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똥 연대기

모로
2024-04-2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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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그럴수록 둘의 관계는 악화되어서, 나중에는 한 번에 싸지 못하고 똥을 하루에 10번씩 찔끔찔끔 나눠 싸는 불상사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맙소사! 하루에 팬티 10장을 빨아야 한다니. 진짜 진절머리나게 힘든 나날들이었다.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고, 책도 읽어주고, 영상을 보여주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살펴보는 똥 누는 것에 대한 깊은 고찰, 감자는 왜 배변을 어려워 했는가. 단순히 먹고 싼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이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1. 배가 아픔을 느낀다.
  2. 어느 정도에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 판단한다.
  3. 화장실에 바지를 내리고 앉는다.
  4. 힘을 준다.
  5. 힘을 주면서 동시에 항문을 느슨하게 만들어서 똥을 밀어낸다.
  6. 똥을 닦고 뒤처리한다.

 

  서로 연계된 이 일들은 긴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 선택과 집중의 여러 단계가 감자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다.

 

  특히나 맨 첫 번째 관문, 어느 정도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지 판단하는 문제부터 걸렸다. 감자 생각에 정말 똥이 나올 확률 99% 정도는 되어야, 정말 폭발 직전에 이르러서야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미 99%일 때는 배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도중에 실수하기도 했다. 집에 있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변의는 어디에서나 온다. 밖에서 실수한다면 아찔하다. 그리고 우리는 알지 않는가. 똥이 끝까지 차오르고, 급격한 변의가 생겨서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다가도, 그 시기를 살짝 벗어나면 다시 평온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다시 찾아온 평온기의 똥들이 쌓이고 쌓여서 딱딱해지는 거지. 정말 심할 때는 배가 남산만 하고, 안색까지 시커멓게 변할 정도였다. 배는 계속 꾸륵거리고…. 정말 울면서 똥을 쌌다.

 

 

 

 

  그사이에 좋다는 유산균, 한약, 마사지 오만가지 민간요법(?)을 시행했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감자에게 이야기할 때 아픔을 수치화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가 조금 아프고 많이 아프고의 정도는 개인적인 수치라 감자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감자는 고통에 둔감한 편이었다) 배 아픈 정도를 퍼센트로 나누어서 주기적으로 상기시켰다. 이 정도면 50%, 이 정도면 80%, 이 정도면 90%인데, 적어도 85% 정도가 되면 화장실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90% 넘어가면 늦다고 끊임없이 아픔을 쪼개어서 이해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힘을 주면서 빼기 연습을 시켰다. 엄마가 힘을 주라고 하니까 아이는 정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힘을 줬다. 하지만 똥구멍은 닫혀있는 상태. 이걸 정말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밀어내면서 동시에 느슨하게 풀어야 하는 이 미묘한 진리를 이해시키는 것이 두 번째 관문이었다. 길고도 지난한 과정..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정말 느리지만 감자는 자기의 속도대로 배변 훈련을 진행해 갔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감자는 삶의 위대한 진리를 이해했다. “엄마! 드디어 똥구멍에 힘을 주면서 힘을 빼는 걸 알 거 같아요!” 그 이후로 더 울지 않고 화장실을 다녀왔으며, 똥을 싸는 텀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은 배가 아프지 않아도 이틀에 한 번 (강제적이지만) 화장실을 가서 밀어내고, 혼자 씻고 나오는 패턴을 유지 중이다. 진짜 다시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네. 만세!!

 

 

  배변과의 전쟁이 4살 무렵에 시작해서 9살에 마무리되었으니, 장작 5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미래의 내가 살짝 “야, 너 그거 알아? 지금 이거 5년 뒤에나 해결돼!”라고 귀띔이라고 해주었다면 달랐을까. 혹시 내가 마음이 준비가 덜 된 감자에게 억지로 강요를 해서 더 오래 걸린 건 아닐까. 이렇게 오래 계속될 것을 그때 알았다면, 일 이년 기저귀를 더 채우는 것이, 하다못해 어른 기저귀를 채우는 것이 무엇이 대수였을까 싶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사람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다행인 것은, 나는 감자와 함께 아직도 성장 중이다. 지독하게 길고 길었던 똥과의 전쟁을 치르다 보니, 다른 것들도 조금은 감자의 속도에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감자의 가장 큰 화두는 사회성이다. 아스퍼거 아이들이 그렇듯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특히나 어른들은 자기에게 다 맞춰주니 어느 정도 대화가 되는데, 또래 친구들은 그렇지 못하니 어려워 했다. 더 어릴 때는 내가 나서서 엄마들 모임도 만들었다. 몇몇 또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다른 집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도 저학년 때는 어느 정도 엄마의 노력이 가능했지만,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그런 것도 어려워졌다. 이제 더이상 아이들은 엄마들을 끼고 놀지 않고, 서로 메신저나 게임 등으로 연락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졌다. 이젠 정말 내 손을 떠난 문제구나 싶어서.

