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프로젝트 8회차 '킨' 후기

송우현
2021-04-20 02:25
425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재밌게 읽혔던 킨이지만, 분량 때문인지 그럴수록 더 읽기 싫었던 킨이었습니다. 결국 오늘에서야 다 읽고 후기를 남기네요.

 

 중반까지는 대체 왜 제목이 '킨'일까 궁금했는데, 다 읽고나니 감이 좀 잡혔어요. 여담으로 시작하자면, 킨드레드Kindread 라는 단어는 저에게 익숙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름이거든요ㅎ. 

이렇게 생긴 캐릭터인데, 양과 늑대가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하는 컨셉이에요. 서로 너무나도 다른 존재이지만,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죠. 그래서 외국에선 kindread라는 단어가 단순히 혈연, 친족이라는 뜻이 아니라 뭔가 엮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게임에서도 죽음이라는 운명을 다루는 캐릭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 킨은 다나와 루퍼스의 혈연에 관한 이야기이자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 이야기가 전혀 아름답지만은 않지요. 하지만 그 밖에도 이 '킨'이라는 메타포는 여러 의미로 읽힙니다. 단순히 조상이라는 것을 넘어서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지점을 보여주는 다나와 엘리스의 관계, 캐리의 언어로 '절대 벗겨낼 수 없는 피부색'을 공유하는 다나와 19세기 흑인들... 굉장히 재밌게 읽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다나와 엘리스의 관계가 가장 인상깊었는데, 20세기에서의 자유를 누리던 다나는 점점 노예의 삶에 익숙해지고, 엘리스는 끝까지 노예의 삶을 거부하려 했다는 점이 특히 그랬지요.  '사람을 노예로 만들기 얼마나 쉬운지'와, '길고 느린 둔화과정'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도 느꼈지만, 저는 그 속에서 탈출 시도를 하지 않고 순응하며 사는 삶을 비난할 수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단순히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지요.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엘리스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다나를 비난하는 엘리스는 이해할 수 없었죠. 적어도 다나와 와일린가의 흑인들은, 물론 고통스러웠지만 살아갈 수 있었어요. 그들은 20세기로 돌아온 다나의 짧은 자유를 평생에 걸쳐도 맛볼 수 없지만, 저는 그들 앞에서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해방을 위해 노력한 투사들을 깎아내릴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노예로서의 삶 그 자체가 죄악이어선 안된다고 생각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노예제도가 있어도 된다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뭔가 말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 이상하지만, 어쨌든 다나가 적응해 간 노예의 삶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엘리스의 선택이 어리석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말이구요, 그런 모순과 양면성은 루퍼스 속에서도, 루퍼스의 아버지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단순한 '쓰레기 백인'만은 아닌 둘, 물론 그들이 착한 백인이었다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볼 수 없는 캐릭터들과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어떤 종류의 예속이든 이상한 관계를 형성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정말 와닿는 것 같습니다.

 

 

댓글 5
  • 2021-04-20 11:05

    예속도 관계의 일종이다~ 라는 문장은 난 못 읽었는데^^  정말 그렇겠네요~~

  • 2021-04-20 11:27

    게임 캐릭터의 네이밍이 의미심장하군요. ㅎㅎ세상에 던져진 순간 이미 정해진, 징글징글한 각종 굴레들을 하나 둘 풀어내고 끊어내는 지난한 과정...여전히 서툴지만...그래서 tuntun~ 

    제게는 정말이지 미지의 시공간, 게임의 세계. 후기 잘읽었습니다^^

  • 2021-04-20 11:47

    게임 캐릭터로 설명해주니 제목의 의미가 더 잘 와닿네요. ^^

    생각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읽히네요.

  • 2021-04-20 14:33

    친족; 뭔가 엮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의 뉘앙스 !!!  좀 선명한 정의인가요 ?  ㅋㅋ

     

    제가 첫 날 최유미 샘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건 we are the world 가 되는 거 아녀 ? 라는 생각도 잠깐 스쳤고, (아마 제가 그 때 후기에도 썼었던 거 같아요)  

    H.W. 글은 잘못하면 오독하기 쉽겠다고 자주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KINDRED' 를 읽고 나서도 노예냐, 사랑의 예속이냐 이런 얘기도 했었는데...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어떠한 관계도 관계인 건데,  그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또 변신할 수 있는 무엇이 되기도 할 거 같습니다.

    그 안에서 맥락을 찾고,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그렇다고 상대주의에 치우지지 않게요. 

    그냥 단순하게 너의 사정도 이해하고 또 너의 사정도 있구나.. 라고 해버리면... H.W. 를 읽었는데, 뭐가 다른 거지 ? 하게 될 거 같아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이고, 또 그 경계를 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구요.. 

    (아마도 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아직도 제가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서... ㅋ)

     

  • 2021-04-20 18:53

    관계에서 예속이 기인합니다. 예속이 아닌 관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하고 싶고,

    끝끝내 루퍼스의 등에 칼을 꽂은 다나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제겐 앨리스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그렇다고 앨리스를 연민으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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