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손주 바보, '함미' '하부지' 들

가마솥
2023-07-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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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은 4대(代)가 산다. 나를 기준으로 장모님과 아들 부부 그리고 손자, 하빈이가 함께 살고 있다. 장모님은 하빈이에게 증조할머니가 된다. 한 지붕 아래 여러 세대가 살다보니 항상 북적북적하다. 하빈이의 행동반경이 커질수록 물건들은 제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온 집안 바닥에는 녀석의 물건이 발길에 채이기 일쑤다. 실컷 정리하고 청소했는데, 마눌님이 밖에서 들어오며 “청소 좀 하지.....” 할 때도 있다. 대청소하지 않으면, 내가 봐도 그 결과가 크게 표시가 나지 않는다.

 

    아침 6시.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마눌님이 부엌으로 내려간다. 조금 지나서 하빈이가 깨어 며느리와 놀며, 실랑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모닝 똥’을 처리하고, 세수를 시킨다. 부부가 출근 준비를 해야 하니 적당한 시간에 하빈이를 부른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해야지?“ 하는 며느리의 말에 녀석이 ’히~‘ 웃으며 머리를 꾸벅하고, 이내 팔을 벌려 내게로 온다. ”잘 잤어요?“ 번쩍 안아 준다. 오늘 하루를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시작한다.

 

 

 

한없이 이쁘지만......

 

   백일이 되기 전에도 나를 보며 잘 웃었다. 자기 기분의 표시이지, 나의 행동에 대한 반응은 아니었어도 기분은 묘하다. 핏줄인가? 자장가를 부르지만 눈만 말똥말똥하다가 나도 지치고 녀석도 지칠 때쯤, 눈꺼풀을 내렸다가 올렸다가 몇 번 하더니 제 몸을 온전히 내 품안에 맡기고 새근새근 잠잘 때 모습은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다. “남자 뼉다구가 딱딱해서 내 품에서는 잘 안자요. 애기 재우는 것은 당신이 재워 줘야죠!”로 시작해서 한바탕 말싸움을 했던 녀석의 아빠, 내 아들 어릴 적 사건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었다.

 

   돌이 지나니 이제 제법 의사표시를 한다. 우선 나를 보면 두 팔 벌려 안아 달라고 달려든다. 은퇴 후에 이렇게 나를 온몸으로 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이야기를 알아들으려는 듯 눈망울이 초롱초롱 할 때에는 분명히 천재가 태어난 듯하다. 물론 안 되는 일을 해달라고 땡깡을 피우기도 한다. 살짝 “이노옴~~”하면, ‘할아버지, 왜 그래요?’ 하듯이 빤히 쳐다보다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시무룩한다. 귀엽다. 내 아들도 이렇게 귀여운 때가 있었나? 가물가물하다. ‘있다, 없다’ 존재를 인식한 뒤로는 까꿍놀이를 제일 좋아한다. “할아버지 어디 있지?” 물으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글쎄, 막 돌 지난 녀석이 할아버지를 알아본다니까요.

 

 

 

 

 

 

 

 

 

 

 

 

 

 

 

 

 

 

 

 

 

 

               (잠자는 내 손자)                                                                                            ( 손자의 아빠, 내 아들)

 

    마눌님은 표정부터가 다르다. 녀석을 물며 빨며 난리 부르스를 춘다. 몇 년 전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은 뒤로 삐끗하면 안 되는데, 녀석을 덥석 안고 허리를 뱅뱅 돌린다. 허리 아픈 사람 맞나? 사실, 나는 손주 육아에서 보조적인 역할이지 본령(本領)은 마눌님이다.

우리 집 아침은 다섯 가지다. 먼저 장모님의 아침이 한식(韓食)으로 차려진다. 밥, 국, 반찬이다. 다음으로 빵과 야채로 양식(洋食)인 며느리 밥상, 나는 당뇨관리로 찐 야채에 요구르트로 초식(草食)이다. 체중을 빼야 하는 아들놈과 마눌님은 선식(禪食)이다. 온 식구들을 챙기느라 요즘 들어 비쩍(?) 말라가는 마눌님은 왜 선식인지 모르겠다. 뱃살이 잡힌다나 어쩐다나. 자기도 무언가를 먹겠다고 아우성치는 하빈이는 새벽에 먹은 우유가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이유식(離乳食)을 먹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여섯 식구는 모두 각기 다른 아침을 먹는다. 그 아침상을 늘 마눌님이 차린다.

