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의 나이듦 리뷰
공자와 빨치산, 그리고 노회찬 <공자세가> (사마천) &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1. 호국영령과 민주열사라는 호명   지난 6월6일 현충일, 곳곳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위국 정신의 높은 뜻”을 기리는 추념식이 있었다. 순국선열은 주로 독립운동가에게, 호국영령은 주로 6.25 전쟁 전사자에게 붙여지는 명칭이란다. 의문이 생겼다.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속절없이 죽은 젊은이들이 호국영령인가? 이들이 국가를 ‘위해서’ 죽었나? 국가 ‘때문에’ 죽은 게 아니고? 독립운동가의 죽음도 그렇다. 그들도 한 때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을 것이고, 정파 투쟁 속에서(그것 없는 독립운동과 좌파운동은 없다^^) 동지들과 수없는 갈등도 겪었을 것이다. 확신과 회의 사이에서 흔들렸던 적도 여러 번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순국선열’이라는 호명은 삶의 그런 다양한 측면들을 너무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민주열사’도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노동운동 시절 동지 한 명이 암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50대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 한 친구들이 추도식을 연다고 했다. 뒤늦게 부고를 접한 나도 애도의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다.   추도식은 고인의 약력 보고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공식적인 약력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적 정당운동까지로 뚝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고인은 운동권으로 산 세월보다 생활인으로 산 시간이 더 길었다. 그리고 그 세월은  영예롭기보다는 비루한 쪽에 가까웠다. 경제적인 이유와 성격 차이 등으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정신없이 사고 치는 사춘기 아들에게 속수무책이었고,  보험 판매원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 같은 생계노동으로 하루하루가 고단하였다. 그 시절 우리...
공자와 빨치산, 그리고 노회찬 <공자세가> (사마천) &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1. 호국영령과 민주열사라는 호명   지난 6월6일 현충일, 곳곳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위국 정신의 높은 뜻”을 기리는 추념식이 있었다. 순국선열은 주로 독립운동가에게, 호국영령은 주로 6.25 전쟁 전사자에게 붙여지는 명칭이란다. 의문이 생겼다.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속절없이 죽은 젊은이들이 호국영령인가? 이들이 국가를 ‘위해서’ 죽었나? 국가 ‘때문에’ 죽은 게 아니고? 독립운동가의 죽음도 그렇다. 그들도 한 때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을 것이고, 정파 투쟁 속에서(그것 없는 독립운동과 좌파운동은 없다^^) 동지들과 수없는 갈등도 겪었을 것이다. 확신과 회의 사이에서 흔들렸던 적도 여러 번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순국선열’이라는 호명은 삶의 그런 다양한 측면들을 너무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민주열사’도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노동운동 시절 동지 한 명이 암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50대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 한 친구들이 추도식을 연다고 했다. 뒤늦게 부고를 접한 나도 애도의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다.   추도식은 고인의 약력 보고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공식적인 약력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적 정당운동까지로 뚝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고인은 운동권으로 산 세월보다 생활인으로 산 시간이 더 길었다. 그리고 그 세월은  영예롭기보다는 비루한 쪽에 가까웠다. 경제적인 이유와 성격 차이 등으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정신없이 사고 치는 사춘기 아들에게 속수무책이었고,  보험 판매원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 같은 생계노동으로 하루하루가 고단하였다. 그 시절 우리...
