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차 공지]-해러웨이 - 트러블과 함께하기(#1)-가이아여신 대신 테라포밍을

문탁
2023-09-07 11:54
276

 


1. 무코리타와 어느 멋진 아침

 

급한 일이 일단락되었더라도 임플란트 수술과 항생제, 약에 의한 강제휴식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무빙’을 볼 엄두를 못 냈을겁니다. 재밌더라구요. 그러고보니 다섯 번 이상 예매했다 취소했던 <오펜하이머>도 지난주  일욜 아침 7시에 아이맥스에서 봤습니다. 자본과 재능이 만나면, 역쉬,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나오는군요. 하지만 이건 정말 헐리웃에서나 가능한 output입니다^^

 

이번주는 <강변의 무코리타>와 <어느 멋진 아침>을 볼 예정입니다. ‘무코리타’는 모호율다(牟呼栗多)의 일본어 음차로 1/30시간을 가리키는 불교 시간단위라고 합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 삶과 죽음이 교체하는 순간을 말하는 걸까요? 삶과 죽음에 대한 불교적 세계관이 깃들어 있을까요? 어쨌든 죽음에 관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멋진 아침>도 죽음에 관한 영화인데, 내가 사랑하는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영화입니다. 그러니 둘 다 무조건 좋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2. 우리 올해 주제, ‘돌봄’ 맞아?

 

아이리스 매리언 영과 버틀러에 이어 해러웨이를 붙들고 헤매다보니, 올해 <양생프로젝트> 주제가 돌봄이었는데, 도대체 이런 어려운 이론들과 돌봄이 무슨 관계일까? 이런 생각 드시죠? 하하...

 

하지만 ‘돌봄’이 각자도생, 각자도사의 사회에서 함께 잘 살고 함께 잘 죽는 문제라면,  이런 신자유주의, 기후위기, 다가오는 여섯번째 멸종의 시대에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가장 당대적으로, 가장 최전선에서 고민하는 버틀러나 해러웨이야말로, 돌봄의 이론적 백그라운드로 더할나위 없이 중요한 사상가들 아닐까요?

 

저는 지난번 <when species meet>을 읽고 난 후, 저의 실존적 현안인 어머니 돌보기와 관련하여, 자꾸 이런 질문을 하게 되더라구요? “내가 나의 엄마를 만질 때 나는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만지는 것일까?”, “엄마와 나는 함께-되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일까?” “나의 엄마를 만짐이 우리의 복수종 세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 자의적이라구요? ㅋㅋㅋ....그럴수도. 하지만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는 ‘시도’만으로도 돌봄의 지루한 현실을 약간 변화시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ㅎ

 

 

 

3. 기후위기와 여섯 번째 대멸종 (트러블)에 대한 해러웨이의 응답

 

이번의 <Staying with the Trouble (2016년)>는 <when species meet>(2008) 이후 약 8년이 지난 시점에 쓰여진 책입니다. 이제 해러웨이의 자연문화적 현실 속에서는 인간과 개만이 kin이 아닙니다. 이런 기후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동물, 곤충, (유해^^)비둘기, 거미, 인공지능, 땅 속의 벌레, 코로나 바이러스 등과도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실뜨기’)

 

“나는 공산적 실꿰기, 펠트 만들기, 추적하기, 분류하기 속에서 많은 반려들과 함께 생각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실뜨기로 작업한다. 나는 물질-기호론적 퇴비 만들기로서, 진흙탕 속의 이론으로서, 뒤죽박죽으로서 SF를 가지고, SF속에서 작업한다. 이 촉수 있는 것들은 육체를 벗어난 형상들이 아니다. 그것은 자포동물이고, 거미이고, 인간이나 너구리같은 손가락이 있는 존재이고, 오징어이고, 해파리이다. 신경회로의 화려한 쇼이고, 섬유모양의 실체이고, 편모가 있는 존재자이고, 근원 섬유다발이고, 엉키고 눌어붙은 미생물과 진규류의 얽힘이다. 더듬어 탐사하는 덩굴식물이고, 늘어나는 뿌리이고, 위로 뻗어 올라가는 덩굴손을 가진 것들이다. 또한 클라우드를 들락거리는 망이며 네크워크이고, IT 크리터들이다. 축소성은 점이나 구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선, 무수한 선들을 따라 살아가는 생명의 속성이다.”(60)

