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버려진 자두밭

남어진
2023-07-10 13:29
371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대학 가는 수업에 흥미를 잃은 상태로 지냈다. 어느 날 뉴스에서 할머니들이 포크레인 바가지 안에 들어가서 쇠사슬을 목에 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약간의 궁금증과 더불어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을까. 그러던 중 하루 종일 밀양과 송전탑이 뉴스에 나오길래 한번은 가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을이 한창이던 10월 첫 날, 해가 지기 두어 시간 전 밀양역에 도착했다. 누군가 ‘저 차에 타면 된다’고 해서 난생 처음 보는 조끼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골짜기로 들어갔다.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인권 침해 감시단으로 활동하는 인권 활동가들이었다.

 

▲ 논 한가운데 솟은 송전탑

아래에 있는 사람이 점처럼 보인다.

2

그렇게 아주 경사가 가파른 산길에 도착하면서 지난한 ‘밀양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후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가끔은 ‘아 밀양은 참 마음 아픈 곳이구나. 그러니까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꿔야겠다.’라고 생각했으면 지금보다는 아주 조금은 몸과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은 한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제일 고통스러운 곳인 줄 알았는데, 근사한 명분이 생겨 학교를 자퇴를 하고 나서야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경찰들이 방패로 밀고 들어와 먹던 밥그릇이 날아가고, 겨울비 오는 날 깔개 하나 못 펴게 해서 우산 아래 쪼그려 앉아 잠을 잤다. 그 와중에도 매일매일 밥을 얻어먹어 버렸고, 얻어먹은 밥만큼만 밥값을 해 보려고 애쓰다가 10년이 흘렀다. 그렇게 나는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2023년 현재 시점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이라는 문장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제법 시간이 지났고, 다 끝난 일이니까. 게다가 인류는 지구에 존재한 이래 가장 큰 위기라고 불리는 기후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탄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모든 것을 빠른 속도로 전력화해도 온도 1.5도 상승을 막는 일이 간당간당한(거의 불가능한) 지금 상황에서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을 반대한다니 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 비록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이 10년 전 즈음에는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해도 말이다.

 

 

▲ 송전탑 부지 위에 농성장을 만들어 먹고 자며 싸웠던 할머니

 

3

70세가 넘은 노인이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혀 죽었다. 한전이 고용한 용역들에게 온갖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시달리다가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분신했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수많은 언론과 시민들이 국가 공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노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주목한 만큼이나 국가도 사활을 걸었다. 38만 명의 경찰을 동원해 동네의 모든 산길을 틀어막고 한전의 건설 공사를 비호했다. 정부는 765킬로볼트(㎸) 송전 선로 건설 사업*을 처음 계획한 지 14년 만에 기어코 송전탑을 완공시켰고, 지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핵발전 단지에서 생산된 전기가 세계에서 가장 전압이 높은 송전탑을 통해 송전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끝난 일이지 않는가.

한때는, 전기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세상에 밀양이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했다. 밀양이 산업과 대도시로 집중되는 이 전기의 생산·수송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고, 핵발전의 위험성을 고발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짓밟고 착취해야만 유지되는 구조까지 드러낸, 끈질기고 대단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스스로’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운동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해야만 ‘나 자신’의 지난 10년의 시간을 부정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송전탑은 밤낮으로,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존재감을 지울 수 없다. 높이 100m가 넘는 철탑이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을 조롱하듯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세월이 흐르며 달라진 것은 이 싸움을 했던 이들이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난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운동 끝에 소멸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조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하는 것이 마음이 조금은 편하기에 그렇게 살아가며 소멸 중이다.

* 765㎸(킬로볼트)는 765,500V의 송전탑을 말한다. 현존하는 송전탑 중 전압이 가장 높다. 해외에서는 초장거리 송전에만 사용된다. 평균 높이는 100m 정도이다. 한 번에 많은 전기를 실어나르는 만큼 대규모 정전의 위험이 높다. 더 많은 내용은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투쟁 온라인 기록관을 참조.

4.

 

2023년 3월 16일~17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밀양 송전탑 인근 전자파 조사를 진행했다. 2016년 이후 7년 만에 밀양에서 이뤄진 조사이다.

한국에서 전자파는 위험한 물질이 아니다. 정부가 833밀리가우스(mG)*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를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송전선로 인근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는 전혀 진행하지 않고 있다.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정확한 측정을 할 수 있는 여력(측정기)이 생겼을 때 조사하고 있을 뿐이다.

 

 

 

이틀 간 전자파 측정기를 들고 송전탑 선하지(線下地 ), 주민들의 집, 논밭을 쏘다녔다. 2016년 조사보다 많게는 2배의 전자파가 측정되었다. 이 수치들이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증거도 아니고 문제의 시발점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그런 쓰임이 있을 때를 생각하며 데이터를 모은다. 종일 주민들이 호소하는 소음 피해, 경관 피해 호소를 들으며 다녔더니 이야기가 소화가 안 되는지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그렇게 측정을 하던 와중 버려진 자두밭을 만났다. 7년 전만 해도 자두 농사를 짓던 곳이었다. 평생 농사를 짓던 농부가 밭을 버린 것이다. 농부는 머리에서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초고압 전선이 지나가는 것이 무섭고, 불안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고 했다.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매년 봄마다 해야 할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나뭇가지가 전선에 닿을 것처럼 솟구친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밭을 가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아주 쉽게 말한다. 거기서 농사 안 지으면 되지. 거기서 안 살면 되지. 당신이 자두밭에 와서 한번 보시라. 평생 가꿔 온 삶이 무너져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 가우스(G)란 독일 물리학자 가우스의 이름을 따 자기력선속의 밀도를 나타낸 단위이다. 우리나라는 안전 기준을 833밀리가우스(mG)로 정했는데, 이 수치는 스위스의 기준보다 약 414배가 많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3mG에 노출된 어린이는 백혈병 발병률이 2~3.8배 증가한다고 한다.

