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현민
2023-07-17 09:06
444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사진에서 누굴까요.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종종 외국에 나와 사는 여자애들을 보면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다. 정처 없는 느낌. 집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떠도는 사람들의 정처 없음을 그들과 나로부터 느낀다.

 가족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나와 친구들의 화두였다. 우리는 만나면 처음엔 웃긴 얘기나 좀 하다가 결국 가족사로 가서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할 것 같은 얼굴들로 끝냈다. 자신의 상처를 바탕삼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의 원가족은 집이었는데,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아니었다. 가족 이야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기괴해서 웃겼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처량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왜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에는 자기 탓을 하기가 가장 쉬웠다. 이제는 그때처럼 가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지겹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핸드폰 녹음기에서 한 시간짜리 녹음 기록을 발견했다. 작년 베를린에서 모였던, 아무도 한국에서 살지 않는 친구들과의 대화였다. 우리는 대안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그 대화는 조금 현실적인 느낌으로 끝났다. 원가족에 대한 결핍을 대안가족으로부터 메꿀 수는 없을 거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안정과 현재의 혼란과 과거의 결핍은 그대로, 서로 뒤섞이지 않고 영원히 너와 함께 살 거야. 어쩌면 살아가면서 그것을 잘 조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처 없는 아이들은 필연처럼 비슷한 장소에서 모인다. 예를 들면 퀴어 페스티벌이라던가. 다르게 말하자면, 정상세계에서 이상함을 감지하는 아이들은 이상한 것이 주류가 되는 날에 모인다. 6월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였다. 내가 사는 뮌헨에서는 6월 24일에 CSD 행사를 했다. CSD는 Christopher Street Day의 약자로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지역의 퀴어 페스티벌 명칭이다.

우연히 이 날짜에 맞춰 튀빙엔에 사는 지해, 쾰른에 사는 성은이 뮌헨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서울 퀴어 페스티벌이 가장 크지만, 독일에서는 6월과 7월에 걸쳐 거의 모든 도시에서 CSD 행사를 한다. 당일 아침 우리는 룸메이트들에게 CSD에 가는지 물으며 간다고 하면 가서 만나자고, 안 간다고 하면 왜 안가냐고(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독일에는 16개 주가 있다.

그 중 뮌헨이 속한 바이에른 주의 지역별 CSD 행사 날짜표

예를 들면 경기도에서만 25개의 지역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있는 것이다. 와웅

 

점심을 넉넉히 먹고, 선크림도 두 번씩 바르고, 서로의 머리를 땋아준 뒤 집을 나섰다. 퍼레이드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끝나는지는 알았지만, 그 시간에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타고 가던 트램이 고장 나 내렸는데 저 멀리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 엄청난 사람들의 색깔과 몸짓, 노래로 저곳이 우리의 목적지라는 걸 알아차렸다. 순식간에 가슴이 벅찼고 발이 가벼워졌다. 우리 셋은 폴짝폴짝 뛰면서 신호등을 건너 무리에 들어갔다. 야하게 입었을까봐 나시 위에 마지막 자기검열로 걸친 겉옷을 스르륵 벗었다. 그들과 만난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리를 걸을 때 아시안이라 익숙히 받는 시선을 느낄 수 없었고, 옷과 화장이 너무 튈까봐 걱정하지 않았고, 더 꾸미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과 외국인과 동양인 여자애가 아니었다. 그냥 나는 거기 있었다.

 퀴어의 상징인 무지개가 내 몸에 없다는 게 아쉬워지자마자, 한 사람이 무지개 스티커를 길거리에 서 있는 경찰에게 붙여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만 줄 수 있어? 물으니 그는 나에게 한 뭉치를 주었다. 곧장 가슴팍에, 왼쪽 뺨에, 매고 있는 가방에 붙이고 지해와 성은에게도 붙여주었다.

 

 

퍼레이드는 엄청나게 길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 어디에 있었을까? 이러다간 진짜 세상이 바뀌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싸우지 않고, 책을 만들지 않고, 설득하지 않아도 이 흐름과 기세로 세상이 바뀌어버릴 수도 있다고. 물론 그것은 누군가들이 무수히 해왔고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겉모습이 특이하면 특이할수록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덥썩 안기고, 아무에게나 말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어디까지가 우리, 퀴어와 앨라이(Alley, 지지자)들이며 어디서부터가 그들, 우연히 길에 있던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멈춰 이 행진을 구경하고 있었고 아무도 화나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는 고함을 지르거나 북을 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미워하는 이들이 없었다. 최근 서울 퀴어퍼레이드 개최가 서울 시청으로부터 거부된 것과 매번 퀴퍼에 갈 때마다 입구에서 고성방가로 우리를 위협하는 혐오세력을 웃어넘겨야 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네가 이곳에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도 너를 위협할 수 없어. 네가 남들과 다르게 때문에 차별받을 일은 없어. 이 간단하고 마땅한 말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다양성이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궁금해 왔다. 그건 혼란이나 공포가 아니었고, 부드럽고 편했으며 달고 벅찼다. 언젠가 이런 것에 유난하게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걸으며 생각했다.