 

    녀석의 몸무게가 늘었다. 제법 무겁다. 팔꿈치가 아프다. ‘골프 엘보우’란다. 마눌님은 골프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하지만, 병명이 그렇지 꼭 골프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나도 살짝 허리가 무지근할 때가 있다. 자세를 신경 쓰지만, 지 맘대로 움직이는 아이니까 무리한 자세가 될 때가 종종 있다. 녀석이 자박 자박 걸음마를 시작해서 걸을 수도 있으련만, 나만 보면 팔을 벌린다. 어이구야...... 녀석의 요구를 내치지 못한다.

 

육아풍경이 달라졌다.

 

    녀석이 다행히 어린이집 선생님을 좋아한다. 하지만, 선생님 품에 안기면서도 내게로 오겠다고 찡찡 거린다. “할아버지한테 인사하고, 빠이빠이 해야지?” 녀석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손을 들어 ‘빠이빠이’를 하면서도 운다. 30여 년 전 어린이집 앞에서 들어가기 싫다며 울던, 내 아들과 ‘빠이빠이’하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아직도 돌아서는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내치지 못하는 것은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아이 침대를 샀지만, 혼자 자다가 울면 다독거려 줄 수 없다며 녀석을 엄마 침대에서 재운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 아빠는 소파에서 잠을 자는 신세가 되었다.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들어간 날, 딱 한번 녀석을 침대에 혼자 재우다가 “쿵!”하는 소리가 1층에까지 들린 뒤로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운다. 며느리는 자다가 화장실을 가려면 침대 앞에 아빠를 불침번 세운다.

 

    우리 집은 포대기가 없다. 아이를 앞으로 안는 멜빵만 있다. 허리가 아플 뿐 만 아니라, 녀석을 안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그러니, 며느리는 아이와 꼼짝없이 24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아이와 관련된 빨래, 식기세척 등은 우리가 도와 주어도, 며느리는 다크써클을 달고 산다. 눈치를 봐가며, 적당한 시점에 “하빈이를 내가 볼까?”하며 방에 들어가면, 한번도 “아니예요.” 하지 않고 아이를 건네준다. 뭐랄까. 전전긍긍하며 힘들게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이 든다.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집들은 어떻게 하나?

 

 

 

 

 

 

 

 

 

 

           ( 지금의 마눌님)                                                                                                       (30년전 마눌님)

 

    나처럼 직접 돌보는 것 같지 않은데, 혼자 손주를 돌보는 것처럼 말하는 할아버지들이 있다. A는 일찍부터 미국에 아이들을 유학 보내서 그곳에서 딸아이가 손녀를 낳았다. 미국의 육아환경도 우리네처럼 만만치 않은가 보다. 직업이 있는 딸이 아이 돌보는 사람을 한국 사람으로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단다, 친구는 일 년에 서너 달은 손녀를 돌보러 미국에 간다. 딸의 SOS에 응답하는 것이다. B는 손녀를 우리 집처럼 자기 집에서 돌본다. 근처 아파트에 살던 딸네 식구가 아예 집으로 들어 왔다. 아이 돌보는 사람이 집으로 오니 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은 행동인데, 기회만 되면 손녀 자랑이다. 벌금으로 제어하였지만, 소용이 없다. C는 나처럼 아들이 손자를 낳았다. 최근까지 90 노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친구여서 그런지, 가족에 관해서 조선시대 양반님네 같은 생각을 한다. 자기 집에 들어와 살거나, 최소한 주말에는 집으로 올 것을 아이들에게 요구한 모양이다. 며느리가 펄쩍 뛰며 친정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여 육아 지원을 받겠다고 하였다며, 말도 안 된다고 섭섭해서 난리를 친다. 친구들 모두 네놈의 요구가 말도 안 된다고 간신히 말렸다. 그 뒤로도 아이를 보러 아들집(며느리집!)에 가야 한다는 둥, 그것도 시간을 허락(!)받아야 한다는 둥 투덜대기 일쑤다. 손주와 함께 살아 보지 않아서 며느리의 결정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친정부모에게 육아 돌봄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모계중심 육아라고나 할까? 산모 입장에서 편해서 그런 듯하다. 하기야 대가족 시대에 시댁에 들어가 살았던 때에나 어쩔 수 없이 시댁에서 아이를 키웠지, 핵가족 시대에 굳이 시댁을 찾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어쨌든 요즘 젊은 부부들은 부모의 지원을 꼭 필요로 하고, 늙은 부모들은 가능한 지원한다.

 

라떼는 말이야......

