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차 1조 후기

느티나무
2021-04-18 00:45
339

당일 안에 후기를 올리라는, 해러웨이의 언어로 해석해보라는, 튜터의 당부를 지켜보려 애썼지만 

시간은 벌써 12시가 넘었고 해러웨이는 짜집기가 되어버린건 아닌지...

 

 대략난감했던 해러웨이의 책읽기가 끝나고 한 숨을 돌리기 위해 SF소설 한편을 읽기로 했다. 그녀가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소개한 작가들 중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인 『킨』-KINDRED-이다. 오랜만에 술술 읽히는 즐거움도 잠시 저자의 은유를 독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후기는 해러웨이와 관련 쟁점을 중심으로, 그리고 조원들의 메모에서 가장 많았던 공통질문들로...

먼저  옥타비아 버틀러가 주인공 다나를 타임슬립한 시공에 대한 것이다. 왜 하필 1800년대의  메릴랜드라는 공간이었을까? 

당시는 노예 해방(1861년)이 일어나기 불과 20여 년 전이었으므로 미 북부 지역은 이미 노예제가 많이 느슨한 상태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부 지역은 노예제도를 더욱 강하게 시행하고 있었다.  소설의 주 배경이 되는 메릴랜드는 북부와 남부의 중간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불안정하지만 간혹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 자유민들도 존재하는 곳이다.그만큼 자유를 위해 탈출을 감행하는 노예의 수도 많았다. 다나의 타임슬립은 이렇듯 경계가 불분명한 시공간으로의 일탈인 셈이다.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해러웨이식으로 말하자면

파악할 수 없는 중간 공간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특정한 행위자들의 특징이며 상황적 지식은 남성주의적, 인종차별주의적, 식민주의적 지배의 역사들 속에서 너무나도 무성하게 산출되었던 인종과 성이라는 낙인찍힌 범주들 속에 기록된 사람들을 위해 의식의 지도를 만드는 특별히 강력한 도구이다. 상황적 지식은 언제나 낙인 찍힌 지식이고, 남성주의적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역사 속에서 세계라는 이질적 몸을 세계화한 위대한 지도들의 다시-표시하기이자 다시-방향정하기이다.” (상황적 지식들)

 

식민주의시대, 인종차별과 백인 남성의 지배권력이 가장 팽배해 있던 그곳이야말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노예와 주인, 흑인과 백인, 남성과 여성, 자유와 종속 등의 이분법적인 세계를 넘어 다른 존재로의 이행이 가능한 것이다. 그곳에서의 다나의 고군분투는 마치  고치 속 애벌레의 투쟁과 같다. 애벌레가 자신의 몸을 녹여야 했듯이 다나도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야 했다.

"이 일탈로 근대의 흑인 여성 다나는 노예 상태가 되고 이 노예 상태에서 백인 주인이자 그녀의 조상 루퍼스와 관련된 그녀의 행동들은 그녀 자신의 탄생 가능성을 결정한다."(사이보그 선언문)

 

두 번째 질문은 '루퍼스와 다나, 엘리스와 다나. 그리고 루퍼스와 엘리스, 이들의 관계는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가'였다. 그들은 KINDERD다. 루퍼스와 엘리스는 다나의 조상이다. 그리고 이들은 애증으로 얽혀있다. 특히 엘리스와 다나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서로에게 독설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그 만큼 깊이 의지하고 있다. 엘리스는 흑인이지만 노예가 아닌 자유민이다. 다나는 백인에게는 백인 같은 흑인이며, 흑인들에겐 흑인 같지 않은 흑인이다. 둘은 모두 균열된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민인 흑인과 미래에서 온 다나 그녀들은 모두 이 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징글징글한 애증으로 얽힌 루퍼스, 아버지의 폭력을 답습하면서 금지된 다른 인종을 사랑하는 백인 남성인 그는 권력을 손에 쥔 자이지만 다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아웃사이더이며  역시나 그녀의 일부이기도 한  KINDRED이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문』 말미에서 ‘유색인 여성’을 사이보그 정체성의 한 형태로 제시하며 사이보그 정체성은 또한 ‘아웃사이더’ 정체성들을 융합하여 합성되는 강력한 주체성이라고 소개한다. 흑인이자 여성인 그녀는 아웃사이더의 정체성이 합성된 사이보그인 셈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

“타자가 되는 것은 다양해지는 것,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너덜너덜해지는 것,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사이보그 선언문)

 그러나 이런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것은 두려움과 공포와 대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행동하기를 멈출 수도 없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만 살 수 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불완전한 사이보그가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동안에는 한 쪽 팔을 떼어내는, 그리고 죽음을 댓가로 지불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야기...

'이야기'가 아니고서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SF가 아니고서... ...

이제야 해러웨이가 강조하고 강조하는 이야기, 글쓰기의 의미가 절실하게 와 닿는다. 

소설 『킨』은 유색 여성의 저작이다. 그리고 소설 속의 다나 역시 글을 쓰는 작가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또 이야기 속에서 다나는 흑인 아이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글을 가르친다.

이야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는 다나의 구체적 행동이다. 

 "읽고 쓰는 능력은, 글쓰기와 글읽기를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역사를 거치며 미국의 흑인 남자들뿐 아니라 흑인 여자들이 습득한 유색 여성들의 특수한 낙인이다. 글쓰기는 모든 식민화 된 집단들에게 특수한 중요성을 갖는다."

"사이보그의 글쓰기는 그들을 타자로 낙인 찍은 세계에 낙인을 찍기 위해 도구들을 탈취하는데 기초를 둔 생존 권력을 다룬다."

(사이보그 선언문)

 

아! 세상에 쉬운 건 없고나~~~~

 

댓글 4
  • 2021-04-18 06:58

    옥타비아 버틀러의 SF 소설을 읽어도 해러웨이를 통과해야하는  책읽기의 곤란함이 읽히는 후기네요^^

    애쓰셨습니다~~~ 

    세미나에서 소설의 인물들이 행동을 통해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체현 되는 과정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해러웨이 마지막 시간에 읽었던 <상황적 인식>과 관련하여 물질-기호/ 체현 등의 키워드와 소설을 연결시켜서

    좀 더 풍부하게 해석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 2021-04-18 11:12

    아! 너무 정리 잘 하셨네요~ 읽을 때는 쉽게 읽었는데, 역시 해러웨이와의 연결은 조금 어려운 거 같아요ㅠ

    하지만 느티쌤의 정리 덕분에 그날 이야기 했던 논제들이 타다닥 정리가 됩니다.

    다나가 파악할 수 없는 중간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남네요. 이것과 저것의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된거 같아요. 상황적 지식을 다시 읽어보고 싶지만.. 될까..요?? ㅎㅎㅎㅎ

  • 2021-04-18 21:13

    와~ 해러웨이의 언어로 잘 정리된 후기입니다.^^

    <킨>. 술술 읽힐 때는 좋았는데, 막상 '나'를 통과한 해러웨이의 언어로 메모를 쓰려니... 막막했습니다. 해러웨이의 언어만으로도 어려웠는데, '나'를 통과시켜놓고 보니 그 언어는, 나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방언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럴 땐 공부가 답이겠지요.ㅎㅎ 후기 정리하느라 고생많으셨어요. 

  • 2021-04-20 19:00

    해러웨이 글과 교차해서 읽어 보니 좋네요.

    그리고 마지막 글쓰기 부분은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이라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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