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3 2회차 후기] 불확정성과 불확실함을 안고 살아 간다는 것 (부분과 전체 1-6장)

해야
2023-10-01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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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소개를 못한 미정샘, 경희샘, 소영샘의 소개로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시즌 3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합류하였고 다양한 질문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문탁샘은 <<부분과 전체>>가 양자 역학 자체를 소개한 이론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걸 미리 말씀하셨다. 양자 물리학을 처음 접하거나 과학에 대한 토대가 부족한 사람들은 이를 대략적으로 맛본다는 기분으로 접해야 부담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1~6장은 1920년대, 즉 양자 물리학이 본격적으로 탄생하고 연구에 큰 도약이 이뤄지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해야와 지영샘의 발제, 미정샘과 바람샘의 메모를 차례로 들었다. 6장까지에서다룬 양자물리학 연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짚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이전 시대의 업적, 즉 볼턴의 원자 발견 (1803), 톰슨의 전자 발견 (1897), 러더퍼드의 원자핵 발견 등에 기반하여 보어,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보른, 하이젠베르크 등의 과학자들이 미시적 물질 세계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전자궤도 모형을 버리고 측정가능한 물리량으로 원자를 설명하는 시도를 하였다. 여기서 나온 게 행렬역학이다. 여기에 대해 아인슈타인이 문제제기를 하는데, 지영샘과 문탁샘은 그 반박이 가설이나 모형없이 숫자만으로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데 대한 의문 제기인 것 같다고 해석하였다. 자연 과학은 실제 자연법칙을 기술해야 하는데 그냥 아는 것만 얘기하는 게 이상하다고 본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슈뢰딩거는 전자가 입자이자 파동일 수 있다는 드브로이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모든 물질에 파동(물질파)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전자도 빛처럼 파동 및 입자의 이중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파동방정식으로 정리했다. 입자에 대한 개념을 버리고 물질파 (시간과 공간에서 나타나는 명백한 과정)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라는 걸 증명했다. 보통 입자일 경우엔 불연속성이 나타나는데 빛이 불연속적이라는 게 낯선 발견이었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광자 또는 광양자라고 불렀다. quantum 은 물질의 최소단위인 양을 말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자궤도의 표상을 버리고 불확정성원리(“위치-운동량에 대한 불확정성 원리이며,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위치가 정확하게 측정될수록 불확정도는 커지게 되고 반대로 운동량이 정확하게 측정될수록 위치의 불확정도는 커지게 된다”)를 발견했고(1927), 보어는 상보성의 원리(입자와 파동은 동시에 관찰되지 않는다. 이들은 대립적이지만 상호보완적 성격을 지닌다)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렇게 복기하면서 정리를 해보긴 했지만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양자역학은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졌다는 걸 전제하는 것 같은데, 또 원자의 존재는 확률로만 파악된다고 얘기하니 알다가도 모르게 되는 느낌.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샘들의 이름은 생략하고 대략 몇가지 주제에 대해 정리하고자 합니다.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이 현재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보통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 뉴턴 역학은 거시 세계를 설명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보면 미시와 경계가 어디인가가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양자 역학의 세계 내에 고전 역학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리학과 인문학의 교차성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물리학은 자연을 해석하기 위해 보편적인 하나의 틀을 찾는 작업을 하는데, 단순함이 아름다움과 연관된다. 또 고전 역학은 인과율과 예측 가능성으로 모든 걸 설명한 확실성의 세계였다. 양자역학은 미시와 거시를 동시에 설명하는 새로운 틀이 되었다.  확실성이 아닌 불확실성(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파악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불확실성의 원리는 책에서 반복해서 나온 ‘이해한다’라는 것의 의미와도 관련되는 것 같다. 양자역학은 여러 모형을 통해 원자에 대한 지식을 증가시킨 것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미시적 물질 세계에 대해 아직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걸 가르쳐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전자가 어떤 상태로 있는데 관찰을 하는 순간 위치나 운동성이 바뀌게 되고, 그 전에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럼 보기 전에는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아인슈타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말하는 게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원자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인과율을 깨뜨리는 양자역학의 전제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에 동의를 못한 것으로 읽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도 원자, 분자가 실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언어가 갖는 한계/모순을 드러낸 양자 물리학이 불교 및 현대 철학과 연관된다는 얘기로 이어졌다. 불교는 언어도단을 얘기하는데, 이는 언어가 나와 타자, 주체와 객체를 계속 나누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불교와 들뢰즈는 현대 언어의 표상성 재현 불가능성에 대해 계속 얘기하는데 이것 또한 언어를 통해서 하게 되는 모순에 처한다. 우리는 양자역학에서 이해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언어로 양자역학을 할 수 있는가? 파인만이 양자 역학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어가 이해하는 게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에도, 언어로 전달하기 어려운 세계를 언어로 밖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을 말했던 것 같다. 따라서 보어는 언어의 한계에 대해 민감했던 것 같다. 입자와 파동의 상호 보완성을 얘기한 게 모순되지만 존재한다고 한 것 아닌가 싶다. 하이젠베르크는 수학을 통해 세계가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증명했다. 수라는 표상체계가 언어로 감각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외국어처럼 느껴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불확실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 얘기가 나왔다.  우리는 보통 내가 믿는 세계를 의존해서 산다. 도덕적 규율이나 신념, 과학적 근거 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데, 만일 양자 물리학이 얘기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파동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새로운 마주침을 구성한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면 위험함, 고단함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책에서 나타난 20세기 초 과학자들의 사유나 생활방식을 살펴보면 우리는 자연의 질서, 리듬에 따라 살고 삶을 관조하는 일을 중시하고 즐겼음을 알 수 있었다.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사유를 놓치지 않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나눈 정치적 입장 및 정치 운동에 관한 토론도 있었다.  보어는 독일 젊은이들의 애국주의와 참전에 대해 불편해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든 게 바뀌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참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쓰나미 같은 자연법칙처럼. 젊은이들은 참여하면서 해방감과 일체감을 느꼈다. 보어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처럼 느껴지더라도 전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이러한 정치적 신념과 선택이 맹목적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참여에서 어디까지가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고 어디까지가 맹목적이거나 군중적 열기에 휩쓸리는 것인지를 질문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결코 쉬운 건 아니겠지만.  