 

    ‘라떼’이야기를 좀 하자. 우리는 부모가 돌봐주시면 감사하지만,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육아 휴직도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아서, 마눌님은 회사에서 노조를 만들어 겨우 2개월의 출산휴가를 받았다. 화장실에서 젖병에 담은 모유를 집에 와서 먹이는 상황이었다. 어린이집은 나이 어린 유아는 받아 주지도 않았지만, 돌봐주는 시간이 길어봐야 회사 근무시간과 같은 '9 to 6'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나서 출근하고, 퇴근하여 데려올 수 없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마당 있는 집을 구하고 선생님 뽑고 돌봄의 방식도 우리가 정했다. 시간을 쪼개서 어린이 집 관련한 회의에, 시설 보수에, 야외 놀이에 함께 하였다. 육아문제를 내 개인만의 해결보다는 동네로, 사회로 연결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돌이켜 보면, 공동육아는 아이 돌봄 뿐만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였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육아문제를 공적영역보다는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아이들은 딸랑 책 한권, ‘임신 출산 육아 365(?)‘ 뿐이었다. 그래도, 한 아파트에서 놀이터에만 나가도 여기 저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과 이야기하며 부족한 정보를 채웠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SNS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 것으로 보인다. 육아 관련 정보가 많고 접근성이 쉽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한데, 인터넷의 TMI 정보는 불안을 야기시키곤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출산율 때문이다. 더욱이 젊은 부부만 사는, 고립된 육아에서는 더욱 그럴 수 있다. 비용도 많이 든다.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니 육아 관련 상품은 예쁘고 고급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매우 비싸다. 또 폐원하는 어린이집이 많아서 선택지가 좁다. 내부를 들여다 보면, 연령별 아이들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분반 편성이 불균형적인 곳이 많다. 예를 들면, 1년 미만의 영아반은 아이 숫자가 부족해서 없애야 하고, 5~6세 반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면 1년 미만 영아의 부모는 아이를 보낼 곳이 없다. 공공 어린이집은 입원순서를 기다리다가 아이가 어른이 될 지도......

 

동네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한다.

 

   돌봄제도가 잘 되어있는 북유럽 국가 중, 덴마크를 보자. 육아휴직제도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당되고, 아이를 임신한 여성은 출산 4주전부터 휴가를 가질 수 있다. 아이를 입양해도 똑같이 적용된다. 출산일로부터 14주간은 출산휴가기간이며, 아빠들은 아내의 출산휴가기간에 2주동안 휴가를 가지며 출산과 몸조리를 돕는다. 엄마의 출산휴가가 끝나면 32주의 육아휴직기간이 돌아온다. 아내와 남편이 나눠 쓸 수 있다. 총 52주의 출산 및 육아 휴가 기간을 모두 사용한다. 직장에서 눈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덴마크 부부도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기고 일하러 간다.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 못 보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자리는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 보장된다. 10살이면 학교에 다녀도 방과 후 돌봄 보육이 필요한 나이이다. 부모가 내는 돈은 이용료의 최대 25%로 제한된다. 나머지는 정부가 지원한다. 만약 부모가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기지 않고 따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고용하면, 정부는 그 돈도 대신 내준다. 육아책임이 국가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육아 1인당 1년간 지급하는 국가 예산, 한국은 예산분류가 안되어 빠졌고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은 꼴찌이다)

 

   아직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육아하기 힘든 상황인 우리 사회가 아쉽다. 30여 년 전, 성산동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어 동네가 나서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사회가 내 자식들 때에는 이런 육아 환경이 아니길’ 바랐다. 공동육아 운동은 공적영역에 몇 가지 영향을 주기는 했으나, 근본적인 ‘육아의 공적책임 운동’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물론, 출산율을 걱정하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매년 21조원 규모의 예산을 퍼부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결과가 말한다. 지난 해 합계 출산율은 0.78이다. 많은 법을 만들고 고치고 시행하였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를테면, 육아휴직 제도를 법적으로 아무리 잘 만들어 놓아도 현실적으로 잘 작동되지 않는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일수록 그 법률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 왜 그럴까? 많은 이유가 있고, 관련하여 많은 전문적인 대안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근본적인 질문과 사회적인 합의에 따른 의식의 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즉, 육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를 심도있게 물어야 한다. 지금처럼 가정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국가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노키즈존’이라며 없는 영어를 만들어 아이의 출입을 제한하는 음식점, 숙박업소 등의 장소를 보면 주인을 불러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육아 돌봄을 시장에 맡기니, 요즘 일반 유치원은 등원 아이 수가 적은 이유로 고비용 구조로 바뀐다. 죄다 영어 유치원으로 바꾸어 한 달에 수백만원씩을 요구한다. 부모의 형편에 따라 육아 돌봄이 계급화되는 현상까지 보인다.