 

저는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들뢰즈, 가타티의 ‘리좀’이 생각났는데, 그것보다 한 수 위인 표현(내용도 더 풍부하죠^^)이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ㅋㅋ

 

 

 

 

 

어쨌든 기후위기와 여섯 번째 대멸종과 관련하여 해러웨이는 일단 러브룩의 ‘가이아 이론’과 작금의 ‘인류세’ 담론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한편에서는 오토 포이에시스적 가이아 (가이아 여신, 대지의 어머니, 지구의 어머니)  대신 땅 속의 온갖 크리터들을 포함하고, 그것의 상호오염과 부식까지를 포함하는 ‘Terra 테라’를 제안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aner(남자)와 ops(눈 얼굴)에서 연원한, 그래서 문자 그대로 ‘어떤 남자의 얼굴을 한 그’에서 유래한 ‘antropocene’(인류세) 대신 캘리포니아 숲에 살고 있는 거미 피모아 크툴루로부터 비롯된 쑬루세를 제안합니다.

이런 전환이 '새로운 세계 만들기'와 관련하여 어떤 새로운 비전을 주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이르러 해러웨이 이전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해러웨이 식으로 이야기하면, 쑬루세 시대 (어쩌면 여섯 번째 멸종 이후^^)의 ‘staying with trouble’ 아닐까요? (음, 설마 이걸 아직 안 보신 분은 없으시겠죠?)

 

 

 

 

 

 

4. 아이고, 비둘기라니...

 

이번에 저한테 가장 쇼킹했던 것은 비둘기였습니다. 전 <종의 기원> 읽을 때도 ‘비둘기’ 땜시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해러웨이는 다른 점에서 저를 놀라게 하더군요. ㅎㅎㅎㅎ...어쨌든 해러웨이가 다루는 비둘기는 “수천년 동안 자연문화적 경제와 삶을 일구는 한편 생태를 손상시키고 생물사회적 격변을 일으키는 것...소중히 여겨지는 친척이자 경멸받는 유해동물...구조의 주체이자 비난의 대상... 권리의 담지자이자 동물-기계의 구성요소... 음식이자 이웃... 절별의 표적이자 생물공학적 사육과 증식의 표적...일과 놀이의 반려이자 병의 매개체... ‘근대적 진보’와 ‘시대에 뒤진 전통’ 사이에서 경쟁하는 주체이자 대상..”(32)입니다.

 

그런데  이 파트에서는 지난번 세미나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동물권주의자들과 해러웨이의 차이가 명료하게 보입니다. 피전블로그에 대한 미국동물권단체 PETA의 비판, 그리고 이것에 대한 해러웨이의 디펜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리고 호주 맬버른 배트맨 공원에 있는 비둘기 산아제한 장소인 ‘비둘기집’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이런 건 여전히 고민이 됩니다. ㅠㅠ

 

 

 

 

 

 

5. 읽기 쉽지 않습니다.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어야 해요

 

1)알다시피 이 책은 원서의 5,6,7 장이 누락되어 있는 번역본입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이 번역본을 내야 했을까요? ㅎㅎㅎㅎ) 그래도 5,6,7장을 번역하고 카피레프트를 실천하고 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앗, 이렇게 되면, 한 주 늘려서 이것도 읽어야 하는게 아닐가,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러면 또 스케줄이 흩어지기 때문에 일단은 그냥 가려고 하는데, 만약, 만약, 여러분이 이왕 손댄 것, 5,6,7 장도 다 읽고 가자고 하시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G

 

(그 블로그에서 서문에 5,6,7장 요약해놓은 거 한글 파일로 만들어서 첨부하겠습니다)

 

2) 반드시 미주를 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미주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참조점들을 직접 찾아보시면서 읽으셔야 합니다. 이미지든, 블로그든, 홈페이지든 말입니다.

