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어떤 돌봄이 최선일까?

가마솥
2024-01-1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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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 하신다.

 

     파킨슨과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이 지난 여름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섬망(譫妄)이 생기고, 혼자 걸음이 힘들어져 화장실 변기 앞에서 실수하기 일쑤이다.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 나게 생겼다. 보행 보조기와 이동식 변기를 들였다. 그것도 불안하여, 2층까지 울리는 강력한 무선 차임벨을 설치했다. 이 번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누르신다. 방금 소변을 보셨는데, 또 요의(尿意)를 느끼시나 보다.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돌봄자는 매우 힘들다. ‘그냥 기저귀에 누시면 좀 좋으련만, 굳이 화장실을 가신다고......’ 가끔은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올 봄만 해도 환자 등급을 판정 받기 위하여 용인시 치매센터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꼭 맞출 필요가 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건만, 우수한 점수로 치매 TEST도 거뜬히 통과(!)하신 장모님이었다. 그 때만 해도 당신 걸음으로 걸어 가셨는데 몇 달 사이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 초입에 등급 판정을 재신청하였다. 집으로 방문한 판정관의 TEST 질문에 이제는 거의 대답을 못하신다. 나와의 문진으로 3등급을 받았다. 겨울이 들어가는 시월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신 방에 전동침대를 들여 놓았다. 이제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다.

 

 

 

 

 

 

 

 

 

 

 

 

 

 

 

 

 

 

 

 

주치의를 바꿔 보았지만......

 

    대학병원으로 담당 의사를 바꿨다. 노환에서 오는 치매와 파킨슨인데,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이 ‘혹시 지금 다니는 병원 의사의 전문성 부족 때문인가 싶어서’ 이다. 대학병원에서 내게는 생소한 병명, ‘루이소체 치매’라고 판정한다. 그 간의 병원에서는 파킨슨에 의한 치매가 오는 것이라고 진단하였는데, 치매에 의한 파킨슨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란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노환이 근원이니, 치료가 달라지는 것은 없는 듯하다. 약물 충돌이 있는 것인지, 두 질환에 대해서 우선 완화할 증상을 선택하라고 한다. 파킨슨을 선택하였다. 당신이나 돌봄하는 우리에게 인지보다는 신체의 활동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약이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모님의 상태가 확연히 달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있으려나.

수시로 움직여 자세를 바꾸었다. 하지만, 기저귀 교체가 늦어져서 그런지, 몸이 자주 부었다가 빠지고 해서 그런지 욕창이 생기고 말았다. 인터넷을 찾아서 약품을 준비하고 드레싱을 해 드렸다. 여기 저기 피부가 붉어지는 곳이 늘어난다. 왕진의사를 신청했다. 집에서 조치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전문 간호사를 신청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고맙다.

이제는 식사도 침상에서 떠 먹여 드려야 한다. 최근에는 음식물을 씹으려고 하지 않으셔서 “입을 벌리세요”를 몇 번이고 말해야 한다. 저작운동(咀嚼運動)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식사에는 항상 국물이 필요하고 가급적 유동식을 드린다.

 

재가(在家)와 시설(施設) 사이에서

 

     주중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칠십이신 고모님이 집에서 주무시면서 도움을 주신다. 힘이 드시는지, 자주 나에게 요양원을 추천하신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모님에게 요즘 요양원이 잘 한다고 말씀드리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불평하신다. 고모님의 하소연을 들어 주고 기분을 풀어 드려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재가 돌봄에서 흔히 있는 보호자가 도와 주시는 분을 돌봐야 하는(?) 형국이다.

물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같은 시설이 있다. 요양병원에는 분야별 전문의사가 있고, 간병인이 있다. 의사가 있지만 환자의 병에 대해서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재활, 혹은 응급시 조치 등을 한다. 대부분 노환에 의한 환자이니 그렇다. 병원이므로 치료비용은 전부 환자가 부담한다.

요양원에는 의사가 없다. 간병은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을 가진 요양보호사가 한다. 응급시에는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병원으로 이송한다. 민간의 돌봄 서비스 시설이다. 국가는 환자의 요양등급에 따라서 비용의 일정 비율을 지원한다. 따라서 요양병원보다 비용부담이 적다. 어느 시설을 선택할 것인지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보호자가 선택해야 한다. 환자당 간병인 수, 의사 수 등을 고려하지만 결국은 어떤 간병인을 만나느냐에 돌봄의 질이 달렸다.

둘 다 보호자에게는 시설측의 시스템 관리를 위한 제한이 따른다, 예를들면 가장 중요한 환자면회는 횟수로는 일주일에 한번, 주말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일회 면회자 수 등의 제한을 따라야 한다. 집에서처럼 언제든지 보고, 말하며 돌볼 수는 없다.

