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약방 에세이
  김지영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다.” (『각자도사 사회』 217쪽)     1. 결국은 마주해야 할 ‘사회’   불현듯 찾아온 갱년기를 따라 ‘잘 늙고 싶다’라는 소망도 함께 왔다. 처음 그 소망이 가져다 준 감정은 조급함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젊은 날의 고민이 호기로움이었다면, 나이듦과 함께 찾아온 고민에는 ‘내 나이가 벌써? 앞으로 어떻게 살지?’라는 당혹감과 초조함 같은 것들이 배어있었다. 젊은 시절, 그 호기로움에 힘입어 나는 공공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고, 운 좋게도 직장생활 대부분을 정부, 지자체 등 공공조직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가끔은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데 나도 일조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한편으로, 사소한 것 하나 바꾸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이 넘쳐나고,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선출된 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은 더 자주 일었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담당 부서와 대화하다 보면, 기준과 형평성, 재정 문제로 무장한 반대논리에 숨이 막혔다. 이해관계자나 정책대상자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요구에서 느껴지는 이기심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협상과 타협은 절대 할 수 없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제 나는 세상을 바꿀 힘을 가졌다고 여겼던 그 곳을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현장이 주었던 기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의 양극화와 정체를 알...
  김지영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다.” (『각자도사 사회』 217쪽)     1. 결국은 마주해야 할 ‘사회’   불현듯 찾아온 갱년기를 따라 ‘잘 늙고 싶다’라는 소망도 함께 왔다. 처음 그 소망이 가져다 준 감정은 조급함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젊은 날의 고민이 호기로움이었다면, 나이듦과 함께 찾아온 고민에는 ‘내 나이가 벌써? 앞으로 어떻게 살지?’라는 당혹감과 초조함 같은 것들이 배어있었다. 젊은 시절, 그 호기로움에 힘입어 나는 공공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고, 운 좋게도 직장생활 대부분을 정부, 지자체 등 공공조직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가끔은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데 나도 일조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한편으로, 사소한 것 하나 바꾸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이 넘쳐나고,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선출된 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은 더 자주 일었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담당 부서와 대화하다 보면, 기준과 형평성, 재정 문제로 무장한 반대논리에 숨이 막혔다. 이해관계자나 정책대상자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요구에서 느껴지는 이기심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협상과 타협은 절대 할 수 없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제 나는 세상을 바꿀 힘을 가졌다고 여겼던 그 곳을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현장이 주었던 기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의 양극화와 정체를 알...
문탁 2023.05.02 조회 64
인문약방 에세이
    바람     1. 간병살인을 부르는 사회   "의료 전달 체계와 건강보험 수가의 난맥상으로 수술 이후의 돌봄은 사실상 가족 및 보호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로 남는다. 가족 사이에 도리가 강조되고 며느리의 ‘나홀로’ 돌봄은 간과되며 노인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를 통한 가족의 오래된 질서를 돌보고 있다."  (『각자도사 사회 』 78쪽)   2021년 11월 21일 자 한겨레 신문에는 ”뇌출혈 아버지 ‘간병살인’ 논란 20대, 항소심도 유죄“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소된 내용은 청년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 대구 한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치료비 때문에 퇴원했으나 퇴원 이튿날부터 식사와 물, 처방약을 주지 않고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어린 나이에 부모나 조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결국 살인을 하게 된 현실로 주목받았다.   『간병살인 154명의 고백』에 따르면 간병은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간병살인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독박 간병으로 우울증을 앓게 되며 평균 6년 5개월이라는 간병기간 동안 경제적 압박으로 가정불화 같은 또 다른 고통에 노출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간병인을 쓰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지만 하루에 15만원이나 하는 간병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하루 종일 환자를 돌보며 마음도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간병살인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다정한 부부이거나 헌신적인 부모이거나 효자, 효부로 불린 이들이었다고 한다.   가족주의를 등에 업은 돌봄 노동의 현실은 돌덩이를 정상에 끌어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이미지와...