 

3) 2장에서는 캐런 배러드, 이자벨 스탕제르, 스트랜선, 한나 아렌트, 애나 칭, 솜 반 두렌, 르귄, 라투르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칩니다. 울고 싶습니다. 아, 어쩌라구요? ㅠ

그래도 절망하지 말고, 잘~~ 읽어봅시다.

 

4)원문 pdf 파일도 첨부합니다.

 

 

6. 이번주 발제는 모로와 무사님, 메모는  B조입니다. 모두 파이팅!!!

댓글 10
  • 2023-09-07 12:00

    원문입니다

    • 2023-09-07 17:32

      5,6,7장 내용 요약

  • 2023-09-08 19:46

    1장 발제 올립니다.

  • 2023-09-08 21:56

    2장 촉수 사유 부분에서 이야기와 관련한 해러웨이의 해석을 따라가 보았다. 한나 아렌트를 가져와 아이히만에 대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신에게 설명할 수 없었고, 결과들 속에서 그리고 결과와 함께 살 수 없었고, 퇴비를 만들 수 없었던 어떤 사람”(67)이라고 해석했다. 우리의 현재 삶의 양식이 충분히 ‘아이히만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해석이었다. 그 다음으로 넘어가 애나 칭에 대해 “그녀는 이야기의 힘을 실행한다. 배려하기와 사유하기의 실천으로서, 어떤 이야기들이 이야기를 이야기하는지가 어떻게 중요한지 생생히 보여준다.”고 했다. 다음에 읽을 책에 대해 궁금증을 더 증폭 시키는? 애나 칭의 이야기와 비교해서 인류세와 자본세로 넘어가서 다윈과 마르크스를 언급한다. “인류세와 자본세의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금방이라도 너무 커지게 될 것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다윈이 그랬듯이, 마르크스는 그보다 더 잘했다. 결정론과 목적론과 계획 없이 “충분히 큰 이야기들”을 이야기 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용기와 능력을 본받을 수 있다.”(91)고 했다. 충분히 큰 이야기와 관련 미주에서는 “제임스 클리퍼드 –하나의 종합적인 설명이나 이론을 거부하는 클리퍼드는 “끝이 정해지지 않은 ‘충분히 큰 이야기들’. 접촉의 현장들, 고투들, 그리고 대화가 함께 작동하는” 리얼리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고 달았다. 아이히만-애나 칭-다윈-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해러웨이의 이야기에 대한 해석, 2장 서두에 단 인용 “생각하세요,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까지 연결해보면, 이들이 사유하는 방식에서는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을까? 특히 다윈과 마르크스의 “충분히 큰 이야기”와 관련해서 해러웨이가 두 사상가의 사유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지점을 찾아 이야기 속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 2023-09-08 22:29

    질문이라기보다는 좀 더 자세한 설명 부탁요 - 라투르, 가이아 이야기(러브록-마굴리스, 라투르, 스탕제르)

    대략 74쪽부터 81쪽 정도까지 라투르 이야기가 나오는데 라투르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과 비교까지 하니 더 잘 모르겠어요.
    라투르의 가이아 이야기(78, 79)와 이자벨 스탕제르의 가이아(80, 81) 이야기도 잘 모르겠어요.
    어머니 지구, 가이아 정도의 이미지밖에 없어서 여기서 말하는 가이아가 그런 의미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250쪽의 주)36 - 스탕제르의 '가이아의 침입', 주38, 주58을 읽어도 아리송합니다.

  • 2023-09-08 23:24

    2장 발제문

  • 2023-09-09 00:37

    (메모 조는 아니지만...)

