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시 10월 15일 <무엇이든 가능하다> 공지

겸목
2023-10-09 08:46
238

 

 

 

 

"삶의 깊고 어두운 우물에서 아름답고 정결한 문장으로 희망을 길어내는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의 여섯번째 소설『무엇이든 가능하다』. 작가는 제각기 자기 몫의 비밀과 고통과 수치심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욕망과 양심의 충돌, 타자를 향해 느끼는 우월감과 연민, 늘 타인에 의해 상처를 입으면서도 타인의 관심을 끝없이 갈구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결국 소설의 제목인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끔찍한 절망,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건네받는 이해와 구원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말로 읽힌다."

 

 

인터넷서점에 올라온 <무엇이든 가능하다> 홍보글입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지난 여름 '소설가 손보미와 함께 읽는 소설' 강좌에서 <올리브 키터리지>을 읽게 되면서 알게 된 작가예요.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작가더군요^^ 읽어보고 왜 유명한가 바로 이해됐습니다. 작가들도 단편소설을 쓸 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많이 공부한다고 해요. 짧은 단편 속에 인물의 개성을 압축적으로 밀어넣는 힘과 기술이 장인입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끼게 되는 희비극의 감정을 절묘하게 포착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이든 가능하다>에는 9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 2편을 골라주세요. 그리고 그 작품 가운데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인물에 대한 감상과 생각들 메모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메모는 10월 14일 토요일 밤 10시까지 이 공지글에 댓글로 달아주세요. 

 

 

지난 세미나 후기는 수요일까지 겸목과 비료자님이 올리도록 할게요. 다음주 간식은 천유상, 꿈틀이입니다. 

 

 

그럼, 이번 일주일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과 함께 보내봅시다~ 잘 읽히는 소설이에요. 휘리릭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댓글 8
  • 2023-10-14 12:21

    (176쪽) 미시시피 메리: '그녀는 다섯 딸이 다 클 때까지 기다렸고, 십삼 년 동안 남편과 불륜 관계에 있던 그 비서-그렇게 뚱뚱한 여자와 십삼 년이라니-에 대해 알게 된 뒤 그녀를 찾아 온 심장마비에서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고, 파올로가 보낸 편지들을 발견한 남편이-지금으로부터 거의 십 년 전에-오, 얼굴이 벌게져서는 측두의 몹쓸 혈관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을 때 정작 터진 것은 그녀의 혈관이었기에-그녀는 한편으로 그것이 결혼이라고, 그녀가 그의 터지는 혈관을 떠맡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그것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고, 그녀가 그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직후에 그에게 생겼을 뇌종양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메리의 모습이 공감이 갔다. 나라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마지막 부분 사랑하는 파울로와 함께 이탈리아의 '불결한 집'에서 사는 메리의 모습에서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보여서 좋았다. 나는 메리가 웬지 단단한 사람같이 느껴진다.
    (293쪽) 눈의 빛에 눈멀다: '오래전 기억 속에 묻힌 녹음기와 관련된 사건이 있은 뒤로 그녀는 얇은 껍질이 자신의 가족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어머니는 "데이글 씨 가족은 안됐어. 그 사람은 늘 짜증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잖니. 우리 가족이 행복한 건 정말 행운이야." 하고 말하곤 했다. 그 모든 것이 애니의 머릿속에 소시지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그녀는 그 껍질에 작은 구멍을 내서 빠져나오려고 꿈지럭거렸다. :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라는 허구, 혹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부분에 공감이 갔다. 화목한 가족이라는 이미지를 지켜내기 위해 혹은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를 질식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는 것에 대해 '가족 제도' 밖에 나와있는 애니의 시선으로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가족 제도'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나오고 싶은가?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 2023-10-14 19:44

    동생(p245)토미가 운전하는동안 셜리는 종종 토미의 팔에손을얹었다. 피트는궁금했다. 그렇게 편안한것. 누군가를 그렇게 편하게 만질수 있다는 것은 어떤걸까. 지금 이 순간 그는 동생의 팔에 유명해진 루시를 만나려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나타난 이 동생의 팔에 손을 얹고 싶었다. -정말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러는 대신 그는 조용희 그녀의 옆아 앉아 있었다. =동생편을 읽으면서 가족에 대해 생각해봤다. 가족이란 같은 시간.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인 걸까?.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는데 불안한 피트와 과거의 장소를 방문하는게 불안한 루시의 감정이 이해되었다. 유독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은 나를 그때의 시간으로 돌려놓기 때문일 것이다.
    엄지치기 이론(p137)실수로 엄지를 내려쳤을때, 이것봐, 그렇게 세게 쳤는데도 많이 아프지 않은데... 하고 생각되는 찰나의 순간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어-어리둥절한 채 다행이라고 느끼며 안도하는 착각의 순간이 지난 뒤-살을 짓이기는 진짜 아픔이 몰려왔다.
    (p139)사람들을 당신을 놀라게 할 수 있다. 친절로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갑작스러운 능력으로도. 그 자신은 무언가를 올바르게 표현한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생각하는것을 잘표현하는것은 정말로 큰 능력이다. 감정과 다른 표현을 하거나 표현하지 않고 침묵하는것은 상대를 기망하는게 아니라 나자신을 기망하는건 아닐까?

