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기억

단풍
2024-04-2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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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시즌1/내이름은 루시바턴/2024.04.21/단풍

아빠의 기억

 아빠는 빌런

『수원숯불갈비』으로 탄생하기까지 대신시장 근처에서 다양한 업종으로 바꿔가면서 아빠는 기술자에서 장사꾼으로 변화했던 것 같다. 업종을 선택하고 변경하는 건 아빠의 결정이지만 유지 관리의 몫은 엄마였다. 그나마 아빠손을 많이 탔던 업종은 셈베이 과자와 과일를 동시에 팔았을 때였다. 셈베이 과자를 직접 만드는 것이 아빠가 맡은 일이기도 했지만, 과일과 과자를 아주 잘 활용하실 수 있기도 했다. 아빠는 부부싸움을 조용히 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이 알 수 있게 과자와 과일은 요긴하게 쓰였다. 아빠는 큰딸 국민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퇴근길이 가게 앞임을 알고, 종종 퇴근하는 선생님에게 딸기바구니로 자신의 어리숙한 딸의 부족함을 부탁할 용도로 쓸 줄 알았고, 딸이 얼굴에 2학년 담인 선생님 손바닥 자국을 하고 온 것을 보고 교장실로 달려갔을 때 쎔베이 과자가 요긴하게 쓰였다.

아빠는 대신시장 에서도 괴팍 했지만, 넉살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대신시장안에는 아빠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술이 좋아서, 뭐든 잘 고쳤고, 잘 만들었다. 엄마의 평가는 좀 다르다. 지금도 그때 대신시장의 생활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금의 내나이보다 젊은 엄마는 우리들 때문에 도망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외로움

  아빠의 아빠를 6.25전쟁때 잃었다. 그후 아빠의 엄마도 아빠를 떠났다. 다른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아빠를 다시 찾아왔을 때는 아빠는 큰집에서 구박받는 말썽쟁이가 되어 있었다. 아빠의 그때 사진을 보면 눈빛은 매섭고, 불만이 많은 모습 같아 보인다. 아빠의 엄마는 오랫동안 장사했던 골목시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뒤로 기술자였던 아빠가 조직에서 잘 버티지 못하고 트러블을 일으켜 쫓겨난 일들이 반복된 후라, 인정하고 싶지 않는 아빠도 자신의 엄마가 물려준 대신시장의 골목시장 터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예상해 본다.

술에 취해 있는 아빠는 많이 슬퍼하고 외로워했다. 아빠는 자신을 보둠아 주는 부모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 본인의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자신의 소통언어와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언어가 달랐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 방식에서 가족구성원들은 각자의 괴로움과 미움을 쌓아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분절된 관계를 적극적으로 풀고자 나서지 않았다.

 

 닮은꼴

  나는 술 먹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술이 들어가면 긴장감이 풀리고 느슨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문제는 술이 꽤 들어가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면, 가족들과 지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술주정뱅이가 되고 만다. 엄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울기도 했다. “민경아 왜 그러니 니 아빠 같이 왜 그러니” 하면서 말이다. 나의 태도의 여러 면을 살펴보면, 아빠의 모습임을 부정하기가 힘들다. 조직안에서도 타협 없이, 막말을 하다 보니, 배척되고 불편한 사람이 되고, 리더회의시간 에서도 회장이 빼 버린 팀장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어느덧 아빠를 많이도 닮아 있구나 자각하게 된다.

  원망에서 이해로 마음이 움직였던 것은, 아빠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일까? 나자신을 위한 이해일까? 후자의 선택이 더 어울리겠다. 사무치고 오래된 외로움을 가눌 길 없는 사람이 술을 먹고 위로 받고 싶었던 마음일 거라고, 자신의 존재나 필요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열성적으로 행했던 아빠만의 표현 방법이라고 나는 나를 방어하듯 이해하고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해를 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나자신을 위한 이해 말이다.

 

루시바턴도 말한다. 다른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단순한 생각 같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녀가 그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P138)

 

  2학년 담임이 나의 뺨을 후려친 이유는 학년의 1반이여서 부장 선생님반였고, 다른 선생님들이 모이는 반이 였기에 전기포트가 쉬는 시간 마다 항시 끓어야 했다. 끓는물 담당(반장)까지도 있었다. 담당하지도 않는 내가 해보고 싶은 마음에 건들다가 물을 엎질렀던 것이다. 반장이 선생님에게 일렀고 선생님은 잔뜩 화가(담당도 아니면서 건드려서) 난 체로 뺨을 후려쳤다. 난 거기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 뒤로 얼굴이 뻘겋게 부어서 집에 왔을 때 맞은 이유를 듣고 아빠가 바로 과자 포장을 들고 갔다고 했다. 교장실로 가 2학년 담임선생님을 부르고 애를 그렇게 때리는 게 맞냐며 몸싸움이 났고 과정에서 과자 포장이 짓눌리고 던져졌다고 했다. 후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엄마는 아빠의 거치 행동이 챙피 하다고 욕을 했지만 난 좀 더 다른 감정이 있었다. 어색한 감정이 무엇인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편 이라는 든든함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내편이 있었던 것이였다.

 

댓글 1
  • 2024-04-22 20:22

    우리 토론 때 단풍님이 다른 사람들의 글처럼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하셨죠?
    그때 하지 못한 말이 있어요.
    '문장이 거칠다는 건 인정하겠다. 근데 거기에서 나오는 묘한 생동감과 활력은 무엇이지?
    아빠의 캐릭터와 몇 줄 등장하지도 않는 엄마의 마음을 알 것만 같은... '대신 시장'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이 써주세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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