 

돌봄의 가족회의

 

     장모님의 직계 자손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였다. 장모님을 기준으로 딸과 사위인 우리 부부, 며느리와 친손자, 외손녀 부부, 외손자 부부 이렇게 모두 여덟 명이다. 저마다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 와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하고, 이제 돌 지난 증손자 하빈이의 엉덩이 춤 축하쇼(?)로 오랜만에 웃음 가득한 성탄절을 가졌다. 미리 알린 것처럼 가족회의를 열었다.

먼저 내가 제안 발표 형태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장모님의 상태, 도우미 고모님의 상황 그리고 외부 시설들에 관한 정보를 간략히 설명하고, 어떻게 장모님을 돌보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들었다.

 

 

 

 

 

"시설을 이용하자"

 

    먼저 며느리가 나선다. “요양원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돌보는 것은 돌보는 사람과 환자와의 관계가 아주 나빠져서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기게 되었던, 당신 친정집의 사례를 들어서 요양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보O스가 아주 좋은 요양원인데, 당신 가게의 손님도 보O스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는데 만족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나는 우선 팩트 체크부터 하였다. 보O스는 요양원이 아닌 요양병원이다. 따라서 제법 비용이 들고 또 자리도 부족하여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 한다. 자리가 있어도 병원에서 환자를 평가하여 입원을 결정한다. 시설에 가거나 또 어떤 시설을 선택할 것인가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를 것일 진데, 며느리의 어머니는 이동과 식사,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셨다. 하지만, 치매 상태에서 당신 며느리를 의심하는 정도가 아주 심하여 요양원으로 모신 케이스이므로, 지금 장모님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장모님과의 기억을 나쁘게 하고 있지는 않다. 안타까울 뿐이다.

    외손자가 나선다. “나는 할머니에게 맞는 좋은 시설을 찾아서 옮겨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의외였다. 녀석은 엄마가 시설에 보내기 꺼려한다는 것을 알 텐데, 시설을 선택한다. “집에서의 돌봄으로 엄마/아빠가 얼마나 힘든지 자주 본다. 현재 할머니의 상태는 사실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병환이 아닌 노환으로 인한 생명의 소진이니, 선택하라면 엄마/아빠의 건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아내는 허리가 좋지 않아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나는 그럴 경우에 우려되는 점을 이야기 했다. “시설에는 자체 관리 시스템으로 환자에게 서비스를 한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예를 들면 하루에 두 번 기저귀를 교환하지 집에서 할머니에게 하는 것처럼 수시로 교환해주지는 않는다. 시설에서는 돌봄자가 할머니 한 사람에게 한 시간 정도의 식사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할머니에게 딱 맞는 부드러운 유동식을 별도로 만들지도 않을 것같다. 오히려 음식물을 씹지 못하여 콧줄을 끼우는 환자는 시설에서 받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집에서 돌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 때에는 시설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지만, 지금 집에서 돌보는 것처럼 시설에서도 할 수 있을까 우려된다.”

 

"일정 요건이상이면 시설을 이용하자"

 

     돌봄을 가정이냐 시설이냐를 선택하는 것 이상의 문제, 즉 주 돌봄자인 엄마의 정서와 할머니의 정서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로 파악한 외손녀가 말한다. “엄마는 오래도록 할머니를 집에서 돌보고 싶겠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낸다. 예를 들면, “지금 간병을 도와주고 있는 고모 할머니가 그만 둔다든지, 엄마가 체력적인 한계에 이른다든지, 할머니가 콧줄을 끼워야 한다든지, 욕창이 심해진다든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신다든지...... 할머니 입장에서도 그런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프면 누구든지 병원에 가듯이, 그렇게 생각하면 꼭 시설에 가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어떤 기준을 넘어서면 외부 시설로 옮길 수 있다”는 의견을 낸다.

 

"대세에 따른다"

 

     아무 의견을 내지 않고 있는 친손주를 찔렀다. “네 생각은 어떠냐?” 우선 자기가 할 일을 고모가 하고 계셔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전제하며, 외손자와 같은 의견으로 시설에 모셔야 한다고 간단한 의견을 낸다. 아내는 내심 놀라는 눈치이다. 왜냐하면 녀석이 4살 때 아빠(아내의 오빠)를 사고로 잃고 난 후, 장모님은 오직 세상에는 단 한사람, 손주밖에 없는 듯이 애지중지 하였다. 하여, 고생스럽더라도 우리 집에서 돌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할머니를 먼저 챙기는 의견을 기대하였다고 한다.

 

 

 

주 돌봄자를 지원하는 것이 상책.