문탁 2023.06.13 조회 604
문탁의 나이듦 리뷰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에이징 솔로>(2023, 김희경)       1. 비혼 이야기가 없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기자, NGO 활동가, 문체부와 여가부의 관료를 두루 거치며 ‘순차적 N잡러’로 살아왔고, 결혼 경험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20년 차 솔로이다. 1967년생이니, 우리 공동체의 기린, 노라, 달팽이, 뚜버기 등과 동년배이다. 이력만 보자면 솔로이긴 해도 (우리와는 달리^^)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네임드 작가이다. 그런 그녀도 솔로여서 종종 열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솔로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녀는 “남에게 폐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 그리고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충분한 매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다 솔로’가 되었지만 아마 특별한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느 날 ‘에이징 솔로’의 ‘현타’가 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뇌변병 장애로 인지증(치매)를 앓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오더라. ‘나도 아버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대리해줄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되게 우울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지는 선택하지 못하잖나. 완벽히 대비가 되는 일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김희경-김은형 대담, ‘중년의 혼자 삶에 대하여’, 2023년 4월22일, 한겨레 신문)   그러나 그녀에게 참고가 될만한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두 가지!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솔로여성의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년’도 ‘솔로’도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들이니 이 세...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에이징 솔로>(2023, 김희경)       1. 비혼 이야기가 없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기자, NGO 활동가, 문체부와 여가부의 관료를 두루 거치며 ‘순차적 N잡러’로 살아왔고, 결혼 경험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20년 차 솔로이다. 1967년생이니, 우리 공동체의 기린, 노라, 달팽이, 뚜버기 등과 동년배이다. 이력만 보자면 솔로이긴 해도 (우리와는 달리^^)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네임드 작가이다. 그런 그녀도 솔로여서 종종 열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솔로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녀는 “남에게 폐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 그리고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충분한 매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다 솔로’가 되었지만 아마 특별한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느 날 ‘에이징 솔로’의 ‘현타’가 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뇌변병 장애로 인지증(치매)를 앓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오더라. ‘나도 아버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대리해줄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되게 우울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지는 선택하지 못하잖나. 완벽히 대비가 되는 일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김희경-김은형 대담, ‘중년의 혼자 삶에 대하여’, 2023년 4월22일, 한겨레 신문)   그러나 그녀에게 참고가 될만한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두 가지!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솔로여성의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년’도 ‘솔로’도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들이니 이 세...
문탁 2023.05.12 조회 439
문탁의 나이듦 리뷰
다른 할배의 탄생 -영화, <그랜토리노>(2009,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글에는 두 개의 영화가 등장하는데 둘 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왜 내 눈엔 할머니들만 보이는 걸까?   87세에 한글을 깨쳐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라는 시를 쓴 칠곡의 박금분 할머니가 94세를 일기로 얼마 전 돌아가셨다. 신문 기사를 보니 당신 시처럼, 당신 바람처럼 가신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박 할머니 기사를 찾아 읽다가 소위 ‘권안자체’ ‘추유을체’ ‘이종희체’ ‘김영분체’ ‘이원순체’ 등 칠곡할매체의 주인공들의 짧은 글도 읽게 되었다. 폰트 개발을 위해 4개월 동안 한 명당 2,000장의 종이를 사용했다는 할머니들의 글씨는, 내용도 폰트도 따뜻하고 정감이 넘쳤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의 저자인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도 비슷했다. 거기에도 할머니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에는 그 험난한 생애 여정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뭔가가 있다. 노년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청’의 구술작가 ‘육끼’ 역시 주름진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편안해지며, 그 주름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아카이브 같다고 말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의 얼굴은 묘하게 아름답다. 웃을 때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그 주름들은 길게 이어진 밭의 이랑과 고랑을 연상시킨다...나는 밭의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내는 굴곡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할머니들의 주름을 볼 때도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 밭의 이랑 고랑도, 할머니들의 주름도 아주 평범하지만 들을수록 찰지고 구성진 이야기를...
다른 할배의 탄생 -영화, <그랜토리노>(2009,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글에는 두 개의 영화가 등장하는데 둘 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왜 내 눈엔 할머니들만 보이는 걸까?   87세에 한글을 깨쳐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라는 시를 쓴 칠곡의 박금분 할머니가 94세를 일기로 얼마 전 돌아가셨다. 신문 기사를 보니 당신 시처럼, 당신 바람처럼 가신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박 할머니 기사를 찾아 읽다가 소위 ‘권안자체’ ‘추유을체’ ‘이종희체’ ‘김영분체’ ‘이원순체’ 등 칠곡할매체의 주인공들의 짧은 글도 읽게 되었다. 폰트 개발을 위해 4개월 동안 한 명당 2,000장의 종이를 사용했다는 할머니들의 글씨는, 내용도 폰트도 따뜻하고 정감이 넘쳤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의 저자인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도 비슷했다. 거기에도 할머니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에는 그 험난한 생애 여정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뭔가가 있다. 노년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청’의 구술작가 ‘육끼’ 역시 주름진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편안해지며, 그 주름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아카이브 같다고 말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의 얼굴은 묘하게 아름답다. 웃을 때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그 주름들은 길게 이어진 밭의 이랑과 고랑을 연상시킨다...나는 밭의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내는 굴곡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할머니들의 주름을 볼 때도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 밭의 이랑 고랑도, 할머니들의 주름도 아주 평범하지만 들을수록 찰지고 구성진 이야기를...
