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시 10월 29일 세미나 <도시를 걷는 여자들> 공지

겸목
2023-10-25 14:23
244

 

 

 

황정은의 에세이집 <일기>를 읽다보면, 작가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이다. 체력이 있어야 장시간 책상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읽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일이란 게 자신의 글을 쓰는 중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기>에는 책을 추천하는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황정은이 그즈음에 읽고 있는 책들의 목록을 일별해볼 수 있다. 그때 거기서 많은 책들을 '찜'해 두었고, 세미나에서 같이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다. "이런 책을 발견할 때마다, 얼마나 고마운지! 이런 책을 써주셔 감사하다!"는 황정은의 감격스러운 문장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황정은의 감격에 이 책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 읽어보고 있다. 도시를 걷는 산책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도시를 걸었던 여성예술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시간이 좀 걸리는 책이다. "음! 이런 책이었군^^" 혼자 중얼거려보며, 이 글을 쓰는 동안 저자는 즐거웠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글쓰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 작업이 신바람 나고 즐거울 수 있다면, 더 좋은 일 같다. 그래서 읽을 때도 신바람 나서 읽고 싶어진다.

 

10월 29일에는  <도시를 걷는 여자들> 세미나 합니다. 생각보다 읽기에 시간을 내야 하는 책이네요. 부지런히 읽고 세미나에 오세요. 이 책 덕분에, 다시 도시를 걸어볼 마음을 내볼 것 같습니다. 생각도 많아지는 가을인데, 걷기에 딱입니다!! 10월 28일 토요일 오후 10시까지, 각자 2부분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 골라서 공지글 아래 댓글로 올려주세요. 그 부분이 왜 마음에 들었는지, 혹은 어떤 질문이 드는지 이유도 써주세요^^ 지난 세미나 후기는 윤아님과 시소님입니다. 다음주 간식은 비료자님과 겸목입니다. 짧은 공지인데, 늦어졌네요.... 마음이 분주해서 늦어졌습니다.

 

 

 

 

댓글 6
  • 2023-10-28 20:15

    42쪽
    뭔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을 때에도 걷는다. 걷다 보면 머리가 정리되는 것 같다. 솔비투르 암불란도(Solvitur ambulando) ‘걷다보면 해결이 된다’고들 말한다.
    나는 또 ‘장소성(placeness)’의 감각을 얻거나 회복하려고 걷는다. 지리학자 이푸 퇀은 움직임을 통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때, 공간이 파악하고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될 때, 공간이 장소가 된다고 말한다.
    나는 걷기가 어떤 면에서 읽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걷는다. 걷기를 통해 나와 무관한 삶을 엿보고 대화를 엿듣고 비밀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고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같이 가는 동반자가 있기 마련이다. 거리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도시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란히 걷는다.
    ⇒ 걷다보면 몸속에 응축된 감정의 덩어리가 배출된다. 거리는 기운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계절의 기운이 흐르고, 사람들의 다종다양한 마음들이 흐르는 곳이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때, 공간이 파악하고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될 때, 공간이 장소가 된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공간이 가진 장소성과 그곳을 체험하는 당사자와의 교류를 통해 공간이 의미를 갖는다는 말로 읽힌다.

    158쪽
    파리 거리에서 시간의 표식, 혁명과 격변이 남긴 흉터를 찾는 나는 파리 시민들이 자기들에게 지워진 것에 저항했으며 삶을 평온하게만 유지하려고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본다. 1789년에서 1871년 사이에 거의 20년에 한 번씩은 유혈 폭동이 일어났다. 나는 이들이 어떻게 일어설 수 있었는지,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왕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 혁명의 흔적을 간직한 파리, 어떻게 20년에 한 번씩 유혈 폭동을 일으켰는지? 이들은 에너지가 넘쳤나보다. 아니면 일종의 축제처럼 한바탕 부딪혀 보자고 들고 일어났는가? 아니라면 혁명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있다가 다시 발화되었나? 아무튼 그 장소가 아니라면 전혀 생뚱맞은 곳에서라면 20년에 한 번씩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장소가 혁명을 기억했을 것이고, 그 에너지가 남아 피를 끓어오르게 했을 것이다. 역사적 장소에 아로새겨진 기운을 불러내고, 기억하는 글쓰기이다.

  • 2023-10-28 20:30

    (344쪽)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동안 쌓아올린 것이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풀썩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렇게 모은 것들이 딱히 중요한 것들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이민자들은 대개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불안하고 쉬이 흔들린다. 맥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른 새로운 물론, 새로운 인격으로 스스로를 덮는다”

    -->저번 시간에 나누었던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도 어쩌면 ‘이민자성’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의 맥락은 언제 어디서나 이해받거나 보호 받지는 못한다. 때론 그것을 새로운 인격으로 덮어버리면 살아간다. 이것이 외로움의 근원인지도 모르겠다.

