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내가 누군데!’ 근데, 내가 누구지?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외워야 하느니라
문탁에서 10년을 공부하고 있는 마눌님이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논어(論語) 책(?)을 시도 때도 없이 외운다. 특히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에는 거의 백퍼센트다. 방금 읽었던 앞 페이지도 다시 봐야 할 때가 빈번한 이 나이에 논어를 통째로 외운다고 시도하니, 무섭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먼저 그의 말을 이해하고 나의 말로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외우는 것일 게다. 나도 함 해볼까?
문탁 홈페이지를 열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공부하는 방식이 크게 보아서 선생님이 하는 강의가 있고, 참가자들끼리 하는 세미나가 있다. 일단 발제없이 듣기를 잘하면 되는 논어 후반부 강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공부도 쉽지 않다. 학교 다닐 때처럼 기록하고 정리하여야 따라 갈수 있었다. 외운 것을 까먹어 헷갈리는 상황에서도 ‘그렇지!’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강의를 들었다.
반장님이 강의 마지막 날 행사에 대해서 말한다. 다른 강의들은 에세이를 쓰지만 이번 강의에서는 논어 ‘낭송(朗誦)’을 하겠단다. 다만, 책을 보고 읽는 게 아니고 암송(暗誦)하는 것이란다. 나도 외워 본다. 첫 페이지, 논어 학이(學而), 제 1편(第一編).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많이 들었던 문장이니 외우지 않아도 술술 나온다.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뭐, 이 문장도 처음 보는 문장이 아니니 그래도 잘 외워진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덜컹거린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이 문장은 처음 보았다. 성낼 ‘온(慍)’이란 한자도 처음 알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뜻은 잘 알겠는데, 문장이 잘 외워지지 않는다. 그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 문장에서만 빙빙 돌았다. 기억력이 이렇게나 나빠지다니 치매가 왔나? 통째는 고사하고 제 1편, 첫 문장에서 쩔쩔매고 있으니, 어처구니도 없고 짜증도 난다.
내가 누군데!
문탁 회원인 여울아, 뿔옹, 대학생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논어 후반부를 읽는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발제하고 후기 쓰고 에세이를 써야하는 세미나는 쪼매 겁나지만, 일단 네 명이니까, 좀 쉽지 않겠어? 첫 시간. 젊은 친구는 한자를 잘 모른다고 한다. 그는 논어를 읽으면서 한자도 익히려고 한단다. 다행히 난 한문세대이니 한자는 좀 안다. 적어도 쪽 팔리지는 않게 생겼다. 두 번째 시간. 미리 나누어진 분량의 발제를 발표하게 되었다. 첫 발표자는 그 대학생이다.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자를 잘 모른다면서, 한 문장을 가지고 논어 어느 편에서는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있고, 이에 대해 누구의 해석은 이렇고 다른 책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다. 자기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토론하고 싶다는 것이다. A4 용지 두 장에 반듯하게 작성해 왔는데, 그 예쁜 포맷하며 인용문과 핵심어를 볼드체와 따옴표를 넣어가면서 정돈한 문장은 아주 보기 좋았다. 나의 예상을 배반하고 이렇게 발제하다니, 그것은 ‘반칙’이었다.
사실 나는 과장이후로 이메일 빼고는 문서 작성을 거의 안했다. 작성된 문서(보고서)를 읽기만 하고 결재만 하였다. 실로 오랜만에 내가 작성한 문서, 나의 발제문은 내가 보아도 포맷도 엉망이고 내용도 그 문장에만 제한된 나의 뇌피셜만 잔뜩 늘어놓았다. 창피했다. 그런데, 여울아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쉼없이 지적질(!)을 한다. 얼굴이 화끈거리다가 슬슬 열이 오른다. ‘아이구야! 고만 좀 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나도 논문을 두 번이나 쓴 사람이라구!’ 소리가 목 안에서 맴돌았다. 다행히도 어떤 문장에 대한 뿔옹의 해석에 대해서 여울아가 논쟁을 하느라 나에 대한 지적이 끝났길 망정이지, 자리를 박차고 나올 뻔하였다.
하! 신병 신고식을 40년 만에 다시 치룬 느낌이었다. 아니, 공부 때문에 누군가에게 혼이 난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내가 누군데! 기분은 복잡 미묘한 혼돈, 그 자체였다. 창피함이 섞인 불쾌감과 수십 년 만에 받아보는 ‘혼냄이 주는’ 살아있는 기분이 교차하였다. 그렇게 외워지지 않더니만,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가 떠오른다. 그럼 그럼, 소인배가 아닌 내가 참아야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그건 애초에 화낼, ‘온(慍)’할 일이 아니었다. 알고 모르는 것은 나의 일이지, 상대방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이 시간은 내가 누구라는 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발제문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여울아는 가감없이 의견을 준 것 뿐이었다. 내가 스스로 발제문과 나의 존재감을 연결시켜서 생각하고 화를 내고 있는 사태인 것이다.
