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비글 시즌1, 5주차 '오웰과 나' 합평 후기

수영
2024-04-08 14:37
87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서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오웰과 나’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했다. 오늘은 그 합평 시간이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데 학우들의 생각이 제각각으로 뻗어나간다. 이것이 리좀식 글쓰기인가? 짐작이 안 되는 글들을 읽게 되는 것이 이번 시즌 합평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단풍님은 지난 토론에서 오웰의 에세이 <정말, 정말 좋았지>를 2번이나 읽었다고 하셨는데, 그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자신의 어린 시절로 생각이 옮아가셨나 보다. 부모님이 일하시던 신길동의 시장골목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자신과 동생의 방이 아빠의 친구들이자 시장상인들의 화투방이 되었던, 오랫동안 지긋지긋하던 기억으로 남아있던 풍경들을 따듯한(?)시선으로 쓰셨다. 글의 뒷부분 아버지의 위패를 가방에 넣고 신길동 대신시장으로 향하던 장면은 단풍님의 행동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기분. 다만 우리를 자연스레 시장통으로 이끌던 가운데 부분에 비해 도입과 결말단락이 약간은 인위적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시소님은 가족과 외식을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길에도 경주마처럼 전투적으로 걷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오웰의 태도와 자신을 이리저리 되짚어 보는 글을 쓰셨다. 또 자신의 글쓰기 습관인 반성하기를 이리저리 뒤집어보는 글이기도 했다. 우리는 시소님이 목표지향적인 사람인가? 지나치게 책임감이 많은 사람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그러니 글 자체보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말이 도움말인가, 충,조,평,판인가 헷갈릴 때가 있다. 그 말들의 경계는 늘 분명치 않다. 말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애정어린 도움말이 되도록 하고, 듣는 사람은 여러 가지 말들을 취사선택하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인지, 책임감이 지나친 사람인지, 관계에서 인정욕구가 많은 사람인지는 결국 자신이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가끔은 외부의 시선이 더 진실에 가깝거나 해석의 모티브를 주기도 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때에 따라서 이런 사람이었다가 또 다른 사람이었다가 한다. 또 살아있으니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어떤 성향이 더 강한 사람이 있고, 그 작은 각도가 그 사람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니,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늘 그럴 수는 없지만 가끔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글쓰기할 때가 자신에 대해 곰곰이 숙고할 좋은 기회다. 후기를 써야하는데 생각이 너무 멀리 왔다.

  이번에는 꿈틀이님의 <‘쑥’에 대한 단상>이다. 거제도 큰언니에게서 온 봄나물 택배를 시작으로 글은 자신의 어린시절 쑥을 캐던 기억으로 옮아간다.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쑥을 캐던 아름다운 풍경 속의 매서운 해풍과 검게 꿈틀거리던 바다의 오소소한 두려움과 슬픔이 함께 공존하는 글이다. 토론자들은 3장의 오웰의 에세이들에서 느낀 감각을 통합하는 문장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며, 3부가 더 확장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오웰이 쓴 ‘수정같은 정신’, ‘살생에 대한 분노’, 연민과 죄책감은 그가 봄을 느끼는 예리한 감각과 별다르지 않다고 쓰셨는데, 나는 그 감각이 무엇인지 알듯말듯 하다. “순리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겸손함이 있고,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뿌리깊은 철학”과 어릴적 쑥을 캘 때 느낀 아름다움과 슬픔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합평 말미에 꿈틀이님이 말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어떤걸까? 전에도 이야기 하셨던 거 같은데... 그래서 찾아봤다. “날들과 계절들과 해들의 리드미컬한 지나감, 달의 주기와 조수, 태어남과 죽음... 조화와 구성과 일관성처럼 패턴 그 자체도 일종의 아름다움이며... 시간속의 질서 정연한 패턴... 드물게 아름다운 일몰의 한 장면보다는 태양이 한 해를 통과해가는 시간의 진행을 더욱 경하하는”(256쪽)과 같은 『오웰과 장미』에서 뽑은 문장들, 꿈틀이님이 쓴 “아름다움이 때론 고통과 슬픔과 우울, 좌절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름다움은 딸기의 러너처럼 다른 것들과 연대하고 연결하여 가능성을 생산하는 생명력”을 지닌다는 생각이 어떤 글로 탄생할지가 궁금하다.