    (357쪽)
    바르다는 페미니스트의 첫 번째 행위는 바라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시선이 대상이지만 또 나는 볼 수 있다. 바르다의 영화가 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세상과 세상 안의 우리 자리를 비스듬한 눈으로 보는 것, 우리가 이삭줍는 사람, 플라뇌즈, 방랑자, 이웃이다. 객관성 따위는 없다.

    -->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여성들이 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시절. 자신의 신체와 정신이 타인의 대상으로서만 평가 받을 때.. 나도 나의 시선으로 볼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전복적이면서 혁명적이다.

  • 2023-10-28 20:54

    p137 산보가 산보자의 자아 정체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산보를 하며서 무엇을 보는지만큼이나 중요하다. 울프는 집안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를 어떤 존재로 만드는 사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선택하여 배차했고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강화'하는 사무들. 그러나 이 배경에서 벗어나, "우리 영혼이 스스로의 잡으로 삼기 위해 분비해서 만든 굴 껍데기 같은 외피"에서 나오면 우리는 "친구들이 아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익명의 떠돌이들의 공화군의 일부가 된다.

    p154 그러나 이런 신호는 나의 주파수 안으로만 들어온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신호일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거나 혹은 듣지 않으려고 애쓰는 신호가 있다.
    =지난시간에 나누던 애기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는지를 알면 내욕망의 방향을 알수 있을것 같네요.
    p247 가장 괴로웠던 것은 저 바깥쪽에 내가 발견하고 싶은 장소가 가득한 도시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가서 그걸 찾아야 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아니 실은 뭐가 있느지도 몰랐다 어디로 가야 할지,어디에서 걸어야 할지 몰랐다.
    =도쿄를 보는 시선이 다른 지역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동양권이라 저는 반대인데. 그 도시를 안다는 것은 그곳의 관습 문화. 역사도 같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덜었어요

  • 2023-10-28 21:32

    p93 당신은 나의 것이고 파리 전체가 나의 것이며 나는 이 노트와 연필에 속하오. ~요즘에는 헤밍웨이가 시선을 권력과 연결시키는 것, 여성이건 파리건 자기가 관찰하는 것이 모두 자기와 자기의 연필에 '속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그때 내가 파리에서 느낀 감정은 나에게 속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다는 느낌이었다.
    -->딱히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내겐 헤밍웨이의 말이 다르게 해석됐다. 파리 전체가 나의 것이며 나는 내 글(이 노트와 연필에)에 속하다는 말로 해석하니, 로런 엘킨처럼 화가 나지는 않던데... 샘들의 해석이 듣고 싶다.
    p137 거리에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고 "도시 풍경의 기능"이 된다. 전에는 시선의 대상이었지만 거리 산보자가 되면 섹스나 젠더에서 벗어난 관찰하는 주체가 된다. 우리는 익명성의 외투를 두르고 종종 알 수 없는 도시처럼 우리도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지난 책인 "런던을 걷는 게 좋아"를 읽을 때 함께 읽으며 밑줄 그은 부분이다.
    난 거리에 있을 때도 시선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이 있어서 인지 몰라도(절대 예뻐서가 아닙니다^^) 자유롭게 관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으로 여행을 가서 낯선 거리를 걷게 되면 그때나 익명성의 외투를 두를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낯선 도시를 걷는 경험이 거의 없고(길치) 가까운 산책은 점심식사 후 사무실 근처 공원이니 익명성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산책하다가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하거나 무리에 섞여 차를 마시기도 하니까. 결국 같은 글도 각자의 상황에서 읽는 것 같다.

  • 2023-10-28 22:34

    -도쿄, 안에서
    “책이나 주소를 이용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게 아니라 걸어서, 눈으로 보아서, 습관으로, 경험으로 안다. 이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모두 강렬하면서도 취약해서 내 안에 남은 흔적의 기억을 통해서만 반복 혹은 회복 가능하다. 따라서 어떤 곳을 처음으로 방문하면 그것에 대해 쓸 수 있게 된다. 적힌 주소로는 알 수 없고 장소가 스스로 글을 만들어내야 한다.”
    롤랑, 나쁜 사람, 내가 이 도시에서 걸을 수만 있으면 왜 안 걷겠어. (250)
    -->원하지 않았지만 피치 못해 도쿄에 온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걷기’를 하지 못한다. 일단 도시가 낯설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그의 약혼자는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쿄에서도 은행으로 출근한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첫 시작부터 여자들에게 도시를 걷는 일이 호의적이지 않은 역사로부터 시작한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났고, 용감한 여자들이 금기와 경계를 넘어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넓혀왔다. 그러나 2008년에도 저자는 도쿄에서 걷지를 못한다. 관광객이 아닌 상태로, 준비 없이 예정에 없는 곳에 가게 될 때, 낯선 거리는 두렵고 외롭다.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나는 즐겁게 그 기회를 즐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이건 내가 여자여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러할까?
    작년 여름,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걸렸을 때, 나는 송도에 있는 큰딸 오피스텔에서 며칠 지냈다. 그곳에서도 나는 딸이 퇴근할 때까지 방안에 ‘콕’ 박혀 있었다. 한국이지만, 낯설었고, 위축되었다. 신나게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새롭게 가게 된 동네를 산책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나이 때문일까? 송도는 전반적으로 ‘젊은 도시’다. 구도시가 아니라 기업체 중심으로 조성된 오피스텔단지여서인지 그곳엔 거의 젊은이들밖에 없었다.

