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는 오해

시소
2024-04-2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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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 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절대 알수 없을 것임을 단순한 생각 같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녀가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p138)

 

  ‘산책하기’ 카톡 대화방의 이름이다. 동생의 시어머니(수국)와 동생(새봄) 그리고 친정엄마(동백) 4명이서 한 달에 한번 산책하며 식사하는 모임이다. 작년 어느날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만남이 불안한 동생의 sos요청에 같이 식사를 하고 산책을 했다. 주변을 살피며 어른들에게 싹싹한 내가 필요한 자리였을 것이다. 그날 분위기가 좋았던 것인지 ‘산책모임’이 결성이 되었고 지금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그 모임에 대한 나의 감정을 말한다면 수국과 동백이 손잡고 걷고 노래하는 모습에 어떤 날은 괜찮다 싶기도 하고 두 분이 돌변하여 사위와 며느리 또는 민감한 대화를 하는 어떤 날은 내가 왜 이 사람들 하고 이 자리에 있나 싶기도 하다.

  지난주 목요일 고양시에 있는 ‘서오능’을 방문했다. 서쪽에 있는 5개의 능이라 해서 서오능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구파발역에서 수국님과 동백님을 만나 점심과 동동주 한잔을 하고 출발한 산책길은 시간은 느긋하지만 일찍 시작된 더위로 조금은 힘들었다. 수국님이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지를 몰랐다. 자신이 젊을 때 나이 드신 분들을 뵈면 행동이나 말이 이해가 안되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고 있네”라고 하셨다. 그 애기를 시작으로 젊은 시절의 당신의 이야기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이야기 해주셨다. 그때는 어른들의 생각을 모르고 그분들을 흉보았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이해되지 않던 엄마의 행동들이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일까 어린 시절의 엄마가 싫거나 밉지가 않았다. 분명 그 시절에는 끔찍이 싫고 부끄러웠을 터이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였던 때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다가 그릇을 엎어서 엄마에게 맞은 기억이 있다. 얼마 후 똑같은 실수를 했는데 또 혼날 수 있다고 겁에 질려 급하게 치우려는데 괜찮은지 묻고는 치우는 엄마의 모습. 그 당시에는 변덕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행동이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이해가 된다. 그 당시 엄마의 삶이 힘들었겠구나. 퇴근해서 왔는데 집이 난장판이 되어있고 반찬까지 바닥에 쏟아져 있는 상황이라면 나도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삶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지난 몇 주 우리는(나는 1남 3녀중 차녀다) 부모님의 이사문제로 회의를 계속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용인에 계속 있게 할 수 없다는 생각과 집 규모를 줄이자는 내용에 합의를 했다. 문제는 장소였다. 큰딸과 작은딸이 돌싱이지만 삶의 기복이 적은 내 옆으로 이사 오는 게 좋다는 나의 의견과는 다르게 두 분은 큰딸을 선택하셨다. 큰언니로 말하자면 삶의 스펙트럼이 넒은 편이라 항상 변수가 생긴다. 부모님의 남은 생을 생각하면 더 이상 이사 하실 일이 없으셔야 하기에 다른 형제들이 반대했지만 결론은 번화한 시내 한복판으로 이사를 결정하신 것이다. 내가 엄마의 삶이 이해가 되었다면 또다시 엄마가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이 안 들어야 하지만. 지난 이 주간 나는 엄마가 이해가 안 되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아직 엄마 나이가 안 되어서 일까? 나는 그냥 엄마의 생각을 추측하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 우리는 그것을 이해라고 하기도 한다. 또는 삶에 깊이가 있어졌다고도 표현한다. 자기가 통과한 삶의 모양에 따라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표현하는 것 그것은 이해가 아닐 것이다.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그것일 것이다. 그러니 이해받지 못한다고 상대를 설득하거나 나를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p22)

 

 

 

 

 

 

 

  1. 책을 읽으며 떠오른 기억하나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 방에서 무대 합숙을 하고 연습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운동장 옆 수돗가에서 남자동기와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왜 하필 남자애랑 그것도 내가 좋아했던 그 애랑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하고 있었는지. 그 친구가 나에게“ 양치질 할때 혀를 잘 닦아야 해. 그래야 입속 세균을 없앨 수 있어” 라며 혀 닦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칫솔을 깊숙이 넣어 혀를 닦다가 구역질을 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혀를 닦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고.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양치를 하지는 않으니 보고 배울 수도 없었다. 양치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에는 부모님은 너무 바쁘셨다. 정정해야겠다. 부모님이 아니라 엄마는 바쁘셨다. 결혼 10년 만에 낳은 첫딸 밑으로 줄줄이 나온 3명의 자식들과 결혼 안한 시동생들. 아픈 남편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삶은 자식들을 하나하나 살필 수 없었다.
      반면 그 친구 아버지는 한의사였고 평창동에 거주했으며 어머님은 집에서 살림을 하는 가정에서 살았다. 그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거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나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댓글 1
  • 2024-04-22 20:34

    동백과 수국, 그리고 새봄과 시소, 정말 신선한 조합이예요.
    동백과 수국 사이에 뭔가 극적인 전개와 시소의 새봄의 속마음 같은 것들이 더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엄마의 이사문제와 시소샘의 어릴적 엄마의 모습 같은 것들이 뒤이어 나오니... 물론 '이해'라는 키워드로 묶어두긴 했지만,
    "나는 그녀가 쓴 책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를 피해 비켜서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215쪽)라는 문장이 떠올랐어요.
    우리는 모두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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