  무이님은 <소중한 마음의 여유>라는 글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셨다. 빈부격차가 큰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면서 느낀 어떤 감정이 이후에 열심에 열심을 다하는 삶으로 연결되고, 번아웃 상태가 되면서 그 과정에서 ‘뭣이 중한지’알게 되는 스토리가 펼쳐졌다. ‘감사하다’를 너무 강조해서 이단 종교를 연상케 한다는 분도 계셨지만, 무이님의 번아웃과 휴직의 시간들을 설명으로 들으니, 아 그러셔셨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 통합에 이른 상태인 거 같으니, 그 상태를 누려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럼에도 좀더 포커스를 좁히면 하고자 하는 말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딸의 대안학교 입학으로 뭔가 생각의 축이 바뀌는 거 같다고 하셨는데, 그 전환과 마음의 흐름이 궁금하다.

  겸목샘은 <오웰처럼 ‘돈’ 쓰기>라는 제목으로 봄꽃을 즐기지 못하는 복잡한 심사를 표현하셨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돈 때문에 그저 해치워야 하는 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보니 돈에 대해서는 갖는 감정이 참 애매하다. 이를 오웰의 경우와 비교해 서술하셨다. 돈에 대해서 “우습게보지도, 숭배하지도 못하고, 쫄아 있는 모습만 있다.”는 표현이 피식 웃음이 나오며, 나는 돈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나 또한 돈을 우습게 볼 수도 없고, 숭배하자니 속물 같고, 그저 미묘한 감정이기만 하다. 치킨과 커피, 영화표를 살 수 있는 만 이천 원으로 산 배양토와 비료가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겸목샘의 작은 정원의 흙들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지하실처럼 컴컴한 마음속 저 깊은 곳으로 내려가 후레쉬를 비추며 이것 저것 헤집어 찾아낸 마음의 조각들로 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 이 퍼즐은 고정되어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른 조각과 연결하면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때 마다 같은 경험도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조각들을 들추어 보는 작업은 필요한 거 같다. 과거의 감정과 느낌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현실의 삶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 자랑할 만한 것들은 이미 떠벌리고 다녔지만, 추한 것, 슬픈 것, 두려운 것들은 억누르고 지우고 꽁꽁 묶어 놓아 자각하기 쉽지 않다.

  그렇게 세상에서 부정적이라고 여기는 감정을 억압하다보니 왜 이러는지? 내 마음이 뭔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내 생각과 감정인데 말이다. 또 그 두 가지 감정은 서로 뒤섞여 있기가 일수이니,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듯, 싹틔우고 길러야 하는 생각들도 다 거름터미에 내다 버렸다. 내가 그랬다.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은 ‘내 마음이 암흑이다.’라는 사실이었다.

  일단 글을 쓸 때 뭘 써야 할지 헷갈렸다. 그냥 마음에 남는 문장이나 단락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자 하고는 여러 번 읽고 궁리를 하다보면 그래서 내가 뭘 쓰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래도 숙제이니 어찌어찌 쓰고 보면 그제야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흙 한덩이를 가지고 목적도 없이 주무르는 기분이다. 그래도 완성도가 어찌됐든 뭐가 만들어지기는 했다. 마감의 힘이다. 그리고 합평의 시간, 다른 샘들이 이런저런 시각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이런저런 변명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상하게도 내가 뭘 쓰고 싶어했는지 조금은 분명해진다.

  쇼펜하우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사람이 가로등 밑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있었다. 한참을 같이 찾아주던 행인이 그 열쇠를 여기서 잃어버린 것 맞소?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은 아니오, 저쪽에서 잃어버렸소 하며 어두운 곳을 가리켰다. 행인이 그런데 왜 여기서 찾소? 하자 그 사람은 여기가 환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엉뚱한 데서 열쇠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 아무 질문이나 던지는 가운데 변명처럼 대답을 이어가다 보면 조금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게 합평이다.

