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 이야기 / 스프링

문탁
2023-12-18 09:00
183

 

 

1. 나에겐 너무나 무서운 개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정면에 몇 종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무심히 훑어보다 담배 냄새가 불쾌하니 실내 흡연을 삼가달라는 내용의 경고문에 눈길이 멎었다. 같은 종이에 누군가 갈겨쓴 손글씨 때문이었다. ‘개 짖는 소리도’. 종이를 가로질러 대각선으로 급하게 흘려 쓴 글씨에서 짜증이 묻어난다. 시끄러우니 조용히 시키라는 거겠지. 근데, 살아있는 개의 입을 막아버리란 말인가? 성대 수술을 시키라는 것일까? 아무리 자기가 기르는 개가 아니라고 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도대체 얼마나 시끄러우면 저런 걸 썼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개 짖는 소리를 자제시켜 달라는 항의에 어이없어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게 별로 없다고 할 정도로 나는 쫄보다. 유전자의 힘도 있고 안전한 길로만 걸어온 나의 삶의 행로도 겁 많은 나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단 유전자부터 살펴보자. 엄마와 동생들 모두 개를 무서워한다. 동생들과 함께 외출하러 밖으로 나와 몇 발짝 떼었을 때 어느 집에선가 나온 개를 보고 우리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거의 동시에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마치 군인들이 사열할 때 일제히 ‘뒤로 돌아’ 자세를 취하듯. 저놈의 개새끼가 우리 뒤를 쫓아와 물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만들어낸, 언어 없이도 통하는 마법적 합일의 순간이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빨 때문이다. 사납게 짖고 으르렁대면 나에게 위해를 가할 것만 같다. 그래서 가급적 개를 만날 가능성이 적은 곳으로 다닌다. 동물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카페와 같은 곳은 아예 안 가고, 관리되지 않은 개들이 출몰할 만한 숲길이나 산길도 여간해서는 혼자 가지 않는다. 무서우니 피하는 건데, 개를 피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활하는 곳곳에서 개들을 만나게 된다. 저녁 무렵 공원이라도 갈라치면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개와 만나는 접점이 늘어나니 개에게 사람이 물리는 사고도 종종 보도가 된다. 사고가 일어나면 대체로 견주에게 개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묻고 더 철저한 관리를 촉구한다. 개줄을 튼튼하게 매고, 크거나 사나운 개는 입마개를 하도록 해서 최대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대책들에는 “개가 감히 사람을 물다니, 개는 절대 사람을 물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는 지킬 수 없는 규칙이다. 이빨이 있는 동물들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을 무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동물로서 인간은 사고 방지를 위해 개를 단속하기 이전에 개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무서움은 나의 감정일 뿐이지, 개가 갖고 있는 본성은 아니다. 개 자체가 두려움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왜 개만 나의 습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것일까? 개가 사람을 물었을 때는 개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안전을 추구하는 행위를 하듯이 개 역시 안전을 추구하는 행위로 사람을 공격했을 것이다. 나의 무서움이 스스로를 언제든지 개나 고양이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포지셔닝한 데서 오는 감정이라면, 개의 무는 행위 역시 인간에게서 느끼는 위협으로 인한 방어일 가능성이 높다.

 

 

 

 

 

2. 너에겐 너무나 사랑스러운 개

 

개를 키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개가 다른 사람을 문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계속 일어난다. 주인에게 순한 동물도 위협을 느끼면 공격하는 게 당연하다. 가축 파수견의 브리더인 린다 와이저는 공격적인 구조견이나 아이를 문 적이 있는 개는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인간 아이는 물론이고 다른 개들의 목숨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개 전체란 종류임과 동시에 개체다. 종이 지속돼야 개체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종의 존속을 위해 말썽꾸러기는 해치워 버리자는 것 아닌가? 아무도 죽이면 안 된다.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된다는 보편적 윤리에 위배되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구의 죽음, 누구의 자유인가? 절멸을 피하기 위해 현실에서는 인간과 개의 목숨, 자유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구에서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최선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일종의 소화불량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현대 소비문화 속에서 개는 단순히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다. 개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자본주의의 세심한 그물망 속에서 관리된다. 품종 개량 및 번식, 개 사료, 미용, 놀이, 훈련, 유전병·감염 등을 포함한 각종 질병 관리, 장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돈이 든다. 그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펫보험에 가입한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자연적인 생노병사와 불의의 사고를 보험으로 관리하듯 개 역시 이 산업의 하나의 그물코로 엮여 들어왔다. 개와 함께 사는 데는 끊임없이 돌보는 손길이 필요하고 비용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천오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가축이었던 동물들의 도축장이 도시 외곽으로 옮겨지면서 도시에는 작은 동물들만 남았다. 눈앞에서 사라진 가축들은 식탁에 고기로 올랐다.

 

도시에 남은 개들은 주로 애완동물로 기능한다. 개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물고 빨고, 추울까봐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고 각종 악세서리로 치장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왜 동물로서 개의 야생성을 존중하지 않고 사람의 아기처럼 대하는 거지? 아기로 만들며 차이의 존중을 거부하는 것이 거슬린다.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는 게 아니라, 나의 욕구를 투사하는 대상으로만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외로운데, 사람보다는 덜 피곤하고 말을 잘 들으니까 개를 데려다가 인형놀이를 하는 것 같다. 인간의 욕구와 편의 중심인 이런 관계에서는 애정이 식거나 돌보는 게 여의치 않아지면 버려질 위험이 커진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도 나의 편견일 수 있다. 인간의 애정은 왜 우선적으로 인간에게 향해야 하나? 애정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면 다 외로움의 투사 대상인가? 인간 역시 그렇지 않은가? 실제 동물과 함께 살며 그들을 가족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의 편협한 시선으로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누구에게 애정을 쏟느냐, 누구와 살지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다. 함께 살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나는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1970년 이래로 야생동물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가축은 늘었다. 10억 마리의 양, 10억 마리의 돼지, 10억 마리 이상의 소, 250억 마리 이상의 닭이 존재한다. 현재 전 세계 대형 동물의 90퍼센트 이상이 인간 아니면 가축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미 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새 생활권을 공유하며 같이 살게 되었다. 이들과 어떤 자세로 함께 살 것인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3.개를 무서워하지만 잘 지내고 싶어

