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와 애도가능성(묘선주)

문탁
2023-07-2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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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평등을 위한 토대로서의 애도가치

 

묘선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벌써 200일째입니다. 아직 아무런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4월 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수원역 대합실에서 외쳤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 학교 가는 학생들.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람들. 퇴근하는 사람들이 한데 얽힌 수원역 대합실은 분주함 자체였다. 그 분주함 속에서 오가는 낯선 사람들과 1~2초 정도의 짧은 눈맞춤을 희망했다. 우리의 외침에 아주 잠시라도 귀 기울여 주기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의 외침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를 피해 빙 돌아가는 사람들, 핸드폰에 시선을 묶어둔 사람들, 가던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 속에 희생자들과 연령대가 비슷한 청년들을 향해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들 역시 나의 눈빛에 냉대함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그 냉대함은 마치 ‘나랑 무슨 상관이죠!’라는 듯 차가웠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무관심의 구조적 수준이 ‘평범함 banality’에 젖어” 이미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소중한 생명(사라진다면 애도 될 생명)이 따로 있고 하찮은 생명이 따로 있다는 그로테스크한 차별을 만들어 내는 인종 도식”(「비폭력의 힘」, p.24) 안에서, 오직 나의 ‘자기’만 ‘자기’로 인정되는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불평등한 애도가치의 분배

 

“우리 회사에는 챗대리가 있어요.”라며 IT회사를 다니는 분께서 ‘챗GPT’ 기술을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말해준 적이 있다. 영화 속에서 보던 AI 기술이 이미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엄청난 기술의 발달을 이루었다. 의학의 발달 또한 인간수명 100세를 넘어 120세를 이야기하고 있는 시대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여기저기서 목도하고 있다. 예전과 하나도 다름없이 말이다.

 

느닷없는 죽음은 어떤 이에게는 나의 ‘자기’의 일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전혀 상관없고, 관심 없는 ‘자기’의 일이 된다. 10.29 이태원 참사 역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느닷없이 닥친 죽음이었다. 그 죽음은 전쟁도, 재해도, 질병도, 노화도, 빈곤도, 난민화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헌법 제10조를 깡그리 생략했다. 유가족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이름 없는 위패’, ‘영정사진 없는 분향소’, ‘글자 없는 검은 리본 패용’을 공무원들에게 행동강령으로 지시하며, 그들의 죽음에 ‘애도가치 없음’을 낙인찍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회적․경제적 지원체계 탓에 남들보다 더 많이 고통받으며 상해, 폭력, 그리고 죽음에 더 많이 노출되는, 정치적인 문제로 초래”(「연대하는 신체와 거리의 정치」, p.51)된 상태로 애도가치마저 차별적으로 할당된 불안정한 상태라고 우리는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그와는 반대로 며칠 전 인터넷뉴스에 경기도 모 시의원의 부고가 커다란 사진과 함께 실렸었다. 나의 인터넷 서핑에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연관 링크로 연결되어 무심결에 그 시의원의 활짝 웃는 영정사진과 부고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나와는 일면식도 전혀 없는 그 누군가였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죽음과는 대조되는 충분한 애도가치를 부여받은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불안정성은 불공평하게 할당되고 있으며, 아울러 모두의 삶이 동등하게 애도 가능하거나 동등하게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연대하는신체와 거리의 정치」, p.141)

 

“누구의 생명이냐에 따라 애도가치가 달리 매겨지는 조건하에 있다는 말은 평등의 조건이 충족될 수 없다는 뜻이다.”(「비폭력의 힘」, p.80)

 

 

 

 

 

 

 

애도가치란 생명(존재)의 인정임을

 

