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비글] 2차시 후기

유유
2024-03-20 07:22
103

설렘과 함께 여전한 긴장감을 안고 일요일 아침부터 공부하러 가는 길.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다니나 하며 길을 나선다.

 

오웰의 장미 읽기 두번째 시간. 지난 시간엔 '장미'를 화두로 생각의 꼬리를 이어 가며 읽고 토론하며 고민해보았다.  '장미'에 이어 오늘은 '레몬'이었다. 

"1936년 봄, 한 남자가  장미를 심었다." vs. "1946년, 한 독재자가 레몬을 심었다."

장미에 이어 레몬이라니... 스탈린이 심으라고 '명령'한 레몬은  전체주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오웰은  " 전체주의가 진짜 무서운 것은 그것이 '가혹행위'를 자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과거와 미래를 통제하려 한다."(198쪽)고 썼다. 

 

이번 수업에서 우리가 집중적으로 나누었던 이야기는 '리좀'적 사고와 글쓰기였다. '리좀'은  반계보적이다. 꿈틀이님의 말대로 우리는 사고와 글쓰기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얼마나 '반리좀적'=계보적 생활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새삼 깨달았다.

'리좀'이란 말은 질 들뢰지와 펠릭스 과타리가 탈중앙화 내지 비위계화된 지식의 형태를 묘사할 때 처음 차용되었다. "리좀의 어느 지점이든 다른 지점과 연결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들은 선언했다.... (중략)"리좀은 반계보적이다." (173쪽)

"1936년 봄, 한남자가 장미를 심었다."로 시작되는 리베카 솔닛의 글은  "장미, 오웰, 리베카 솔닛 자신,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을 엮어 문장이 되고 거기에서 다시 정원을 거쳐 역사, 시대, 이념과 결국 인간이라는 철학적 소재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 작은 정원에서 시작한 문장이 드넓은 대양의 어느 끝점을 향해 내달리는 것과 같이 독자로 하여금 숨막히는 지적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의 절망감도 안긴다. "고 꿈틀이님은  고백한다. 나 포함 여러 샘들도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리베카 솔닛의 리좀식 글쓰기의 전복적 전개방식은 방대한 지식과 깊은 인사이트가 있어야만 가능한 거 같다는 나의 이야기에  꿈틀이님은 오히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창의성이  더 필요한 자질이겠다고 얘기한다. 겸목샘도 덧붙이시길 일상의 변화, 삶의 변화가 우선되야 한다. 그래야 글도 바뀐다고 하셨다. 예측불가능성을 즐길 수 있는 것, 그것 리좀형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셨고 우리 모두 깊게 공감했다.

두번째로 내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주제는 '모든 글은 정치적 글쓰기'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명징성, 정직성, 정확성, 진실성 등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 것들 가운데서 비로소 대상이 진실하게 재현될 수 있고, 앎이 민주화되고, 사람들이 힘을 얻고,  문들이 열리고,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고, 계약들이 준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런 글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그 글에서 흘러나오는 것에서도 아름답다. ... (중략)... 하지만 윤리와 심미성이 별개가 아닌 이 아름다움, 진실과 전일성의 언어적 아름다움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글쓰기에서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핵심적인 아름다움이다. "(309쪽)

먼불빛님의 지적대로 글쓰기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핵심 키워드는 윤리와 심미성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되새겼다. 오웰의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중략) 내 우선적인 관심사는 사람들이 들어주는 것이다."라는 고백에서 우리는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와 자세를 고민해보았다 . 겸목샘은 이 대목에서 이야기의 에피소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에피소드를 통과한 '무언가'가 있어야 된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이야기와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음 차시 과제와도 관련된 글쓰기에 대한 소개와 고민거리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만의 사유가 없는 것 같고 남들의 사유에 끌려다니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단풍님의 토로와 글쓰고 싶다고 계속이야기하고 하면서도 막상 왜 쓰려는가, 무엇을 쓰고자 하는가가 없다는 나의 고백에 겸목샘의 위로와 격려가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겸목샘은 오웰이 장미를 심고 가꾸며 가사일기 같은 글을 쓰며 심난한 시대를 통과해 왔듯이 우리도  '꼼지락거리며 바람없이 글쓰면서 뭔가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겠다고 한다. 

겸목샘은 우리도 리좀적으로 써보자. 의외의 연결들을 해보자.  새로 이사한 조용한 집에서 새삼스레 냉장고의 소음이 거슬리는 나의 일상에서, 내가 반복적으로  화를 내는 지점을 관찰하며, 나의 일상에서 '장미'를 찾아보는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오웰이 내게 남긴 흔적을 찾아보자구 한다. 

일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온 이후 후기를 쓰는 지금까지, 토요일 밤10시까지 아마도 계속해서 가벼운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장미와 오웰의 흔적을 찾아보려 애쓸것이다. 아 내가 또 왜 이러고 살까 후회를 곱씹으며 또 일주일을 버텨낼것이다.  

무사히 일요일에 다시 만나요^^

댓글 3
  • 2024-03-20 09:02

    ㅋㅋㅋ 우린 대체적으로 계보적으로 살고 있지만, 또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이미 반계보적(리좀적)으로 살고 있어요^^ 우리는 '살림'은 얼마나 리좀적인가도 이야기했어요. 리좀적인 것이 멀리 있지 않아요. 우린 이미 리좀적으로 살고도 있어요. 우리가 '놓치고' '간과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지나가고 있어요. 이번주에는 그걸 발견해봅시다~

  • 2024-03-20 09:19

    유유님안의 장미와 오웰을 찾아보려는 애씀의 시도가 저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계속 글쓰기 소재를 생각하다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산발적으로 이어지는게...아 이게 리좀적인가(?) 하면서 나같은 정신없는 사람은 계보적인게 오히려 나을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답니다~^^;;;;;;

  • 2024-03-20 09:38

    저도 '가벼운 긴장과 스트레스'를 어떻게 리좀적 글쓰기로 연결할지, 그것이 고민이네요. ㅎㅎ 꼼지락거리며? 바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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