 

댓글 4
  • 2024-04-08 15:35

    이런 멋진 후기라니요. 이건 반칙입니다. ㅎㅎ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것도 내 생각과 감정이라는 애기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간식으로 가져온 옥수수가 너무 맛있었어요. 옥수수의 제철은 여름이니 수영샘의 옥수수를 먹기위해서 시즌 2는 꼭 참석하겠습니다.

  • 2024-04-08 16:04

    수영샘의 후기는 합평의 순간들이 다 떠오르는 글이예요~ 합평의 대한 단상이라는 짦은 에세이를 읽는 듯했어요~
    자각하고 싶지 않는 내안의 어두컴컴한 곳에 있는 감정들에게 훤한 빛을 비춰 진다면, 그 감정들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구나.. 스스로에게 적극적인 개입방식으로는 '글쓰기' 만 한게 없는 것이로구나...라는 깨달음이 번쩍 했답니다.
    후기 하나에도 이런 큰 울림이 있다니...^^b

  • 2024-04-09 18:36

    후기를 쓰시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셨네요. "누군가 아무 질문이나 던지는 가운데 변명처럼 대답을 이어가다 보면 조금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게 합평이다." 요거 공감가는 문장입니다. ㅎㅎㅎ 그런데 말이죠..저도 그래서 아무 말이라도 하는 게 좋은지, 말을 아껴야 하는지.. 아무 말 하려다가 이불킥하게 되는 그 낭패감이 두렵고, 말을 아끼자니 너무 무관심하고 인색한 것 같고... 말하는 것 역시 쓰는 것만큼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듯 싶습니다..ㅎㅎ

  • 2024-04-12 16:46

    부정적인 감정은 다시 마주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펼쳐보이고 싶지 않은것 같아요
    하지만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고민 생각들의
    방향을 따라가보면 그 부정적인 감정이
    영향을 끼치고 있더라구요
    그것들을 보려고 애쓰는게 자기객관화이자
    자신을 거리를 두고 볼수 있는 능력인것 같아요
    글을 쓰는 작업이 바로 이것이어야 하는게지요
    수영샘의 마지막 문제 의식과 쇼펜하우의 글이
    이런저런 생각에 머물게 하네요~~
    명품 후기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72
[평비글] 8차시 4월 28일 <슬픔의 방문> 세미나 공지 (10)
겸목 | 2024.04.24 | 조회 76
겸목 2024.04.24 76
171
<평비글시즌1> 7차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글쓰기 합평 후기 (5)
이든 | 2024.04.21 | 조회 82
이든 2024.04.21 82
170
[평비글] 6차시 <내 이름은 루시바턴> 후기 (4)
유유 | 2024.04.17 | 조회 71
유유 2024.04.17 71
169
[평비글]7차시 4월 21일 세미나 공지
겸목 | 2024.04.15 | 조회 74
겸목 2024.04.15 74
168
<평비글시즌1> 6차시 후기 (4)
꿈틀이 | 2024.04.14 | 조회 101
꿈틀이 2024.04.14 101
167
[평비글]6차시 4월 14일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세미나 공지 (9)
겸목 | 2024.04.09 | 조회 92
겸목 2024.04.09 92
166
평비글 시즌1, 5주차 '오웰과 나' 합평 후기 (4)
수영 | 2024.04.08 | 조회 87
수영 2024.04.08 87
165
[평비글]5주차 후기<나는왜쓰는가>글쓰기합평 (5)
단풍 | 2024.04.08 | 조회 91
단풍 2024.04.08 91
164
평비글 4차시 후기<나는 왜 쓰는가> (6)
무이 | 2024.04.04 | 조회 113
무이 2024.04.04 113
163
평비글 4차시 후기<나는 왜 쓰는가> (6)
시소 | 2024.04.02 | 조회 111
시소 2024.04.02 111
162
[평비글] 5차시 4월 7일 세미나 공지 (2)
겸목 | 2024.04.01 | 조회 88
겸목 2024.04.01 88
161
[평비글] 3차시 후기 (5)
먼불빛 | 2024.03.29 | 조회 109
먼불빛 2024.03.29 109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