 

 

퍼레이드가 끝나는 기점에서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의 팻말을 읽었다.

Equality is not like cake. If someone get’s it. you don't get less.

평등함은 다른 사람이 가지면 네가 적게 얻는 케이크 같은 것이 아니다.

Not same but equal.

똑같은 게 아니라 평등함.

Never apologize for who you are.

네가 누구인지에 대해 절대 미안해하지 마.

Max-Planck-Gymnasium

막스 플란크 김나지움

 

 

김나지움은 독일에서 4학년부터 12학년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다. 내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속해있을 때 퀴어 퍼레이드에 학교 깃발을 들고 갔다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해졌을까 싶다. 내가 만난 어떤 어른들은 정말, 그저 차별주의자들에 가까웠다. 다른 건 모두 되는데 퀴어와 페미니즘, 장애, 동물권, 정신병 등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떠나온 시대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왜 어떤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나 가장 나중에 도착할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은 차별과 혐오가 그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뿐인 줄 안다. 하지만 침묵이나 중립 혹은 그들의 한마디도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유해했다. 지나온 과거에 대해 날 선 질문들이 드는 반면에 지금은 그런 것에 힘을 쏟고 싶지 않다. 이미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정말로 괴롭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내 옆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말해주고 싶다. Never apologize for who you are. 절대 사과하지 마. 네 존재에 대해서. 네가 너인 것에 대해서 절대 미안해하지 마.

 

퍼레이드 중

 

퍼레이드가 끝나고 오후 2시부터 밤 12시까지 뮌헨 시청 앞에 설치된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공연이 이어졌다. 무대 위에는 성별을 예측할 수 없거나 아니면 너무 예측할 수 있거나, 금기된 말들을 장난처럼 노래하는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대체로 웃겼고, 맨 가슴을 흔들었고, 무대 위에서 서로 입을 맞췄고, 노래가 끝나면 엉덩이로 인사를 했다. 무대 한 켠에는 늘 열정적인 수화 통역사가 있었다. 종종 더우면 무리에서 나가 부스를 한바퀴 돌았다. 그 후에는 내 손에 무지개 팔찌와 깃발, 부채와 선캡, 비눗방울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음란 축제라고 부르는 곳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꼈다. 관광객이 365일 붐비는 뮌헨 시청 앞 무대 위의 저 가수가 젖꼭지를 드러내도 괜찮고, 괜찮아야만 하는 일이 나의 생존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는 밤 12시 이후에는 시청 안에서 뒷풀이 파티를 한다고 했다. 시청에서의 퀴어 파티라니 굉장히 구미가 당겼지만, 밤에는 우리 집에서도 파티가 있었기에 9시쯤 돌아갔다.

 

메인 스테이지 위 공연

가슴에 X자로 밴드만 붙이고 나왔는데 그마저도 공연 중에 뗐다.

 

퀴어 페스티벌에 왔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퀴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은 퀴어 정체성 만을 가진 이들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나여서 슬펐거나, 종종 싫었거나, 어떨 땐 내가 나인 걸 미안해 본 기억을 가진 몸들. 쫓겨났거나, 탈출했거나, 싸워봤거나, 그러다가 포기해봤거나, 결핍을 채워보려고 사랑을 갈구했거나, 상처가 커서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거나 그런 역사를 가진 몸들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프라이드가 필요해서, 프라이드를 외쳐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 공간에 오게된 이들은 각자의 상처를 발판삼아 서로를  존중한다. 궁극의 고난이 만들어내는 유머와 노래와 춤과 이야기는 차원이 다르게 아름다운 법이다. 이것이 어떤 미래가 될지 아무도 모르고 우리가 과거보다 정녕 낫기는 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겠지만, 나의 몸은 자꾸 그쪽으로 기운다. 

 

 

 

셰어 하우스 파티를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날 했다.

파티 테마는 Gay crop top이었고

현관문 앞에 입장 규칙이 써져 있다.

 

댓글 6
  • 2023-07-17 11:37

    특이할수록 나를 해치지 않을 거란 느낌!! 왠지 알 것 같네.

