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9월 10일 개강 <해피크라시> 공지

겸목
2023-09-04 08:55
454

 

 

 

  <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이름이 길어서 풀네임으로 불리기 어려운 프로그램명입니다. 혹자는 '평비글쓰기'라고 하고 혹자는 '여성글쓰기'라고 각자 편의대로 부릅니다. '평비글쓰기'라는 줄임말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뭔말이야?' 알 수 없는 이름이고, '여성글쓰기'는 여성에 관한 글쓰기 혹은 여성이 쓰는 글쓰기라는 대략적인 의미만 전달되는 이름입니다.

 

 

  '여자들의 평범한 이야기는 그간 너무 이야기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극적이고 대단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면 이야기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 아닌가?' '내 이야기야말로 우리 각자가 가장 관심 있는 이야기인데, 왜 이 이야기는 이야기되지 못했는가?' '근데 왜 내 이야기하기가 이렇게 힘들까?' <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의 핵심은 평범한 여자들의 이야기이고, 극적이지 않은 이야기의 가치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시즌3 개강 공지를 올리며 이름 이야기를 떠올려본 것은, 프로그램 이름에 대해서도 각자 다르게 해석하듯이, 글쓰기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고, 자기서사글쓰기에도 오해가 있고, 그 오해를 좁혀가는 건 또 쉽지 않은 일이구나! 그러니 더 써봐야 정리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시즌3!! 새롭게 바뀐 방식으로 1년째 글쓰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애초의 계획에서 커리큘럼이 바뀐 게 많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 어떻게 해야 '나'의 이야기를, '나'의 삶을 잘 들여다보고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고요, 그건 '나'에게만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물론 우리는 바뻐서, 정신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나'를 방치하고 살기 때문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은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만 봐서는 '나'가 잘 보이지 않으니, 시야를 넓어서 '나'를 봐보도록 해요^^

 

 

  <해피크라시> 감정사회학, <런던을 걷는 게 좋아> 산책, <무엇이든 가능하다> 교차하는 인생의 이야기, <도시를 걷는 여자들> 안전담론에서 벗어나 금지된 밤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들의 도전, 네 권의 책을 읽으며 여성인 '나'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간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그간의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9월 10일 첫 시간에는 <해피크라시>(에바 일루즈) 세미나합니다. 1장(묘선주), 2장(새봄), 3장(천유상), 4장(꿈틀이), 5장(시소, 윤아) 메모 올려주세요. 맡은 부분에서 함께 읽고 싶은 내용 또는 토론해보고 싶은 내용, 질문, 생각 등 A4 반쪽~1쪽 정도 분량으로 써서 공지글 아래에 댓글로 올려주세요. 메모는 9월 9일 토요일 오후 10시까지 마감하겠습니다. 개강날 간식은 제가 준비해갈게요^^

 

 

 

"행복은 행복대로 건강하고 정상적이며 제대로 돌아가는 삶의 심리학적 최종 기준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행복의 수사학이 차츰 기능주의 수사학을 제 것으로 삼았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행복은 이제 규범이요, 행복한 개인은 정상성의 원형이다."(210쪽)

 

"오늘날의 지배 담론은 행복을 물신화하고 기능성 개념을 심리학 영역에 국한하며 건강, 성공, 자기 개선을 긍정성(높은 긍정 수준)과 결부시킨다. 긍정적 감정(기능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기능 이상적 감정)의 대립은 전통적 심리치료의 부정성을 극복하기는커녕, ‘없던 병 만들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감정은 계층화되었고 여기에 비추어 부정적이라고 평가된 사람은 제 역할을 다하며 건강하게 살기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224쪽)

 

 

 

  오늘날 '행복'은 '정상성'의 한 지표가 되었고, 부정적 감정은 치료해야 할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를 저자들은 '해피크라시'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의심해보는 일주일이 됩시다~ 

 

 

댓글 8
  • 2023-09-09 16:31

    <행복 이데올로기 비판>
    P210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시대정신의 징후를 본다.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이 되어버렸고, 행복은 행복대로 건강하고 정상적이며 제대로 돌아가는 삶의 심리학적 최종 기준이 되어버렸다. (중략) 행복은 이제 규범이요, 행복한 개인은 정상성의 원형이다.
    P245 행복학- 이 학문은 시장에 대하여 자율적이지 않고, 기술관료 정치에 거리낌 없이 재활용 되며, 기업과 군대와 신자유주의 교육 앞에 머리를 조아리기 바쁘다.

