한 가난 같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작가는 크고 작은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지, 또 어른이란 어떤 존재인지 묻는다.

 

괜찮다는 말

「계시」의 토미는 35살에 자신이 경영하는 낙농장에 불이 나는 엄청난 일을 겪었다. 이후 앰개시로 이사와 학교 수위로 성실하게 일해 왔다. 지금은 손주들까지 장성한 80대 노인이다.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통해 마을의 각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체로 알고 있었다. 지금은 소설가가 된 루시가 집에서 폭력을 당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아버지 켄 바턴이 참전 후유증으로 성적인 문제를 겪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그의 아들 피트가 고립된 집에서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가끔 그를 찾아 간다. 그것은 어쩌면 의무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남매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는 토미에게 피트는 자신의 아버지가 낙농장에 불을 낸 것을 알고 자신을 괴롭히러 오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토미는 잠시 정신이 아득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불은 자신의 부주의로 발생했다며, 오해를 풀어주고 오히려 피트의 오랜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그리고 예전에 일부러 분필을 부러뜨렸다는 어린 루시의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자신도 분필 하나를 부러뜨렸듯이, 피트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오랜 비밀을 털어놓는다. 불이 난 날 밤 하느님의 계시처럼 ‘괜찮다. 토미’라는 말을 들었다고. 누구에게도, 아내에게도 한 적이 없는 그 말을 피트에게 해준다. 토미는 자신의 고난을 그 말에 의지해서 꿋꿋하게 살아왔다. ‘괜찮다’라는 말에 그는 정말로 괜찮아졌다.

그러나 토미는 그걸 정말 믿느냐는 피트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실상 그 비밀을 말하는 것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위안이 필요한 작고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고백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비밀을 말하고 나니 플러그가 뽑아진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토미에게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수하더라도 피트에게 나도 그렇듯이 너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을 지탱하던 비밀을 피트에게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머리가 희끗해지고 있는 피트지만 토미가 느끼기에 아직도 어린아이다. 가뭄과 냉해로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듯 피트는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잘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어른-아이를 만나러 2주에 한 번씩 오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토미의 진심은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다. 그래서 토미는 더욱 인간적이다. 선량한 사람도 좋은 것만 보고 싶지 다른 사람의 불행에 눈을 돌리고 싶지 않다. 나약한 인간은 작은 선행도 투쟁 속에서 가능하다. 어른은 그런 사람이다.

「풍차」의 패티도 자신에게 무례하게 행동한 학생 라일라 레인에게 ‘괜찮다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준다. 진로상담교사인 패티는 선생이라고 해서, 학생이 무례하게 굴었다고 해서, 쓰레기라고 부를 권리는 없다며 사과한다. “너는 15살이고 잘못한 사람은 나여야해”(82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적이 좋은 라일라에게 대학진학의 길을 열어준다.

토미가 삶을 살아낸 동력이 신의 계시였다면, 패티의 변화는 루시의 회고록에서 시작되었다. 루시는 자신만의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극복해 책으로 써냈다. 패티는 루시의 책이 자신을 이해했다고 느낀다. 우리는 종종 불굴의 의지로 혼자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 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힘만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으로 어른의 품위를 갖추어 나간다. 토미에게 그것이 신이었다면, 패티에게는 책이었다. 찰리의 말대로 우리가 늘 괜찮은 것은 아니지만 패티의 말대로 우리가 늘 혼자인 것은 아니다. 상처받은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 관심어린 시선, 괜찮다는 말이 필요하다.

 

이해받고 싶은 사람들

「엄지치기 이론」의 찰리는 전쟁 중에 저지른 일에 대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 소문에 그는 한 창녀를 만나 만 달러를 뜯긴, 그래서 집에서 내쫓긴 어리석은 인물로 나오지만, 그는 그가 사랑한다고 느끼고 위로받은 트레이시라는 여자가 사기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에게 만 달러를 준다. 그것은 자신이 아내 매를린과 안온하게 노후를 보내는 것이 도무지 온당치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이다. 그는 늘 자신에게 사랑할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염치없다고 생각하기에 신에게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어린아이 같이 늘 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내 메릴린의 다정함이 거북스럽기만 하다. 메를린은 찰리의 고통의 깊이를 끝내 알 수 없고, 그래서 찰리는 외롭다. 그는 이해받고 싶은 것이다.