    바람     1. 간병살인을 부르는 사회   "의료 전달 체계와 건강보험 수가의 난맥상으로 수술 이후의 돌봄은 사실상 가족 및 보호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로 남는다. 가족 사이에 도리가 강조되고 며느리의 ‘나홀로’ 돌봄은 간과되며 노인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를 통한 가족의 오래된 질서를 돌보고 있다."  (『각자도사 사회 』 78쪽)   2021년 11월 21일 자 한겨레 신문에는 ”뇌출혈 아버지 ‘간병살인’ 논란 20대, 항소심도 유죄“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소된 내용은 청년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 대구 한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치료비 때문에 퇴원했으나 퇴원 이튿날부터 식사와 물, 처방약을 주지 않고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어린 나이에 부모나 조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결국 살인을 하게 된 현실로 주목받았다.   『간병살인 154명의 고백』에 따르면 간병은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간병살인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독박 간병으로 우울증을 앓게 되며 평균 6년 5개월이라는 간병기간 동안 경제적 압박으로 가정불화 같은 또 다른 고통에 노출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간병인을 쓰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지만 하루에 15만원이나 하는 간병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하루 종일 환자를 돌보며 마음도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간병살인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다정한 부부이거나 헌신적인 부모이거나 효자, 효부로 불린 이들이었다고 한다.   가족주의를 등에 업은 돌봄 노동의 현실은 돌덩이를 정상에 끌어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이미지와...
문탁 2023.05.02 조회 61
인문약방 에세이
  김영선     "'수술을 받게 하시면 안 돼요' 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나는 엄마의 수술을 막지 못했다. 오랜 고통으로 인해 환자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그런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환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 같으면 환자를 죽게 했을 거예요',  그런데 처음으로 이러한 시련이 닥쳐오자 나는 머뭇거리고 말했다. 내 개인적인 양심을 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양심에 극복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당신은 의학의 기술에 가장 굴복한 거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거지.”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p73)     1.아버지의 수술과 회한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으며 부모님의 수술을 할 때를 기억하며 보부아르가 되었다가, 보부아르의 엄마가 되었다가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가족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면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간다. 그리고 의사에 의해 선택이 강요된다. 수술받지 않으면 죽음으로 즉결되기 때문에 수술을 결정하고 만다. 수술을 선택하지 않으면 마치 내가 돌아가시게 한 것 같은 불효의 마음이 든다. 하지만 수술 도중 돌아가실 수도 있고, 수술 후 여생이 수술하지 않은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돌아가실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영선     "'수술을 받게 하시면 안 돼요' 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나는 엄마의 수술을 막지 못했다. 오랜 고통으로 인해 환자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그런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환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 같으면 환자를 죽게 했을 거예요',  그런데 처음으로 이러한 시련이 닥쳐오자 나는 머뭇거리고 말했다. 내 개인적인 양심을 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양심에 극복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당신은 의학의 기술에 가장 굴복한 거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거지.”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p73)     1.아버지의 수술과 회한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으며 부모님의 수술을 할 때를 기억하며 보부아르가 되었다가, 보부아르의 엄마가 되었다가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가족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면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간다. 그리고 의사에 의해 선택이 강요된다. 수술받지 않으면 죽음으로 즉결되기 때문에 수술을 결정하고 만다. 수술을 선택하지 않으면 마치 내가 돌아가시게 한 것 같은 불효의 마음이 든다. 하지만 수술 도중 돌아가실 수도 있고, 수술 후 여생이 수술하지 않은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돌아가실 수 있기 때문이다.  ...