 

     나는 실제로 돌봄에 참여하고 있는 외손주와 그렇지 않은 가족의 의견에는, 같은 선택에도 내용적으로는 무언가 결이 다른 점이 있음을 느꼈다. 외손주의 의견 속에는, 힘들게 기저귀를 갈고, 밥을 떠먹여 드리고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엄마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시설을 선택하는 것이고, 다른 가족들이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생각에서 시설을 제안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이런 문제의 가족회의는 자칫하면 서로에게 아쉬움을 남길 수 있으니 서둘러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실제로 가장 많이 돌보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아내의 생각을 청했다.

아내는 “엄마의 의학적 상태와 치유가능성을 정확히 몰라서 뭐가 좋은 것인지 잘 모르긴 하다”는 여지를 남기며, “마음은 그냥 가능하면 최대한 집에서 돌보고 싶다”고 한다. 그거야 항상 그렇다. 의학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좋은 시설을 선택해도 장모님을 돌보는 도우미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돌봄의 질이 좌우되는 일이니 최대한 집에서 돌보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나는 만일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가족들이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고,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도 아이 취급하지 말고, 성인으로 대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수저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떠먹여 주지 말고 내 스스로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메뉴로 바꾸어 주라. 치매가 심해지면, 식구들 중 누군가가 매일 나를 돌볼 수 없다. 그것은 식구들의 잘못이 아니니 죄책감을 갖지 마라. 너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내가 살 새로운 장소를 찾아주라. 시설에 가게 된다면 자주 찾아와 주면 된다. 치매에 걸렸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너희들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고, 너희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하고 가족회의를 마쳤다. 마치 장모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실, 지금 장모님 상태는 집에서 돌보는 것보다 의학적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좋아지면 좋겠지만 나빠지는 것을 늦출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어서다. 돌보는 우리도 안타까운데, 당사자인 본인은 어떻겠는가. 토의를 하다가 문득, 집과 시설, 두 선택지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하는 생각이 든다. 환자의 여건에 따라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장모님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지내 보지 않고도 생명의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 올해는 눈이 많이 온다. 장모님은 소녀처럼 눈을 좋아한다. 병상을 창가 쪽으로 돌려서 창문 밖 소나무 가지위에 소복이 쌓여 가는 눈송이를 보여 드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주무시지 않고 창밖을 응시한다.

 

 

 

 

 

 

 

 

 

 

추신 :

    장모님이 음식물을 씹는 저작기능과 목으로 넘기는 연하기능이 많이 떨어 지셨다. 인지기능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알아 보시는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욕창이 문제이다. 몇 주 전에 신청한 보O스 병원에서 6환자 3간병인 조건의 병실이 입원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상태가 호전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얼마만이라도 병원에 모시기로 하였다.

다행히 시설과 간호사, 장모님을 돌볼 간병인 모두 매우 친절하다. 특히, 파킨슨 전문의사가 주치의로 배정되었다. 이런 저런 테스트로 치매 정도를 파악하는데, 생각한 것보다 인지기능이 매우 나빴다. 관절 등 몸이 굳는 것이 특징인 ‘루이소체’ 치매로 보이며, 재활 담당의사와 함께 재활운동을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나의 세계와 장모님의 세계가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시작하였다. 부디, 장모님 몸을 굳게 만든 뇌가, 몸을 움직이는 재활운동으로 재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 4
  • 2024-01-19 07:53

    인디언님의 글과 가마솥님의 글은 조금 다른 결이다, 는 느낌이 들어요. 당연한 일이겠죠? 두 분이 같이 돌봄에 대한 글을 써주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4-01-19 13:20

    (죽음을 목전에 둔) 돌봄의 시간을 최대한 유예하고 싶다가도 차라리 나한테 체력과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그 시간이 왔으면 싶은 복잡한 심경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모친과 함께 만들어 가게 될 돌봄의 모양과 시간을 어렴풋이 가늠해보기도 하고 엉성하게나마 마음의 준비를 해보기도 하지만…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눠주시는 고민과 글이 큰 위로를 줍니다. 감사합니다.

  • 2024-01-20 11:25

    저희 어머니도 연말부터 게속 아프셔서 매일 집에 갔었어요. 골다공증으로 외상이 없었는데도 척추뼈가 무너졌데요..ㅠ.ㅠ
    아프고 늙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노화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과연 늙음과 죽음은 무엇일까요....
    그래도 여기 여러 선생님들이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셔서 전 든든합니다.
    계속 부딪히고 또 사유하면서 겪어 나가야겠죠.
    글 잘 읽었습니다.

  • 2024-01-30 17:47

    뭉클합니다. 치매에 걸렸어도 나는 여전히 너희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고. 먹여주려 하지말고 내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라는 말씀이 특히 남네요. 관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항상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70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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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2024.03.10 | 조회 322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326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37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모로
2024.02.25 | 조회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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