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비글] 3차시 후기

이든
2024-03-27 23:33
101

<오웰의 장미>를 읽고,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란 생각에 처음에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과제가 리좀적 글쓰기였고, 방대하게 펼쳐지는 사유는 내 삶의 반경과는 너무 먼 이야기들 같았어요. 무엇보다 하나의 단어 혹은 문장을 집요하게 붙들고 다양한 각도에서 보기에 뇌의 용량과 시간의 압박을 이겨 낼 능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생각과 글쓰기는 ‘내일의 나’에게로 미루고 지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토요일 늦은 오후에야 첫 문장을 써 나가기 시작했어요. (후기도 마감에 임박해 쓰게 되네요.....;;;) 

 

그냥 불현듯, 장미에서 할머니가 떠올랐고, 할머니의 젊은 시절과 오웰이 살았던 시대가 비슷한 연대였음을 생각했습니다. 전쟁을 겪어낸 시대, 그럼에도 ‘나만의 문제’에 함몰되지 않고 시대의 문제와 자손의 아픔을 흘려보내지 않았던 생의 궤적이 오웰과 할머니의 삶을 한 페이지에 놓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제가 조금 더 성실했거나, 고민했더라면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었을 텐데 결국은 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끌어 어정쩡하게 매듭 되었지요. 

 

‘합평’이라는 행위도 처음 해보는 것이라, 사실 맘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제가 첫 번째 발표자라 야구 시합의 1번 타자처럼 긴장도 무척 되었고요. 글의 구조나 문장 – 쿰쿰한 할머니의 평화, 언문과 같은 표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할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신기해하는(?) 시선과 질문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각자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소환되기도 했고, 겸목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좀 더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타자 유유님의 글은 각자가 당면한 문제의 총 집합체 같았습니다. 수영님 말씀대로 곧 터질 폭탄을 안고 있는 듯한 긴장감도 흘렀고요. <오웰의 장미>가 성인기 자녀 부모와의 관계, 돌봄을 요구하는 관계사이에서의 의무와 죄책감 등과 연계하여 쓰셨고, <나는 누가 돌봐줄까>란 제목처럼 결국은 '자기 돌봄'을 중심에 두고 해결해 가야 할 고차방정식과 같은 어려운 문제라는 데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무이님이 타인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고, 가족도 타인이기에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밤샘기도에 참여한다고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셔서 다 같이 즐겁게 웃기도 했지요. 자녀와의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 세대가 받은 혜택으로 해결 가능했던 문제가 분명히 있음을 겸목 선생님께서 상기하셨고, 청년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할 때 판단의 한 요소로써 잊지 말아야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영님의 <크로커스 구근을 심는 마음>을 통해 조지 오웰의 저항이 전체주의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 시대의 대항체는 자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셨다고. 장미 한 그루를 보며 묘목에 들인 돈이 얼만데라는라는 투입한 돈과 장미의 가치를 비교하며 일상에 스며든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의식하셨다고 해요. 지적인 사유가 녹아든 멋진 글답게 토론도 활발했는데, 먼불빛님은 '정원'이라는 대상에 대한 다른 견해를 제시하셨습니다. 

 

정원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 정원을 가지고 싶다는 것은 남에게 부르주아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인 걸까. (예리한 지적!). 겸목 선생님은 런던 외곽에서 정원을 가꾸는 생활을 하면서도 도시를 그리워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 대변하는 양가적인 삶과 지향점(?)에 대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한 발자국 밖은 자연을 지향하지만, 내가 몸담은 곳은 편리한 도시의 인프라 안에 있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이요. 시소님은 정원을 돈과 시간을 들여 가꾸어야 하는 다른 형태의 돌봄의 대상이라는 창의적인 시선으로 말씀해 주셨고요. 각자의 정원에 대한 이미지와 생각이 다양해서, 단어 하나를 놓고 토론하는 것도 재미있겠단 생각을 했어요. 꿈틀이님은 '크로커스 구근'이나 장미의 병명에 대한 구체성이 멋있다고 하셨고(역시 디테일이 중요!), 크로커스 이야기를 좀 더 끌어내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먼불빛님의 <기쁨의 발견>은 다정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와 문장이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등단하신 분인 줄 알았어요! 북아메리카의 대왕 참나무 네 그루가 주는 기쁨과 그렇지 못한 일상의 쫀쫀한 긴장감 사이에서 모드전환이 필요하고, 급기야는 '이중생활'을 옹골지게 해 내겠다는 다짐까지 하셨습니다!! 꿈틀이님과 겸목선생님 말씀대로 유머와 야생성이 어우러진 매력 넘치는 멋진 에세이였습니다. 

