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 모로

문탁
2023-12-3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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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다. 나란히 걷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혼자서 저 멀리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르다 싶다. 왼쪽이나 오른쪽, 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이는 갈지자로 왔다 갔다 걷는다. 갑자기 달려나갈 때도 있고, 갑자기 멈추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바짝 붙어서 걸어갈 때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더 어릴 때는 그 모습을 보면 꼭 차에 치일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러다 대충 서겠지 싶어서 놔둔다. 저만큼 앞서서 달려가다가도 건널목이나 갈림길 사이에서는 멈춰서 기다리니까. 옆을 보면서 걷고, 심지어 하늘을 보면서 걸어도 아직은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거나 어디에 빠진 적은 없다. 이쯤 하면 눈이 뒤통수에도, 옆통수에도 달린 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후로 나는 줄곧 되묻는다. 장애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 뭔가가 다르단 의미일까.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과 만났다. 이 책은 강렬하게 나의 의식을 때렸다.

 

“저기요. 장애는 예술이거든요?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라고요!”

 

 

장애는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하는 방식

 

장애인은 많다. 세계인구의 무려 15~20%나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장애인들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고립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장애인들은 사회로 나가는 대신 고립되는 편을 택한다. 하지만 장애를 보이는 부분 만이 아니라 만성적인 질병, 장거리 보행이 어려운 경우, 체중의 부적합함의 문제 등까지 포함한다면 어떨까. 장애는 각종 기관의 내부 규정에 따라 달라짐으로 사회적 요인에 따라 계속 변한다. 그러므로 장애는 의료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이며,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건물을 출입하거나 거리의 낮은 보도블럭을 넘지 못하는 사소한 문제들이 장애를 만든다. 사회의 많은 부분이 비장애중심주의로 설계되어 장애인들을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비장애중심주의적 관점은 우리가 동물을 대할 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동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량되고, 효용성이 없어졌다고 생각되면 도축된다. 성장 위주의 사회에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폐기되고, 인간의 필요에 따라 변형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의 생각에서 나온 결과다. 특히 지능은 인간이 만든 지표다. 하지만 이를 이용해 동물을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든다. 동물은 말하고 싶은 것을 ‘언어’로 말하지 않을 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이는 장애의 경우에서도 비슷하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돌보거나 변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장애는 고통이며,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너머에는 다양한 세상이 있는데, 인간중심적인 세계관 탓에 그 너머의 것들을 놓친다. 저자는 계속해서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무언가를 배우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장애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불구의 시간(crip time)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서로 다른 속도로 살고 있고 우리의 시간 감각이 경험과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중략) 옷을 입거나, 식사를 준비하거나,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과업을 수행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우리에게 시간이 온전히 달라질 수 있다면, 극심한 지적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나 매우 다양한 동물들의 시간은 어떻게 다시 개념화될 수 있을까? (중략) 싱어의 시간 개념은 진보와 미래 지향적인 목적이라는 서구의 통념에 기초하는 반면, 불구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이란 가변적이며 실제로 우리의 신체 형태와 함께 바뀌고 있다고 문제제기 하도록 한다. (『짐을 끄는 짐승들』, 232p)

 

피터 싱어는 공리주의 철학자로 그의 대표적인 저서는 『동물 해방』이다. 그는 동물 권리문제를 철학의 주요 담론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을 ‘문제적인 방식’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의 비판도 받는다. 장애를 부정적인 것으로, 비극으로, 결여로 생각한다. 이는 미국은 물론 다른 많은 곳의 지배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공리주의 관점에서 왜 장애가 바람직하지 않고 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는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테일러는 2012년 버클리를 방문했을 때 피터 싱어를 직접 만났다. 둘은 서로 만나 장애가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소통의 한계에 부딪힌다. 테일러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보기에는 우리가 그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가요? 우리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가요?” 싱어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사람들이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물어요. 모든 장애를 치유할 수 있고, 그 비용도 겨우 2달러에 부작용도 전혀 없는 알약을 준다면, 그 알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알약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테일러는 대부분의 장애인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것에 대한 답변으로 자기가 가진 창조성에 대해 언급한다. “장애는 이 세계와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알려줍니다.” 장애가 단순히 결핍이 아니라는 것, 반드시 효율성, 진보, 자립. 이성을 중심에 두지 않는 삶의 방식들에서 가치를 찾도록 추구한다고. 장애는 해방적일 수도, 신나는 일일 수도, ‘정상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장소일 수도 있다고 답한다. 대게 장애는 장애인들의 삶에 스며들어 그 일부가 된다. 이것이 장애를 항상 꼭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장애는 삶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며, 단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익숙한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

 

나는 내 형상 속에서 동물을 느낀다. 이 느낌은 교감의 일종이지 수치심이 아니다. 나의 동물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내 몸이나 다른 비규범적이고 상처 입기 쉬운 몸들이 자신의 주변 세계를 움직이고, 보고, 경험하는 방식으로 존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동물화된 부위와 움직임에 대한 주장이고, 내 동물성이 내 인간성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는 우리가 동물 같다거나 동물이라는 관념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두 주장 모두 맞지만 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바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루할 정도로 당연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짐을 끄는 짐승들』, 208p)

 

 

 

 

 