문탁 2023.05.02 조회 54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오랜만에 성산동 공동육아 원년 멤버들이 평창 코하우징에 모였다. 성산동에서 소행주 1호 에 살며 소행주의 확장에 여념이 없는 ‘박장’네, 하고 싶었던 해외봉사를 한 2년간 하다가 돌아온 ‘밤비’, 공동육아와공동체 사무총장을 지내고 은퇴한 ‘올리브’네, 마포 두레생협을 만들어 오랫동안 운영하고 지금은 원주생협 활동하고 있는 ‘참깨’네, 추운 것을 싫어하는 ‘짱아’를 위해서 양평으로 이사간 성산동 활동가 짱인 ‘짱가’네가 왔다. 모두들 지난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아이들 어렸을 적 이야기로 시작해서, 녀석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이라이트는 그 때 말썽이란 말썽은 골라서 피우며 부모들의 속을 그렇게도 썪이던 두 녀석이 함께 창업하여 제법 자리를 잡았단다. 녀석들이 사장이 되어 “요즘 얘들은 열정과 끈기가 없어서 조금만 힘들면 걍 그만 둔다“고 힐난했다고 할 때, 모두가 빵 터졌다. 아이들의 결혼이야기를 거쳐서, 얼마 전에 손주를 본 우리와 ‘밤비’네의 육아 이야기로 건너 갔다. 소행주 1호에 살고 있는 ‘밤비’는 직장있는 딸네가 아이를 낳고 매우 힘든 일상을 지내는 것 같아서 주중에 손주를 돌본다고 하였다. 30년전, 공동육아를 시작할 때에 ‘우리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육아하지 않는 나은 사회’를 꿈꾸며...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오랜만에 성산동 공동육아 원년 멤버들이 평창 코하우징에 모였다. 성산동에서 소행주 1호 에 살며 소행주의 확장에 여념이 없는 ‘박장’네, 하고 싶었던 해외봉사를 한 2년간 하다가 돌아온 ‘밤비’, 공동육아와공동체 사무총장을 지내고 은퇴한 ‘올리브’네, 마포 두레생협을 만들어 오랫동안 운영하고 지금은 원주생협 활동하고 있는 ‘참깨’네, 추운 것을 싫어하는 ‘짱아’를 위해서 양평으로 이사간 성산동 활동가 짱인 ‘짱가’네가 왔다. 모두들 지난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아이들 어렸을 적 이야기로 시작해서, 녀석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이라이트는 그 때 말썽이란 말썽은 골라서 피우며 부모들의 속을 그렇게도 썪이던 두 녀석이 함께 창업하여 제법 자리를 잡았단다. 녀석들이 사장이 되어 “요즘 얘들은 열정과 끈기가 없어서 조금만 힘들면 걍 그만 둔다“고 힐난했다고 할 때, 모두가 빵 터졌다. 아이들의 결혼이야기를 거쳐서, 얼마 전에 손주를 본 우리와 ‘밤비’네의 육아 이야기로 건너 갔다. 소행주 1호에 살고 있는 ‘밤비’는 직장있는 딸네가 아이를 낳고 매우 힘든 일상을 지내는 것 같아서 주중에 손주를 돌본다고 하였다. 30년전, 공동육아를 시작할 때에 ‘우리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육아하지 않는 나은 사회’를 꿈꾸며...
가마솥 2023.04.26 조회 242
먼불빛의 웰컴 투 60
*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먼불빛 2023.03.27 조회 616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나의 사업장이 넓혀졌다    몇 년 전에 사 놓고 나 혼자 가끔씩 튕겨보던 기타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헌데, 동천동 예술 플랫폼 꿈지락(꼼지락이 아님!)에 기타 강습이 생겼다.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었는데, 아주 잘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치던 ‘로망스’로 시작했다. 어느 강습 날 저녁, 연습실 앞 복도가 난리가 났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 것인지, 복도에서 물이 넘쳐 계단을 따라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추운 날이긴 하였지만 계량기 동파(凍破)는 아니었다. 물이 새는 곳을 살펴보았다. 전기온수기를 쓰고 있었는데, 냉수 파이프를 온수기에 연결하여 물을 데워 사용하고 있었고, 온수 파이프는 그냥 잘려진 채로 있었다. 그 곳에서 물이 펑펑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랍쇼? 온수 파이프를 왜 이렇게 방치했지? 꿈지락 회원인 바람님이 내일 아침에 주인에게 전화해서 해결하겠다고 해도, 내게는 이미 기타 연습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일단 계량기를 잠그고 여기 저기 조사를 하며 해결방법을 강구한다. 잘려진 온수 파이프밖에 다른 원인이 없다. 그런데 가만, 이것이 원인이라면 왜 지금에서야 그곳에서 물이 새는 것이지? 음...... 두께...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나의 사업장이 넓혀졌다    몇 년 전에 사 놓고 나 혼자 가끔씩 튕겨보던 기타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헌데, 동천동 예술 플랫폼 꿈지락(꼼지락이 아님!)에 기타 강습이 생겼다.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었는데, 아주 잘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치던 ‘로망스’로 시작했다. 어느 강습 날 저녁, 연습실 앞 복도가 난리가 났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 것인지, 복도에서 물이 넘쳐 계단을 따라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추운 날이긴 하였지만 계량기 동파(凍破)는 아니었다. 물이 새는 곳을 살펴보았다. 전기온수기를 쓰고 있었는데, 냉수 파이프를 온수기에 연결하여 물을 데워 사용하고 있었고, 온수 파이프는 그냥 잘려진 채로 있었다. 그 곳에서 물이 펑펑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랍쇼? 온수 파이프를 왜 이렇게 방치했지? 꿈지락 회원인 바람님이 내일 아침에 주인에게 전화해서 해결하겠다고 해도, 내게는 이미 기타 연습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일단 계량기를 잠그고 여기 저기 조사를 하며 해결방법을 강구한다. 잘려진 온수 파이프밖에 다른 원인이 없다. 그런데 가만, 이것이 원인이라면 왜 지금에서야 그곳에서 물이 새는 것이지? 음...... 두께...