    1. 조지프 슈나이더, <도나 해러웨이> 중

    "우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개를 도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개와 스포츠 훈련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것을 인식하지 않고, 여러 영역에서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해 훈련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타자에게 자발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훈련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그렇게 그 문제에 대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개를 다치게 할지도 몰라요, 어쩌면 개의 목숨마저 위험할 수도 있고요… 훌륭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그 영역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 동물권 담론에 제가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경우 그 담론이 순결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수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물권 대변인들은 인간과 개 사이의 훈련 관계가 그저 권력 관계이며 불평등하다고만 생각합니다. 개들도 자신의 요구를 제시하는데 말이에요, 개와의 훈련 관계에서 인간은 지휘권을 갖기도 하지만, 개들이 하는 일에 아무 쓸모가 없기도 합니다. 동물권 담론은 주로 그것을 권리 침해로 명명하기 때문에, 가능한 해결책은 오직 그 관계를 없애버리는 것뿐입니다. 저는 그것이 잘못된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녀 양육, 사랑, 정치적 작업, 노동을 포함한 모든 진지한 관계에는 반드시 이렇게 불평등한 기술, 불평등한 권력, 불평등한 모든 것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문제에 직면하기 위한 언어를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이전에는 거기 존재하지 않았던 일종의 번성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됩니다. 모든 번성에는 그 시스템 안에 누군가는 전혀 번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 수반됩니다. 거기에는 당신이 배제해온 영역이 있습니다. 당신도 자신의 약소한 내부를 성립시키기 윌해서,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경계를 그어왔습니다 .주디스 버틀러의 용어로는 구성적 외부라고 하죠. 저는 정직하고 진지한 관계라면 이 모두에 직면하는 일을 포함해야 하나도 생각하며, 그것이 제가 말하는 비-순수의 의미입니다. "

    2. 1장 각주 30번. 동물-인간 세계 만들기 옹호자와 구분되는 동물권리운동가들의 견해와 투쟁을 단순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사안에 관한 동물 애호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는 Potts and Haraway, "Kiwi chicken advocate talks with Californian dog companion".
    - 궁금해서 구글 검색했더니 어느 사이트에 있었어요. 자료 열람 하려면 구독 하라고 해서 14일 무료 구독 신청 후 열어보았지요. 스윽 훑어보는데 중간에 딱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과 답변이 있었어요! 복붙은 안되고 번역은 무리여서 캡쳐했습니다. 인터뷰 시기는 <종과 종이 만날 때> 이후, <트러블과 함께하기> 이전.

    KakaoTalk_20230909_003248005.jpg

    • 2023-09-09 00:39

      해러웨이의 답변

      KakaoTalk_20230909_003248005_01.jpg

  • 2023-09-09 01:18

    『트러블과 함께하기』가 시의성이 있어서인지 훨씬 잘 이해되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트러블”이란 말로 함축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와닿았다. 1)우선 실뜨기 게임에서 수동과 능동의 분리 불가능성(?)이 관계성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수동’과 ‘능동’은 서로의 이면이 아닐까? 2)반려종으로서의 비둘기가 병을 옮기고 제국주의 침략자로 생태를 손상시키기도 하지만 이런 점이 반려종의 이야기에 빠질 수 없고 그런 디테일한 이야기들 속에서 응답-능력이 명확해지고 강해진다는 해러웨이의 이야기가 좋았다. 3)자율생산적(autopoietic)의 항상성은 손상된 현재를 설명해줄 수 없다. 공-산(sympoietic)은 손상되었으나 여전히 무언가가 진행 중인 살아 있는 세계들의 다공성 세포조직들과 열린 가장자리들 가운데서 재건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4)애나 칭의 송이 이야기. “송이는 혼란과 오염 속의 협동적 생존에 관해 우리에게 이야기해분다. 우리는 폐허 속에서 살기 위해 이 기술이 필요하다.” 『세계 끝의 버섯』이 빨리 읽고 싶어 진다. 5)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죽을 운명을 타고난 고르곤인 메두사의 이야기로 부터 산호의 홀로바이옴을 거쳐 같은 자포동물인 오징어, 문어 등로 연결된다. 문어는 바다의 거미. 문어는 피모아 크툴루라는 거미로 연결되어 쏠루세로 이어진다. 피모아 크툴루, 메두사, 포트니아 테론(포트니아 멜리사)은 인류세에서 분출하여 또 다른 충분히 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형상들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위해 중요한 것을 수집하는 데 필요한 세 번째 그물 바구니(망태기)로서 쑬루세를 제안하는 일의 미끼이다. 부분적인 회복 그리고 함께 잘 지내기를 위한 평법한 가능성들에 마음을 쓰기로서의 트러블과 함께하기! 그리고 미친 정원사!

  • 2023-09-09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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