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

김윤경~단순삶
2024-01-20 10:35
571

 

 

 

 

 

 

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다

 

 

나는 현재 백수이다. ‘자발적 백수’!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쓰는 용어이다. 더 이상 임금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기 위해서 선택한 말이다. 풀타임잡은 안정된 월급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나의 자유도 저당 잡혀야 한다. 온종일 직장에 매여있는 일상이 아닌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소개한다.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부자를 꿈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몸뿐이어서 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장을 구하고 월급을 저축했다. 모은 돈을 뻥튀기하고 싶었기에 투자처를 찾으며 30대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자가 높다는 말에 속아 사기도 당하고, 재개발 구역의 부동산 계약은 하루 전날 취소되고, 강변뷰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남편의 만류로 내 것이 되지 못했고, 경매로 낙찰받은 빌라는 수리할 곳 천지인 깡통 매물이어서 손해를 보고 다시 되팔아야 했다. 30대 마지막 해에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나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는 않으니 거기에 만족하고 부자를 좇는 일은 그만두자고 결정했다.

 

 

 

다르게 살아보자 결정하고 일단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을’,‘시민’을 검색하면서 은평 시민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다. 다양한 단체에 얼굴을 비추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자본에 노동을 파는 방식이 아닌 공익을 위한 노동은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나는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정들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임금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사주에 ‘식신’(食神)이 세 개여서 그런지 직장을 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시 예전 했던 일로 직장을 구했다. 월급을 받고 돈이나 벌면서 그냥 적당히 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한동안 병명도 모른 채 아픈 몸으로 지내다가 ‘류머티스 관절염’이라고 진단받았다. 병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나는 우연히 알게 된 감이당 대중지성 1년 과정에 과감히 등록하게 되었다. 그 후로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청소와 공부를 통해 달라지기

 

 

감이당 대중지성 2년 차에 나는 다시 직장을 그만두었다. 달콤한 월급이라는 꿀통을 발로 찼으니 당연히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는 계속하고 싶었기에 하루 2~3시간 일하는 알바를 검색하던 중 청소어플을 발견했다. 의뢰인의 집에 가서 하루 몇 시간 청소를 제공해주는 식이었다. 일단 신청하고 첫 집에 가보았다. 남자 대학생들이 사는 쉐어하우스 아파트였다.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쓰레기에 놀랐고, 어린 남학생들 사이에서 청소하는 행위 자체도 살짝 굴욕적인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청소를 진행할수록 점점 깨끗해지는 집안을 보며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이 들었다. ‘앗 이게 뭐지? 이것이 청소의 힘인가?’ 청소하는 일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고, 또 수행의 수단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래서 출가하면 청소부터 시키는구나.^^)

 

 

 

얼마 후 공부하던 스터디카페에서 청소하는 일을 구하게 되었다. 하루 한 시간이지만 매일 하는 거라 용돈도 되고 무엇보다 스터디카페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특전이 있어서 공부를 이어 나갈 나에게는 딱 맞는 일이었다. 책상 위아래, 바닥 청소 그리고 휴게실 정리, 비품 채워 넣기,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까지가 나의 업무였다. 처음에는 남자 화장실에서 어린 학생들과 부딪힐 때 역시나 어색했다. 하지만 이것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당당하게, 자유롭게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년 8개월을 수행하듯 청소를 이어 나갔다.

 

 

청소와 더불어 공부는 나의 삶을 변화시킨 도구였다. 갑자기 찾아온 병 덕분에 공부의 길에 들어섰던 나에게 공부란 삶의 문제를 푼 열쇠였다. 세미나와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알아가며 나의 문제들을 풀어갔다. 특히나 글쓰기는 나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엉뚱한 글이 나오곤 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가 그동안 보지 않았던(못했던) 내 안의 나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못난(못된) 모습을 파헤치며 글을 써 나가야 하는 과정은 조금은 괴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써서 학인들과 함께 나누면 이상스레 커다란 문제들이 쪼그라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글쓰기로 난 나의 문제들을 청소했고, 군더더기를 덜어낸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나의 주변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볼 힘을 가지게 되었다. 글쓰기와 청소는 나에게 다르게 살아갈 신체를 선물했다.

 

 

 

 

 

 

 

마을활동가를 꿈꾸다

 

 

그렇게 달라진 신체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스스로 질문해 보았다. 결론은 내가 체득하고 배워가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주변과 나누는 삶이었다. 그래서 작년(2023년) 1월, 지금 사는 금천마을의 문을 두드렸다. 주춤주춤 여기저기의 문을 두드리며, 조심히 들어가 많은 모임과 사람들을 만났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었고,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응모해 ‘금천, 나만의 사적인 지도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백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 사업으로 마을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미나게 놀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동네에서 만나, 동네에서 놀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참여자들도 모임을 기획한 나에게 만족함의 표시를 많이 해왔었다.^^

 

 

 