   1991년에 제정된 영유아보육법을 보면, 제4조에 “모든 국민이 영·유아를 건전하게 보육할 책임이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로 되어 있다. 아직도 보육은 가정의 책임이고 국가는 지원하는 곳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이런 인식 수준에서는 법적인 육아휴직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거나, 모든 육아 돌봄에 대한 정부의 예산지급 같은 정책은 꿈도 못 꾼다.

 

어쩌다 4대는 지속될 수 있을까?

 

   은퇴 후에는 친구들과 운동하며 놀고, 마눌님과 문탁에서 책 보고, 악기도 하나 배우면서 짬짬이 시간 내어 여행 다니며 그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루하루 체력이 달라지니, 먼 곳부터 갔다 오라는 충고를 받아 들여서 북유럽 여행 티켓팅도 했었다. 팬데믹이 취소시켰지만 말이다. 나이듦에 따라 운동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는 충고를 받아 들여, 주말마다 즐기던 동네축구는 보는 것으로 대체하고 슬슬 걸어 다니고 있다. 은퇴 전에 계획한 여유작작한 생활은 온 데 간 데 없고, 지금 내 생활은 ‘백수가 과로사(過勞死)한다’는 말이 딱 맞게 요일 별로 하루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한다. 아이와 노모(老母)가 있는 여섯 식구를 돌보아야 하는 마눌님은 더하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산산 조각난 은퇴 전 계획은 이미 자초하고 있었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아들놈이 우리 집에 들어 온 것은 예정된 것이었다. 결혼 후, 바로 병역특례요원으로 중소기업에서 3년간 근무하여 병역의무를 해야 했다. 그것을 마치면 유학길에 오를 것이니, 간단한 살림으로 원룸을 빌려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이를 가지면 우리 집에 들어 와서 유학갈 때까지 아이를 키우기로 했던 것이다. 녀석이 들어와 사는 것은 임시적이고, 나도 은퇴를 하였으니 ‘아이 하나 돌보는 것쯤이야’ 하였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는 많은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로망이었고, 직장생활하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공동육아’로 경험한 터라서 ‘이렇게 4대가 함께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마눌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육아를 병행하느라 남몰래 눈물 꽤나 훔쳤다. 며느리가 회사에서 아이 때문에 조마조마하지 않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단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집의 경우에는 ‘어쩌다 4대’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듯하다.

 

    우선, 여섯 식구 중에 돌봄의 손이 필요한 사람이 두 사람이나 된다. 어린아이와 거의 구순 노모. 외부의 힘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식구 중 누군가는 자기 생활을 포기하고 돌봄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내가 손을 좀 보태기는 하지만, 주로 마눌님이 슈퍼우먼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 대가족처럼 식구들이 많아서 서로 돌아가며 돌봄 노동을 분담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수도 없다. 나도 마눌님도 갈수록 육체적인 능력은 점점 떨어질 테고, 이러다가 훌쩍 70대가 되면 은퇴 후 계획은 고사하고,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바쁠 것이다.

부모를 모시려고 하고, 손주 돌봄을 외면하지 못하는 조선의 마지막 ‘낀 세대‘가 베이비붐 세인인 우리들인 듯싶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된다는 생각도 든다. 단군 이래 우리 세대처럼 이 사회의 혜택을 받은 풍요로운 세대가 있을까? 하지만, 지속할 수는 없다. 우리도 나이듦의 한숨 속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 부모의 돌봄은 우리가 책임을 지고, 아이들의 육아 책임은 1차적으로 그들 부모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하빈이에게  '메롱'을 가르쳤다! 흐흐흐)                                                              (30년전, 젊은 아빠. ㅎㅎㅎ)

 

   내 딸 아들은 녀석들의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던 딸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존경하며 지금도 그리워한다. 우리는 주말마다 항상 가까운 처갓집에 들렀었다. 항상 두 팔 벌려 반겨 주셨고, 당신이 손주들과 함께 나눈 시간들은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가까운 친근감을 주었고, 당신의 너그러움과 지혜는 손주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남아 있다. “할아버지보다도 말이 안 통해!“ 사춘기 내 딸이 나와 말다툼하다가 내뱉은 말이다. 공부하기 싫어했던 아들 놈을 걱정하는 나에게도 “괜찮다.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이다”고 하셨던 분이다. 나도 나의 손주들에게 그런 할아버지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장인 어른과 손녀, 한슬)                                                                                                 (장인 어른과 손자, 경섭)