 

바쁘단 핑계로 발제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못했고 책이 너무 어려워 부담스러웠습니다. 여러 샘들의 질문과 토론, 그리고 지영샘, 문탁샘의 해설 덕에 그래도 양자, 전자, 광자 등이 무엇이고 양자물리학의 전제가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공부에 있어 인연과 대화(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자기의 생각을 계속해서 공유하는 것)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양자역학과 인연을 조금씩 맺어간다는 마음으로 나머지 장들을 읽기로 했습니다.

 

저는 내가 과연 불확실성의 세계라는 심연으로 떨어지고 싶어하나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과 내가 존재하고 돈이 중요하고 내 미래가 있고 내가 노인이 된다는 걸 굳게 믿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 맞추어 일상을 꾸리고 행동하구요. 이런 믿음이나 전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상황이 생기면 금새 불안하고 두려워지죠. 불확실성에 나를 맡긴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들이 계속 따라옵니다.

 

어렵지만 재미있고 질문이 생기나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매력 있는 텍스트라 느껴지고 앞으로 2주간이 기대됩니다.  

댓글 7
  • 2023-10-01 12:38

    해야샘! 고생 많으셨습니다(추석이었는데 송편이라도 드셨는지...). 제가 이 후기를 쓰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저는 지난 세미나 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발제문도 없애고 싶습니다ㅋㅋ. 양자역학과 관련된 콘텐츠를 접하면 접할 수록 제 머리 속은 점점더 심각한 미궁에 빠지는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발제자를 대표해서 해야샘이 후기를 써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해야샘 후기에서 '원자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표현이 몇 군데 있는데요. 원자가 아니고 전자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양자역학은 원자 내 전자가 발견될 위치를 확률로만 기술할 수 있다는 것(타이핑하는 제 손가락에서 자신감이 점점 사라지는 건, 자신감도 확률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일까요? 멍드립 죄송).

    저는 책을 보면서 내 삶의 토대가 되어온 '가치'가 도전받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취해 왔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 연배의 선배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데 비해, 하이젠베르크 등 1900년대 전후 세대들은 이전의 고전역학에 집착(?)하지 않았고 주도적으로 이 분야를 발전시켜왔다는 대목에서요. 이건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고, 삶의 영역으로 가져온다면 나이들어가면서 미래세대와 맺어가야 할 관계의 방식에 대한 고민과 연결이 됐거든요. 아이슈타인이 꼰대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전자가 그렇게 행동(?)하는 배후(근원)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노인네의 고집이라고만 생각하기엔... 그는 양자역학(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의 연구가 양자론을 발전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했고, 하이젠베르크가 대단한 발견에 이르는데 아인슈타인의 생각이나 지적이 큰 몫을 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하나,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과학자가 아니어서 가설을 세울 일이 많지 않겠지만, 삶은 많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니까요. 저는 요 몇년 인생의 변곡점에서 받은 질문을 안고 있습니다. (풀고 싶지 않고 못 본척 하고 싶은 때가 많은데...)그 까마득한 질문을 까마득한 채로 안고 있으면 답도 까마득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대로 구체화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둥바둥 씨름하다보면 어느날 '간결하고 아름다운' 삶의 질문으로 툭 제 앞에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죠. 과학책을 읽을 땐 과학하고 앉아있어야 할 것 같아서, 세미나 때는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잠깐 털어놔 봤습니다(데헷).
    그런데 해야샘 후기를 읽으니, 지금 제가 안고 있는 질문이 확실성에 기반한 인생경로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경험)에서 던져진 것이고, 문제를 잘 풀지 못하고 있는 건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싶지 않은 혹은 불확실성을 수용할 기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양자역학만큼이나 머리 아프군요. 양자역학이나 인생이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론만 확실해 보이네요 ㅠ

    아! 그리고 6장까지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 문학과 철학을 좋아했다는 로베르트(1장에 나옴)가 제일 천재(?) 같아요. 쓸데없는 말인데 꼭 하고 싶었습니다.ㅋ
    8장 이후도 계속 어렵네요? -_- 수요일에 만나요~.