가마솥 2023.03.11 조회 324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그래서 나는 저항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과감히 거부했다”라고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할까. 제도의 수혜자로 힘없는 ‘약자’로서의 하소연, 소심한 복수로 이 글을 쓴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주관적  감정의 덩어리만 풀어놓았다. 그래서 이 글은 미완성이다. 언젠가 이 주제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성찰과 깨달음의 글을 다시 쓰는 나를 기대해 본다.     정년퇴직 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년 백수. 백수가 되기 위한 필수 아이템, 백수 패션의 완성을 위해 나는 1+1 하는 저가 의류 매장에서 츄리닝 바지 2개와 맨투맨 티 2개를 샀다. 백수 패션은 바깥 생활에 요구되는 눈치와 예의 따위를 버리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런 자유로운 백수로 좀 더 살고 싶었으나 정년 백수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놓치기 아까운 혜택이었다. 정년퇴직도 비자발적 실업이므로 실업급여가 지급되는데, 퇴직한 날로부터 1년 이내 받지 않으면 모두 다 소멸하기 때문에 빨리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순간부터 매월 급여를 받기까지 제도는 내가 얼마나 비루하고 하찮은 인간인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재취업이 전제된 조건부 급여의 성격은 자유로운 백수의 영혼이 아닌 비루한 ‘노인 실업자’가 되는 일이었다. 조건을 맞추기 위해 찾아본 일자리는 나의 취업 의지를 더 꺾었고, 실업급여는...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그래서 나는 저항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과감히 거부했다”라고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할까. 제도의 수혜자로 힘없는 ‘약자’로서의 하소연, 소심한 복수로 이 글을 쓴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주관적  감정의 덩어리만 풀어놓았다. 그래서 이 글은 미완성이다. 언젠가 이 주제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성찰과 깨달음의 글을 다시 쓰는 나를 기대해 본다.     정년퇴직 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년 백수. 백수가 되기 위한 필수 아이템, 백수 패션의 완성을 위해 나는 1+1 하는 저가 의류 매장에서 츄리닝 바지 2개와 맨투맨 티 2개를 샀다. 백수 패션은 바깥 생활에 요구되는 눈치와 예의 따위를 버리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런 자유로운 백수로 좀 더 살고 싶었으나 정년 백수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놓치기 아까운 혜택이었다. 정년퇴직도 비자발적 실업이므로 실업급여가 지급되는데, 퇴직한 날로부터 1년 이내 받지 않으면 모두 다 소멸하기 때문에 빨리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순간부터 매월 급여를 받기까지 제도는 내가 얼마나 비루하고 하찮은 인간인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재취업이 전제된 조건부 급여의 성격은 자유로운 백수의 영혼이 아닌 비루한 ‘노인 실업자’가 되는 일이었다. 조건을 맞추기 위해 찾아본 일자리는 나의 취업 의지를 더 꺾었고, 실업급여는...