테일러의 작품 중 ‘해우로서의 자화상’이 있다. 뭉툭한 두 손과 굽은 관절을 가진 여성이 바다 동물과 함께 허공에 떠 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듯한 두 생명체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바다인 듯 보이나 물결도 거품도 없이 잔잔하다. 불편하기보다는 편안한 모습이다. 테일러에게 있어 ‘불구’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자신을 동물로 표현함으로써 그림에 상상력을 부여한다. 또 다른 작품을 보면 굽은 손이 그려져 있다. 아주 익숙하면서도 어디인지가 낯선 이 손은 이상하기보다는 단단해 보인다. 테일러의 작품은 익숙한 우리들의 사고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언제 어디쯤에서 스스로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언제나 인간으로만 식별되고 싶은가.”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아이에게 모든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알약을 먹일 것인가. 아이의 장애가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을까. 수도 없이 학교 적응에 문제가 있었던 나날들, 익숙한 발달 단계에서 벗어난 아이를 키우는 일, 아직도 친구와의 생활이 매끄럽지 않은 아이다. 하지만 종종, 아니 자주 나는 아이의 번뜩임과 사랑스러움에 빠졌다. 늘 ‘왜’라고 묻는 말 속에서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상들에 틈을 내고 잠시 생각하게 했다. 여행을 가더라도 아이는 풍경 대신 그 나라의 신호등이나 표지판의 차이점부터 본다. 각기 다른 언어와 문자, 기호체계를 신기해하고 관찰한다. 새로운 가전제품이나 장난감을 사더라도 설정을 가장 먼저 살펴본다. 그리곤 만든 사람 빼고 아무도 모를 거 같은 정말로 낯선 기능들을 찾아낸다. 또한 언어가 가진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제는 뉴스에서 폐렴이 유행이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그걸 보더니 아이가 말했다. “엄마, 폐렴은 왜 폐염이 아니고 폐렴이에요? 다른 건 다 간염, 피부염 다 ‘염’인데요. 두음법칙의 파괴라면 폐암도 폐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폐렴이라는 단어를 40년간 들으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이 가진 가장 큰 문제인, 사회성을 생각해본다. 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소통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므로 아이의 케이스마다 개개별로 다른 소통의 창구를 찾아내야 한다. 장애를 다른 시선으로 보기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엄마들을 아이의 장애를 인지한 순간부터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정상’의 범위로 아이를 만들고 싶어 했던 욕망 아니었을까.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겨우 다른 아이들이 평범하게 해 나가는 것 (젓가락질하기, 학교 책상에 잘 앉아있기,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습득하는 것은 비장애중심주의인가. 아니다. 이건 아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기 위한 나의 노력이었다. 그렇게라도 타인과의 소통을 배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테일러의 말대로 우리가 문제시해야 하는 것은 장애를 치료하나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가 객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고 만연한 전제 자체다.

 

우리는 서로에게 얽혀있는 존재

 

테일러는 활동 보조견이자 반려견으로 보호소의 개를 입양한다. 입양한 개 베일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보조견이 아니다. 신체를 보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일리는 함께 세상 속을 헤쳐갈 때 사회적 윤활 작용을 해준다. 불편하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시선을 부드럽게 만든다. 하지만 베일리는 곧 짧은 다리와 긴 몸통 탓에 신체적 장애를 가지게 된다. 베일리는 소중한 존재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삶을 편안하게 해줄 개를 원했지만 결국에는 장애견과 함께 있게 된 것이다. 테일러 역시 가끔은 베일리의 척추 몇 마디를 제거해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치료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효율적이고 능력 없는 인간이 비효율적이고 불구인 개를 돕고 서로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우리 가족도 반려묘와 함께 산다. 아름답고도 비싼 품종묘인 이 고양이는 러시아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 동안 펫샵에 전시돼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주인에게 팔린 뒤 새끼를 낳아 팔고자 했던 욕망이 좌절되자 버려졌다. 그 뒤로 두 번째, 세 번째 주인을 거쳐 우리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은 ‘쓸모’가 있는 일일까. 반짝이는 금빛 눈과 풍성한 털을 가진 이 고양이도 내년에는 10살이 된다. 이제는 아름다운 시절이 지나가고 늙고 병드는 일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미한가. 고양이에게는 과거도, 미래의 관념도 없다고 한다. 단지 현재만을 사는 동물. 나는 고양이의 나른한 그루밍을 보고 있으면 편안함을 느낀다. 산책을 하지도, 새로운 곳을 가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즐긴다. 그리곤 집의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바쁜 남편과 아스퍼거 아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반갑게 뒤집어져서 반기고, 털을 뿜으며 존재를 각인시키고, 잠자는 내 옆구리를 파고들기 위해 번번이 잠을 깨운다. 늦게 일어나면 ‘앙앙’거리면서 잔소리하고, 화장실이 더러우면 똥 한 덩이를 내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둔다. 우리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도 우리를 길들였다. 함께 지내면서 천천히 ‘언어’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서로 다른 우리 가족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데는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 그건 서로 다른 방식으로라도 소통하고 싶어하는 관심이 아닐까 싶다.

댓글 1
  • 2024-01-19 10:08

    글이 너무 좋아요 모로샘 🙂
    삶을 대하는 독창적인 방식의 예술
    이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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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2024.03.10 | 조회 317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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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3.05 | 조회 316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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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4.03.02 | 조회 327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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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5 | 조회 347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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