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유학점검기

현민
2024-02-16 09:11
289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태어난 나라, 하지만 낯선 타지.

한국에 돌아가 비자 받기를 기다리면서 4년간 일하던 서점을 정리했다. 떠난다고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같은 해의 초겨울, 독일에 다시 똑 떨어졌다. 한국보다 시원하고 오후 10시까지 해가 짱짱한 여름만 알았던 나는 물론 독일의 겨울 해가 그렇게 빨리 지는지 몰랐다. 독일 겨울 날씨에 대한 충격과 함께 집도 없었던 나는 척박한 겨울 3개월간 홈리스 생활을 했다. 사이비 교회에서 3주, 그 후로는 텅 빈 아파트에서 2달간 지냈다. 꽤나 유명한 사이비였는데 편견이 너무 없었던 건지 교회 안에 즐비한 힌트에도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두 달 간 지냈던 아파트는 곧 독일로 이민 올 한국 가족이 미리 계약해놓은 집이었다. 전에 지내던 교회보다는 나았지만, 가구 하나 없는 곳에서 가끔 혼자 말을 하면 메아리가 울려서 공허함이 크게 느껴졌다. 세탁기가 없어서 손으로 빨래를 하고, 열심히 밥을 차려 먹는 일이 빈 시간들을 견뎌내는 데 중요했다. 외국에서 혼자 사는 게 그닥 나와 맞는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쯤, 사람들과 연결되는 일이 간절해졌다.

 

독일은 어디를 가도 집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한국에서 자취 집 구할 때는 그나마 고를 수라도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감각이 필요했다. 집 구하는 앱을 통해 몇백 통 넘는 메세지를 보내야 한두 곳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그러다 지금 사는 셰어하우스에 오게 되었다. 2월에 입주해 11명의 친구이자 가족을 얻고, 그들과 두텁게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면서 독일에서의 삶이 견딜 만 해졌다.

집을 찾고 나서는 아침에 일어나 어학원을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하고, 저녁엔 둘러앉아 수다를 떨면 하루가 금방 갔다. 혼자일 땐 이 겨울을 보내야 봄이 온다는 게 막막했는데, 겨울은 함께보내야 하는거구나 싶어졌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맨몸으로

 

한국이 지겨웠다. 조그만 동네에도 문제가 너무 많았고, 가족도 나의 삶을 자꾸 어렵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거창한 명분을 위해 거리로 나갔고 어느 날은 숨이라도 쉬어보려고 친구들을 찾아갔다. 무언가 바꿔보려고 애를 쓰다가 두 권의 책도 만들어버렸다. 변화라는 게 금방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소진됐다.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사실 상담을 해야 할 사람은 현민씨가 아니에요. 위로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화가 났다. 그럼 내가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자꾸만 좁아지고, 슬퍼지고, 예민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사람을 만나도 새롭지 않았다. 어디 사는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이들과 친구인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나를 그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를 소개하는 설명들이 가치가 없어지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삶을 결핍이 아니라 풍족함으로 감각 할 수 있을까? 오랜 질문이었다.

 

독일에서의 3개월 이후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셰어하우스였다. 이사한 직후에는 밉보이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긴장하고 친절하게 행동했다. 누군가 청소를 안 해서 다른 플랫메이트들이 화가 나면 대신 청소를 한다던지 말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플랫메이트들의 생활방식은 예의나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끔은 묻지 않고 서로의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먹었고, 제때 집 청소를 하지 않았고, 가끔은 싸가지 없어 보일 만큼 자기주장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다. 짜증은 나지만 왜 그랬는지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했고, 그러다 서로의 습관이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나치게 친절했던 이유는 내가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이사 온 뒤 어떤 일에도 굳이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던 나에게 플랫메이트들은 나의 의견을 계속 물으며 이곳은 너의 집이기도 하다고 말해주었다. 어느새 나도 배고프고 요리하기 싫을 때는 하루 종일 친구들에게 빌붙어 먹었고, 가끔은 집을 더럽힌 뒤 치우는 것을 잊어버렸고, 누가 청소를 제때 하지 않을 때는 문제제기를 했다.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그들이 나를 이해할 거라는 신뢰가 생겼다. 잘못을 했다면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좋은 게 있으면 그들이 생각났고, 나누는 기쁨에 몰두했다. 12명이 모두 너무나 다른데, 함께 지낸 시간 동안 그들이 나와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4년 1월 1일 우리 중 몇은 함께, 몇은 따로 새해를 맞았다. 모두들 새해가 되자마자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받는지 너희로부터 배웠다고. 보내고 곱씹어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느낀만큼 표현하고 받은 걸 느끼면 되었다. 그걸 이들로부터 배웠다.

