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희덕과 함께 읽는 시] 2강 <가능주의자> 후기

기린
2023-08-14 22:38
287

1.문학, 너 오랜만~

 

인문학이라는 범주를 흔히 문사철이라고 하고 이 때 ‘문’이 문학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인문학 공동체에 오고 나서 동양고전, 사회과학, 철학 등등으로 분류되는 텍스트들을 꽤 오래 붙잡고 지냈다. 가끔 읽는 소설도 한정되어 있었고, 시는 더 띄엄띄엄 접했다. 그래서 올해 이 폭염을 통과하면서 월요일 밤에 나희덕 시인의 강좌로 읽는 시들은 우선 오랜만이라 반가움이 앞섰다. 그럼에도 시인의 안내에 따라 읽어가 본 시는 “다른 세계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냄새”(나희덕-<길고 좁은 방> 38쪽)로 느껴져서 좀 낯설었다. 일리치 약국에서 약만 팔지 않는 약국을 지향하면서 문학도 읽는 시간을 경험해서 신박한 낯섬과, 『장자』를 읽던 시절 부득이(不得已)에서 가늠했던 고단함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나희덕-<가능주의자>100쪽)에서 다시 환기되었던 시간이었다. 시를 읽으며 오랜만 안에 낯섬과 익숙함이 나의 “세계를 버석거리게”(나희덕-<조각들>22쪽) 했다.

 

2.이 자욱하고 흥건한 시대를 시는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나희덕 시인의 『가능주의자』를 나희덕 시인의 강의로 함께 읽은 시 읽기 두 번 째 시간이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에서 1부-벽의 반대말은 해변이라고 는 시인이 자신의 갇혀 있는 실존의 방에서 난 상처들을 드러내는 시들이라고 했다. 2부-얼룩을 지우는 얼룩들 은 그 실존의 방에서 거리로 세상으로 걸어 나와 마주친 첫 번째 세계에 대한 시들이다. 3부-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에서는 그 세계를 더 멀리 멀리 나아가 마음을 끝까지 미루어간 세계들에 대한 것들이라고 한다. 4부- 달리는 기관차를 멈춰 세우려면 은 다시 시인이 속한 세계로 돌아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메타적인 관점으로 접속해본 시로 나아갔다고 했다. 이번 시집의 지형도를 시를 쓴 시인이 직접 그려주는 데로 따라가니, 내 마음 가는대로 읽으면서 “자욱하고” 흐릿했던 어떤 싯구들이 길을 내면서 나의 경험까지 거기에 함께 흘러나와 “흥건한” 감응이 일어났다.

 

3. 시를 쓰면서 살아간다는

 

나는 시를 읽으면서 떠올렸던 시인의 일상에 대해 질문했다. 시를 쓰던 초반기에는 소재주의를 대단히 경계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2차 텍스트로 영화나 소설, 인터뷰 기사, 사회적 문제, 역사 사건까지 접하면서 그것을 시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으로 변화하는 경험에 대해 들었다. 그러면서 생활인으로 시인으로 선생으로 30여 년을 지나오면서 늘 시만 생각할 수 없는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시를 떠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강의 끝 부분 즈음에서 시가 써지지 않을 때 “시 쓰기 싫다!”고 충분히 소리 지르는 예열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의자에 앉게 된다고도 했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시를 쓰면서

 

 

“마음이 기우는 대로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이었다.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편이다.” (시인의 말 중에서)

 

 

는 자각을 벼리는 수행을 지속하면서,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그 어긋남에 대해”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하는 ‘가능주의자’ 나희덕 시인을 만났다.

댓글 3
  • 2023-08-15 10:19

    문학소녀 기린의 감상도 좋네요^^ 다음 장자 글에는 숙과 홀에 대해서 써보면 어떨까?

  • 2023-08-15 11:54

    강의 끝 부분 즈음에서 시가 써지지 않을 때 “시 쓰기 싫다!”고 충분히 소리 지르는 예열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의자에 앉게 된다고도 했다. —->도서관 문 닫는 시간이라 후다닥 급하게 나와 아쉬웠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셨군요!!! 원고 쓰기 싫다아아아아!!! 예열사자후 버튼 저도 한번 눌러봐야겠네요!! 의자에 다시 반드시 않기 생략은 안비밀!!!!

    후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네스 바르다 해변 영화를 보며 넓고 깊어지는 휴일, 나만의 광복절을 보내볼까합니다. 다음주 진은영의 시로 만나요!!

  • 2023-08-15 22:40

    시인에게 직접 본인의 시에 대해 듣는 시간, 김혜순 시인을 소개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제게 시라는 장르는 언어의 연금술 같아서 가까이 하기에는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모든 글쓰기가 갖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가고 있어요.ㅎ
    어떻게든 매주 시집을 한 번은 읽고 강의를 듣는 것이 저의 소박한 목표인데 쉽지는 않습니다.
    강의 외에 덤으로 다른 분들의 질문과 감상을 듣는 것도 아주 즐겁습니다. 깊이 읽고 감상을 나눠주시는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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