 

 

  언젠가 아이의 사회성 때문에 고민을 토로했을 때, 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이마다 부모에게 받고 싶은 사랑의 크기가 서로 달라요. 어떤 아이는 그 그릇이 작아서 금방 엄마의 품을 떠나지만, 어떤 아이는 부모에게 받고 싶은 사랑의 크기가 커서 늦게 떠나는 아이도 있지요. 하지만 충분히 사랑을 주다 보면 언젠가는 그 그릇이 가득 차서 넘치고, 그렇게 타인에게로 흘러갈 겁니다. 이 아이는 엄마를 통해서만 세상과 접촉할 수 있을 거예요.”

 

 

 

 

  찰랑찰랑. 드디어 물이 넘칠랑 말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5학년이 되자, 가끔 친구에게서 웃긴 짤로 가득 찬 이상한 개그의 문자도 오고, 같은 아파트 친구와 집에 같이 오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구들이 오며가며 인사를 해주고, 놔두고온 신발 주머니를 챙겨주고, 말을 걸어준다. 서툴지만 감자도 거기에 답하며 인사를 해주는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늦은 한 발. 그리고 너무 소중한 한 발을 내딛는 감자. 아직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겉도는 감자의 모습은 보는 건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척해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확연하게 다른 아이의 모습을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시작을 하기만 한다면, 가기만 한다면 언젠가 성인이 되었을 때 비슷하게 근처에라도 서 있을 수 있겠지. 늘 생각하는 거지만 다행인 건, 우리 감자는 결코 뒤로 가는 법이 없다. 언제나 어떠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신의 속도대로.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댓글 11
  • 2024-04-25 11:15

    "감자는 결코 뒤로 가는 법이 없다!" 감자뿐 아니라 우리도 그러리라 생각해보니 힘이 납니다!! 자기 속도대로 가봅시다~

  • 2024-04-25 14:47

    혹시 위에 나오는 '한 선생님'이 저는 아니죠?
    근데 내가 맨날 하는 이야기하고 너무 비슷해서...ㅋㅋㅋㅋ

    이번에도 아주 자~알 읽었습니다.

  • 2024-04-25 15:29

    행간의 지난함이 어찌 다 알 수 있을까요. 애쓰셨어요. 삶의 속도를 알아차리는 일은 결코 남일 같지가 않네요. 고맙습니다. 잘 읽었어요 ^^

  • 2024-04-25 21:04

    뒤로 가는 법이 없는 감자, 그런 감자 곁에서 함께 성장 중인 모로~ 똥의 연대기가 이렇게 심오하고 감동적이라니... ㅎ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고마워요^^

  • 2024-04-26 08:03

    모로의 성장기이기도 하네! ^^
    똥땜에 고생 정말 많았수! 수고혔어~~~

  • 2024-04-26 09:38

    인간적이고 문명적인 똥누기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새삼 느낍니다.
    글 읽는 동안 가슴 찡했고, 글 읽고 나서는 인간적 삶에 대한 모순적인 생각이 몰려와요.

  • 2024-04-26 13:45

    찰랑찰랑 넘치는 사랑..
    엄마에게 받은 사랑 남들과 나누는 감자로~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나눠주어 감사합니다 ~

  • 2024-04-28 10:43

    똥이 참 쉽지가 않아요.
    어른이 됐어도 아직도 어려운데ㅋ
    그걸 자신의 속도로 해낸 감자도, 애태운 모로님도 기특하당^^

  • 2024-05-02 15:50

    과민한 대장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감자의 똥이 남일 같지 않네요...
    감자와 엄마의 속도대로 같이 성장해가는 모습 계속 나눠주세요^^

  • 2024-05-02 23:48

    만성 변비로 한평생 살고 있는 저도 감자의 똥이 참 남일 같지 않습니다. (경덕쌤 찌찌뽕!)
    캠핑의자에 앉아있는 뒷모습이 사랑스러운 모자의 사진이군요.
    예쁜 모습 글로 사진으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05-04 08:20

    감자도 모로샘도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넘 멋진 것..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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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00:32 | 조회 11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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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7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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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209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4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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