계급장이 진리이다?
은퇴를 하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난감함(?)은 한 장으로 자기를 표시할 수 있는 명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친구는 사적 모임인 ‘ㅇㅇ산악회 총무’가 새겨진 명함을 들고 다닌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애처롭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해서 그렇다. 그동안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에 익숙한 사회생활 속에서 얻어진 습관, 그것을 잘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습관이 집안에서 발휘될 때이다. 한 친구는 은퇴하니 애들도 그렇고 마누라도 그렇고 예전 같지 않다고 푸념한다.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개새끼’도 자기를 낮춰 본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는 식구들이 ‘덤빈다’고 표현한다. 가만히 들어 보면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인데, ‘덤빈다’고까지 느낀다.
직장에서 대부분의 상사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 특히 부하직원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고자 노력했다고 말한다. 착각이다. 나도 그랬다. 한참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조용한 경우에는 돌아봐야 한다. 공감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지만, 착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십중팔구는 결정권자인 내가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을 내리고, 그것의 근거를 논리적으로 저 먼 곳에서부터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장이 진리였다. 문제는 집안 식구들은 부하직원들이 아니다. 말을 한다. 다른 의견을 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은퇴 전에도 식구들은 똑같이 의견을 내었다. 자기주장이 있었다. 아마도 부하직원들보다 열배는 강하게 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에는 대수롭지 않았는데, 지금은 ‘고깝게’ 들린다. 왜 그럴까?
그것은 집밖에서 남들이 나의 이력(履歷)과 나의 명함, 나의 지위로 붙여진 계급장이 내게 주었던 존중감(尊重感)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역 때에 식구들의 다른 의견은 그 계급장이 만든 내면의 여유로써 ‘받아 주었다’. 이제, 계급장이 떼어진 그 상실감을 집안 식구들이 채워주었으면 좋으련만, 눈치도 없이 은퇴전후가 똑같다. 헌데, 당연하게도 존중받는 것은 내가 내게 주는 존중, 자존감(自尊感)이 먼저이다. 그 동안, 계급장이 주는 외부의 존중감(尊重感)을 나의 자존감(自尊感)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퇴 후에도 나의 자존감(自尊感)을, 나의 계급장을 집안 식구들, 타인에게서 요구하고 있는 사태가 ‘고깝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계급장을 은퇴자인 나만 떼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도와 달라고 말도 못하고......
그러고 보니, 은퇴 후에도 자주 만나는 친구 녀석들의 수다가 늘었다. 세계평화와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정치 이야기를 지나고 나면, 특이하게도 은퇴 전에는 단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는 ‘아내 이야기’들을 쏟아 낸다. 은퇴 전에는 다소 팔불출(八不出)로 취급당할 수 있는 금기어(禁忌語)였는데 말이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서로들 많은 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자들의 수다를 공감해주는 추임새까지 넣어가면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르는 티격태격 사례도 있지만, 그건 에피소드일 뿐이다. 크게 정리하면, 아내는 아직 남편의 은퇴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가정의 구도가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오고, 아내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집안일을 성실히 수행한 경우가 더욱 그랬다. 그럼, 남편이 이제 집안일을 도우면 되는가? 꼭 그것도 아니란다. 그런 모습도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럼, 어쩌라고. 먹고 사는데 필요한 자산이 딱히 부족한 것도 아닌데, 건강함을 핑계로 나가서 일을 더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삼식이(三食) 취급받지 않으려면 할 일없이 집을 나서야 할 정도로. 아내는 아직 남편의 계급장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녀석들이 말하는 은퇴자의 재취업 공식이 있다. 그냥 앉아서 내 시간을 죽이는 일은 연봉이 얼마이고, 그동안 놀리던 근육들을 쓰느라 골병드는 일은 그 보다 조금 높은 얼마, 그리고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일은 내 영혼을 파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 계급장을 활용한 로비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어 제명에 살지 못하는 일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면 한 가닥 남은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하고, 때로는 현역 때 그렇게 엄정하게 관리했던 후배들에게 못할 짓을 해야 하니까. 더 늦기 전에, 식구들(특히 아내) 모두가 달고 있는 그의 계급장을 떼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중년 남자들에게 놓여있던 가족, 사회적 배치들을 돌아보고 노년의 삶을 ‘함께’ 그려보는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도와 달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좋으련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넌 어떠냐? 다행히 나의 아내는 나에게 먼저 은퇴를 신청한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팔불출!
그러니, 이제 내 스스로 나를 일으켜 세우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하나? 젊었을 때 꿈꾸었던 입신(立身)이 아니고, 진정으로 나를 존중할 수 있는 나를 찾아야 한다. 먼저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타자들이 만든 내가 아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나야 한다. 수도자가 추구하는 득도(得道)수준이 아니라, 인생 후반부를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게 말이다.
하이데거 읽어......