    -땅에서 보는 광경
    다 합해서 일곱 개 나라에서 열한 번이나 집을 마련했다. 사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 직접 짓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도 계속 집을 꾸몄다니 잘 납득이 안 가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든든한 보금자리, 혹은 다시 날아가기 전에 쉴 둥지 같은 게 필요했던 것 같다. 어쩌면 겔혼이 집과 집 밖 양쪽으로 강력하게 끌렸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겔혼은 평생을 세상의 방대함,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대감과 싸우며 보냈다. “세상에 공간이 너무 많다. 나는 그것에 당황해 미칠 지경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이 충동은 일종의 사디즘이다. 나도 이제 스스로 이해하는 척하기를 그만두었다.” (366)
    그러다가 집이 주는 기쁨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타일을 깐 바닥에 햇살이 길게 들어오고, 널찍하고 황량하고 깨끗하고 텅 비어 있는 집이 주위에 고요히” 놓여 있어 “평화롭고 다시 안전해진 기분이다.” 다만 ‘안전’이라는 단어가 겔혼에게는 여러 다른 의미일 수 있다. 일반적 의미일 수도 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때에 집에 안전하게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담긴 단어이기도 하다. (376)
    이야기의 끝에서 라비는 “자기가 가야 할 목적지는” 휴대용 타이프라이터 플러그를 꽂을 소켓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에게 자기만의 방보다도 유용한 것은 익스텐션 코드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어디에서든 쓸 수 있는 만능 어댑터이다.”라고 라비는 결론을 내린다. 익숙한 지역에서 계속 이어지는 오래된 관계가 새로운 장소를 만나면 끝없이 갱신되는 전율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는가? 겔혼이 가장 오래 지속해온 관계는 자기 작업과의 관계일 텐데, 그 작업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떤 일이 막 일어나려 하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임시 거주지에 정착하고 타자기와 공생에 들어간다.” 그럴 수 있는 권리를 얻기가 쉽지는 않았다. (390)
    --->집과 외국의 임시 거주지, 둘 다 유혹이 강하다. 한동안 작업실, 자기만의 방에 꽂혀 있었다. 그런데 방 밖의 거리도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은 거리보다 방이 더 편해지는 것 같다. 거리의 냄새, 호기심, 설렘을 다시 가져야 할 텐데, 거리를 보는 법을 망각해버린 것 같다. 몸이 무거워지고 마음이 늙었다. 큰일이다.

    -뉴욕, 귀환
    내 도시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나의 것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도시를 발로 알아가지만, 우리가 도시를 떠나면 지형이 바뀐다. 그렇게 되면 자신 있게 발걸음을 떼놓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냥 보는 것, 보면서 다른 것을 보기를 기대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전부 다 아는 척하지 않고 늘 약간 안 맞는 채로 있는 게 좋다.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도시 아래에 우리가 알아보는 도시가 겹겹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413~414)
    -->서울에서 25년을 살았다. 결혼 후에는 경기도에서 28년째 살고 있다. 이제 가끔 서울에 가면 외국 도시처럼 낯설다. 그러나 서울에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곳이 있고, 그곳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 때는 그냥 낯선 게 아니라 묘하게 낯설다. 최근에는 궁금해졌다. 다시 서울 거리를 걸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빨리 집에 오고 싶은 거리가 되었을까? 뭔가 예상치 못한 기억과 만나게 될까? 그래서 서울 거리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 2023-10-28 23:22

    <저항> 우리는 집단 행동을 해야한다. 모여서 행진을 하거나 아니면 한 곳에 그냥 모여 있기라도 해야한다. 권력을 쥔 이들에게 사람들이 무얼 원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모인 군중을 보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285쪽) /내용보다 의식에 더 관심 있는 사람. 그것도 너무 쉽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290쪽) : 내가 어디엔가 함께 서야 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서있어야 하는걸까? 질문에 대한 답 같았습니다.
    <귀환> "길을 읺지 않는다는 것은 사는 게 아니고 길 잃는 법을 모르면 파멸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길을 잃었을 때에는 얼른 여기가 어디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들의 물결 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402쪽):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혹 길을 잃을까 두렵기 마련인데.. 길 잃는 법을 모르면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문장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길이라고 확신에 찬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문장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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