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장애가 만날 때  / 무사

문탁
2023-12-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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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작전 중의 사유가 아닌 이상 심의를 거쳐 전역 조치 된다. 前 보훈청장 방우진 예비역 중령은 현역시절 유방암이 발병하여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의병 전역을 해야만 했고, 故 변희수 하사는 트랜지션 과정에서 고환을 절제했다고 강제 전역을 당했다. ‘군인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따라 군인이 장애인이 되는 순간 군대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유방과 고환이 전투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꽤 오랜 기간 복무한 나로서도 도무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축구 잘하는 군인은 무조건 군 생활 잘 해.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어.” 라던 어느 지휘관의 말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유방과 고환이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장애/동물운동가 수나우라 테일러는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강제적 비장애 신체성 체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강제적 비장애 신체성 체계란, 비장애중심주의가 작동하는 하나의 기제로 사람들의 육체적 기능이나 외관을 표준화하는 규범이며,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비장애 신체에 들어맞지 않는 신체를 모두 ‘장애’로 낙인찍는 시스템이다”(246) 국가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의 군 복무를 신성시하며 여성, 장애인, ‘혼혈’ 남성의 신체를 군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로 낙인찍고, 이들을 ‘구성적 외부’로 동원해왔다. ‘병역을 필한 대한민국 남성’의 입장에서도 긍정하기 어려운 징집의 상태를 윤색해 줄 대상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들 또한 기득권의 자장 안에서 ‘구성적 외부’와 위계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마치 보상받은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온 셈이니 말이다. 1999년 ‘제대군인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기 전까지 그 기득권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 유명한 결정은 남성 vs 여성 간 젠더 갈등 사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헌법소원 청구인에는 지체장애인 3급 3호(장애등급제 폐지 이전 舊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른 것) 남성 장애인도 있었다.

 

 

 

 

‘장애 수행’, ‘트랜스어빌리티’를 통한 에이블리즘 교란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한동안 화제였다. 좀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군의 현실을 대체로 잘 묘사했다. 실상이 이렇다보니 할 수만 있다면 병역을 피하고 싶어하는 입영 대상자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사실 병역기피는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서서히 무너지는 ‘병역필 남성’ 기득권의 허상과 군대의 민낯에 대한 절망은 입영의 문 앞에서 병역을 면제받으려는 욕망과 만나 ‘장애인’ 되기를 희구하는 집단, ‘다른 장애인’으로 현신이 되어 출현한다. 이들은 병역법에 명시된 신체기준에 ‘살짝 어긋난’ 몸, 딱 그만큼의 ‘장애’를 얻기 위해 애쓴다. 병역법상 ‘신체의 정상성’ 기준이 ‘병역면제’ 기준으로 재전유되는 지점이다. 이로써 신성한 국방의 의무와 최상의 전투력 유지라는 외피를 뒤집어 쓴 비장애중심주의, ‘군대적 다윈주의’는 비장애인 입영 대상자들의 ‘장애 수행’을 통해 교란된다. 장애를 의료적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비장애중심주의와 ‘신체의 정상성’이 규범인 사회에서 ‘장애’가 ‘선망’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이 현상은 신체 예술 연구활동가 베서니 스티븐스가 정의한 ‘트랜스어빌리티transability’를 떠올리게 한다. 트랜스어빌리티란 ‘이분화된 신체적 비장애 상태에서 신체적 장애 상태로 전환하려는 욕구나 열망’을 의미한다. 김은정 시러큐스대 여성/젠더학과 교수는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트랜스어빌리티 개념을 소개하며, 치유란 의료적 치료를 넘어 “몸, 정동, 사회적/물질적 조건들에 의도적인, 또한 비의도적인 변화를 촉발하는 전환적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상성’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몸을 장애가 없는 몸으로 전환하는 것과 그 반대의 과정이 동일한 것으로 인정되기는 어렵겠지만, 바로 그 ‘정상적인 몸’, ‘선호되는 미’라는 관점을 소거한다면, 성형수술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몸을 깎아내고 찢고 꿰매는 의료적 ‘치료' 과정이 ‘몸’에 손상을 가하고 ‘장애’를 입히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입영을 기피하기 위해 선택한 ‘장애 수행’이 능동적인 ‘트랜스어빌리티’는 아니지만, 두 행위 모두 비장애와 장애라는 이분법 규범을 교란하며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볼 여지는 없을까?