  • 2023-10-02 17:52

    해야샘 정말 대단하십니다 생각을 이렇게 잘 정리하시는 능력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김지영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세계에서 관찰되어지는 현상이니까요 '전자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존재자체를 확률적으로 한다는것이 아니라 측정되는 순간, 주어진 위치에 있을 확률로 표현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야샘 고맙습니다!

  • 2023-10-02 18:25

    잘 모르는 상태에서 쓰셨다고 하기엔 후기가 넘 자세하고, 정갈하고, 깔끔합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해야샘은 텍스트(세미나 내용 포함)를 소화하시는 능력이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이 읽고 사유하신거겠죠? 전 책 내용도 그렇고, 세미나 시간에 나누었던 대화 내용도 그렇고.... 정리가 안되어서, 이렇다할 댓글을 달기는 어렵겠습니다...ㅠ

    해야샘 후기 글 중 "우리는 보통 내가 믿는 세계를 의존해서 산다. 도덕적 규율이나 신념, 과학적 근거 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데, 만일 양자 물리학이 얘기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파동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새로운 마주침을 구성한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면 위험함, 고단함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읽고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요. 하이젠베르크가 얘기한 불확정성의 원리 자체가 우리 삶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우주 전체에서 보면 우리 개개인이 '전자'처럼 생각될 수도 있겠다. 고전역학이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분명 우리 인생은 양자역학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오히려 불확실성이 자유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상.. 뭐라도 써야할 것 같은데,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서 횡설수설한 댓글이었습니다....^^ 후기 작성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2023-10-03 09:53

      뭐라도....ㅋㅋㅋ.... 횡설수설 아닌디유..... 재밌는 비유인 것 같아요^^

  • 2023-10-02 21:03

    여기 문탁 선생님 공부모임방은 후기도 댓글도 만만치 않네요.
    계속 분위기 파악하고 있는 중인데요. 카톡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연휴 동안도 다들 공부하시는 것 같고. 일상대화가 그냥 다 공부네요. 헉헉.
    해야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첫 세미나 후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정리 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해야샘 글 읽으면서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 듯도 하고요. ㅎㅎ
    그리고 지영샘 댓글도, 특히 문탁샘 2차 공지글도 잘 읽었어요. 공부하듯 읽었어요.ㅠ
    저처럼 이렇게 느낌만으로 댓글 달아도 되는 거죠? 꼭 공부내용과 관련짓지 않아도 편하게 글 쓸 수 있게 문턱을 좀 낮추는 의미로다가 몇 자 남기고 갑니다.
    '방사성 베타붕괴', '핵력', '양전자', '중성자' 부분에서 또 막혀서 박문호 박사님 설명 듣고(유튜브) 다시 책으로 복귀하려 합니다~~~

    • 2023-10-03 09:55

      댓글은 편하게!!
      아니 모든 논의를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유~~

      그리고 박문호 샘 유투브도 봐야 하는 건가유? ㅋㅋㅋ...ㅠㅠㅠㅠ (걍 혜근샘, 설명들어야쥐~~)

  • 2023-10-03 13:28

    불교의 언어도단, 들뢰즈가 말한 언어의 표상성, 재현 불가능성을 읽다가 11장 겨울산장에서 카드 없이 포커를 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마치 진공상태에서처럼. 그러다가 이내 재미도 없고, 언어를 과대평가했다. 언어는 기본이 되는 현실적인 상에 낙관적 생각과 설득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신뢰성 있는 허풍정도로. 그럼에도 이런 말조차 언어로 했다 들뢰즈의 책도 궁금해지고, 불교철학도 더 궁금해지네요.

    지난 시간에 (어떤 것이 지금 보이는 것은) '본다'는 관측조건 하의 상태가 드러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전 존재 유무는 어떻게 있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서 칸트 철학을 바탕으로 내가 인식하는 것은 표상이다. 물자체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객관적 실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들뢰즈도 실체가 없고, 판단주체도 없다. '모른다'인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입자적 기능이 있으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근데 파동이라면 어떨까? 내가 보는 순간에만 있다는 객관적 실체 있음을 두고 말하는 것, 그것이 자연과학적 태도라는 하이젠베르크의 태도와 생각에 대한 쌤의 설명이 인상 깊었습니다. 파동 속에 잠시 모여 머물러있는 분자들이 몸/체일까요? '본다'는 관측 조건 하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라면 해야쌤 말처럼 몸과 광원이 마주치는(상호작용)하는 상태가 드러난 것을 우리가 입자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살아있다'와 관련된 개념이라면, 기본적으로는 죽어있는데 감관에 의해 살아있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 뿐일까요? 이런저런 질문 던져봅니다.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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