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세미나 후기

겸목
2023-07-21 12:19
277

소설 읽기 강좌 세 번째 책은 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이었다. 작가님이 골라준 세 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용기에 관해 말하기>, <죽은 이들의 삶>만을 읽었을 때는 베트남전쟁을 다룬 소설이구나 하는 평이한 감상이었다. 번역소설이지만, 한 남자의 속마음을 읽는 방식이라 '잔잔한 느낌'을 줬다. 오히려 내가 놀랐던 것은 그 외의 편들을 읽게 되면서였다. 그리고 표지를 보니, 표지에 쓰여진 이름들이 첫 작품에 소개된 인물들의 이름이었다. 이 이름들은 이후 작품에서 간헐적으로 혹은 주요하게 다시 등장하고, 다른 편에 재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도 베트남전쟁 당시와 2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와도 이어지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 전쟁을 알지 못하는 저자의 어린 딸과의 이야기도 겹쳐지면서 '놀라운 결'을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다!! 아! 이렇게 베트남전쟁을 다룰 수 있구나!! 혹은 아!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구나!! 멋지군^^ 진심 놀랐다!!

 

손보미 작가는 한 사람의 생사의 문제가 우연과 운에 맡겨지는 일에 대해 언급하며 세미나를 시작했다. 우연과 운에 운명이 맡겨진다는 것이 두렵고 불안한 일이지만, 전쟁이란 누구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는 순간을 맞닥들이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일에 원하지 않았고, 베트남전쟁의 명분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까지 그것도 스물몇 살의 청년들에게 강제징집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런데 이렇지 않은 전쟁이 있을까? 전쟁을 결정하고 개시하는 자들과 전쟁을 실행하는 자들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에서 인간은 '용기'와 '비겁'을 생각한다. 내가 목숨을 두려워하는구나! 친구의 죽음을 방치했구나! 딴생각하느라 임무에 충실하지 못했구나! 무서워서 도망쳤구나! 이렇게 무능하구나! 비겁함을 체감할 일은 너무 많다. 여기서 '용기'는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감내하는 것으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인간의 한계를 말하는 것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진실한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과 <용기에 관해 말하기>는 사실과 진실과 거짓과 그것을 말하기, 글쓰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쟁을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글쓰기를 주제로 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일요일에 글쓰기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번 글쓰기할 때마다 '나'에 대해 글쓰기하는 일의 어려움을 체감한다. 우선, 우리는 '나'를 잘 모른다. 잘 모르지만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방어하려 하고 은폐하려 한다. 그래서 일단 검열 없이 써보자! 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런데 나에게 일어난 일을 다 말하고/쓴다고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내가 자기 이해에 이르는 데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전부 말하고/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말하고/써야 하는지, 어떤 것은 말하지 않고 간직해야지만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인지 그 '거리감'을 가늠하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에서 내가 놀랍다고 느낀 점은 그 '거리감'에 대해 저자가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써서 이상하고, 저렇게 써도 사실과 다르고, 진실에서는 더욱 벗어나는, 도대체 진실이 뭔지 알 수 없는.......곤궁 속에서 저자는 이렇게 저렇게 애쓰고 있다. 때로는 허구를 말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사실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책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점이다! 천천히 음미하며 그가 애쓴 방식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이번 줌강좌에는 대학동창과 후배가 함께 하고 있다. 정말 이 친구들과도 소설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본 게 20년은 족히 된 것 같다. 국문과 학생으로 20대에 우리는 일상으로 소설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니 잘 읽히지 않는다, 공감이 되지 않는다..... 푸념을 하지만, 그런 푸념을 나누고 있는 것도 나에겐 '재미'가 있다. 며칠 전 이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차도 마셨다. 그때도 짧지만 소설읽기 줌강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친구의 인스타에 들어가봤더니, 그 동안 읽은 책의 표지사진과 함께 짧은 소감이 올라와 있었다. 세미나에서는 소설을 잘 못 읽겠다, 공감이 되지 않는다 말했지만, 인스타에 올라온 글에서는 그도 분명 소설을 즐겁게 읽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분들도 이런 감상 아닐까? 오랜만에 읽으니, 잘 안 읽히고 그 정서를 따라잡기 어렵다, 느끼지만, 이 시간이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친구가 헤어지며 말했다. "그래도 손보미 작가 소설이 그 중 제일 낫더라!!" 이건 아마도 한국 소설이라서가 아닐까? 다음주 월요일 마지막 시간이 기다려진다. 다들 원없이 속마음을 솔직/진솔하게 말해보자~

 

 

 

 

 

댓글 1
  • 2023-07-24 14:13

    저도 이 소설집의 다른 단편들을 마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기 용기와 비겁함의 차이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손보미소설가님 덕분에 좋은 소설책들을 알게 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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