먼불빛 2023.02.27 조회 400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외워야 하느니라   문탁에서 10년을 공부하고 있는 마눌님이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논어(論語) 책(?)을 시도 때도 없이 외운다. 특히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에는 거의 백퍼센트다. 방금 읽었던 앞 페이지도 다시 봐야 할 때가 빈번한 이 나이에 논어를 통째로 외운다고 시도하니, 무섭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먼저 그의 말을 이해하고 나의 말로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외우는 것일 게다. 나도 함 해볼까?   문탁 홈페이지를 열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공부하는 방식이 크게 보아서 선생님이 하는 강의가 있고, 참가자들끼리 하는 세미나가 있다. 일단 발제없이 듣기를 잘하면 되는 논어 후반부 강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공부도 쉽지 않다. 학교 다닐 때처럼 기록하고 정리하여야 따라 갈수 있었다. 외운 것을 까먹어 헷갈리는 상황에서도 ‘그렇지!’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강의를 들었다.   반장님이 강의 마지막 날 행사에 대해서 말한다. 다른 강의들은 에세이를 쓰지만 이번 강의에서는 논어 ‘낭송(朗誦)’을 하겠단다. 다만, 책을 보고 읽는 게 아니고 암송(暗誦)하는 것이란다. 나도 외워 본다. 첫 페이지, 논어 학이(學而), 제...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외워야 하느니라   문탁에서 10년을 공부하고 있는 마눌님이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논어(論語) 책(?)을 시도 때도 없이 외운다. 특히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에는 거의 백퍼센트다. 방금 읽었던 앞 페이지도 다시 봐야 할 때가 빈번한 이 나이에 논어를 통째로 외운다고 시도하니, 무섭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먼저 그의 말을 이해하고 나의 말로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외우는 것일 게다. 나도 함 해볼까?   문탁 홈페이지를 열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공부하는 방식이 크게 보아서 선생님이 하는 강의가 있고, 참가자들끼리 하는 세미나가 있다. 일단 발제없이 듣기를 잘하면 되는 논어 후반부 강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공부도 쉽지 않다. 학교 다닐 때처럼 기록하고 정리하여야 따라 갈수 있었다. 외운 것을 까먹어 헷갈리는 상황에서도 ‘그렇지!’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강의를 들었다.   반장님이 강의 마지막 날 행사에 대해서 말한다. 다른 강의들은 에세이를 쓰지만 이번 강의에서는 논어 ‘낭송(朗誦)’을 하겠단다. 다만, 책을 보고 읽는 게 아니고 암송(暗誦)하는 것이란다. 나도 외워 본다. 첫 페이지, 논어 학이(學而), 제...
가마솥 2023.02.19 조회 474
문탁의 나이듦 리뷰
다른 할배의 탄생 -영화, <그랜토리노>(2009,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글에는 두 개의 영화가 등장하는데 둘 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왜 내 눈엔 할머니들만 보이는 걸까?   87세에 한글을 깨쳐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라는 시를 쓴 칠곡의 박금분 할머니가 94세를 일기로 얼마 전 돌아가셨다. 신문 기사를 보니 당신 시처럼, 당신 바람처럼 가신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박 할머니 기사를 찾아 읽다가 소위 ‘권안자체’ ‘추유을체’ ‘이종희체’ ‘김영분체’ ‘이원순체’ 등 칠곡할매체의 주인공들의 짧은 글도 읽게 되었다. 폰트 개발을 위해 4개월 동안 한 명당 2,000장의 종이를 사용했다는 할머니들의 글씨는, 내용도 폰트도 따뜻하고 정감이 넘쳤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의 저자인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도 비슷했다. 거기에도 할머니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에는 그 험난한 생애 여정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뭔가가 있다. 노년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청’의 구술작가 ‘육끼’ 역시 주름진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편안해지며, 그 주름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아카이브 같다고 말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의 얼굴은 묘하게 아름답다. 웃을 때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그 주름들은 길게 이어진 밭의 이랑과 고랑을 연상시킨다...나는 밭의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내는 굴곡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할머니들의 주름을 볼 때도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 밭의 이랑 고랑도, 할머니들의 주름도 아주 평범하지만 들을수록 찰지고 구성진 이야기를...
