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리뷰3] 오늘 밤은...

도라지
2022-05-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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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박상영, 한겨레출판, 2020년)

 

나는 소설과 산문집을 좋아한다. 도서관에서 신간을 대출 받기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 원하는 신간은 즉시 구입해서 보고 소장할 책이 아니다 싶으면 알라딘 중고매장에 판다. 그리고 그 돈으로 서현 '유타로'에서 라멘을 사먹는다. 이 먹이사슬에서 박상영의 책들은 번번이 살아남았다.

 

겸목쌤이 다이어트 관련 책 리뷰를 부탁하면서 (이미 읽은)박상영 책을 줄 때, 땡큐! 했지만 막상 리뷰를 쓰려니 막막했다. 다이어트에 관련한 책도 아니고, 다이어트로 집중된 작가의 지난한 분투기도 아닌 이 책으로 뭘 쓴단 말인가! (록산 게이의 「헝거」를 챙겼어야 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학업과 가정문제로 인한 압박과 스트레스에 의해 양극성 장애와 공황증세 판명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부모님이 아들의 정신과적 치료를 거부했을 때 그가 자력으로 찾아낸 치료제는 박스 과자와 파인트 사이즈의 아이스크림. 이 선택으로 불어난 몸무게는 이후 그의 삶에서 모든 궤적의 시작이 된다.

음식배달 어플을 깔았다 지우고를 수없이 반복하며  매일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 다짐하지만 몸과 마음의 허기로 잠들지 못할까봐 그는  늘 불안하다. 결국 야식으로 폭식을 하고나면 역류하는 위산에 고통스럽지만 잠은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자신은 게으르고 한심하며 자기 관리를 못하는 개선되어야 할 존재라고 책망하면서 그는 또 다짐한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정상체중이라는 게 존재하고 날씬한 게 미의 디폴트인 사회에서 살이 쪘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에게 유달리 가혹하고도 엄격한 한국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만인은 직간접적으로 매일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시선에 노출된 처지인 것이다. 그래도 비만한 '남성'인 나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살찐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 비하는 상상을 초월한다."(p.41)

 

둘째를 낳고 몇 년 지나 건강검진을 받을 때였다. 허벅지 둘레를 왜 쟀는지 모르겠지만  간호사는 내 허벅지에 줄자를 두르더니 나를 흘끔 보며 말했다. "허벅지가 두꺼우면 나이 들어 건강할 확률이 높대요." 나는 기분이 좀 상했었다. '누가 물어봤냐고요!'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서 '젊어서 허벅지 오십 못 간다.' 라고 어디 기고라도 하고 싶지만, 여튼 지금보다 젊던 시절의 나는 튼튼한 하체가 늘 콤플렉스였다. 옷 입을 때도 최대한 펑퍼짐한 옷으로 가리고 큰 편인 키를 살려 긴 스커트로 허벅지를 감췄다.

 

왜 그랬을까? 모로쌤이 '건강 한달-몸의 일기(3호)'에 깡마른 여자들을 동경했었다고 적었는데  나도 그랬었다. 키이라 나이틀리, 기네스 펠트로, 이나영 같은 몸이 예뻐 보였다. 지금은 그렇게 깡마른 몸을 원하지 않지만 아침마다 체중계에 오른다. 늘 유지하던 몸무게가 내가 정해놓은 한도를 초과하는 날이면 식단 관리 어플에 신속하게 접속한다. 그 한도는 소위 말하는 '표준체중'이 아니라 뭘 입어도 예쁘게 보인다는 사악한 '미용 체중'에 가깝다.