  • 2023-07-17 18:47

    사실 전 퀴어퍼레이드에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썼는데.. 갑자기 옛날 기억이 불쑥 떠올랐어요.
    20년도 전에 토론토에서 퀴어퍼레이드를 참관한 적이 있군요. 그냥 화려하고 신나고 멋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우리나라에는 아직 퀴어퍼레이드가 없었던 때라 굳이 찾아가서 내심 그들의 자유를 부러워하며 구경꾼으로 보고 왔었군요.
    구경꾼이었으니.. 참여는 아닌 게 맞군요!ㅎ
    현민의 글을 읽으며 퀴어한 공간과 시간이 취약하고 상처입은 개인들을 치유하는 느낌을 조금은 알 것만 같아요.
    내년에는 퀴퍼에 꼭 가서 그 느낌 저도 느껴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안심하고 나를 드러내도 되는 작은 해방구들을 우리 함께 여기저기에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 2023-07-17 19:18

    저도 서울시청 앞에서 퀴퍼 구경만 한번 하고 직접 참여해본 적은 없는데 꼭 가고 싶네요
    무지개 스티커 뺨에 붙인 현민의 신나는 얼굴이 참 좋아요
    글은 항상 좋구요~^^

  • 2023-07-17 19:37

    저도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이번에 튀빙겐 퀴퍼에 처음 참석해봤어요. 한국 퀴퍼와 달리 평온하고 혐오세력 없는 퍼레이드가 낯설었던 것, 평온하게 그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자유와 해방감-에 공감돼요. 마지막 문단이 너무 와닿고요! 이렇게 현민님 글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7-18 07:47

    "각자의 상처를 발판삼아 서로를 존중한다" 좋아요~~^^

    • 2023-07-18 08:19

      찌찌뽕! 저도 이 문장이 콕! 독일의 문화가 부럽네요!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마더, 해피님   4년째 도시락 싸기가 가능해?      점심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낸다. 아침에 지은 잡곡밥에 3첩 반상을 먹고 참외로 입가심을 한다. 완벽한 점심식사다. 코로나 이후 유지하고 있는 루틴이다. 사먹는 밥은 소화가 잘 되질 않아서 코로나 유행이 지나간 지금도 계속 도시락을 싼다. 오늘은 유독 고추장아찌가 맛있다. 이 고추장아찌는 집에서 손수 양념을 무쳐 만든 것이다. 당연히 주 5일 근무를 하는 음식 솜씨 없는 임수는 만들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반찬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 집 업무 분장(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3회 참고)을 잠시 복습해보자면 음식 만들거나 반찬 정리, 냉장고 관리는 임수 담당이다. 어쩌다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화는 요리를 잘 못한다. 아니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청소를 잘한다. 그렇다면 누가 고추장아찌를 만들었을까? 4년 가까이 도시락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정화 어머니덕분이다.   < 4년 가까이 싸가는 도시락, 3첩반상과 과일 후식 >      음식 담당을 맡고 있지만 임수의 요리 실력은 늘지 않고 있다. 바쁜 주중 저녁에는 시간 상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 먹거나, 외식을 한다. 정임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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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2023.07.31 | 조회 382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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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2023.07.26 | 조회 415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흡혈귀가 나타났다!     낮은 자세   "내일 아침돌봄 때 잔디 배 안쪽 상처를 가볍게 소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태가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전날 올라온 무모 님의 지시 사항을 읽으며 아침 돌봄을 갔다. '상처를 소독하려면 잔디가 잘 누워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이생추어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잔디는 활기가 넘쳤고 돌봄이 끝날 때까지 드러누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봄 기운이 넘실대는 5월이었다. 잔디는 여기 저기 올라오는 풀을 뜯거나 부드러운 흙을 코로 탐색하며 봄내음을 맡느라 분주했다.   잔디가 눕지 않으니, 내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잔디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잔디가 멈추는 순간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납짝 엎드려 배에 소독약을 뿌렸다. 잔디는 자신이 내키지 않을 때 자기 몸을 누가 만지거나 몸에 차가운 액체를 뿌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럴 때 잔디는 몸을 부르르 떨고 꾸웅 꾸웅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중에 어딜 만지거나 약을 바르려고 하면 코로 음식을 마구 헤집고 그릇을 퍽퍽 친다. 그러다 밥그릇이 엎어져 음식을 전부 쏟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하잖아? 밥 먹을 때 누구라도 건드리면 짜증나잖아?) 어쨌든 전달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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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3.07.22 | 조회 360
인문약방 에세이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문탁
2023.07.20 | 조회 249
인문약방 에세이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문탁
2023.07.20 | 조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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