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문탁
2023-07-20 14:32
249

 

 

품위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지금은 이거 하는 거 아니지.”라며 단속시켰다. 아이들은 사려 깊었고 따뜻해 보였다. 크게 문제는 없는 평화로운 수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아들은 아이들과 선생님의 배려로 ‘도와줘야 하는 아이’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교실에서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자기도 안 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버리는 게 너무 힘들다며, 울었다.

 

 

야스퍼거 증후군을 앓았다고 알려져 있는 인물들

 

 

학교라는 구조. 그 속에서 장애가 되는 현실

 

확장된 구조적 의미에서의 억압이란 일상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미디어와 문화의 상투적 관념 속에서, 관료제 위계 체계와 시장 질서 속에서 , 보통의 일상생활 과정에서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무의식적으로 지니는 이런저런 생각과 반응에서 야기된 결과물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겪는 극심한 부정의를 말한다. (차이의 정치와 정의 , p107)

 

누구보다 먼저 아이의 다름을 인지했고, 정신과 상담이나 진단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장애는 병이 아니다. 고칠 수가 없는 다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 좀 다르긴 해도, 얼추 비슷하게 사람들과 섞여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처음 담임 선생님이 특수교육대상자 이야기를 했을 때, 장애 등록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무척 놀랐다. “우리 아이가 그 정도라고요? 일상생활은 무리 없이 할 수 있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판단을 잘못한 걸까? 아니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구조의 문제였다. 나와 아들의 관계, 즉 가정에서의 생활은 불편함이 없다. 물론 키우기 힘들었고, 가끔은 둘이 싸우기는 하지만 대체로 친구 같은 사이좋은 모자다. 오히려 자기가 몰두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하지만 그건 가정주부인 내가 외동인 아이를 키우는 구조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씩 천천히 알려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들이 24명의 학생이 모여있는 교실 안에서는 문제가 된다. 학교에서는 바르게 앉아서, 주어진 결과물을, 정해진 시간 안에 제출해야 하는 큰 산이 놓여있었고, 아들은 그런 걸 해내지 못한다. 게다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에는 통 관심이 없다. 어릴 때부터 관심사가 한정적이라 그것을 넓혀주는데 노력했다. 국기에 관심을 가지면 지도를 들이밀고, 지도를 좋아하면 기호 책을 주고, 그러다 우주로, 화학으로 나아갔다. 물론 10번 시도하면 1~2번 성공할까 말까 했지만, 결국은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냈다. 자기가 흥미 있는 쪽으로 물꼬를 터주면 자연스레 흘러가는 아이다. 하지만 고정된 구조 속에 넣어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자, 돌발 행동이 늘어났다.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손발을 꿈틀거리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누가 봐도 ADHD다. 하지만 나에게 정말 흥미 없는 수업을 하루 4~5시간 동안 들으라고 시킨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아이를 보며 바퀴가 수백 톤인 커다란 자동차 같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데, 일단 출발하면 스스로 잘 굴러간다. 그러다 가속도가 붙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빨라지는 그런 차 말이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라는 구조 속에서 이해도 못 하고, 집중력도 약한 영락없는 장애아가 된다.

 

 

 

 

 

 

 

억압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이리스 메리언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는 억압의 5가지 형태가 나온다. 억압은 착취, 주변화, 무력감, 문화 제국주의, 폭력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중에서 주변화란 노동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주변에 놓인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주로 노인이나 직업이 없는 청년, 흑인, 싱글맘, 장애인 등이 이에 속한다.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지 못한 채 타인의 보살핌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억압의 모습인 무력화와도 이어진다. 이들은 점점 권한이나 권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의사 결정의 범위가 좁아지는 이유로 무력화를 경험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아브젝트한 것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집단에 근거한 두려움이나 혐오를 나타내는 행위 및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주체가 어떤 특정한 사안, 이미지, 환상 즉 혐오, 욕지기, 심란함으로 반응할 수 있는 어떤 공포스러운 것 을 맞닥뜨릴 때 갖게 되는 혐기와 역겨움의 감정이 바로 아브젝시옹이다. 아브젝트한 것은 혐오와 역겨움을 주는 동시에 매혹적이기도 하다. (차이의 정치와 정의, 313p)