「미시시피의 메리」에서 메리는 13년이나 지속된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도, 오십 일 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다섯 딸을 키우고, 자신의 뇌졸중을 이겨내고, 남편의 암 투병을 도운 후에 연인이 있는 이탈리아로 떠난다. 메리는 혼자만의 몽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는데 그 말을 들은 연인 파올로는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주고, 그녀의 핸드폰에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를 몽땅 내려 받아 준다. 그녀는 결혼생활 내내 거의 50년간 심한 갈증을 느낀 여자였고, 파올로도 마찬가지 갈증을 가진 남자였다. 메리는 그제야 이탈리아에서 사랑받는 것의 자유로움을 느낀다.

「선물」에서 지독하게 외로운 남자의 광기는 에이블의 ‘이해합니다’라는 말에 녹아내린다. 그리고 외로운 두 남자는 진짜 사람을 찾았다고,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손녀의 조랑말 인형을 찾기 위해 찾아간 극장에서 광기에 휩싸인 배우 링크 매캔지가 대화를 요구하는 위협적인 상황,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절대적인 해방감을 주는 멋진 시간을 보낸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에이블의 아내 일레인은 남편의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절대로 꺼내지 못하게 한다. 그녀는 남편의 깊은 수치의 감정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에이블의 수치감, 자신이 누리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감정은 아내 일레인의 눈으로 보면 심각한 결격이다. 하지만 매캔지의 말대로 그 수치감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신의 인생을 공유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사랑이”(76쪽) 사람들을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인물들은 누구라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주기를 절실하게 갈망한다. 이 소설집에서 이해는 곧 사랑과 통한다.

 

자신이라는 감옥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다. 어떤 인물들은 크기와 상관없이 자신의 고통에 사로잡혀서 벗어날 수가 없다. 때문에 타인을 이해하기 보다는 원망하고, 질시한다. 「미시시피의 메리」의 막내딸 앤젤리나는 중년의 나이에도 오십여 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떠난 어머니가 원망한다. 앤젤리나에게 메리는 사람도 아니고, 여자는 더욱 더 아니다. 그저 지척에 있어 언제든 달려가 응석을 부릴 수 있는 ‘내 엄마’여야 한다. 앤젤리나는 친구를 만나도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기에 급급하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마음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다.

「금간」의 린다는 남편이 투숙객들을 몰래 카메라로 엿보고, 거의 성폭력을 저지를 뻔 한 일을 방관한다. 그녀는 부자인 남편이 제공하는 안락을 잃고, 자신이 어머니처럼 가난에 떨어지는 것이 두렵기에 남편의 범죄를 묵인한다. 그러나 린다는 마지막 순간에 “사건의 본질”(125쪽)을 느끼고, 앤젤리나도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뭔가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아마도 그녀들은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눈의 빛에 눈멀다」의 애니 애플비는 죽음에 다다른 아버지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기억에 아버지는 애니와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에 혐오와 분노을 갖은 사람일 따름이다. 애니는 포터 선생님과의 열정을 감추며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이해 할 것 같은 순간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깨닫는다. 그녀는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면서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착하고 책임감 있고 바른 마음을 가진 언니 오빠들은 아버지의 그 무모한 열정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고, 아버지가 동성애자였다는 수치심이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이라는 감옥에 메몰된 인물이라면 「도티의 민박집」에 찾아온 셸리 스몰이다. 셸리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불만, 즉 지금껏 삶이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같지 않았다는 불만 때문에 고통 받는 여자”다. 그녀는 자신이 마음껏 치장한 화려한 별장만큼 욕구가 큰 여자였다. 그녀는 자기 허영이 공격당할 때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세상에 말도 안 되는 불행이 얼마나 많은지에는 관심이 없다. 셸리 스몰의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스몰 부인의 슬픔은 그녀의 이름만큼이나 작다. 그렇지만 그녀를 메몰차게 비난 할 수만은 없는 것은 우리 안에도 스몰부인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다. 그녀가 안쓰럽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안위를 넘어서 타인의 고통을 걱정하는 사람일 터이다. “고통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158쪽)이다. 소설집의 인물들 중 가장 연장자라고 할 수 있는 토미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선과 악의 이 혼란스러운 다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어쩌면 인간은 애초에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었다”(22쪽)고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시선을 돌려서 타인을 세상을 보는 것이 전부다. 이 소설집은 그 안간힘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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