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기후위기가 뭔가요? #4

곰곰
2024-04-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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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편에 이어)

 

그러다 COP7(2001)에서 완전히 판이 뒤집히고 말았다. 세계 최고 강대국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이자, 당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기후변화 문제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던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강대국이 참여를 미루는 것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의 길을 막는다. 기후변화 문제는 모든 나라가 서로 배신하지 않고 같이 나서서 애를 써야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 혼자서만 나선다면 오히려 그 나라만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요. 상류에서 하는 일은 어떻게든 하류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네들이 잘 해야 한다."

-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2001년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는 한동안 기운이 빠진 채 운영 되었고, 2009년 COP15 무렵이 되어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면서 다시 행동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고 한국 정부도 환경보존과 기후변화 문제를 중시하는 것을 미래 발전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녹색 성장”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주요 25개국 선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결국 성공하지 못했고 많은 나라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아쉬움이 때문인가, COP15의 열띤 분위기를 타고 시도되었던 여러 곁가지 대책 중 그럭저럭 성공한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녹색기후기금(GCF, Green Climate Fund)이다. 기후변화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려면 돈이 많이 들텐데, 여러 나라로부터 돈을 걷어서 쓰자는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돈을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단체가 될 예정이라 본부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이런저런 경쟁이 있었는데, 일이 잘 풀려서 녹색기후기금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입주해 있다. 

 

돈이라는 현실적이고 유용한 대책

현실적으로 기후변화의 피해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세계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돕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제도나 규정을 만들려고 하면 여러 나라의 입장 차이 때문에 협동이 어려워지기 십상이다. 특히 강대국들, 선진국들의 뜻에 따라 기후변화 문제는 이리저리 어그러지기 쉽다.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한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을 생각해보자. 이런 공장을 운영하려면 기계를 돌려야 하고 기계를 돌리면 연료를 태우게 되므로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선진국 회사들은 이러한 공장을 주로 개발도상국에 세운다. 땅값도 싸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싸다. 반면 공장을 관리하고 운영하며 돈을 많이 받는 고위직 직원들은 선진국 본사 건물에서 일한다. 정작 돈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일하는 본사는 거대한 기계장치가 없으니 딱히 이산화탄소 배출도 크지 않다. 개발도상국 공장이 가동되어 전 세계가 소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 기후변화 담당자들은 어쨌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면 개발도상국이 더 많으니 그쪽에서 대가를 치뤄야 공평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탄소세, 기후변화 분담금 등 온실기체 배출에 대가를 치르는 제도를 개발해서, 기후변화라는 명목으로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서 돈을 걷어간다. 물론 이런 문제를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그러한 사정을 따져서 더 좋은 제도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교하고 까다로운 협상은 쉽지 않다. 누군가가 거부한다거나, 고집 부린다거나, 협상을 뒤엎으려 할 때 그 나라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처벌을 가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러니 제도나 정책으로 협상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돈이라도 충분히 거두어 놓고 그 돈을 기후변화 대응에 유용하게 쓰는 편이 현실적인 대책일 수도 있다. 

 

파리협정의 탄생, 그 슬픔과 가능성

세계의 기후변화 대책에서 마지막으로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COP21(2015) 파리에서였다. 드디어 새로운 방식의 대응법, ’파리협정’이 채택되었다. 목표는 이산화탄소와 온실기체를 얼마 이하로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나라별로 줄여야 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정해주고 달성하지 못하면 처벌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21번의 당사국회의를 진행해오면서 이러한 방식은 나라들 간 다툼과 갈등의 소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파리협정에서는 놀랍게도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줄여야 한다는 정해진 양이 없다! 그냥 나라별로 알아서 “섭씨 1.5도 제한”이라는 목표를 최대한 고려하여 각자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싶은 만큼 줄이면 된다. 그러니까 운전면허 시험에 정해진 합격선이 없고 내 마음대로 점수를 말하고 그 점수만 넘기면 되는데, 심지어 그 점수를 넘기지 못해도 열심히 공부했다는 사실만 밝힌다면 합격으로 쳐준다는 얘기다. 이 괴상한 방식 속에는 지금껏 기후변화 문제 대응에 실패해 온 안타까운 경험이 다 녹아있다. 만약 감축 목표 수치를 정해주고 목표 달성 못하면 벌금 물린다고 하면, 각 나라는 서로 달성하기 쉬운 목표치를 얻기 위해 다툴 것이다. 결국 전체적인 목표 수치도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최대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안’ 줄이는 목표를 세우기 위한 경쟁하는 셈이다. 그래서 파리협정에서는 목표 달성 못해도 처벌하지 않는다. 이 역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전세계가 다같이 행동하는 것을 제발 시작이라도 해보자는 의미에 가깝다. 그렇게 다 같이 고민하고 협동하는 일에 일단 발 디뎌야만 앞으로 무슨 대책이든 세워볼 수 있지 않겠냐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2015년 파리협정에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참여했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레 탈퇴 선언하면서 휘청 거리기도 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재가입을 추진하면서 파리협정은 다시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여러 나라가 서로 협상해 온 전력을 돌아보면, 피해가 굉장히 커지곤 하는 문제인데도 나라 간의 입장 차이가 커서 잘 진전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기후변화 협상의 틀에서 상황을 제대로 따지고 반영하지 못한 나라들은 엉겁결에 큰 손해를 입기도, 멋모르고 남의 나라에만 유리한 제도를 따라가기도 한다. 결국 과거에 기후변화가 문제가 되지 않았을 때 먼저 경제 발전을 이룩한 선진국들이 모범을 보이며 희생하는 태도를 보일 때에 세계가 제대로 협력할 수 있다. 선진국 사람들 자신은 자연을 사랑하는 고결한 사람이고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무자비한 사람들이라는 태도를 취해서는 협력하기 힘들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기술들을 이전하면서 이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선진국들이 허리를 졸라매더라도 개발도상국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가 배출하든 누군가가 배출만 하면 누적이 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이 문제야말로 정말 국가 간의 조율을 굉장히 잘 해야 하는... 그런 이슈다. 

댓글 2
  • 2024-04-29 09:45

    국제협력의 지난한 과정을 읽다보니.. 뜻밖에 '기후기금 모으는 게 제일 쉬웠어요!'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얼마전 우리나라 총선에서 기후위기는 어떤 관심도 끌지 못했는데(300:0)ㅠㅠ
    미국 대통령 선거는 어떨라나, 지켜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 2024-04-30 21:48

    역시 요약&정리 선수 곰곰샘ㅋ

    국제 기후기구나 국가 정책에 희망을 걸었다간 영영 아무것도 안될것 같군요.
    걍,, 나부터 잘하고 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