 

그렇다면 이러한 억압은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졌을까. 아브젝트하다는 것은 한 마디로 본능적인 혐오 같은 느낌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자신의 배설물을 멀리한다. 그것은 더럽다는 인식 이전에 이미 배설된 것이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다시 내 몸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만들어진다. 아브젝트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통해 나 자신의 경계가 지켜지는 셈이다. 어쩌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의식의 영역이 아닌 걸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든 아니든 그것은 자아와 타자를 만드는 경계를 짓고, 다시 구조화된다. 결국 그 경계가 사회적으로 결합하게 되면, 주체의 정체성과 불안으로 고정화된다.

 

영은 장애인 차별주의 역시 아브젝트한 것에 대한 경계 불안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노인이나 장애인을 만날 때, 우리는 자기 죽음과 직면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와 장애인은 다르지 않다.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무의식에서 타자라고 생각했던 차이가 사실은 나와 같은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다시 나와의 구별을 만들기 위해 경계를 만든다.

 

이것은 품위 규범과도 이어진다. 품위는 사회 질서다. 과거 백인 부르주아 남성의 품위는 아직까지 우리의 뇌리에 남아서 영향력을 미친다. 이런 도식 속에서 유색인들은 도덕관념이 없고, 청결하지 않고, 자기 통제력이 결여된 존재로 본다. 장애 역시 눈으로 보기에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 집단의 그 어떤 특징은 종종 다른 사람들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불안, 초조감이나 혐오를 일으킨다. 장애 역시 자신의 신체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항상 자신의 품위를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신체적으로 보이는 아이의 어려움 때문에 – 눈 맞춤의 어려움,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집중력 문제, 자기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성향 등 – 아들 역시 학교 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품위를 입증해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억압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품위’를 깨트릴 수 있을까? 무의식 안에 숨어있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무의식적인 차별에서 당당하지 못하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모르는 흑인 남성과 둘이 엘리베이터 안에 남겨지자, 나도 모르게 벽 쪽으로 몸을 밀어붙인 채 힐끔거렸다. 또한, 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람이나 신체장애인들을 ‘쳐다보게’ 되는 문제가 있다. 그게 혹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일지라도 그 마음 안에는 차별이 존재한다.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

 

우리가 서로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각자의 삶보다 먼저 있으면서 각자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유대관계 안에 우리가 이미 하나로 묶여있다는 데 있다. 나의 삶은 상대방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없고, 판타지는 사회적 삶과 그런 식으로 맞물려 있다. (비폭력의 힘, 123p)

 

주디스 버틀러는 『비폭력의 힘』에서 상호의존성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혼자서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살아가기 위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버틀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을 대입가능성의 예를 들고 와서 설명한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혹은 폭력적인 생각을 한다. 동시에 내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 역시 나에게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다른 사람을 향한 공격성이 사실 나 자신을 향한 공격성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그 행위를 멈출 수 있다. 이로써 나의 삶과 다른 삶이 서로의 자리에 대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둘 간의 철저한 분리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도덕감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지켜내기 위한 토대가 된다.

 

버틀러는 멜라닌 클라인의 『사랑, 죄책감, 보상』이라는 책을 들고 와서 논의를 구체화한다. 이 책에서는 사랑과 미움의 역학을 개인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의 수렴점으로 보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공감은 과거 양육자에게서 받았거나, 받고 싶었던 판타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거나 동일시할 때 양육자에게 느꼈던 방식을 떠올리게 된다. 좋은 양육자 연기를 통해 우리가 받은, 혹은 받지 못했지만 지나버린 시절을 보상한다. 어린 시절의 아이를 떠올려본다.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 웃던 미소, 꼬물꼬물 밥을 먹는 볼때기, 정수리의 냄새까지 사랑스러웠던 그 시절. 양육자로부터 받았던 사랑, 혹은 받지 못했던 사랑들이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다. 이를 보상해주는 것이 사랑의 근본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있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보상하는 것과 같다. 이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는 노력 속에 들어있는 자기중심적인 무언가다.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복잡한 인과관계 속에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는 발판을 만든다. 버틀러는 우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타인과 나의 경계가 옅어지는 경험을 통해서만 변화의 기초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타인을, 더 나아가서 나라를, 우주를 세상 만물 전체를 나로 인식한다면,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면, 우리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