 

나는 종 안팎에서 맺어진 모든 윤리적 관계는 관계-속의-타자성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라는 가늘고 섬세하며 질긴 실로 뜨개질한 편직물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며, 함께 살아감으로써 존재한다. 누가 있으며 누가 생겨나고 있는지 묻는 것이 의무다.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中 반려종 선언, 178)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과 비인간으로 이루어진 다종의 생물들이 서로의 몸과 삶의 구성요소로서 함께 진화해왔다고 보고, 이들의 관계를 반려종이라고 부른다. 인간과 비인간의 몸과 삶은 다종의 생물이 모여 이루어나가는 일종의 배치이다(애나 칭, 세계 끝의 버섯, 해제, p.512). 해러웨이가 말하는 반려종은 반려동물보다는 범위가 더 넓고 다층적이다. 반려는 식사를 함께 하는 가까운 관계이자 성적인 파트너 즉 연인이나 배우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많이 쓰였다. 둘도 없는 소중한 파트너, 중요한 타자를 의미한다. 해러웨이는 소중한 자가 동종이나 동류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중요한 타자’는 서로 사랑하는 자들 사이의 윤리를 함축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해러웨이에게 반려종이 소중한 타자라고 했을 때 여기에는 정서적인 친밀성이 깔려 있다. 나는 정서적으로 친밀하지 않아도 소중한 타자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상대 역시 인정과 존중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소통하기 어렵다. 오히려 무서움의 거리만큼 발견과 소통의 기쁨은 배가 될 수 있다.

 

소중한 타자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길들여 복종시키는 관계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 해러웨이는 ‘소중한 타자성’을 의도의 반영과는 다른 무엇으로 해석하고 싶어 한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사랑하는 구체적인 반려견이 없고 개 일반에 대한 두려움만 있는데 어떻게 ‘있음’이 아닌 ‘없음’으로부터 반려종과 함께 잘 살고 싶다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개를 무서워하지만 개와 잘 지내고 싶은 나에게 개는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러웨이의 ‘카옌’과 같은 구체적인 형상은 없지만, 그 작용력이 나에겐 존재감이다.

 

개에 대한 공포로 나의 마음이 쪼그라들고 활동 범위가 축소되는 것도 힘들고, 나의 공포로 개의 활동 반경이 좁아지는 것도 미안했다. 내가 개를 보고 흠칫 놀라거나 얼어버려 그 자리에 꼼짝 못하고 있으면 산책 나온 개 주인은 개의 목줄을 더 짧고 세게 쥐거나 개를 데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나에게 개가 트러블이듯이 개에게는 내가 트러블이었다. 개를 편하게 해주고 싶은데 불편하게 해서 나도 마음이 불편하다. 집을 나서면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렇게 개가 나의 심신에 계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개는 나에게 중요한 타자인 셈이다. 중요한 타자와 소통을 잘 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무섭지만 개는 나에게 소중한 타자다.

 

스트래선은 다른 관념들을 사유하기 위해 어떤 관념들, 어떤 관계들을 관계시키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세계를 만들고 그런 세계를 이야기하기. 이렇게 ‘나의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올해 돌봄을 주제로 공부하면서 동물, 장애, 비인간을 취약성, 트러블, 함께 살기, 애도, 오염, 번역, 공유지 등의 관념들로 만났다. 취약성이 연대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염된 땅 폐허가 송이버섯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더 알고 싶은 이야기이다. 나도 삶을 통해 길어 올린 이야기를 이어 붙이면서 실뜨기를 이어가고 싶다.

 

 

 

 

 

‘나의 개’ 이야기는 무서움으로부터 시작한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혐오나 두려움,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라 하더라도 뭔가를 느낀다면 그것이 새로운 관계의 시작일 수 있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때는 그냥 지나가버리고 만다.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감응을 징검다리 삼아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고 접촉을 늘려 나가다보면 어느새 관계가 달라져 있을 때가 있다. 얼마 전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고양이를 가두지도 않고 한 공간에 같이 있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않으니 안심하고 관찰할 수 있었다. 창가에서 햇볕을 쬐며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가 도도하고 우아하게 보였다. 징그럽게만 느껴지던 고양이 눈도 신비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두려움의 장막이 걷히니 감각도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나는 고양이가 있는 다른 집을 방문하고 한순간에 자신감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너무나 활발한 고양이 세 마리가 뛰어다니는 그 집에서 나는 의연한 척 할 수 없었다. 다시 고양이들을 방 안에 가두었다.

 

그래도 나는 기가 완전히 꺾이지는 않았다. 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개, 고양이와 함께 있었으므로 이전의 나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나를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존재 자체의 본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의 조건이 작용한 결과겠지만, 덕분에 나는 무섭고 싫은 상대에 대해 알아 나가면서 나의 자유를 확장해가고 있다.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의 경계가 옅어지면서 내가 편해지면 그들을 편하게 대할 것이고 그들 역시 더 편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댓글 0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317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316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28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모로
2024.02.25 | 조회 347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김윤경~단순삶
2024.02.20 | 조회 42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