    <긍정심리학에 대한 반박>
    P219 감정은 개인에게 달렸지만, 집단, 공동체, 사회에게도 달려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다.
    P220 삶은 잡다한 양가적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P241 도덕적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열망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선을 희생하고, 다른 선을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 환원 불가능한 비극,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삶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비극이 있다.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9-09 18:48

    2장 개인주의를 더욱 선명하게

    p82 금세기 초 행복에 쏠린 돌연하고도 노골적인 관심에 질리포베츠키가 말하는 "제2의 개인주의 혁명"이 즉각 따라온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러한 문화 전반의 개인화, 심리화 과정은 자본주의가 심화된 사회들에서 정치적, 사회적 책임 고취의 메카니즘을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이로써 사실상 사회의 고유한 구조적 결함, 모순, 역설마저도 심리적 특징과 개인의 책임이라는 시각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노동은 차츰 개인 프로젝트, 창의성, 창업 정신의 사안이 되었다. 교육은 개인의 재능과 자질의 문제이고, 건강은 생활 습관과 라이프스타일의 문제이며,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화성과 궁합의 문제다. 정체성은 선택과 인격의 문제이고, 사회의 진보조차 개인적 번영의 문제처럼 되어버렸으며, 매사가 이런 식이다. 그 결과는 전반적으로 사회적 차원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심리적 차원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 사회적 문제도 개인의 책임으로 설명되어진다는 예시 중에서 다른 예는 바로 이해했지만, 사회의 진보조차 개인적 번영의 문제처럼 되어버렸다는 잘 이해 되지 않는다. 사회가 진보하면 개인들의 빈곤이 해결될 수 있으니 사회의 진보는 개인 각각의 번영의 문제일 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 이해 부족은 샘들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p91 긍정심리학의 사도들이 '환경'이라는 범주로 뭉뚱그린 소득 문제는 각별한 논의 대상이다. 이 문제에 대한 긍정심리학의 견해는 아주 분명하다. 돈은 인간의 행복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나. 리처드 레이어드 경과 같은 행복경제학자들도 다소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같은 입장이다. 레이어드는 소득이 낮을 수록 돈이 행복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커진다고 본다. 그러나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면 행복이나 정서적 안녕감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준이 되는 소득 수준은 결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p92 경제 성장이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그다지 미치지 않는다면 경제 성장을 정부 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을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공공 정책이 인간 행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없다고 믿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믿음을 명백히 부인한다. 우리는 생활 조건의 개선이 주관적 안녕감과 더 나은 삶의 수준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바다.
    -->셀리그먼의 행복공식에서 생활 환경과 그 밖의 외부요인을 10%밖에 되지 않는 다고 한 것은 무리가 있지만,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면 행복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슬로우 욕구5단계를 봐도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 등이 충족되면 우리는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예외적 탐욕으로 계속 돈을 추구할 수도 있다.) 91페이지의 소득은 개인에 대한 설명이고 92페이지의 경제 성장은 소득 하위층을 포함한 전체의 경제 성장을 말하는 것인 것 같고 그렇다면 "경제 발전이 주관적 안녕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는 생각"은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p93 생활 조건이 어떻든, 시대가 어떻든, 행복과 자기 개선의 열쇠는 늘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다나. 셀리그먼의 말에 따르면, 바뀌지 않을 조건을 바꾸겠다고 용써봐야 헛수고이고 좌절은 필연적이지만,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은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안겨줄 것이다.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왔던 이야기...

