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 후기> 애나 칭, 세계 끝의 버섯 #2 - 세계 끝의 돼지

경덕
2023-10-11 20:05
232
지난 시간에는 <세계 끝의 버섯> 7장에서 13장까지 읽고 만났어요. 한 주 쉬고 돌아오신 문탁 샘의 미니 강의로 주요 개념과 흐름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를 해석하는 학자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살펴봤어요. 칭은 자본주의 제국 바깥에 어떤 공간도 없다고 주장한 네크리-하트와, 비자본주의 형식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여기는 깁슨-그레이엄의 공로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칭은 그들과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 자본주의가 의존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찾고, 경제적 다양성을 보는 민족지적 눈으로 자본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합니다.
 
불안정성
저는 어제 두 번째 비질을 다녀왔습니다. 돼지와의 지속적인 마주침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활동에 연쇄적으로 연루되고 있어요. 이런 상태로 <세계 끝의 버섯>을 읽다 보니 곳곳에서 불안정하고 교란된 상황이 펼쳐지는 것 같고, 저 또한 일상에서 크고 작은 교란과 불안정성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들뜨기도 하고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하는 저의 마음까지 포함해서요. 칭은 불안정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 이 책은 송이버섯 상업과 생태를 추적하면서 불안정한 생계와 불안정한 환경을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각각의 사례를 통해 뒤얽힌 삶의 방식들이 열린 배치의 모자이크를 이루면서 그 하나하나가 시간적 리듬과 공간적 원호의 모자이크를 향해 더 깊게 열리는, 말하자면 나 자신이 패치성에 둘러싸여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현재의 불안정성을 지구 전체의 상태로 이해해야만 우리 세계가 처한 이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다. (27쪽)
 
관찰과 서술
'패치에 기반한 배치'는 거의 모든 챕터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패치성에 둘러싸여 있음'을 깨닫고 불안정성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칭의 작업을 따라가봅니다. 칭은 지금 여기서 맞닥뜨린 불안정성을 지구 전체의 상태로 이해해야만 우리 세계가 처한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칭이 자신의 작업과 실천을 설명하는 부분에 주목해보았습니다.
 
1) 칭은 급진적 호기심을 가지고 자연사를 서술하고, '관찰과 서술'에 가치를 두는 인류학자의 역할(265)을 강조합니다.
2) 칭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과학과 토착 지식 사이의 이분법을 거부합니다. (282)
3) 칭은 인간 및 비인간 거주자를 동시에 알고자 합니다.
- "풍경 이야기를 하려면 그 풍경에서 살아가는 인간 및 비인간 거주자를 알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마음 챙김, 신화와 전설, 생계를 위한 실천, 기록된 문서, 과학 보고서, 실험을 포함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학습법을 모두 활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82쪽)
4) 칭은 관찰과 현장연구를 통한 알아차림noticing을 강조합니다.
- "내가 옹호하는 실천의 중심에는 민족지와 자연사라는 인문학이 있다.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동맹은 관찰과 현장연구, 그리고 내가 알아차리기noticing라고 부르는 것에 전념할 것을 전제로 한다. 인간에 의해 교란된 풍경은 인문학자와 동식물 연구가가 알아차리기를 실행할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이다. 우리는 인간이 그 공간에서 만들어낸 역사, 그리고 비인간 참여자들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283쪽)
 
도나 해러웨이 X 애나 칭
칭은 서문에서 해러웨이를 언급합니다. "해러웨이와 함께 산타크루스의 페미니즘 과학학을 배우며 '비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세계를 구축하는 지식을 통해서도 자연과학과 문화연구를 가로지르는 학문이 가능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생산해낸 것 중 하나가 다종에 관한 스토리텔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분과를 가로지르며 서로를 참조하는 작업 방식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종과 종이 만날 때>, <트러블과 함께하기>에 이어 <세계 끝의 버섯>을 읽다 보니 해러웨이를 통해 만난 '반려종과 크리터들의 세계'가 칭이 전해주는 '패치의 배치를 통한 풍경에 참여하는 인간, 비인간 거주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기심
해러웨이와 마찬가지로 칭의 작업은 급진적 호기심에서 시작합니다. 호기심의 힘은 대단한가 봅니다. 해러웨이도 <종과 종의 만남>에서 짐의 개를 반견하고 이렇게 말했죠. "짐의 개는 호기심을 환기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현실 세계를 사는 반려종이 우선 다해야 할 의무이고, 심원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호기심에서 촉발된 두 학자의 작업은 인간, 비인간 거주자의 협업을 강조하고, 무구하지 않은 상황(트러블, 교란, 오염)을 전제하고, 복잡한 배치와 얽힘을 적극적으로 사유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태도를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심바이오포이에시스
그리고 칭 역시 해러웨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자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참조합니다. 칭은 생물학자 스콧 길버트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서 '홀로비온트holobiont'의 공동 발달을 뜻하는 '심바이오포이에시스symbiopoiesis'를 빌려와 "연구할수록 공생symbiosis은 예외가 아니라 '규칙'인 것 같다. 자연은 개체나 게놈보다는 '관계'를 선택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이종 간 만남은 항상 역사의 단위이고 '생겨난 일들'인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느 일본의 과학자의 발을 빌려 송이버섯이 "의도치 않은 경작"(271)의 결과라고 해요. 저는 인간이 의도할 수 없지만, 인간의 의도 없이는 경작될 수 없는 경계 지점을 '가장자리에서의 경작', '자연문화의 교차지점', '오염돤 다양성과 얽힘의 발생 장소'라고 정리해보았습니다.
 