4.16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를 통해 “생명가치와 애도가치를 불균형적으로 부여하는 식의 불평등이 일반화”되어 있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버틀러가 말하는 애도가치란 무엇일까. 10.29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대응이 지금과 정반대의 방식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사고 불안에 대한 국민의 신고에 적극 대응한다. 사고를 참사로 인정한다. 유가족 대책위를 빠르게 구성한다. 위패와 영정사진을 마련한 상식적인 분향소를 설치한다.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에 착수한다. 책임을 규명한다. 책임자는 사과한다.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용한 특별법을 제정한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야말로 “생명을 추모하기․보살피기․인정하기․지켜내기”(「비폭력의 힘」, p.153)를 통한 애도가치 인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생명이 폭력과 파괴를 금하는 명령을 적용받는 생명, 폭력으로 망가지지 않게 보살펴야 하는 생명”, “그 생명의 멸실이 손실로 개념화”될 때 그 생명에 애도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애도가치를 통해 “인간으로 인정받는 인간, 가치 있는 인간”이 된다고 버틀러는 말하고 있다.

 

또한 버틀러는 비폭력 실천으로 생명 지키기에 대한 철저한 평등주의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애도가치를 언급한다. “애도가치는 생명들의 관리방식을 좌우하는 기준이며, 실제로 생명정치의 불가결한 차원이자 생명 있는 존재들의 평등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도 없어서는 안 될 차원이다.” (「비폭력의 힘」, p.78~79)

 

즉, 애도가치는 ‘죽음’에 초점을 둔 것 같으나, 실은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평등으로써의 생명가치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우리는 더욱더 그들의 죽음을 “용인될 수 없는 손실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충격과 격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비폭력의 힘」, p.139)로 받아들임으로써 애도가치를 지닌 생명이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애도가치의 회복은 어떻게

 

얼마 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하얀 상복을 입은 채 용산구청 앞에서 울부짖었다.

“나 먹을 것 안 먹고 새끼들 예쁘게 키워서 사회에 내보냈다. 그렇게 키워낸 자식을 국가가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참사 이후로 우리는 창살 없는 감옥을 살고 있다.”며 참사의 명백한 책임을 져야 할 용산구청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날이었다. 참사 200일을 훌쩍 넘긴 지금도, 왜 이들은 거리에서 울어야만 하는가. 버틀러는 “죽음의 전말과 누가 책임자인지를 포함하는 이야기를 확정할 수 있는 법과학적 증거를 내놓으라는 요구”(「비폭력의 힘」, p.99)를 애도시위라고 했다.

 

“스러져서는 안 될 생명이 스러졌다는 주장, 그 생명이 애도받아야 한다는 주장, 그 생명의 애도가치가 일찍이 인정되었다면 그 생명이 그렇게 스러지지 않았으리라는 주장”(「비폭력의 힘」, p.99)을 하기 위해 유가족들은 애도와 함께 시위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며, 그들이 아직 거리에 있는 까닭이다.

 

“폭력 사망에서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애도는 불가능하다. 죽음이 발생했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어떻게 발생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니, 손실의 온전한 인지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죽은 생명의 애도가치는 인정받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비폭력의 힘」, p.100)

 

진상규명만이 손실되어 버린 그들의 죽음을 다시 애도가치를 인정받는 생명으로, 우리 곁에 함께 존재했던 생명으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회복 방법이며, 해결 방안이 된다.

 

 

나의 애도가치는 인정받고 있는가

 

“선생님은 공감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159km 릴레이 시민행진 때 눈물을 훌쩍이던 나를 보고, 함께 참석한 동료 직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그 말에 나는 별 대꾸를 하지 못하고 살짝 웃어 보였을 뿐이다. 공감 능력으로 내가 참여하고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나는 왜 참여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를 본체만체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을 향해 나는 왜 깊은 아쉬움을 갖는가.... 그날 걷는 내내 내겐 물음이 많아졌다.

 

다행(더 좋은 단어가 있으면 좋겠는데….)스럽게도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는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 참여 시간이 허락된다. 아니 오히려 연대활동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니 나는 기꺼이 참여만 하면 된다. 물론 참여를 위해 업무처리는 신속 정확하게 전날 끝내 나야 한다.