문탁 철학학교 공지가 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는단다. 이것이다! 싶었다. 나의 일상 ‘시간’ 속에서 안팎으로 달라진 나의 ‘존재(存在)’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도 ‘존재’와 ‘시간’이다. 떨어진 나의 자존감(이 때까지 자존감의 한자를 ‘自存感’으로 알고 있었음)을 새로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논어 강의처럼 외우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쉽지 않았다. 아니, 아직도 읽었노라고 말하기 겁난다. 공부가 이렇게 어렵나 싶었다. 차라리 수학문제라면 며칠을 끙끙거려서라도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은 몇 번을 읽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 한글로 쓰여 있는데, 단어를 찾아 가면서 읽는 영어 문장 같다. 무슨 새로운 개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 책을 집어 던진 것이 서너 번은 된다. 저자의 정의에 따라 ‘개념’을 간신히 이해해도, 문장에서 그 단어가 나오면 덜컹 거리기 일쑤다. 보조 교재인 해설서들을 펼치면, 그 분들 간에 번역용어가 달라서 이번엔 ‘용어’정리를 한다. 첩첩산중이 따로 없다. 튜터인 정군님이 왜 그런지 다른 철학자를 등장 시켜서 설명을 하지만 난 그 철학자도 모른다. 세미나원인 아렘님은 특유의 독화살로 하이데거를 마구마구 비판한다. 이해를 했어야 딴지라도 걸어보지,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의 교수님, 요요님이 나서서 ‘그것은 이렇고요 저것은 좀 그래요’ 해야 정리가 좀 된다. 세미나원들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특히, 나에게 ‘전교 1등’이라고 별명을 붙여 주며 끝까지 읽게 하였다. 가까운 곳에 공부할 수 있는 문탁이 있고, 고마운 학인(學人)들이 있어서 나에겐 큰 행운이다.
그래서, 나를 찾는데 하이데거가 도움이 되었나? 그럴 리가! 한 술 밥에 배부를 수가 있나? 다만, 내 안에서만 밖을 보았는데, ‘세계’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른 눈을 느꼈을 뿐이다. 읽을 때에는 그의 불친절에 치를 떨었지만, 그의 ‘존재와 시간’이 ‘철알못’인 내게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일단 그것으로 만족한다. 시간은 많다. 다른 철학여행을 다녀와서 이 책을 또 펼쳐보면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밖에 나가면 “어떻게 지내?” “요즘 뭐해?”하고 묻곤 한다. 상대방의 질문의도에 따라 혹은 나의 기분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기가 좀 ‘거시기’할 때가 있다. 그래서 집밖에 나가 사회생활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모임을 즐기지 않는다. 이럴 때 꺼낸다. “요즘, 하이데거 읽어.” 대부분은 ‘다음 질문 끝!’이지만, 조금 아는 사람은 “아니, 웬 실존?” 한다. 지금 ‘하이데거’는 내 명함이다. 다음번엔 이직(移職)해서 ‘들뢰즈’로 명함을 바꾸면 어떨지 기대된다. 흐흐흐.
그렇게 나의 사회적 명함을, 계급장을 나의 내면의 명함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이 명함들이 쌓이고 쌓일 때, 나의 자존(自尊)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지금처럼 그 명함들도 버릴 때가 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내가 누군데!’에 매어 있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글이 재밌게 읽힙니다. 지난번 글도 그랬고요.
가마솥님 글을 읽으며 언젠가 우리집에도 닥칠 일, 어떻게 닥칠까... 생각하게 됩니다.
귀한 경험 재밌게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가마솥님과 같이 공부하고 가마솥님 글에 이름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친구들 이름이 아주 부러워요~
가마솥님도 문탁에서 공부를 논어로 시작하셨군요^^ 저도요, ㅋ 학이편 첫 문장과 씨름하기도 여전한 것까지^^그래서 반갑네요~
너무 재밌어요!!!!
저도 가마솥샘 글 재밌게 보고있어요ㅎ
다음글도 기대합니다. 철학공부도 응원해요!
참…그쵸? 조직의 위계가 주는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계급장으로 한껏 올라간 자기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을 나와 문탁에서 공부를 시작한 부분에 공감이 많이 되네요~~~ ㅋ
가마솥님! 글이 진솔하고 재밌어요!!
역시 식상이 많아서 그러신가? ㅋㅋㅋ
그나저나 ‘열이 오빠’는 누구에게 불리는 호칭인가요?
설마 인디언님은 아니실테고 ㅋㅋㅋㅋㅋㅋ
'열이 오빠'는 성산동에 살면서 마을만들기 하던 때에, 동네에서 부르던 별명입니다.
성미산 싸움하면서 동네에 알리기 위해서 밴드를 만들었고, MaPos 라고 이름지어서 4-5년 활동(?) 했었습니다.
군악병 특기를 살려서 드럼을 쳤구요......ㅎㅎㅎ
아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가마솥샘의 글.. 아침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가마솥샘은 매번의 배움이 삶에서 어느 자리를 차지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옮겨가고 있는지 잘 보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거기에 늘 마음을 기울이고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올해도 가마솥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