부활
칭은 파괴 이후에도 부활하고, 온갖 모욕에도 부활을 멈춘 적이 없는 숲의 생명력을 예찬합니다. "사람과 나무는 되돌릴 수 없는 교란의 역사에 갇혀 있다. 그러나 몇몇 종류의 교란이 일어난 후에는 많은 생명을 양육하는 유형의 재성장이 뒤따랐다. (...) 맞물리는 작은 소용돌이는 교란이라는 큰 강의 내부에 존재한다. 그 소용돌이는 복원을 이루어내기 위한 인간의 재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확실한 장소다. 그러나 숲의 관점 또한 존재한다. 온갖 모욕에도 부활은 아직 멈춘 적이 없다." (338쪽)
 
저는 버섯과 소나무의 자리에 돼지를 놓아봅니다. 온갖 모욕으로 점철된 가축 동물의 부활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동물과의 만남을 면밀하게 탐구한 해러웨이도 가축동물과의 깊은 만남은 주저했습니다. <종과 종이 만날 때> 서문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을 언급하며 "식품 - 그리고 섬유- 을 생산하는 크리터들을 비롯해서, 일을 하는 동물들이 이 책 끝까지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마지막 장에서 "그러나 테크노문화적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대의 수렵, 죽이기와 먹기가 특히 가까운 이 활동에 관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이것은 거대하고 복잡한 주제이고, 나는 그 깊은 곳까지 들어갈 생각은 없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코스모폴리틱스의 식탁으로 넘어가죠. 저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은 부분입니다. 
 

반려종(companion) X 다종민족지(multispecies ethnography) X 동물구호운동(animal save movement)

공장식축산이라는 끔찍한 교란은 가축전염병과 살처분이라는 끔찍한 교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배치로부터 구조된 새벽이, 잔디와 새벽이생추어리라는 다종공동체는 새로운 배치와 풍경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온갖 모욕에도 멈추지 않는 '부활'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고 있는 걸까요? 숲의 관점과 자연사/민족지적 실천을 통해 나무와 버섯의 부활을 목격할 수 있다면, 누구의 관점과 실천을 통해 가축동물의 부활을 목격할 수 있을까요? 교란 이후에 재구성되는 배치 속에서 돼지를 중심으로 하는 풍경을 살펴보는 시도는 가능할까요? 비건 문화와 관련된 자본주의적 공급사슬과 구제 축적, 주변자본주의에 관한 연구도 가능할까요? 해러웨이와 칭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흐름 속에서 반려종, 다종민족지, 동물권 운동의 얽힘과 교차가 가능할까요?
 
알아차림noticing vs 알아차림awareness/sati
- 무엇을 알려 하건 간에 우리는 알아차림의 기술을 회생시키고 민족지와 자연사를 아울러야만 한다. (79쪽)
 
이번주에 불교학교에서 호두마을로 명상수련을 다녀옵니다. 마음챙김의 알아차림과 관찰과 서술의 알아차림은 연결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한 주 쉬고 담주에 뵙겠습니다..^^)
댓글 5
  • 2023-10-12 07:32

    지난주 문탁쌤의 미니강의와 오늘 경덕쌤의 후기-정리를 읽으니 머리속의 몽롱함이 좀 가시네요.
    다른 쌤들은 정말 재미있었다,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 글을 쓸수 있을까, 감탄들을 하셨는데 저는 사실 잘 이해도 안되고 재미도 없고..일본애기가 잔뜩 나와 불편하기도 하면서 읽었습니다. 역쉬 공부 내공이 아직 미천하여 그런가 혼자 낙담하며..^^;;;;;
    그래도 해러웨이와 다른 애기를 하는것은 아니라는 것에 정신줄 붙잡고 다시 읽어나갑니다.
    저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애나 칭의 이야기에 감명ㆍ감탄ㆍ감동!! 받을날이 오겠죠?! 아닌가.ㅠㅠ ㅎㅎ
    여튼 경덕쌤의 정리와 소회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정리하다뉘 감탄중..수고하셨습니다.
    명상 잘 다녀오시공 봐용.

    • 2023-10-12 08:34

      하하하.... 그럴수도 있지요, 뭐 낙담꺼정...^^
      재밌으면 재밌는대로 날아가듯 읽고, 재미없으면 없는대로 꾸역꾸역 읽고, 그렇게 도장깨기 해나가는 수 밖에 없시유~~

    • 2023-10-12 19:27

      저는 날아가듯 말듯 꾸역꾸역 읽고 있어요ㅎㅎ 칭보다 샘이 전해주는 밥상 모임 이야기에 감명, 감탄 감동!! 애나 칭의 마지막 이야기는 담주에 윤경샘이 들려주세요~~

  • 2023-10-12 08:36

    경덕님은 후기가 거의 에세이 초안이네유.
    이거 발전시켜 에세이쓰면 되겠네
    "돼지는 부활할 수 있을까?" ☺️😁😜

    • 2023-10-12 19:29

      헐 곧 에세이 기간이... 곧 연말이... 한 해가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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