  • 2023-10-14 20:15

    <선물>
    스노불을 사랑하는 어여쁜 소피아처럼 에이블에게도 친구가 생겼다고. 하지만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물이 그런 시간에 그를 찾아올 수 있다면 무엇이든...... 록퍼드에서 회의에 참석하려고 옷을 잘 차려입고 온 그 사랑스러운 여자의 모습이 록강 위로 급물살처럼 흘러갔다...... 그가 눈을 떴고, 그래, 바로 거기 있었다. 온전한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347쪽)
    --> 소설 속 연극 <크리스마스 캐럴>을 또다른 버전 같은 단편소설이다. 에이블과 악평을 받는 연극배우 링크 매켄지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선물’ 같은 시간. 두 사람 모두 창피함이 있고, 그것 때문에 외롭다. 함께 이야기를 하며 매켄지는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는 ‘좋은 양복’을 입은 에이블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을 하고, 매켄지의 말에 에이블은 절세를 제안하는 마음에 안 드는 사위, 에이블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창피해하는 아내, 이들과 갈등하는 마음이 있지만 타협하고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그의 수치심은 쓰레기통을 뒤지던 시절, 혼자 늙어가는 여동생에까지 이르며 증폭된다. 연관성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수치심이라는 감정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서 에이블을 괴롭게 한다. 그런데 ‘미치광이 배우’ 사회부적응자로 보일 수 있는 배우 링크 매켄지와 자신의 수치심을 이야기함으로써 그 수치심은 그를 짓누르지 않는다. 첫 프레젠테이션이라 애써 차려입고 와서 요령부득으로 회의시간을 잡아먹는 여자에 대해서까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관대해진다.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나에게도 위로가 되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눈의 빛에 눈멀다>
    소시지의 껍질은 수치심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수치심이라는 껍질에 감싸여 있었다. 아이들이 으레 그러듯 그녀는 이것을 생각보다 느낌으로 더 잘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몸에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만큼 나이를 먹으면 그것을 들고 숲속에 가서 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94쪽)

    애니는 형제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가엾은 샬린처럼 매일매일 두려움을 느끼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늘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수치심을 먹고 자랐다. 그것이 그들의 토양을 만든 자양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가장 잘 이해할 것 같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잠시 애니는 놀라움을 느꼈다. 착하고 책임감 있고 품위 있고 바른 마음을 가진 오빠와 언니는-그저 그 시간 동안에는 지구를 뒤로 하고 떠나온 듯 눈부시게 하얀 태양 가까이에 있기 위해-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걸게 되는 열정을,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무모한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그런 열정을 한 번도 알았던 적이 없었으리라는 사실에 대해. (310쪽)
    ---><무엇이든 가능하다>>의 전체 주제가 ‘수치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연결고리로 단편들은 서로 이어지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로서 수치심을 안 느끼고 살아갈 수 없다. 수치심을 느껴야 할 순간들이 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 반성하고, 결단해야 하는 순간들은 수치심과 연관 깊다. 이런 게 수치심의 순기능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치심의 역기능은 무엇일까? ‘소시지껍질’ 같이 우리를 단속하고 가두는 사회적 통념들을 생각 없이 답습하고, 그것으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집을 떠나 친구들과 지내며 다른 경험을 한 애니는 고향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언니와 오빠가 답답해 보인다. 그들의 안정에는 빠져 있는 것,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무모한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그런 열정을 한 번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스스로 수치스러움 없는 삶을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러니까, 수치심 가운데에는 수치심으로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 낯선 것을 선택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터무니없는 재단의 부작용도 있다. 이런 수치심은 소시지껍질 같은 것을 뚫고 나와야 하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열정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 2023-10-14 20:44

    바쁜 저녁이어서 짧게 올립니다.

    「계시」
    42쪽, 43쪽
    「풍차」
    335쪽, 342쪽
    위의 쪽수 중 일부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 2023-10-14 21:03

    <계시>편
    그래서 그가 말했다. “오, 루시, 정말 잘 됐구나.”. 루시가 두 팔로 그를 끌어안고 놓지 않아서 그도 그애를 안아주었다.(p.16)
    “잘 듣게. 피트. 자네 아버지가 전쟁에 나갔던 이야길 해줘서 고맙네. 자네가 해준 이야기는 잘 들었어. 자네는 부친이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고, 나는 자네 말을 믿어.” “아버지는 정말로 그런 분이셨어요!” 피트는 옅은 눈동자로 토미를 쳐다보며 거의 울부짖듯말했다. (p.33)

    “그렇다면 그 일은 그냥 흘려보내라고 제안하겠네. 자네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들과 싸워왔어.”(p.34)

    "그런 것에 투쟁이 있는 거지. (...중략...) 그리고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P.41)

    ** <계시>편에 나오는 토미 아저씨의 무심한 듯 툭~하고 뱉어낸 말이 따듯하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어느새 슬쩍슬쩍 사람을 토닥여주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 마음이 나에게까지 잔잔하게 다가온다.