 

 균열과 교란은 복무 중에도 발생한다. 분명 입영 단계에서 장애인의 징집을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복무 중 ‘정신장애’ 등의 사유로 현역복무부적합심의를 거쳐 병역처분이 변경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장애학 연구활동가 김도현은 <장애학의 도전>에서 ‘사회가 장애를 만든다’고 말한다.(31) 현역복무부적합심의와 병역처분변경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느꼈던 불편함과 무기력감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군은 ‘등급내 인간’으로 호명한 이들 중 일부를 ‘정상성’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다시금 ‘등급외 인간’으로, ‘장애인’으로 선별하여 추방한다. 이 과정은 매주, 전군에서 계속된다. ‘장애’로부터 군대를 ‘보호’하기 위한 반복 속에서 ‘트랜스에이블드’, ‘장애 수행자’들은 사회가, 제도가 ‘장애’를 만드는 요인임을 몸으로 보여주며 교란의 춤을 추고 있다.  

 

 

 

 

 

저출산이 쏘아올린 공, 젠더, 인종을 넘어 장애까지 닿을까?

 

 2005년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이후 군 인권보호 수준은 진일보했다. 금쪽이를 군에 보낸 부모들, 언론,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낸 결과, 인권보호제도가 마련되었고, 장병들의 의식수준은 조금씩 향상되었다. 동성애 장병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제한적으로나마 포함되었고, 병사들의 복무기간도 점차 단축되었다.

 

현재의 복무기간이 유지되고 저출산 흐름이 계속된다면 2040년 이후 입영 대상은 약 15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보다 50%정도 축소되는 공백을 과연 누가 메울까? 국방개혁으로 인한 병력감축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입영 대상자가 줄어들자 군은 현역 복무가 가능한 신체등급 기준을 2급에서 3급으로 조정했다. 여성 군인 선발비율도 늘려 작년 기준으로 여성 군인은 전체의 9%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국 국적 다문화 장병의 입영을 허용했다. 인종과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산입했다. 당시 글로벌시대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특성에 대비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병력감축에 따른 안보 공백을 채우고 징병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군은 입대자원 부족과 그로 인한 전력 공백을 신체등급 기준 완화, 여성 군인 확대와 다문화 장병 입대로 채우려 하는 등 인원 수 맞추기에만 급급하다.

 

조직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의 공유된 가치, 신념, 행동, 배경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국가, 민족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개념과 달리 최근에는 인종, 성별, 나이, 신체적 장애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독일이나 스위스군의 다양성 범주는 한국군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성, 민족, 인종, 성적 지향성, 연령, 장애, 교육배경, 성장배경, 출생지, 종교, 문화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 국방부 예하에 다양성 관리 전담 부서가 설치 되어 있다. 특히 독일 국방부의 다양성 정책은 개개인의 경험과 가능성, 잠재역량에 초점을 맞추고 군내 구성원에 대한 가치판단, 역할, 직책부여에 있어서 편견을 없애고 존중하려는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다양성 정책은 병력 공백을 채우기 위한 양적 보완 수단일 뿐 다양성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립한 질적 정책은 아니다. 다양성 관리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양성평등’과 ‘다문화’ 정책도 명명에서부터 이미 협소한 범주 인식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장애 역량을 재사유하기

 

