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가마솥
00:06 | 조회 2
현민의 독국유학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현민
2024.05.24 | 조회 10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낮 최고 기온이 27.3℃와 29.4℃였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다. 작년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햇빛의 강도가 작년과 또 다르게 더 강렬했다. (올해는 새로운 패턴이 생긴 것도 같다. 너무 일찍 더워졌다가 또 급하게 온도가 내려가 평년보다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그런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정말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해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엄청 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미안해지고 안쓰러웠다. 기후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기후위기라고 한다. 이런 지구를 물려주는 어른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야 노~올자     2024년 5월 5일 제102회 어린이날, 우리 동네에서는 제17회 금천어린이큰잔치 ‘친구야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마을 행사이다. 우리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후 ‘금천구’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동안 없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신도림 가로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까지 다녀와야 했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 ‘나서는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놀게 하자고. 그런 어른들의 제안으로 2007년 처음 금천구에도 어린이날 행사가 생긴 것이다. 전교조, 노동조합, 청년회, 진보정당 등 지역의 여러 단체가 첫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낮 최고 기온이 27.3℃와 29.4℃였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다. 작년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햇빛의 강도가 작년과 또 다르게 더 강렬했다. (올해는 새로운 패턴이 생긴 것도 같다. 너무 일찍 더워졌다가 또 급하게 온도가 내려가 평년보다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그런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정말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해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엄청 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미안해지고 안쓰러웠다. 기후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기후위기라고 한다. 이런 지구를 물려주는 어른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야 노~올자     2024년 5월 5일 제102회 어린이날, 우리 동네에서는 제17회 금천어린이큰잔치 ‘친구야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마을 행사이다. 우리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후 ‘금천구’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동안 없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신도림 가로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까지 다녀와야 했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 ‘나서는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놀게 하자고. 그런 어른들의 제안으로 2007년 처음 금천구에도 어린이날 행사가 생긴 것이다. 전교조, 노동조합, 청년회, 진보정당 등 지역의 여러 단체가 첫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김윤경~단순삶
2024.05.20 | 조회 214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남어진
2024.05.10 | 조회 216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오영
2024.05.09 | 조회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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