    <눈의 빛에 눈멀다>편
    “예뻐졌구나, 애니.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거니? 전부 말해다오.” 그래서 애니는 큰 의자에 앉아 드레스룸과 여러 타운의 작은 아파트들, 서로를 보살펴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은 대사를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돌아오지 마라, 결혼하지 마라, 아이를 낳지 마라, 그 모든 일이 네 가슴을 아프게 할 거다.”(p.300)

    그 장면을 떠올리면 대번에 눈물이 차오르게 할 수 있었다. 그때 느낀 행복감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잃은 상실감 때문에.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었는지, 그 길이 좁은 흙길이던 때가 정말로 있었는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손을 잡고 가족이 그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일이 있기는 했었는지 궁금해졌다.(p.306)

    **<눈의 빛에 눈멀다>편에서는 오롯이 애니의 인생을, 여자의 인생을 살아내길 바라는 할머니의 진지하며 통큰 응원과 애니에게 남겨져 있는 아빠와의 행복감이 몽글몽글 느껴진다. 내심 부럽다. 나에게도 저렇게 쿨한 할머니가 있었다면...

  • 2023-10-14 21:57

    <계시> p22 그는 나이가 들수록-그는 이미 나이가 들었다-자신이 선과 악의 이 혼란스러운 다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어쩌면 인간은 애초에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었다.
    p39 "뭐랄까, 내 생각엔 뭘 할지와 뭘 하지 않을지 사이에는 늘 그런 투쟁이 있는 것 같아."
    p41 "그런 것에 투쟁이 있는 거지. 혹은 다툼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언제나 존재하지. 내가 보기엔 그래. 그리고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지."

  • 2023-10-15 07:41

    1) 금 간
    캐런 루시는 린다에게 그녀의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증언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린다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를 다그치던 캐런 루시는 몇 년전 자신의 남편이 자살한 사건을 떠올리며 자신 또한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당신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할 입장은 아니네요. 내가 유리로 만들어진 집에 돌을 던졌어요. 미안해요”라고 말을 한다.
    린다는 남편이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캐런 루시에게 동정 받을 입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건을 조용히 넘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남편과의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갈 것이었다. 린다는 이 일의 본질이 캐런 루시의 연민을 사건을 무마시키는 데 이용한 것에 대한 죄책감, 과거에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린다 자신이 겪었던 어머니의 배신과 같은 감정을 캐런 루시에게 투사해서 읽어낸다.
    --> 자신의 경험치로 얻은 성찰은 때론 타인을 더 깊게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욕구와도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 연민은 때로 대상을 진실한 삶으로 이끌기 보단 잘못된 세계를 더 공고히 구축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도 한다. 린다가 캐런 루시의 동정의 말을 듣고 해야 할 행동은 남편의 잘못된 행동을 고발하고 자신의 삶도 다른 세계로 이끌고 나와야 했다. 하지만 린다의 어머니로부터 학습된 실패한 결혼, 가난과 고립은 타인의 연민마저도 잘 못 지어 올려진 삶의 지지대로 삼으려고 한다. 여기에서 희망을 포착해야 한다면 캐런 루시를 통해 어린 린다가 겪었을 배신감의 감정을 린다 자신이 보았으므로 앞으로 전개될 린다의 아슬아슬한 결혼 생활은 서서히 금을 내고 갈라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2>눈의 빛에 눈멀다
    <도티의 민박집>에서 의사 데이비드의 애인이었던 애니의 이야기이다. 키가 크고 깡마르고 아름다웠으며 배우였던 여성, 자신보다 27살이나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이 여성에 대한 호기심은 <눈의 빛에 눈멀다>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남성동성애자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치심을 그의 모든 가족에게 자양분으로 삼고 살아가게 했다. 어쩌면 애니를 포함한 외할머니 어머니 3대의 여성이 가족의 중심인 남성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했던 고통의 뿌리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몸에 새겨져 있을 것이었다. 어릴때부터 신체에 대한 수치심과 아버지가 뿜어낸 혐오감은 어른이 되는 것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을 사랑했고 애니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동성애적 사랑을 유지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마주해야 되는 상황에서 죄책감, 분노, 사랑, 등등 복잡하고 이상한 감정들과 투쟁하며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15살에 극단을 따라다니며 배우로 성공한 애니는 무대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른이 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신체를 가지는 일이고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순수한 소녀로서만 존재한다. 아버지는 그녀가 어른이 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뒤늦게 그녀의 아버지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아버지가 자신의 눈이 멀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찬란한 눈을 마주한 것처럼 사랑에 뒷걸음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포착하며 애니 자신도 성장한다. 나는 이때 애니가 자유로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의 부모는 훌륭하고 사랑스로운 존재이지만 그 안에 결점, 부조리, 분노의 씨앗들도 함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인간은 그런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면서 삶을 구축해 나가고 있음을, 성장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회복과 성장은 무결점과 아름다운 환경에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

  • 2023-10-1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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