5

아직까지 마을에는 밀양 765 송전탑 공사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100여 가구의 사람들이 있다. 그 주민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말없이 싸워도, 싸우는 건 싸우는기지.”

이제 이 싸움은 실체가 없다. 대적할 상대도 없다. 한전이 무분별하게 살포한 돈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산산조각 났다. 그래서 버티는 사람들은 마을 회관도 사용하지 못하는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송전탑을 찬성했던 주민들이 적은 아니다. 결국에는 마을에서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적으로 삼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송전 소음, 전자파와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무어라 설명하기 어렵다. 한전도, 정부도, 경찰도 송전탑만 남겨둔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싸움이 되었다. 삶을 걸고 최선을 다해 싸웠던 투쟁을,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지금 마을에 남아 있는 이들의 유일한 싸움이자, 가장 많은 힘이 들어가는 투쟁이다.

비록 자두밭만 보면 천불이 나더라도, 속이 쓰리더라도, 아직 감밭에서는 농사를 짓는다. 많은 이들이 올 가을에는 밀양으로 감 따러 오면 좋겠다. 밥값은 안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 갚으라고도 안 할테니 그 걱정도 하지 말고 그렇게 오면 좋겠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소멸의 투쟁에도 연대가 간절히 필요하다.

▲ 버려진 자두밭, 높이 솟은 가지

 

 

 

*2화에 실린 사진은 모두 최형락 사진가님이 기록해 주신 사진입니다. 사진 사용을 허락해 주신 사진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댓글 6
  • 2023-07-10 14:03

    소멸의 투쟁에도 연대가 필요하다, 마음에 오래도록 새기고 싶은 어진의 문장입니다.

  • 2023-07-10 17:53

    필요하다
    간절히
    소멸의 투쟁에도
    연대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에 감은 잘 익어가겠죠?

  • 2023-07-12 08:50

    어진의 글이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는 느낌! 가을에 감 따러 가야겠네....

  • 2023-07-12 19:47

    소멸의 투쟁에도 연대가 필요하다..
    느리게 읽고 갑니다.. 글 고맙습니다

  • 2023-07-17 19:28

    그러네요
    삶을 걸고 최선을 다해 싸웠던 투쟁,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마음을 지키는 소멸의 투쟁
    거기에도 연대는 필요하네요.

  • 2023-07-18 20:08

    무지하고 답답하고 헛헛한 마음에 감이라도 따러 가야겠어요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마더, 해피님   4년째 도시락 싸기가 가능해?      점심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낸다. 아침에 지은 잡곡밥에 3첩 반상을 먹고 참외로 입가심을 한다. 완벽한 점심식사다. 코로나 이후 유지하고 있는 루틴이다. 사먹는 밥은 소화가 잘 되질 않아서 코로나 유행이 지나간 지금도 계속 도시락을 싼다. 오늘은 유독 고추장아찌가 맛있다. 이 고추장아찌는 집에서 손수 양념을 무쳐 만든 것이다. 당연히 주 5일 근무를 하는 음식 솜씨 없는 임수는 만들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반찬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 집 업무 분장(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3회 참고)을 잠시 복습해보자면 음식 만들거나 반찬 정리, 냉장고 관리는 임수 담당이다. 어쩌다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화는 요리를 잘 못한다. 아니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청소를 잘한다. 그렇다면 누가 고추장아찌를 만들었을까? 4년 가까이 도시락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정화 어머니덕분이다.   < 4년 가까이 싸가는 도시락, 3첩반상과 과일 후식 >      음식 담당을 맡고 있지만 임수의 요리 실력은 늘지 않고 있다. 바쁜 주중 저녁에는 시간 상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을 꺼내 먹거나, 외식을 한다. 정임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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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2023.07.31 | 조회 382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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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2023.07.26 | 조회 415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흡혈귀가 나타났다!     낮은 자세   "내일 아침돌봄 때 잔디 배 안쪽 상처를 가볍게 소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태가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전날 올라온 무모 님의 지시 사항을 읽으며 아침 돌봄을 갔다. '상처를 소독하려면 잔디가 잘 누워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이생추어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잔디는 활기가 넘쳤고 돌봄이 끝날 때까지 드러누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봄 기운이 넘실대는 5월이었다. 잔디는 여기 저기 올라오는 풀을 뜯거나 부드러운 흙을 코로 탐색하며 봄내음을 맡느라 분주했다.   잔디가 눕지 않으니, 내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잔디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잔디가 멈추는 순간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납짝 엎드려 배에 소독약을 뿌렸다. 잔디는 자신이 내키지 않을 때 자기 몸을 누가 만지거나 몸에 차가운 액체를 뿌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럴 때 잔디는 몸을 부르르 떨고 꾸웅 꾸웅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중에 어딜 만지거나 약을 바르려고 하면 코로 음식을 마구 헤집고 그릇을 퍽퍽 친다. 그러다 밥그릇이 엎어져 음식을 전부 쏟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하잖아? 밥 먹을 때 누구라도 건드리면 짜증나잖아?) 어쨌든 전달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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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3.07.22 | 조회 360
인문약방 에세이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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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07.20 | 조회 249
인문약방 에세이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문탁
2023.07.20 | 조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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