 

에세이를 쓰면서도, 후기를 쓰는 지금도 읽고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순간순간 후회하기도 했는데 합평을 마친 날 각자의 써온 글을 읽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해소되고 정화되는 기분이 저는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과 말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와 다시 한번 저와 다른 글을 들여다보게도 됩니다.  단풍님, 꿈틀이님, 시소님, 무이님 그리고 겸목 선생님 글도 아직 댓글은 달지 못했지만 모두 잘 읽었습니다! 처음이라 횡설수설인데, 다음번 합평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러려면 글 쓰는 시간을 또 거쳐야 하겠지만요. 

이제 계속 희미하게 맴돌던 글쓰기 동학님들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와, 이제 닉네임 외우지 못해 다시 여쭤보는 일들은 없을 것 같네요. 주말에 뵐게요! 🙂

댓글 4
  • 2024-03-28 22:06

    후기 잘 읽었습니다.
    합평 날이 소환되네요.
    한 권의 책이 정말 다양한 생각으로 뻗어나가
    각양각색의 에세이로 탄생했어요.
    저도 다음 합평이 기다려집니다.^^

  • 2024-03-29 11:35

    에세이 발표날의 기억이 소환되는 후기였습니다.언제나 글쓰기와 발표는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일요일을 기다리는 1인입니다
    일요일에 뵙겠습니다

  • 2024-03-29 13:09

    후기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나봅니다~^^ 이든님한테 이야기를 듣는듯해요~^^
    전 정말이지 이렇게 글들을 잘 쓰시는 분들의 글을 접하는 것만도 감개무량입니다.
    정화되고 해소된다는 표현이 공감이 많이 됬어요. 저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듣는게 좋네요~

  • 2024-03-29 18:42

    이든님과 우리 어머니가 같은 42년생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동질감을 가져왔어요. 42년생 그녀들의 일상이 하루하루 우리의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겠죠^^ 42년생들에 대한 관찰도 저에겐 중요한 과제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72
[평비글] 8차시 4월 28일 <슬픔의 방문> 세미나 공지 (3)
겸목 | 2024.04.24 | 조회 45
겸목 2024.04.24 45
171
<평비글시즌1> 7차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글쓰기 합평 후기 (4)
이든 | 2024.04.21 | 조회 75
이든 2024.04.21 75
170
[평비글] 6차시 <내 이름은 루시바턴> 후기 (4)
유유 | 2024.04.17 | 조회 68
유유 2024.04.17 68
169
[평비글]7차시 4월 21일 세미나 공지
겸목 | 2024.04.15 | 조회 71
겸목 2024.04.15 71
168
<평비글시즌1> 6차시 후기 (4)
꿈틀이 | 2024.04.14 | 조회 96
꿈틀이 2024.04.14 96
167
[평비글]6차시 4월 14일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세미나 공지 (9)
겸목 | 2024.04.09 | 조회 92
겸목 2024.04.09 92
166
평비글 시즌1, 5주차 '오웰과 나' 합평 후기 (4)
수영 | 2024.04.08 | 조회 82
수영 2024.04.08 82
165
[평비글]5주차 후기<나는왜쓰는가>글쓰기합평 (5)
단풍 | 2024.04.08 | 조회 87
단풍 2024.04.08 87
164
평비글 4차시 후기<나는 왜 쓰는가> (6)
무이 | 2024.04.04 | 조회 109
무이 2024.04.04 109
163
평비글 4차시 후기<나는 왜 쓰는가> (6)
시소 | 2024.04.02 | 조회 105
시소 2024.04.02 105
162
[평비글] 5차시 4월 7일 세미나 공지 (2)
겸목 | 2024.04.01 | 조회 84
겸목 2024.04.01 84
161
[평비글] 3차시 후기 (5)
먼불빛 | 2024.03.29 | 조회 104
먼불빛 2024.03.29 104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