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바턴과 나

이든
2024-04-21 04:13
21

이번 글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루시 바턴의 부모나 성장환경, 상황이 같다고 할 수 없음에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고저가 거의 없는 간결한 톤으로 작지만 또렷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이 소설의 키워드 - 외로움, 사랑, 글쓰기, 냉혹함, 가족 등- 가 결국은 살아가면서 내가 고민하는 문제이기 때문일까. 이 키워드 가운데 무엇을 골라잡을까 하다, 지난 시간부터 마음에 훅 들어왔던 '글쓰기'와 '냉혹함'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왔다. 

 

1. 글쓰기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p34) 

 

이 단락을 읽으면서 처음 루시 바턴과 동질감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좋아하는 것이 무수히 많았지만 그중 으뜸은 책이었다. 어린아이가 그토록 오래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와 지식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을 읽을 때면 주인공에 깊이 감정이입하곤 했는데, A.J 크로닌의 소설을 읽은 후로는 글 쓰는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진로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과를 선택했는데 전공을 선택하는 순간에 맘이 바뀌어 신방과에 진학하고 말았다. 글을 쓰는 직업으로 저널리스트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언론인도 내 길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후에도, 꽤 오랫동안 글을 쓰고 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고 지금까지 해 내지 못한 과제처럼 남아있다. 왜 나는 글쓰기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강박관념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글쓰기를 더 부담스러워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처음 글을 써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때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방학 숙제로 써낸 원고지 3장짜리 독후감을 들고서, 담임 선생님이 네가 이걸 썼니?라고 물었던 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독후감으로 상을 받은 이후 교내외 글짓기 대표로 늘 추천받았고 그때마다 상을 받아왔다. 그 시절에 무슨 글짓기 대회가 그렇게 많았는지 전체 조회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늘 상을 받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대학교 때는 인터넷 플랫폼에 글을 쓰고, 여행기나 서평을 올리면 가까운 친구들은 책을 써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주위의 반응에 으쓱할 때도 있었지만 정작 나는 무슨 책을 쓰고 싶은 건지 알지 못했다. 인터넷에 올리는 글과 책을 쓰는 일은 다르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내 내공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다. 얇디얇은 습자지 같은 생각의 깊이와 지식의 밑천이 훤히 드러나는 게 두렵기도 했다. 내가 아직 글쓰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내가 쏟아야 할 노력과 나아가지 못한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 부족 때문이다. 자신감 부족을 메울 노력을 하고 있지도 않다. 무엇보다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할 때 그 길을 결정하는 요소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요소를 찾아내거나 정확히 짚어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p32)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2. 냉혹함

 

나는 작가가 되려면 냉혹해야 한다는 제러미의 말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내가 글을 쓰고 있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오빠와 언니,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시간은 늘 충분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내가 결혼 생활에 안주하면 또 다른 책,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책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견딜 수 없는 곳- 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 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해치며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라고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04)

 

솔직히 고백하자면 루시 바턴이 처했던 상황보다 더 안전한 환경에서 내가 살아왔다는 그런 안도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책의 말미에서 위의 구절을 만났을 때, 나는 루시 바턴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놓지 않고 계속 가는 것, 갈 수 있는 추진력과 가야 한다는 생의 방향에 대한 확신. 내게 없는 그 집요함과 강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을 동경한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냉혹하지 못했던 나의 결정이 후회될 때가 있다. 첫 직장을 2년쯤 다니고 통장에 조금 돈이 모였고, 대학원을 등록했다. 당시 근무하던 연수원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 그때 마침 오빠 둘이 사이좋게 나란히 사고를 쳤다. 벤처와 닷컴 열풍 못지않게 거셌던 주식투자 열풍으로 진 빚은 당시 우리 집 형편으로 감당하기에 벅찬 액수였다. 월세를 받을 수 있었던 3층짜리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겨 큰 불은 껐고 내 통장의 돈은 갚아야 하는 이자로 고스란히 나갔다. 지금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 시간이 길거나 결코 액수가 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로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싶을 만큼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고 계속 회사원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을까를 가끔은 생각해 본다. 이건 겉마음이고 사실은 그럼에도 내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면, 계속 월급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대학원쯤은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삼 년 후 학교에 다시 등록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던 나의 나약함이, 적당히 타협하는 습관이 더 못마땅한 것이 본심이다.

 

그 후에도 10여 년 전쯤 회사를 관뒀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이 때도 외국에서 공부하고 정착하려 했으나 결국은 외로움과 자신감 부족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오래지 않을 때였고, 돌아오라는 엄마의 채근 때문이라고 돌아온 이유를 댔지만 모두 변명이다. 사실은 낯선 환경에서 내가 새로 개척해 갈 삶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살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은 엄마와 따로 살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나를 놓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와 함께 산다는 것은 엄마와 함께 따라온 집안 대소사와 엄마에 대한 돌봄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마음의 우유부단함,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는 현재의 안락함을 선택한 나의 결정과 그 결정에 뒤따른 여러 가지 책임들로 힘들어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관계에,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생각한 삶의 방향대로 나갈 수 있는 강함은 언제쯤 가질 수 있을는지. 내게 가능하기는 할는지. 남은 시간은 그렇게 냉혹함을 가지고 만들어가고 싶은데, 이것 조차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인지. 아직도 사춘기 같은 고민으로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아직도 시달리는 지천명이라니! 맘에 안 든다.

 

댓글 1
  • 2024-04-22 19:25

    글쓰기에서 '무엇보다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라는 문장에 공감해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독서 경험에서, 적당하게 우아한 글에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또한 확실해서...
    진심을 실은 글이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드러내 보일 진심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마음을 끌어당기는 소재를 쓰다보면 알게 될 것도 같아요.
    솔직하게 드러낼 진심! 그걸 함께 찾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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