 

집 계단에 걸려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T의 그림

 

최근엔 첫 면접을 봤다. 나는 출판사에서 원고부터 책 홍보까지 전반적인 일을 경험하는 직종 Medienkauffrau Medien und Print(영어나 한국어로는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는 모르겠다)에 지원하고 있다. 독일어로 하는 첫 면접에 지나치게 긴장한 데다가 도움을 청하는 일도 어색해하는 나를 친구들이 잡아 앉혔다. 헝가리인이지만 독일에서 자란 티는 나와 면접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말을 하다가 막히면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해주었고, 말이 막힐 때는 물을 마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뼛속까지 독일인이자 네덜란드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는 니키는 전날 함께 침대에 앉아 나와 책의 역사를 다시 재점검하면서 내게 어떤 경험과 강점이 있는지 되짚어주었다. 긴장감에 질린 나는 내가 너무 부족한 것만 같은데 자신감 넘치는 척하는 거 너무 싫다고 징징댔다. 니키는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억지로 척할 필요 없다고, 하지만 네가 이미 해낸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고.

그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나의 서점와 내가 만든 책들이 더 좋아졌다. 혼자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도 내가 없었다면 하기 힘들었을 일이다. 정상규범에 맞게 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해받기 어려울거라고 생각하면서 시도하기를 두려워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처음 학교를 다녀온 아이처럼 경험담을 떠들었다. 그들은 내가 독일에서의 첫 인터뷰를 마쳤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우리가 함께 살지 않았던 시간이 무수한데도 그들이 오늘의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창문에 해가 들면 보이는 필름

 

지난 한 해의 기억이 선명하다. 일년 동안 새롭고 기묘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종종 겪었다. 요새는 숨쉬기가 편하다. 가끔 살아서 좋다고 말하고 놀란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길을 갈 수 있고, 먼 곳에 갔다 돌아오면 집 앞 대로에서부터 익숙함에 마음이 놓인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껄끄럽지 않아졌고, 어느 날은 잠깐 내가 동양인 여자애라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배낭 메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보다 한 곳에 머무르면서 나의 공간의 이름을 부여하고 섬세하게 가꾸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졌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익숙함을 탐험하면서 작년과는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최근에 했던 모험

댓글 5
  • 2024-02-16 20:35

    저의 첫 해외여행지가 독일이었어요.
    독일에 도착했을 때, 여기서 살고 싶다. 딱 5년만.. 이런 생각을 했는데 ㅋㅋㅋㅋ
    익숙했던 곳을 뒤로 하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저의 오랜 꿈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저도 언젠간...!!!

  • 2024-02-16 20:36

    현민이에게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안심이 됩니다.
    아마 현민이가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2024년, 독일에서, 또 한국에서 우정을 쌓고 지지받고 지지하고 연대하며 함께 잘 살아 봅시다!!

  • 2024-02-17 08:22

    글에서 뭔가 변화의 바람이~~ 현민의 바람을 응원합니다 ~

  • 2024-02-17 10:50

    살짝 울컥한 느낌은 뭘까?
    늙은게구나...쩝!

    멋있다, 현민아.
    올해는 꼬박꼬박 글쓰자^^

  • 2024-02-18 07:21

    더 설명이 잘 되는 느낌! 그래서 읽기 좋았음^^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22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경덕
2024.04.02 | 조회 307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모로
2024.03.25 | 조회 342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341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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