그러던 중 소셜다이닝 프로젝트, ‘노랑식탁’이라는 사업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노랑식탁은 1인 가구 청년들에게 ‘동네 이모’ 세 명이 장보고 요리하여 ‘집밥’처럼 밥상을 차려주는 컨셉이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화력이 약한 화기, 집구류의 부족, 익숙하지 않은 장소 등 요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 서로 다른 세 명이 합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참여하는 청년들의 만족한 모습을 보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정성을 다해 준비했던 밥상은 만족도가 매우 높아 올해(2024년)에도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나는 주방일이 너무 힘들고 시간을 많이 빼앗겨 계속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동안 참여했던 청년들과 새롭게 독서 모임을 제안해 같이 해보기로 했다. 내가 그 청년들과 함께, 어떻게 엮어나갈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보통 활동가하면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일하는 전형적인 어떤 상(像)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굳이 소속을 말하자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한 문탁네트워크 인문약방팀? ^^;) 누구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마을활동가를 붙인다면, 내가 공부로 깨달았던 것들을 나의 생활 현장에서 실험해 가는 무소속 마을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인문약방팀의 스텝으로도 참여하기로 했다. 또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은 성장형으로 공모를 할 예정이다. 청년들과의 독서 모임도 꾸려 나가야 하고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마음충전소’사업의 매칭매니저로도 활동한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일 년 일정이 이렇게 미리 정해진 적이 있었던가 싶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복작복작, 시끌벅적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런 마을 활동들을 이렇게 연재까지 하게 되어 정말로 올해는, 나에게 특별하고도 중요한 인생의 또 다른 변곡점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발적 백수에서 소속 없는 마을활동가로 변신하려는 여정의 시작이 바로 이 글이다.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부족하고 성마른 저에게 부디 많은 사랑 주세요~)

 

 

댓글 23
  • 2024-01-20 11:01

    마을활동가 윤경님의 활기찬 출발과 변신을 응원합니다.
    열정적인 활동으로 확장해가는 윤경님의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 지 흥미롭게 지켜볼게요~

    • 2024-01-20 11:41

      첫글의 첫댓글 감사합니다 ~~
      오영님의 응원 잊지않을께요.

  • 2024-01-20 11:56

    어떤 변곡점이 될까 무지 궁금해지네요~~ 멋진 변곡점이 되길!

    • 2024-01-20 12:01

      응원합니다~~~^^

  • 2024-01-20 12:12

    2024년 1월에 보는 윤경샘의 일상이 소박한건가요? 단단히 재미와 흥미가 장착되어 있는데요. 글로 소개해주신다니 기대됩니다. 올해도 행복하시길.

  • 2024-01-20 13:32

    소중한 인연 윤경님의 기대되는 마을활동가로서의 올 한해를 응원합니다!!

  • 2024-01-20 16:38

    마을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윤경 마을활동가님의 2024년을 응원합니다

  • 2024-01-20 16:53

    고전읽기로 처음 만난 단순삶님.
    변신을 응원힙니다!

  • 2024-01-20 17:47

    앗! 윤경님 팬들이 댓글을 많이 다셨네요!
    저도 빨리 달었어야 했는데. ^^

    금천에는 저도 살짝 인연이 있어요.
    앞으로 윤경님 글 기대할게요.
    성실한 애독자가 되겠습니다~~~~

  • 2024-01-20 18:05

    우왕 넘 좋네요! 프로필 사진부터 빵 터지고 시작했습니다ㅋㅋㅋ
    올 한 해 '윤경이'의 '조증적 열광' 아낌없이 보여주세요!!!

  • 2024-01-20 20:15

    처음 법가를 같이 공부한 이후로 한번도 못뵈었네요^^ 건강과 분투를 기원합니다!

  • 2024-01-22 09:30

    와~ 멋지셔요!
    오며 가며 뵈었던 윤경님. 이렇게 멋진 분인 걸 알게 되서 기쁘고요.
    단순하지만 강력한 삶을 응원합니다~

  • 2024-01-22 09:37

    1년전 인문약방엠티에서 만나고 같이 양생프로젝트도 했는데, 윤경샘의 삶의 궤적을 이렇게 읽게 되니 또 새롭게 느껴지네요~^^
    무소속 마을활동가 윤경샘의 이야기 기대됩니다~^^

  • 2024-01-22 10:22

    쌤의 첫글 응원합니다! 함께 일 년 재미나게 연재해봐요! 😁

  • 2024-01-24 19:01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에너지는 다 어디서 오는지.... 존경합니다.

  • 2024-01-25 14:29

    윤경님의 조증적 열광적 사랑에 감염되고 싶습니다.^^

  • 2024-01-25 22:59

    홧팅!!! ^^

  • 2024-01-27 00:10

    프로필 사진의 매력만큼이나 글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대단하세요^^ 마을활동가 윤경샘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 2024-01-30 11:01

    자발적 백수..부러습니다. ㅎ 윤경샘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 2024-01-30 14:33

    무소속 마을활동기 윤경샘 응원해요~ 앞으로 나눠주실 흥미로운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 2024-01-30 17:57

    에너자이저 윤경샘. 저도 노랑식탁 후속모임이 어떻게 진행될지 몹시 궁금하네요. 우당탕탕 좌충우돌일 것 같지만 은근 세심한 윤경샘의 마을 이야기 기다려집니다.

  • 2024-01-30 19:03

    윤경샘
    화이팅!!!
    첫글에서부터 활발발 기운이 느껴져요.
    연재 기대됩니다^^

  • 2024-02-14 17:50

    고모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삶을 새로이 채워줄 수 있는 훌륭한 변곡점이 되기를 기도해!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에 존경을 담아♥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78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322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33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42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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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5 | 조회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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