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차 후기> <트러블과 함께하기> 뒷부분

겸목
2023-09-18 17:31
242

 

“이 쏠루세에 죽어야 할 운명의 크리터로서 잘 살고 잘 죽는 한 가지 방법은 피난처를 회복하고, 부분적이고 견고한 생물학적-문화적-정치적-기술적인 회복과 재구성을 가능하게 할 힘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한 애도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각주28. 270쪽)

 

 

“우리는 다른 이야기, 다른 세계, 다른 지식, 다른 사고, 다른 갈망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관계하고, 알고, 생각하고, 세계를 만들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모든 오만한 다양성과 범주 파괴적인 종분화와 매듭 속에서 지구의 모든 크리터들도 그렇게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유물론, 진화, 생태, 공-산, 역사, 상황에 처한 지식, 우주론적 퍼포먼스, 과학-예술 세계 만들기, 혹은 애니미즘적일 수 있는데, 이런 용어들은 저마다 그것이 환기하는 오염과 감염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지구의 모든 퇴비 더미의 섞기와 뒤집기에서 크리터들은 서로에게 위태롭다. 우리는 퇴비이지 포스트휴먼이 아니다.” (165쪽)

 

 

“예상되지 않은 어떤 것을 함께 제안하기 위해서, 만남을 갖기라는 정해지지 않은 의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정신과 상상력을 훈련하는 일이 관건임을 이해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응답능력을 기르기’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이야기의 버전을 여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며, 너무나 세속적[땅에 묶여 있는]이다. 그게 요점이다. 이러한 호기심어린 실천은 안전하지 않다. (유인물 22쪽)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내용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구절 세 개를 옮겨왔다. 멋진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이 멋지다는 생각만 들고, <트러블과 함께하기> 세미나를 어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종과 종이 만날 때>와 함께 해러웨이의 ‘캐리어가방’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종과 종이 만날 때>도 그렇고 <트러블과 함께하기>도 그렇고, 앞부분을 읽을 때는 해러웨이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왜 자기가 관심 있는 이야기를 읽는 사람 생각하지 않고 길게 늘어놓는가? 이런 게 1세계 지식인들의 자기중심주의 아닐까? 하는 반감이 든다. 읽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방식으로만 하는 사람들을 나는 꺼려하는 편이다. 어질리티게임과 목양견들의 질병과 유전학 연구의 계보와 통계를 읽고 있을 때, 정리를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 이르러 식탁 위에서 먹고 먹는 이야기까지 나아갔을 때는 이러한 기나긴 사서의 ‘행로’가 필요했음을 이해하게 되고, 존경심이 일어난다. 이 과정이 지난하다. 그래서 해러웨이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힘들다.

 

어쩌면 핵심은 이 복잡한 서사의 ‘행로’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다. 이 복잡계를 직시하기도 힘들고, 여기에 놓인 문제들의 지형학도 천차만별이다. 매우 복잡다단한데,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큼은 ‘명확’하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아주 복잡하게, 여러 층위에서 이 문제들을 수집하고, 조합해서, 방편을 찾고 있다. ‘피난처’ 만들기와 거기서 살기와 죽기. “사이보그가 되자” “닥치고 훈련”을 넘어 이제 해러웨이는 “퇴비가 되자”고 말한다.

 

어떻게 우리는 ‘퇴비’가 될 수 있을까? 인스턴트식품을 일상적으로 먹고 있어 죽으면 썩지도 않을거라는 우리의 푸념이 현실이다. 테라포밍의 기술. 다양한 크리터들과 조건에 맞게 조절하고 새로운 패턴과 매듭을 만들어내면, 세계를 ‘게임오버’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해러웨이는 제안한다. 그녀의 제안은 신박하다. 그 패턴과 매듭은 아름답지도 선하지도 않을 수 있다고. 그러나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길은 거기에 있다고 본다.

 

<트러블과 함께하기>의 마지막 장에 실린 뱅시안 데스프레의 ‘12마리 낙타의 우화’를 잘 해석해보고 싶다. 피난처를 짓고 거기서 잘 살기와 죽기 위한 방편을 우리는 찾고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로부터 생각하기”. 11마리의 낙타를 아버지의 유언대로 나눌 수 없어 곤경에 처한 아들들인 이웃노인에게 조언을 구한다. 노인을 낙타 1마리를 더해 형제의 곤란을 해결해주고, 남는 1마리의 낙타를 다시 가져온다. 다른 유산으로부터 부재하는 현실을 만들어내라는 뱅시안 데스프레의 직관이다. “어떤 이야기를 듣는 위험은 그것이 우리에게 거미줄을 치도록 의무를 지울 수 있기 때문인데, 그때 거미줄은 그 무수한 실들 사이에서 모험하는 일에 앞서 미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지금 여기서 ‘두꺼운 현재’를 만드는 일, 진행중인 과거와 연결시켜, 종과 종을 가로지르는 연결과 트러블과 함께. 캬! 멋진 표현인데, 이것의 실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해러웨이는 어렵다. 그래서 <세계 끝의 버섯>에 희망을 걸어본다.

 

다음주 세미나 끝나고, 일리치약국은 문 닫고 9/23 기후정의 집회 나갑니다. 세미나 끝나고 시간 되시는 분들은 같이 나가요~ 점심밥 먹고 출발합시다!

