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차 후기>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1(1~3부)

무사
2023-10-24 11:08
218

  아무도 나에게 '장애'에 관해 입장을 표명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리고 그것이 굳이 입장을 밝혀야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장애' 앞에서 오랫동안 머뭇거려왔다. 게다가 이번 양생프로젝트에서는 '장애'와 '동물'을 함께 공부하고 있으니, 도망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셈이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근무지는 산 좋고 물 좋은 곳(격지와 오지!!)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자차가 있어야만 출퇴근이 가능했다. 근골격계 질환이 있어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시도때도 없이 출근을 했어야 했던 업무의 성격상 한시간에 한대 올까 말까한 버스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 동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 조건에서 그나마 애써 찾아 공부한 것이 페미니즘이었다. 페미니즘 인식론을 통해 본 세상은 '다른' 세상이었다. 내 경험과 공부 부족 탓이었겠지만, 그 '다른' 세상 안에서도 '장애'와 '동물'(그 외 많은 문제들도)은 블러 처리되어 있었다. 아마도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를 들키기 싫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비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행을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 평소의 기질탓에 비건도 마치 유행이나 '(의식)있어빌리티'의 일환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다.(지금의 나는 겨우 '비건 지향' 정도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으며 어릴 적 기억이 소환되었다. 어렸을 적 한두번쯤 고속도로에서 작은 케이지 안에 닭을 가득싣고 달리는 트럭을 본 적 있다. 저 멀리서부터 바람에 실려오는 닭똥냄새에 찡그리며 코를 잡았었다. 그 닭들에 잠시 연민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 닭들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저 닭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도 같다.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 수나우라 테일러는 장애학의 렌즈를 통해 동물 문제를 바라본다.(16) 내가 보았던 닭들도 부리가 잘리고, 가슴무게가 거대해지도록, 1년에 알을 250개를 낳도록 품종 개변된 닭들이었을 것이다.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살처분되고, 산란계는 계란만 낳다가 골다공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외에도 무수히 행해지는 품종 개변은, 인간이 동물에 가하는 장애의 다른 표현이었다.

 

  테일러를 포함한 비판적 장애학 지형은 장애와 동물을 '불구crip'화 한다. LGBTIQA 진영이 '퀴어'를 재점유한 방식과 유사하다. "어떤 것을 불구로 만든다는 것은 장애의 역사, 정치, 자부심을 가지고 장애에 창조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고, 동시에 자립, 정상, 의료화의 패러다임을 문제 삼는 행위"(51)라며 테일러 역시 자신을 불구화한다. 문탁샘은 여기서 채용한 '불구'는 일종의 '역량' 측면에서 봐야한다고 하셨다. 근대 이데올로기의 틀이었던, 비장애중심주의, 이분법이 낳은 존재들의 위계를 벗어나게 하는 역량으로서의 '불구' 말이다.

 

  교차성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신체적/정신적 장애 자체보다 각종 구조적 불평등으로 더 억압받아왔기 때문에, '장애'는 지역, 인종, 성별, 계급, 장애의 종류 등에 달라진다는 것이다. 테일러는 장애와 동물 문제를 연결하여 교차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고, 그 억압의 중심에 비장애중심주의가 있음을 강조한다. 매우 다양한 동물들에게 놀라운 소통 능력이 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비장애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 패러다임은 공고하다. 장애인은 끊임없이 동물화되고 동물들은 인간중심적 기준(언어, 이성)에 의해 재단될 뿐이다. 테일러는 이를 문제화한다.

 

"나는 내 형상 속에서 동물을 느낀다. 이 느낌은 교감의 일종이지 수치심이 아니다. 나의 동물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내 몸이나 다른 비규범적이고 상처 입기 쉬운 몸들이 자신의 주변 세계를 움직이고, 보고, 경험하는 방식으로 존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동물화된 부위와 음직임에 대한 주장이고, 내 동물성이 내 인간성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동물성이 인간성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중략)... 우리는 모두 동물이다."(209-210)

 

  ‘인간’의 이성과 언어, 시각에 치우친 소통 능력에 갇혀있는 나에게도 벼락같이 해방은 올까? (아무래도 에세이 주제각!!)

댓글 2
  • 2023-10-24 13:58

    다들 무사님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불구화’와 ‘교차성’을 새기면서 마저 읽어보려고요~~~

  • 2023-10-24 15:16

    난 항상 동물들 편이라고 하지만...달라지는건 어렵다.
    고기를 끊겠다 하지만 먹으면 맛있다..ㅠㅠ
    잡식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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