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비글] 5차시 4월 7일 세미나 공지

겸목
2024-04-01 12:21
88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미농지, 2023년)에 조지 오웰의 '코끼를 쏘다'에 대한 코멘트가 있어 옮겨 봅니다.

 

"이 문장들을 말하는 남자는 곧 이야기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살의를 품게 된 문명인. 우리가 그를 이런 사람으로 믿는 이유는 글이 그렇게 믿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서술과 논평과 분석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담겨 있는 각 단락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본능적이고도 억제된 혐오감으로 고찰하는 사색적인 성질을 띤다. 서술자는 분노를 기록하지만, 글은 분노로 미쳐 날뛰지 않는다. 서술자는 제국 통치를 증오하지만, 이 증오를 통제하고 있다. 서술자는 원주민들을 꺼리지만, 이 거부감에는 연민이 배어 있다. 그는 역사, 균형, 역설에 대한 감각을 절대 잃지 않는다. 요컨데, 대단히 훌륭한 지성인이 여러분 독자를 비롯한 누구라도 미개인으로 만들어버릴 만한 상황에 내몰렸다는 고백인 것이다.

  (중략)

오웰이 노린 대상은 정치, 당대의 정치였다. 오웰은 그가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혼자서도 전할 수 있는 이 페르소나를 정치 상황 속에 불쏙 끼워 넣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못해서, 오웰 자신은 옹졸한 불안감에 쉽게 휘둘리던 남자였다. 비열한 행동이나 말을 하기도 했다. 수정주의적 관점의 전기들을 보면 그는 성차별주의자이자 지독한 반공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밀고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가 논픽션에서 창조해낸 페르소나-민주적 품위의 정수를 보여주는 페르소나-는 자신으로부터 뽑아낸 뒤 작가로서의 목적에 맞추어 빚어낸 진실한 존재였다. 조지 오웰은 경험과 관점, 그리고 지면 가득 풍기는 개성이 성공리에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의 존재감이 워낙 강하다 보니 우리가 서술자를 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듯 우리가 서술자를 알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서술자의 능력이다. (22~24쪽)

 

회고록의 대가라고 불리는 비비언 고닉은 회고록이 되기 위해서는 상황과 이야기를 구분해야 하고, 그걸 전달하는 페르소나(서술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이야기를 쓰는 게 회고록이지만, 내 이야기에도 어떤 '전달자'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현실의 '나' 모순적이고 양가적이며 뒤죽박죽인 '나'가 민낯 그대로 들어가면 읽는 사람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야?' 어리둥절하게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내 이야기를 한 번 하고 났더니 '후련하다'는 카타르시스를 글쓰기의 효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좋은 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내 이야기'(에피소드, 이런 일이 있었어)는 '상황'이고, 이 상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나는 참 외로웠어, 나는 참 힘들었어, 지나고보니 그게 나를 성장시켰네)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현실의 '나'가 아닌 서술자 '나'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설명해줍니다. 현실의 '나'와 서술자 '나', 경험한 '나'와 서술자 '나'를 분리하거나 구분할 수 있을까? 싶은데, 비비언 고닉은 그런 거리감이 이루어져야 글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게 <<상황과 이야기>>의 핵심내용인데, 이해가 순식간에 돼버리는 내용은 아닙니다. 곰곰이 생각해봐요. 그래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리가 있다면, '고백이 아니라 자기연구'를 하라는 내용입니다. <코끼르를 쏘다>에서 조지 오웰이 하고 있는 작업은 고백이 아니라 자기연구라는 거예요. 그럼, 약간 힌트가 될까요?

 

5차시에는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가지고 글쓰기합니다. 우리 모두 겁먹고 있어요. 조지 오웰의 글을 너무 멋진데, 내 글을 너무 수준이 낮아서, 감히 쓸 수 있을까? '쫄리는' 마음입니다. <코끼리를 쏘다>의 버마경찰 조지 오웰의 심정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어찌 해야 할까요? 쫄리더라도, 나는 왜 쫄리는가? 질문하고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나름의 답변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게 '자기연구'겠지요? 이게 있으면 '이야기'가 된다고 비비언 고닉은 말하는 것 같아요.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어'가 아니라 '그 일은 이런 일이었어'라는 주제를 갖는 걸 말하는 거겠지요?

 

다음주에는 '오웰과 나'로 글쓰기합니다.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텍스트로 해서 글쓰기 하셔도 되고, 오웰의 글쓰기와 나의 글쓰기, 오웰의 삶과 나의 삶, 오웰의 태도와 나의 태도 등등 <<나는 왜 쓰는가>>를 읽으며, 가장 자신에게 '꽂힌' 부분에 대해 '연구'를 해봅시다. A4 2쪽 이내로 써주세요. 1쪽도 됩니다. 과제글쓰기방에 4월 6일 토요일 오후 10시까지 올려주세요. 5차시에서는 2조 꿈틀이, 단풍, 시소, 무이, 겸목 피드백합니다. 9부씩 복사해오세요. 간식과 청소는 수영, 단풍님입니다. 단풍님 지난주에 간식 가져오셨으니, 이번에는 그냥 오세요~~

 

다들 바쁘시죠? 저도 정말 눈코뜰새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어요. 여유가 있어야, 생각도 하고, 책도 다시 보고, 그래야 글이 좋아지는데, 정말 시간이 안나요. 짬짬이 주경야독해봐요! 지난주에 이든님이 못오셔 공지 빨리 올립니다. 이든님 코로나는 어찌 지나가고 있나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슬슬 오세요. 너무 잘하려 진을 빼지 말고, 그렇다고 얼렁뚱땅 이 시간을 흘려 보내지 않고,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며 한 철 보내봅시다. 다음주에 봬요~

 

 

댓글 2
  • 2024-04-02 19:30

    단편이라 가볍게 집었다가, 같이 읽으면서 이해하고 싶은 구절이 많은 책이었습니다.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
    내 '상황'의 서술이 아닌 그 상황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고백이 아닌 자기연구'를 하라는 선생님 글을 읽으며, 오웰의 윗 문구가 떠올랐어요.

    이번 글도 어려울 것 같네요..저는 이제 겨우 몸을 추스리고 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나를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보아야지요.

    다정한 안부와 공지 미리 올려주신 배려 감사합니다 🙂

    • 2024-04-02 21:21

      슬슬 하세요~~ 글 쓸 날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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