 

댓글 7
  • 2023-09-20 10:02

    온갖 상징과 은유와 비틀기와 언어유희와 해러웨이표 유머까지 읽는내내 조금은 지리하기도 했지만, 반복은 힘이 있더군요. 이제 산책길에 (피모아 쑬루는 아니지만) 거미가 동심원으로 거미줄을 치는 영상을 찍기도 하고, 우후버(섯)순에 감탄하면서 더디게 시들기를 바라며 걷고 있습니다.(그치만 아직도 얼굴에 달라붙는 거미줄 트러블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계 끝의 버섯>을 읽다보니, 오리건 주 국유림의 벌목과 산업 경제 부분에서 <망명과 자긍심>과도 연결됩니다. 2학기의 책들이 굴비엮듯 이어지는 느낌입니다.ㅎㅎ '트러블'은 협력으로서의 오염, 오염된 다양성, 퇴비(형 인간)의 기본 전제조건이겠죠?(아~ 속옷과 겉옷을 같이 세탁기에 넣어야 하나...ㅋㅋ)

    9/23 기후정의 행진 갑니다!

    아침 산책 메이트들~

    스크린샷-2023-09-18-오전-11.01.47.png

  • 2023-09-20 12:46

    겸목 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저는 헤러웨이에 엄청 덴 사람이라(2021년 봄에) 겁을 왕창 먹었는데,
    다행히 이번에 헤러웨이 책은 어렵지만 도전할만 했어요.
    그리고 그의 글쓰기 스타일이 좋았어요.
    물론 너무 방대해서, 흉내조차 낼 수 없고, 또 어려운 용어가 많아 제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ㅠㅠ

    숙제는 잘 못해가지만, 요즘 읽는 책들 너무 맘에 들어요.
    양샘 팀에 잘 들어온 거 같아요. ^^ 고맙습니다.

  • 2023-09-20 12:56

    일라이 클레어의 새책이 나와서 일단 구매했어요^^ 언젠가 생각이 막힐 때 뒤져보지 않을까 싶어요^^ 멋지게 글쓰는 언니들이에요^^

    • 2023-09-20 13:31

      나도^^

      • 2023-09-20 14:02

        <눈부시게 불완전한> 저도 샀어요^^

  • 2023-09-20 13:52

    일단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몇가지 메모

    1. 해러웨이의 난삽함은 그녀의 문체적 특징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그의 연구방법론(다층적 실뜨기 혹은 말하기)으로 읽어내야 하는 게 아닐까?

    2. 해러웨이의 worlding=storytelling='두터운 현재'만들기이다. 사변적 우화 없이 두터운 현재, 다른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3. 애나칭도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쏟아내고 귀 기울여 듣는 것은 하나의 연구 방법이다. 그것을 과학이라고, 새로운 지식이라고 강하게 주장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 79쪽)

    4. 두터운 현재 만들기는 추상적 미래주의와 단절해야 하고 과거와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 때 과거는 벤야민식 역사^^이다.
    "인간은 (곰팡이나 나무처럼) 마주침에서 맞닥뜨린 시련에 대처하기 위해 역사를 소환한다. 이러한 역사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결코 잘 짜인 기계장치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정적인 지금 여기의 응축이다. 철학자 발터벤야민이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붙잡는 과거는 '위험의 순간에 빛나는' 기억이다. 우리는 '이전에 가본 곳으로 뛰어드는 호랑이의 도약처럼' 역사를 재연한다고 벤야민은 말한다."(애나 칭, 103)

  • 2023-09-20 14:53

    댓글달기

    ㅎㅎㅎㅎ
    댓글 달려 왔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질 않아요. 오늘은 일단 요기까지 하고
    내일 와서 다시 달께요. ㅎㅎ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79
[12주차공지] 비건의 계급성? 비건의 정치성! -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2 (7)
문탁 | 2023.10.27 | 조회 239
문탁 2023.10.27 239
378
<11주차 후기>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1(1~3부) (2)
무사 | 2023.10.24 | 조회 218
무사 2023.10.24 218
377
<10주차 후기> 애나 칭 <세계 끝의 버섯>#3 (2)
둥글레 | 2023.10.20 | 조회 208
둥글레 2023.10.20 208
376
[11주차공지]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1 - 불구crip의 정치를 향해! (6)
관리자 | 2023.10.16 | 조회 232
관리자 2023.10.16 232
375
[10주차공지] 애나 칭 - 세계끝 버섯(#3)- 닥치고, 야생귀리 채집!! (리스펙, 르 귄^^) (7)
문탁 | 2023.10.13 | 조회 260
문탁 2023.10.13 260
374
<9주차 후기> 애나 칭, 세계 끝의 버섯 #2 - 세계 끝의 돼지 (5)
경덕 | 2023.10.11 | 조회 232
경덕 2023.10.11 232
373
[9주차공지] 애나 칭 - 세계끝 버섯(#2)-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쓸 수 있을까요? (6)
문탁 | 2023.10.04 | 조회 286
문탁 2023.10.04 286
372
<8주차 후기> 애나 칭, 세계 끝의 버섯 #1 (4)
서해 | 2023.09.25 | 조회 246
서해 2023.09.25 246
371
[8주차공지] 애나 칭 - 세계끝 버섯(#1)- 패치자본주의 혹은 패치인류세 (6)
문탁 | 2023.09.20 | 조회 351
문탁 2023.09.20 351
370
<7주차 후기> <트러블과 함께하기> 뒷부분 (7)
겸목 | 2023.09.18 | 조회 242
겸목 2023.09.18 242
369
[7주차공지]-해러웨이 - 트러블과 함께하기(#2)-우리는 포스트휴먼이 아니라 퇴비다! (7)
문탁 | 2023.09.14 | 조회 292
문탁 2023.09.14 292
368
<6주차 후기> 트러블과 함께하기 _ 1,2장 (3)
모로 | 2023.09.12 | 조회 233
모로 2023.09.12 23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