 

   녀석들이 내년에 가까운 곳으로 나가서 살아 보겠다고 한다. 눈 뜨면 아침이 차려있고 퇴근하면 저녁이 차려 있는, 지금처럼 여유있는 생활은 분명 아닐 것이다. ‘어떻게 살려고?’하는 걱정도 들지만, ‘그렇게 살아 보기도 해야지’하는 생각도 든다. 가까운 곳이니, 급하면 SOS를 치겠지. 나도 보고 싶으면 언제나 달려 갈 수 있는 거리이니 아주 좋다.

 

나는 복 받은 할아버지이다.

 

댓글 6
  • 2023-07-17 10:38

    우와 4대가 함께 함께 사는 집이라니~ 신기하네요! ㅎㅎ
    저도 이제 44일차 아가를 키우고 있는데 조리원 1주 산후도우미 3주 남편 출산 휴가 2주가 끝나서 오늘부터 홀로 육아를 시작합니다!

    제 주변에도 다양한 케이스가 있는데 이렇게 시댁에 들어가서 친구도 있고,
    또 불편하다며 양쪽 부모님 도움을 최대한 안받고 도우미나 어린이집으로만 해결하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저도 시댁은 1시간 거리이고, 친정엄마는 돌아가셔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네요...

    이런 현실 앞에서 '라떼는'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어요.
    저도 어떻게 우리 엄마는 아이를 둘씩 키우고, 또 일까지 하셨던 고모 이모를 생각하면 너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름 정부가 노력하고 있는데 이상한 육아 정책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 보면 너무 황당하더라고요.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061939.html

    말씀해주신대로 지금 있는 정책인 육아휴직 제도를 남자들도 눈치 없이 쓸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럴려면 문화와 사회가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굳이 고생해서 애를 왜 낳아?'라는 젊은 세대의 문화 (저도 한때는 그런 마인드였네요 ^^;;) 와
    한국이 치열한 경쟁사회다보니 쉽지 않을 것 같아요 ㅜ

    할아버지 세대 입장에서 지금 시대의 육아를 보는 관점을 보니 너무 재밌었습니다 🙂
    내년에 아드님이 나가시면 어떤 삶이 펼쳐질지도 궁금하네요!

    • 2023-07-17 10:46

      뭔가 프로젝를 해야겠군요.
      엄마 1년차, 엄마 10년, 엄마 20년차, 할머니, 할아버지 1년차, 5년차... 트랜스제너레이션 콜라보 워크숍 "아이를 함께 키울 용기!!"

    • 2023-07-17 11:11

      응원 또 응원합니다! 힘드시면 누구에게든지 손을 내미세요..

  • 2023-07-17 11:23

    보고서 읽는 느낌이에요! 인디언님의 보고서는 가마솥님과 다를 거란 느낌도 들고^^ 두 분이 모두 글 써보시면 좋겠어요~

    • 2023-07-17 11:42

      인디언님의 보고서를 기다리는, 17갤 아들맘 추가요!

