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 프로젝트 9회차 <유목적 주체> 서장~3장 후기

명식
2021-04-26 18:09
666

 

  이번 주에도 결코 만만치 않았던 수업 후기입니다.

 

  저희 조 토론 때 무사님께서 해러웨이의 책이 그 한 권 자체로 어려운 전공 서적이었다면 이번 브라이도티의 책은 여러 다른 책들의 이야기들을 엮어내며 설명하는 참고 서적 같은 느낌이었다고 하셨는데,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책을 읽는 내내 책 내에서 굉장히 자연스럽게(아무렇지도 않게? 다소 불친절하게?) 인용하고 있는 푸코와 들뢰즈의 개념 및 주장들을 여럿 접할 수 있었거든요. 이건 『감시와 처벌』, 이건 『광기의 역사』, 이건 『생명관리정치의 이해』…….  만일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최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 『유목적 주체』라는 그 제목에 걸맞게 이번 책의 핵심은 ‘주체’에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데카르트 이래 서양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말해져온 그러한 주체가 아니라 페미니즘의 맥락, 정확히는 명백한 성차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어야 하는 그러한 여성적 주체입니다.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한 툴로써 사용되는 것이 푸코의 주체성이고요.

  우선 데카르트의 근대적인 주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카르트의 이 말은 ‘근대적 주체’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는 정신과 신체라는 두 실체의 조합이며, 그 중에서도 정신이 신체에 우선한다. 인식하는 정신과 인식되는 대상으로의 신체.” (발제문에서 발췌)

 

  나 외의 세계의 다른 실체들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신과 그 능력(사유). 그리고 인식의 대상이 되는 신체들(연장). 자연히 데카르트의 주체는 합리적인 이성으로 무장한 세계의 탐구자, 정복자입니다. 근대의 패기만만한 인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는 공격도 많이 받았고, 수많은 해체의 시도의 대상이 됐습니다. 니체, 맑스, 프로이트, 그 외 수많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데카르트적 주체를 해체했죠. 푸코 또한 그 중 한 사람인데, 푸코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주체를 새로이 정의합니다.

 

  “이 개념은 체현된 주체를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효과로, 말하자면 지식과 권력이 그 주요한 극이 되는 과정 속의 한 항목으로 정의한다. (...) 권력의 미시물리학. 생체 권력 혹은 자아의 테크놀러지” (책 108p)

 

  정신이 우위에 서는 정신과 신체의 이분법적 조합이 아닌 ‘권력의 효과’로서의 주체.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주체. (그 과정에서 근대의 권력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규율권력과 생명권력 개념이 동원됩니다. 이것들은 푸코의 핵심 개념들이며, 사실 충분한 설명과 별도의 공부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브라이도티는 그런 푸코의 개념에 다음과 같은 코멘트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나는 이를 푸코의 인식론이 주체성의 육체적 뿌리를 긍정하고 또한 주체가 자신의 의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긍정하는 것을 하나의 사실로 간주한다.” (111)

  “또한 푸코는 모더니티를 생체권력, 말하자면 살아 있는 물질에 대한 총체적인 지배와 조작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 생체권력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생체bios 개념이 모든 결합력을 상실하면서 다양한 생명 형태들로 폭발해버리는 시대이기도 하다.”(112)

 

  그리고 이것을 툴로 삼아, 이 책에서의 브라이도티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주체를 재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것은 이성을 지닌 정복자인 데카르트적 주체가 아니라, (들뢰즈의 무기인) 타자와의 관계와 차이의 생성을 토대로 하는 그러한 여성적 주체입니다. 푸코의 예리한 분석조차 포함하고 있지 않은 ‘성차’의 개념을 아우를 수 있는 그러한 주체의 재발견입니다.

 

  “합리성의 외골수적인 한결성과 남성적 편협성을 비판하되, 나는 그 대립질서 속으로 들어가 기존의 안이한 비합리주의를 호소하려는 것은 아니다. (...) 그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이,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 인간 주체성의 구조와 목적들이라고 인식하도록 우리가 배워온 것들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 신체에 대한 권력이 내파적인 절정에 달한 세계에서 여성 정체성을 위해서 새로운 경계들을 연결하고 협상하는 것이야말로 (...)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158-159)

 

  아직까지는 책의 초반부인지라, 이러한 브라이도티의 작업에 대해 무어라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경험들과 함께 ‘사이보그’와 ‘반려종’이라는 깔쌈한(?) 길을 제시했던 해러웨이에 비해 다소 ‘구질구질한’ 느낌이 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 왜 굳이 수많은 단서들을 달아가면서 (~이지만, ~는 아니다. ~지만, ~는 아니다) 다시 주체를 가져와야 했는가? - 어디까지나 아직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을 더 읽어 나가면서 브라이도티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궁금증도 풀리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2
  • 2021-04-28 16:16

    "신체에 대한 권력이 내파적인 절정에 달한 세계에서 여성 정체성을 위해서 새로운 경계들을 연결하고 협상하는 것"

    : 브라이도티가 발견해낸 '새로운 경계'들이 어떤 것일지 앞으로 책을 읽으면서 찾아내 봐야겠네요^^

  • 2021-04-28 21:25

    명식님 표현대로 해러웨이보다는 덜 '깔쌈'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친절한 브라이도티는 "새로운 유목적 페미니즘적 주체는 계급, 인종, 나이, 삶의 스타일, 성적 선호 등 복수적인 차이들을 대면하는 여성들에 의해서 정의되고 긍정되는 인식론적/정치적인 존재이다."(71)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시간은 태동 당시나 지금이나 들뢰즈 식으로 '빗장이 풀린 미친 시간'쯤을 의미할까요? 단순한 원환운동에서 벗어나 직진하지만, 또 다른 원환적 형태에 갇힌 느낌입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 페미니즘 공부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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