  • 2023-09-09 19:15

    제5장 행복. 새로운 정상성
    삶은 잡다하고 양가적인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까운 사람이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슬픔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들 수도 있다. 진열대에 놓은 물건을 슬쩍하는 도둑은 흥분과 죄책감을 동시에 맛볼지도 모른다. 공포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요컨대. 감정들을 확연히 구분되고 각기 뚜렷하게 정의되는 실체들처럼 생각하거나 좀 더 단순하고 기본적인 감정들의 조합처럼 생각하는 것은 전혀 타당치 않다.-중략-
    추상적 용어는 이 기분들을 그저 명명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감정적 혼합물은 감정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그자체로 일관성이 있고 쪼갤 수 없는 상태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말의 애매함 없이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명확하고 보편적인 상태는 없다. 좋음과 나쁨. 긍정과 부정. 쾌와 불쾌 기능과 기능 이상이 공존하지 않는 상태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p220)
    어떤 상황에 들어갈 때 나는 오만가지 감정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평비글 수업에 오는 것은 지독한 고통임과 동시에 의무이며 기대감이며 즐거움이다. 그런 나의 감정을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걸까? 누군가는 질문한다. 공부 하는게 좋은가 봐요? 난 좋은 건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며 답을 찾지 못한다. 이런 양가감정을 표현 못했는데 나또한 타인에게 행복vs불행으로 질문을 던진다.

    힘들고 ‘부정적인’상황에서 긍정적 요소를 찾고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피한 역경을 마주하는 좋은 태도이고 성찰과 반성을 거치기만 한다면 그 자체는 전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긍정성이 일종의 독재적 태도가 되어 불운과 무기력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하면서부터다.(p236)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에 동의 할 수 없었다. 왜 긍정적 사고가, 회복탄력성이 안 좋다고 애기하는 걸까? 나는 그걸 하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그러다 이 문장에 저자의 생각이 이해가 되었다. 뉴스를 볼 때 누군가의 애기를 들을 때 나 스스로도 무기력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현재 당신의 현실은 본인이 열심히 안해서고 매사 부정적이어서 이런 결과를 가져 왔다 생각했다. 타인에게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같은 논리로 적용한다.하지만 이 또한 구분할 수 있는걸까? 정말 무기력하면서 사회만 탓하는 사람과 우리는, 나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기존의 질서를 문제 삼기 .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우리의 정체성과 일상 행동을 구성하는 과정 의미. 실천을 들여다보기- 이 모든 것은 사회 비판의 근본적 소임이다. 전과는 다르고 더 해방적이며, 더 공정하고, 더 만족스러운 삶의 방식들을 그려보는 것도 그 소임중 하나다. (p237)

  • 2023-09-09 21:16

    제 4장
    자기 자신을 지배하려는 태도는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거니와)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자기 책임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러한 믿음은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담론이 자기 관리를 심리적 특징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기술인 것처럼 만들기 때문에, 즉 이데올로기의 요구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속성인 것 처럼 변형시키기 때문에 더욱 강화된다. 행복과학자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동일한 심리 기제 혹은 동일한 내적 근육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적합한 심리학적 기법들을 활용하기만 하면 이 기제를 얼마든지 계발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166쪽>

    -개인은 스스로 키워온 이상적 시각에 자기를 맞추려고 애쓰지만 근본적인 불완전성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다. 자아의 비실현이라는 상태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만족스럽게 다스리거나 자기를 더 예리하게 파악하거나 언제나 삶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긍정적 시각과 회복 탄력성을 더 많이 불어넣을 수는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기를 잘 만들어나가려 노력하는 개인은 결코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 점은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을 언제나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대한 역설을 발견한다. 행복의 궁극 목적이 자아를 온전히 계발하고 실현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자아는 근본적이고 영원한 불완전성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은가..<중략> 이 역설은 어떻게 그토록 쉽게 행복을 완벽하고 귀중한 상품으로 만들었는지 설명해준다. 끝없는 자기 개선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이상이 항구적 소비라는 원칙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193쪽>