  • 2023-07-18 08:02

    라떼는…진짜 다들 어떻게 애들을 키웠을까요? 그때는 그래도 동네든 공동육아든 공동체가 가능했고 또 먹고살기가 지금처럼 살벌하지 않았던 거겠죠?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있는 인디언샘 모습이 많은 걸 말해주네요. ^^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마더, 해피님   4년째 도시락 싸기가 가능해?      점심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낸다. 아침에 지은 잡곡밥에 3첩 반상을 먹고 참외로 입가심을 한다. 완벽한 점심식사다. 코로나 이후 유지하고 있는 루틴이다. 사먹는 밥은 소화가 잘 되질 않아서 코로나 유행이 지나간 지금도 계속 도시락을 싼다. 오늘은 유독 고추장아찌가 맛있다. 이 고추장아찌는 집에서 손수 양념을 무쳐 만든 것이다. 당연히 주 5일 근무를 하는 음식 솜씨 없는 임수는 만들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반찬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 집 업무 분장(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3회 참고)을 잠시 복습해보자면 음식 만들거나 반찬 정리, 냉장고 관리는 임수 담당이다. 어쩌다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화는 요리를 잘 못한다. 아니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청소를 잘한다. 그렇다면 누가 고추장아찌를 만들었을까? 4년 가까이 도시락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정화 어머니덕분이다.   < 4년 가까이 싸가는 도시락, 3첩반상과 과일 후식 >      음식 담당을 맡고 있지만 임수의 요리 실력은 늘지 않고 있다. 바쁜 주중 저녁에는 시간 상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 먹거나, 외식을 한다. 정임합목...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마더, 해피님   4년째 도시락 싸기가 가능해?      점심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낸다. 아침에 지은 잡곡밥에 3첩 반상을 먹고 참외로 입가심을 한다. 완벽한 점심식사다. 코로나 이후 유지하고 있는 루틴이다. 사먹는 밥은 소화가 잘 되질 않아서 코로나 유행이 지나간 지금도 계속 도시락을 싼다. 오늘은 유독 고추장아찌가 맛있다. 이 고추장아찌는 집에서 손수 양념을 무쳐 만든 것이다. 당연히 주 5일 근무를 하는 음식 솜씨 없는 임수는 만들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반찬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 집 업무 분장(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3회 참고)을 잠시 복습해보자면 음식 만들거나 반찬 정리, 냉장고 관리는 임수 담당이다. 어쩌다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화는 요리를 잘 못한다. 아니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청소를 잘한다. 그렇다면 누가 고추장아찌를 만들었을까? 4년 가까이 도시락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정화 어머니덕분이다.   < 4년 가까이 싸가는 도시락, 3첩반상과 과일 후식 >      음식 담당을 맡고 있지만 임수의 요리 실력은 늘지 않고 있다. 바쁜 주중 저녁에는 시간 상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 먹거나, 외식을 한다. 정임합목...
루틴
2023.07.31 | 조회 382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조은
2023.07.26 | 조회 41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흡혈귀가 나타났다!     낮은 자세   "내일 아침돌봄 때 잔디 배 안쪽 상처를 가볍게 소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태가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전날 올라온 무모 님의 지시 사항을 읽으며 아침 돌봄을 갔다. '상처를 소독하려면 잔디가 잘 누워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이생추어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잔디는 활기가 넘쳤고 돌봄이 끝날 때까지 드러누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봄 기운이 넘실대는 5월이었다. 잔디는 여기 저기 올라오는 풀을 뜯거나 부드러운 흙을 코로 탐색하며 봄내음을 맡느라 분주했다.   잔디가 눕지 않으니, 내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잔디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잔디가 멈추는 순간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납짝 엎드려 배에 소독약을 뿌렸다. 잔디는 자신이 내키지 않을 때 자기 몸을 누가 만지거나 몸에 차가운 액체를 뿌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럴 때 잔디는 몸을 부르르 떨고 꾸웅 꾸웅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중에 어딜 만지거나 약을 바르려고 하면 코로 음식을 마구 헤집고 그릇을 퍽퍽 친다. 그러다 밥그릇이 엎어져 음식을 전부 쏟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하잖아? 밥 먹을 때 누구라도 건드리면 짜증나잖아?) 어쨌든 전달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흡혈귀가 나타났다!     낮은 자세   "내일 아침돌봄 때 잔디 배 안쪽 상처를 가볍게 소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태가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전날 올라온 무모 님의 지시 사항을 읽으며 아침 돌봄을 갔다. '상처를 소독하려면 잔디가 잘 누워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이생추어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잔디는 활기가 넘쳤고 돌봄이 끝날 때까지 드러누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봄 기운이 넘실대는 5월이었다. 잔디는 여기 저기 올라오는 풀을 뜯거나 부드러운 흙을 코로 탐색하며 봄내음을 맡느라 분주했다.   잔디가 눕지 않으니, 내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잔디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잔디가 멈추는 순간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납짝 엎드려 배에 소독약을 뿌렸다. 잔디는 자신이 내키지 않을 때 자기 몸을 누가 만지거나 몸에 차가운 액체를 뿌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럴 때 잔디는 몸을 부르르 떨고 꾸웅 꾸웅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중에 어딜 만지거나 약을 바르려고 하면 코로 음식을 마구 헤집고 그릇을 퍽퍽 친다. 그러다 밥그릇이 엎어져 음식을 전부 쏟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하잖아? 밥 먹을 때 누구라도 건드리면 짜증나잖아?) 어쨌든 전달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경덕
2023.07.22 | 조회 360
인문약방 에세이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문탁
2023.07.20 | 조회 249
인문약방 에세이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문탁
2023.07.20 | 조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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