 

시민행진 내내 나의 물음은 ‘연대’와 ‘참여’에 대한 확신 없음이었고, ‘공감능력’을 운운한 동료 직원에 대한 명징한 답변 찾기였다. 이 물음에 주디스 버틀러는 책 「비폭력의 힘」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비폭력이 ‘당신에게는 애도가치가 있다, 당신의 죽음은 감당 불가능한 손실이다, 나는 당신이 살아주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살고 싶어 하기를 바란다, 부디 나의 소망을 당신의 소망으로 삼아주기를, 당신의 소망은 이미 나의 소망’이 되었으니깐”. (「비폭력의 힘」, p.255)

 

주디스 버틀러의 소망으로 나는 애도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나의 소망으로 그들의 애도가치를 인정하고자 참여하고 슬퍼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또한 버틀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럴 뿐이다. “노력 중....”

 

그러니 나의 공감 능력의 탁월함을 칭찬(?)한 동료 직원에게 늦은 답을 말하고 싶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고, 나의 가시적 영역 참여 활동은 모두를 애도받을 생명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음을, 자기 생활을 영위할 자격이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으로써, 모두의 애도가치 있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활동’이 된다고 말이다.

 

버틀러도 이러한 이어짐에 대해 이야기하며 책 「비폭력의 힘」을 마무리하고 있다.

 

“우리가 그 이어짐을 살아낼 수 있기를, 살아 있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죽은 이들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기를 (......) 슬픔과 울분의 한복판에서 생존을 입증/시위할 수 있기를”(「비폭력의 힘」,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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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마더, 해피님   4년째 도시락 싸기가 가능해?      점심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낸다. 아침에 지은 잡곡밥에 3첩 반상을 먹고 참외로 입가심을 한다. 완벽한 점심식사다. 코로나 이후 유지하고 있는 루틴이다. 사먹는 밥은 소화가 잘 되질 않아서 코로나 유행이 지나간 지금도 계속 도시락을 싼다. 오늘은 유독 고추장아찌가 맛있다. 이 고추장아찌는 집에서 손수 양념을 무쳐 만든 것이다. 당연히 주 5일 근무를 하는 음식 솜씨 없는 임수는 만들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반찬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 집 업무 분장(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3회 참고)을 잠시 복습해보자면 음식 만들거나 반찬 정리, 냉장고 관리는 임수 담당이다. 어쩌다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화는 요리를 잘 못한다. 아니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청소를 잘한다. 그렇다면 누가 고추장아찌를 만들었을까? 4년 가까이 도시락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정화 어머니덕분이다.   < 4년 가까이 싸가는 도시락, 3첩반상과 과일 후식 >      음식 담당을 맡고 있지만 임수의 요리 실력은 늘지 않고 있다. 바쁜 주중 저녁에는 시간 상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 먹거나, 외식을 한다. 정임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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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2023.07.31 | 조회 382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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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2023.07.26 | 조회 414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흡혈귀가 나타났다!     낮은 자세   "내일 아침돌봄 때 잔디 배 안쪽 상처를 가볍게 소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태가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전날 올라온 무모 님의 지시 사항을 읽으며 아침 돌봄을 갔다. '상처를 소독하려면 잔디가 잘 누워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이생추어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잔디는 활기가 넘쳤고 돌봄이 끝날 때까지 드러누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봄 기운이 넘실대는 5월이었다. 잔디는 여기 저기 올라오는 풀을 뜯거나 부드러운 흙을 코로 탐색하며 봄내음을 맡느라 분주했다.   잔디가 눕지 않으니, 내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잔디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잔디가 멈추는 순간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납짝 엎드려 배에 소독약을 뿌렸다. 잔디는 자신이 내키지 않을 때 자기 몸을 누가 만지거나 몸에 차가운 액체를 뿌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럴 때 잔디는 몸을 부르르 떨고 꾸웅 꾸웅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중에 어딜 만지거나 약을 바르려고 하면 코로 음식을 마구 헤집고 그릇을 퍽퍽 친다. 그러다 밥그릇이 엎어져 음식을 전부 쏟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하잖아? 밥 먹을 때 누구라도 건드리면 짜증나잖아?) 어쨌든 전달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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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3.07.22 | 조회 360
인문약방 에세이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문탁
2023.07.20 | 조회 249
인문약방 에세이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문탁
2023.07.20 | 조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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