“장애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사회적인 역량에 주목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를 상호의존과 공생의 원리에 따라 재구축하며 사회질서를 평등과 협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새로이 구성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의 실마리를 장애인의 사회적 존재로부터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다.”( 「문화과학」 115호 “장애와 역량” 발간사 )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0조에는 “군인은…(중략)…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여”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 군인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에이블리즘 군대가 ‘장애’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동권과 탈시설은 장애인 운동의 오랜 화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군대는 ‘비장애인’만을 선별하여 ‘시설’에 가두고 이들의 이동권을 제한함으로써 탈시설의 욕망을 키우고 있다. 군대는 ‘장애를 만든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국제질서는 복잡해졌고 안보위협은 다양해졌다. 안보의 개념이 군사안보에서 인간안보로 바뀌고 있으며, 군의 활동 역시 국가방어만이 아니라 환경보호, 재난 구조, 지역분쟁 해결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요소로 구성된 물리적 전투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목도하고 있듯이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군의 전투력에는 물리적 유형력 뿐만 아니라 리더십이나 사기, 연대감, 갈등관리와 같은 무형전력도 포함된다. ‘죽이는’ 실력만이 전투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살리는 것,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한 전력이다. 만일 군대에도 미덕이 있다면, 낯설고 다른 존재(자)와 섞이는 일이 유일하지 않을까? 출신도 자라온 환경도 매우 다른 이들이 비자발적으로 섞이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회에서 말이다. 블라인드blind 게시판에 “요즘 병사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쳐도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자조섞인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들이 휴대전화 대신 낯설고 다른, 그래서 불편한, 그러나 서로에게 생명을 의탁할 수 밖에 없는 동료를 바라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용환 육사 교수는 “군에서 다양성 관리를 경험한 장병은 조직 내에서의 성과는 물론 제대 이후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직 내 다양성의 증가는 조직의 경쟁력, 응집성, 전문성과 같은 실제적인 성과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윤리적 민감성, 적극적 행동과 같은 규범적 성과가 증대되는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군 여성 군인(조직)은 1950년 500명의 육군 여자의용군으로 창설된 이래 남성 군인의 참전을 각성하게 하는 존재(자)로(1949-1954), 국가총력안보시대의 애국 상징으로(1955-1989), 지식정보화시대 전문직업군인으로(1990 이후) 활용되어 왔다. 전쟁 양상의 변화와 군 활동의 다변화 흐름 속에서 유연함과 잠재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군사적 폭력성을 다소나마 약화시키고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젠더화된 역할 수행을 요구받는 등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여성 군인의 위치성과 관련한 문제적 지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군인은 그동안 군인의 전형으로 상정되어온 ‘남성 군인’과는 ‘다른’ 군인으로 출현하여 군의 전통적인 젠더질서에 교란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던져온 질문들이 그나마 지금의 변화를 견인해왔다.(고 말하고 싶다.) 다문화 장병의 출현을 통해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2010년부터 장병 임관(입영) 선서문에는 “민족” 이라는 표현이 “국민”으로 변경되었다. 다문화 장병들은 4대 종교에 치우쳐 있는 군내 종교 활동 자유의 폭을 넓히고 식습관, 언어, 역사적 배경과 편견 등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존중해야할 필요성을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있다. 

 

저출산이 쏘아올린 공은 의도치않게 군대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다급해진 군은 부족한 입영자원을 대체하기 위해 여성 군인 비율을 2027년까지 15%로 높이고 다문화 장병의 입대를 적극 장려하고 신체등급 3급으로 한차례 범위를 넓힌 현역 복무 기준을 이제는 4급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그동안 군이 내세웠던 ‘신체의 정상성’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낸다. 얼마 전 뉴욕 타임즈는 칼럼에서 “한국의 저출산은 가족중심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영향으로 보이며, 한국이 유능한 야전군을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한다면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언제까지 ‘안보’를 ‘숫자’에만 맡길 것인가? 

댓글 1
  • 2024-01-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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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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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2024.03.10 | 조회 315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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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3.05 | 조회 314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27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모로
2024.02.25 | 조회 346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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