 

식단 관리 어플에 목표 칼로리를 1500kcal로 설정하고 매일 세끼 먹은 것을 입력하면 어플은 알아서 내가 지금까지 먹은 칼로리와 앞으로 먹어도 되는 칼로리를 나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여기서 웃긴 것은 편식이 심하고, 배고픔을 잘 느끼지 못하며,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고, 이가 약해 딱딱하고 질긴 음식은 피하는 데다, 과식이 힘든 나로서는 평상시대로 먹어도 하루에 1500kcal를 다 채우지 못하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 별 의미 없는 식단 관리였다는 걸 확인하면서  며칠 체크하다 그만두기 일쑤다. 그런데 나는 왜 계속 이 패턴을 반복할까? 기성화된 코르셋들에 적합한 내 사이즈가 한국사회에서 살기에 편리하다고 학습돼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날씬함에 주어지는 권력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잃을까 염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살이 좀 붙으면 좋겠다. 꺼진 관자놀이에, 쑥 들어간 양 볼에, 빗금 쳐진 주름 가운데에 살포시 지방이 가 앉아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살은 (아직은)강력하게 원치 않는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몸에 대해서 세상을 통해 받아온 해로운 메세지들로 나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나의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날씬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덜 행복할 것 같아. 덜 만족스러울 것 같아." 그러므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모든 시선에 칼을 가는 동시에 매일 체중계에 오르는 이 이중생활은 한동안 더 지속될 것이다. 이런 가식적인 태도가 불편하지만 몸무게에 민감하지 않겠다는 결심 또한 참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밤 굶고 잔대도 잠은 잘 잘테지만,

덜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얄팍한 마음으로

“오늘 밤은 「헝거」를 읽고 자야지~”

 

 

 

 

댓글 7
  • 2022-05-16 06:57

    날씬함이 주는 권력! 오늘은 이 단어가 확 꽂히네요~

  • 2022-05-16 07:33

    이쯤 되면 살이 찌기 위한 고군분투도 들어보고 싶군요^^

    분명히 살이 안 쪄서, 뭘 해도 자꾸 살이 빠져서 고민인 사람도 있을텐데....

    혹시....요요? ....ㅋㅋㅋ

  • 2022-05-16 08:29

    "날씬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덜 행복할 것 같아. 덜 만족스러울 것 같아."

    증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매번 굴복하게 되는  걸림돌 같은 말..

    뚱뚱해도 행복하던데? 뚱뚱해도 좋던데? 이런... 말들이 저절로 나오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쩝

  • 2022-05-16 15:50

    요즘에는 혹시 생길 수도 있는 2세를 생각하고 둘 다 건강을 특히 챙기기로 해서 야식 안 먹고 금주하는 중인데(TMI),  제 짝꿍이 어제 그러더라고요.

    "우리 그동안 (야식 먹고 술 마시며) 즐거웠잖아요.ㅠㅠ" 

    날씬함이 주는 권력이 있다면,

    살 쪘을 때는 그 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느꼈던 쾌락, 만족을  되감기해서 누려보면 어떨까.

    살 빼는 것 못지 않게 찌는 데에도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었음을 긍정하면 어떨까.

    그러면 살 빠지던 찌던 모두 내 몸으로 연연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ㅋ

     

     

  • 2022-05-16 22:06

    음..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날씬한 몸이 권력이 된다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아요.

    오히려 건강한 몸, 근력, 체력...이런게 권력이 될수 있겠다 싶네요. ㅎㅎ

    저도 나름 체중관리를 하는데, 살이 찌기 싫은 이유는,,,옷이 불편해지기 때문이예요.

    입던 옷이 숨막혀져 못입게 된적 있거든요.

    ㅎㅎㅎㅎ;;;;;

    그리고 화장실에서 쾌변을 하는것과 체중이 관련이 커서 더 신경을 쓰죠.ㅋㅋ

    마지막으로 무릎을 위해서..

    제 주변에 무릎이 안좋아서 산 좋아하면서도  못가시는 분들이 여럿 계시거든요.

    산에 잘 올라가는 탄탄한 허벅지와 무릎! 제 눈엔 이게 권력으로 보여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22-05-16 22:26

     

    날씬함의 권력이라니…

    원하지도 않지만, 그 권력을 차지하기엔  

    날씬함의 범주가  무섭게 더 얇아지는 것 같아요.

     

  • 2022-05-22 06:59

    오십이 넘으니 그렇게 원하던 '그' 권력을 그냥 얻었은듯해요. 날씬해졌다기보다 쇠잔해진 느낌? ㅜ 으 싫타............

    권력이 권력이 아닌 웃픈 현실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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