  • 2023-09-09 21:33

    제1장 <전문가들이 여러분을 보살펴줍니다>>

    나는 행복의 정의를 스스로 갖고 있는가
    이번에 『해피크라시』를 읽으며 잊혔던 오래된 기억, 그리고 내겐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빨강, 노랑의 염색을 한 개성 강한 머리 스타일과 환한 웃음 가득했던 행복 전도사의 갑작스러운 자살. ‘자살을 거꾸로 쓰면 살자’가 된다며 행복을 전도하던 자칭 행복 멘토라 불리던 분. 그 당시 삶의 힘듦과 지루함으로 가득했던 중년의 아줌마들과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던 이들에게는 ‘희망 아이콘’ 그 자체였을 것이다. TV 방송은 물론이고 여러 권의 행복 관련 책을 펴내며 인기 절정이던 때에, 갑자기 찾아온 질병의 이야기를 유서에 남기며 남편과 함께 동반자살을 했다. 그 사건으로 ‘행복’해지기 유행이 주춤할 줄 알았으나 ‘긍정의 힘’, ‘웰빙’, ‘힐링’이라는 말들로 이어지며, 좀 더 건강하게, 남들보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가장 공평한 ‘시간’을 시간 단위로 쪼개고 또 분 단위로 쪼개어 가며 허투루 낭비되는 시간 없이 매 순간 무언가를 하며 노력해야, 성공하고 성공은 곧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프랭클린 플래너’(시스템 다이어리 가운데 하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가 벤자민 프랭클린이 64년동안 기록하고 실행한 13가지 덕목을 기본으로 하여 디자인 했다.)가 대유행을 했고, 나 역시 동참했었다. 나 또한 행복추구자라고 볼 수 있다.

    해피크라시 1장에서는 이러한 행복의 유행적 흐름이 절대 단순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긍정심리학과 경제학의 상호 의존 속에서 행복 경제학자들을 통해 행복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더 많은 국가가 국민의 ‘사기를 살리려면’, 국민이 생활 수준의 지속적 하락과 불평등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을 말할 수 있으려면, 심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듣고 그들의 지표를 참조.”(해피크라시, p.57)하게 되었다며, 다국적 기업의 예를 든다. 코카콜라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긍정심리학이 생산성을 높이고 업무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어서, 저비용 고효율 방법을 찾아 줄 것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나아가 다양한 SNS를 통해 데이터 활용 기반의 행복측정 방법들이 등장,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가장 선호하고 가장 기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알려주며,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정해줌으로써 가장 일반화된 행동 모델에 영향”(같은 책, p.64)을 미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행복’은 이처럼 오늘날 모든 기업과 정치인들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 되었고, “어느 한 인구 집단의 전반적 안녕감을 측정하는 양적 기준, 그것도 일급 기준”이 되었으며 “이 기준이 공공 정책, 경제 정책,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막론한 일반적인 의사 결정 과정” 이끄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영향 중에서도 가장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은, “불평등이 첨예할수록 언젠가는 기회가 있으리라 확신하는 개인은 행복을 얻는다는 식”의 주장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희망의 요인’으로 본다는 것이다. “부자의 성공은 가난한 사람에게 일종의 자극이 된다. 희망과 행복은 피차 이런 식으로 성공을 향한 동기 부여 요소들이라는 위상을 차지”(같은 책, p.73)하며 “행복은 심히 정치적 개념화”가 되었고 이것을 긍정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잘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 『해피크라시』 1장의 주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추구하던 행복이,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행복이 결코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나의 의지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성공한 이들, 그러한 성공 속에 사회적 지위를 얻고, 명예를 얻고, 부를 얻은 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저 바쁘게 정신없이 그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나의 행복추구’였다는 것인가. 아울러 이러한 행복추구에 기업이, 정부가, 사회적 제도가, 함께 합세하여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행복추구’가 흡사 음모론의 하나처럼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나 이번에 『해피크라시』를 읽으며 내가 생각하고 내가 정의할 수 있고,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마냥 기쁜 일이 가득하고, 가족 모두 무탈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적당할 수 있고, 몸이 건강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 이리한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전부인지,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도!!