다른 할배의 탄생 -영화, <그랜토리노>(2009,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글에는 두 개의 영화가 등장하는데 둘 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왜 내 눈엔 할머니들만 보이는 걸까?   87세에 한글을 깨쳐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라는 시를 쓴 칠곡의 박금분 할머니가 94세를 일기로 얼마 전 돌아가셨다. 신문 기사를 보니 당신 시처럼, 당신 바람처럼 가신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박 할머니 기사를 찾아 읽다가 소위 ‘권안자체’ ‘추유을체’ ‘이종희체’ ‘김영분체’ ‘이원순체’ 등 칠곡할매체의 주인공들의 짧은 글도 읽게 되었다. 폰트 개발을 위해 4개월 동안 한 명당 2,000장의 종이를 사용했다는 할머니들의 글씨는, 내용도 폰트도 따뜻하고 정감이 넘쳤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의 저자인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도 비슷했다. 거기에도 할머니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에는 그 험난한 생애 여정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뭔가가 있다. 노년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청’의 구술작가 ‘육끼’ 역시 주름진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편안해지며, 그 주름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아카이브 같다고 말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의 얼굴은 묘하게 아름답다. 웃을 때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그 주름들은 길게 이어진 밭의 이랑과 고랑을 연상시킨다...나는 밭의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내는 굴곡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할머니들의 주름을 볼 때도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 밭의 이랑 고랑도, 할머니들의 주름도 아주 평범하지만 들을수록 찰지고 구성진 이야기를...
문탁 2023.02.15 조회 356
겸목의 문학처방전
  무사(無事),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 -위암에 황정은의 에세이집『일기』를 처방합니다     황정은을 좋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사(無事)는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치르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황정은, 『일기』, 창비, 2022년, 41쪽)   황정은의 에세이집 『일기』는 작고 예쁘다. 친구에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니 친구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런데 읽다보니 좋은 선물이었는지 불안해진다. 나에게는 불편하게 읽히는 책을 친구는 어떻게 읽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에게는 질책으로 다가오는 황정은의 말들을 친구는 어떻게 독해하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으로 나는 황정은의 『일기』를 여러 번 읽었다. 여러 번 읽으며 든 생각은, 내가 힘들게 읽은 만큼 황정은 또한 힘들게 썼겠구나 하는, 이상한 동질감이다. 독자가 작가를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나도 힘들게 읽고 그도 힘들게 썼으니 피장파장이라는 느낌이다.   무엇이 읽기에 힘들었을까? ‘징그럽다’는 그의 생생한 감정이다. 나의 무사(無事)함이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라는 것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무한 경쟁과 탐욕의 시대, 무사하고 무탈함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기본값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은 ‘보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결코 보통의 대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무사한 보통의 삶은 많은 비용을 치룰 수 있어야 가능하고, 무사하지...
  무사(無事),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 -위암에 황정은의 에세이집『일기』를 처방합니다     황정은을 좋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사(無事)는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치르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황정은, 『일기』, 창비, 2022년, 41쪽)   황정은의 에세이집 『일기』는 작고 예쁘다. 친구에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니 친구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런데 읽다보니 좋은 선물이었는지 불안해진다. 나에게는 불편하게 읽히는 책을 친구는 어떻게 읽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에게는 질책으로 다가오는 황정은의 말들을 친구는 어떻게 독해하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으로 나는 황정은의 『일기』를 여러 번 읽었다. 여러 번 읽으며 든 생각은, 내가 힘들게 읽은 만큼 황정은 또한 힘들게 썼겠구나 하는, 이상한 동질감이다. 독자가 작가를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나도 힘들게 읽고 그도 힘들게 썼으니 피장파장이라는 느낌이다.   무엇이 읽기에 힘들었을까? ‘징그럽다’는 그의 생생한 감정이다. 나의 무사(無事)함이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라는 것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무한 경쟁과 탐욕의 시대, 무사하고 무탈함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기본값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은 ‘보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결코 보통의 대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무사한 보통의 삶은 많은 비용을 치룰 수 있어야 가능하고, 무사하지...
겸목 2023.02.03 조회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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