문탁 2023.02.15 조회 419
문탁의 나이듦 리뷰
만국의 늙은이여, make kin, not babies!!           1. 내가 늙으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한 5년 전쯤인가?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본 지 3년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는데 떨어져 사는 아이 둘과 간만에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독박돌봄의 고단함을 한도 끝도 없이 펼쳐놓았고 그 끝에 “내가 늙으면 도대체 누가 나를 돌보지?”라는 질문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딸에게 모계 돌봄의 전통^^을 이어받으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딸은 이런 저런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굴복, 내가 딸을 20년 키워준 만큼 이후 최소 20년은 나를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옆에서 우리 둘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아들 녀석은 그것을 ‘9.15 OO 효녀 선언’이라 이름 붙였다.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우에노 치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p57)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한 셈이었다.   어머니와 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노년에 대해서도, 나이듦 일반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었고, 맏딸 프리미엄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별로 안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약간 예외적인 케이스, 즉 본투비 의존적인 성격에 사별 트라우마로 인한 일종의 신경병까지 덧붙여져 끊임없이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그런 손이 많이 가는 별종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만국의 늙은이여, make kin, not babies!!           1. 내가 늙으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한 5년 전쯤인가? 그러니까 어머니를 돌본 지 3년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는데 떨어져 사는 아이 둘과 간만에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독박돌봄의 고단함을 한도 끝도 없이 펼쳐놓았고 그 끝에 “내가 늙으면 도대체 누가 나를 돌보지?”라는 질문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딸에게 모계 돌봄의 전통^^을 이어받으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딸은 이런 저런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굴복, 내가 딸을 20년 키워준 만큼 이후 최소 20년은 나를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옆에서 우리 둘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아들 녀석은 그것을 ‘9.15 OO 효녀 선언’이라 이름 붙였다.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우에노 치즈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p57) 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한 셈이었다.   어머니와 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노년에 대해서도, 나이듦 일반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었고, 맏딸 프리미엄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별로 안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약간 예외적인 케이스, 즉 본투비 의존적인 성격에 사별 트라우마로 인한 일종의 신경병까지 덧붙여져 끊임없이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그런 손이 많이 가는 별종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 몇 년...
문탁 2023.01.03 조회 939
문탁의 나이듦 리뷰
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장자>           1.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장자>           1.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문탁 2022.10.04 조회 888
문탁의 나이듦 리뷰
나이듦,  상실에 맞서는 글쓰기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1. 나는, 올해, 늙어버렸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했다고 하니 68세대임이 틀림없고, MIT에서 가르치다가 2010년에 퇴직했으니 어림잡아 7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물론, 미국엔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년제도가 없다^^) 그녀가 쓴,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라는 문장이,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 문장은 틀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의식될 때 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나이는 특정한 배치나 계기를 통해 주관적으로 실감되지 않는 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임과 동시에 특정 사건을 경유하여 형성된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나이듦,  상실에 맞서는 글쓰기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1. 나는, 올해, 늙어버렸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했다고 하니 68세대임이 틀림없고, MIT에서 가르치다가 2010년에 퇴직했으니 어림잡아 7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물론, 미국엔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년제도가 없다^^) 그녀가 쓴,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라는 문장이,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 문장은 틀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의식될 때 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나이는 특정한 배치나 계기를 통해 주관적으로 실감되지 않는 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임과 동시에 특정 사건을 경유하여 형성된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문탁 2022.08.20 조회 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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