  • 2023-09-09 22:02

    <들어가는 말> 정리

    이 책이 반기를 드는 대상은 행복이 아니라 ‘좋은 삶’을 특정 요소로 환원하여 파악할 수 있다는 긍정심리학의 시각이다. 긍정심리학이 옹호하는 행복 관념에 심각한 한계, 문제 있는 주장, 모순적인 결과와 안타까운 여파가 없음을 확신할 수 없다. (20쪽)

    첫째, 행복학이 과연 과학으로서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는 인식론적 사유라고 할 수 있겠다. 좀 더 나아가, 행복 개념 자체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개념일 수 있는지 그 정당성도 따져보아야 한다.
    둘째, 어떤 사회적 행위자들이 행복 관념을 유용한 관념으로 보는지, 이 관념이 어떤 이해관계와 어떤 이데올로기적 전제에 힘을 실어주는지, 이 관념이 대규모로 실천될 때는 경제적/정치적으로 어떤 결과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산업은 부와 가난, 성공과 실패, 건강과 질병이 모두 우리의 책임이라는 생각의 주입에 일조한다. 또한 구조적 문제는 없고 개인의 심리적 결합이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을 정당화하는 역할도 한다.
    셋째, 행복은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계속 변동하는 절대 목표로 제시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행복 연구자들’과 늘 자기 자아에 초점을 맞추며 끊임없이 자신의 심리적 부진을 만회하려 애쓰고 자기 변모와 자기 개선에 고민하는 ‘행복염려증 환자’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행복은 우리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한 강박을 정상으로 여기게 하려는 시장에서 완벽한 상품이 된다. 그러나 웰빙 전문가를 자처하는 연구자들과 임상가들이 제안하는 다양한 치료, 상품, 서비스에 희망을 걸었던 이들은 이 강박에 역습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행복과 고통의 관계에 대한 성찰에 기대려 한다. 행복과 긍정을 생산성, 기능성, 탁월성, 심지어 정상성과 동일시하면서 행복학은 우리에게 고통과 안녕감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강요한다. 역경을 자아를 단련할 기회와 수단으로 삼지 않는 자는 사정이 어떻든 불운을 자초한 자, 고통받아도 싼 자가 되고 만다. 선택할 것도 없다. 행복학은 우리에게 행복을 강요할 뿐 아니라 우리가 더 큰 성공과 성취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죄다 우리 탓이라고 말한다.

    ----><소녀시대>의 서현이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는다는 내용을 TV에서 보고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당시 서현은 고등학생 나이에 데뷔해 큰 성공을 이루었다. 또래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획득한 사람이다. 그런 아이돌스타라면 좀더 폼나고 멋진 꿈을 가질 거라 생각했는데 자기계발서를 공부한다고 해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자기계발서는 필독서와 같은 독서붐이 일었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기본값'처럼 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코칭프로그램과 관리가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SNS에서는 무수한 챌리지 인증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소비되고 있다. 이런 경향을 <해피크라시>라는 말로 저자들은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행복? 왜? 이런 질문 없이 행복은 추구되어야 할, 의심할 여지 없는 '지상명령'이 되었고, 그 명령을 잘 수행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전도'와 '무사유(생각없음)'을 저자들은 비판하고 있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 우리를 구속하는 이 '역전'을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개인주의와 연결짓고,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로맨틱코메디 영화 <킬링 로맨스>에서 빌런 조나단(이선균)이 애창하는 노래가 HOT의 '행복'이다. 아주 오싹한 느낌이다. 요런 감각을 어떻게 환기시키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것이 과제다.

  • 2023-09-09 22:29

    시즌3 계획서 올려요

  • 2023-09-10 06:39

    저는 발제를 했네요ㅠ 책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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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시즌1 3월 10일(일) 개강 공지 (1)
겸목 | 2024.02.28 | 조회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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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시 11월 11~12일 워크숍 공지 (13)
겸목 | 2023.11.06 | 조회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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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시 11월 5일 세미나 공지 (3)
겸목 | 2023.10.30 | 조회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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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시 10월 29일 세미나 <도시를 걷는 여자들> 공지 (6)
겸목 | 2023.10.25 | 조회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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