 

 

 

 

 

아이의 장애가 무대 위에 서는 순간

 

통행하기 위해, 음식을 먹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지지기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다. 인간의 이 모든 기본적 기능은 저마다 모종의 지지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비폭력의 힘, 60p)

 

나는 아이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진다. 아이에겐 능력과 재능이 있다. 동시에 누구나 볼 수 있는 발달적인 문제가 있다. 글을 쓰면서 나 역시도 영재성을 원하고, 장애는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느꼈다. 그 두 개는 다르지 않다. 그 속에서 어떤 것만 발전시키고 어떤 것만 소장시킬 순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두렵다. 고통스럽게도, 장애인 중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것이 자폐인이다. 자폐인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24살 정도다. 많은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다. 이런 배치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난 후, 아이를 잃게 될까 봐. 분명히 빛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결국 좌절하게 되는 건 아닐지가 무섭다. 그래서 나는 홈스쿨링을 고민한다. 나라면 이 아이 하나는 어떻게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론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아이를 숨기는 것이 더 편해서 그런 걸까를 반성한다. 아이의 장애는 아이 스스로가 힘든가. 보는 내가 더 힘든가. 어렵다. 고민만 하다 모든 걸 놓치게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 중요한 건 장애냐 영재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양가감정 속에서 고민하는 것, 그리고 아이의 든든한 지지기반이 되어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며칠 전에 아이는 갑자기 2학기 반장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껏 반장선거를 하면 입후보는커녕 종이에 친구 이름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놀랐다. 자신이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면서도 0표를 받으면 어쩌냐고 걱정을 했다. 나는 그럴 일은 없다고, 자신의 이름을 쓰면 무조건 1표는 받게 되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보라고 했다. 아이가 반장이 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그것보다도 2학기가 되면, 아니 막상 당일이 되면 앞에 나가서 한마디도 못 하고 내려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장애가 무대 위에 서는 그 순간이 가장 큰 변화다. 그 속에서 아이는 천천히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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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불빛의 웰컴 투 60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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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불빛
2023.08.24 | 조회 301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난잡함이 지나쳐 찢어진 가랑이를 수습하느라 하반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         난잡한 돼지'들'     돌봄, 중단   지난 한 달 동안 돼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돌봄 1주년을 앞두고 나는 무모 님에게 7월 돌봄을 쉬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7월에 많은 일이 몰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올 초에 나는 문탁네트워크 안팎으로 여러 세미나를 신청했고 소개에도 적었다시피 '난잡한 공부'를 '체질'로 선언하며 호기롭게 한 해를 시작했다. 몇몇 샘들의 응원, 격려, 경악, 걱정이 이어졌고, 문탁샘은 "경덕...2023은 빡세게 공부하는 해? 주역에 불교로 기본기를 다지고 양생프로젝트 당대철학으로 문제의식을 벼리고...아주 좋네, 좋아!!! (그런데 너, 연말에 가랑이 찢어지겠다. 크하하핫)" 라고 댓글을 남기셨다. 그런데 상반기를 결산하는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연말이 되기도 전에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피가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던가..?) 어떻게든 잘 수습하기 위해 발표가 몰린 7월에는 돌봄을 쉬고 일을 조정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상반기 공부를 마무리했다. (찢어진 나의 가랑이는 서서히 아물고 있다.)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하루에 두 번씩 밴드에 올라오는 일지로 돼지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 비인간 동물들은 폭염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더위가 극심할 때는 대형 얼음을 주문해서 진흙탕 옆에 두거나 조각 얼음을 간식으로 주기도 했다. "새벽, 잔디에게 큰 얼음을 배달받아서 줬어요. 새벽이는 좋아하는데 잔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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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3.08.22 | 조회 396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현민
2023.08.18 | 조회 485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문탁
2023.08.10 | 조회 305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기린
2023.08.06 | 조회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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