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커스 구근을 심는 마음

수영
2024-03-23 23:28
47

 

크로커스 구근을 심는 마음

 

장미 나무 아래 빈 곳에 크로커스 구근을 심었다. 튤립은 새로 생긴 옆집 담장 아래에 심었다. 기존에 있던 튤립들이 노루귀처럼 뾰족이 녹색의 잎사귀를 내밀었는데 지금 심은 것이 올해 꽃을 피울지 의문스럽기는 하다. 크로커스 구근이 많아서 집 둘레 곳곳에 심었다. 크로거스 구근은 도토리만 하고, 튤립 구근은 크고 통통한 알밤 같다. 예상에 없던 크로커스와 튤립 심기는 『오웰의 장미』의 한 문장 때문이었다.

 

1941년 지하도와 교회 지하실의 방공호들을 둘러보고 런던을 떠나온 다음 날, 그는 이렇게 썼다. “웰링턴에 돌아오다. 크로커스가 지천이고, 꽃무도 싹이 나고 스노드롭도 한창이다. 산토끼 몇 마리가 겨울밀 속에 옹기종기 앉아 서로들 마주 본다. 이 전쟁 동안 이따금, 몇 달씩 사이를 두고 잠시나마 물 밖으로 코를 내밀어 지구가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음을 확인해본다.” (『오웰의 장미』, 레베카 솔닛, 반비, 2022, 279-280쪽)

 

이 문장을 읽은 날 나는 충동적으로 크로커스와 튤립 구근을 주문했다. 밑줄 그은 수많은 의미 있는 문장 중 유독 ‘웰링턴에서 돌아오니, 크로커스가 지천이었다.’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1941년은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고, 런던에 대규모 공습이 있던 이듬해였다. 독일은 유럽을 거의 다 집어 삼켰고, 러시아를 침공했다. 조지 오웰은 건강상의 이유로 입대하지 못했고, BBC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다. 전쟁의 향방을 가늠할 수 없는 이 암담하던 시절, 오웰은 몇 달에 한 번씩 들러 보던 웰링턴의 작은 집 주변에 크로커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마당에 장미를 심은 것은 3년 전이었다. 집 안뜰 가운데에 타원형으로 가장 자리에 돌을 쌓아 만든 정원이었다. 이 곳에 튤립을 심었다. 그러나 튤립은 봄에 한 달 정도 꽃을 피우고 나면 다음 해 봄까지 구근 형태로 땅 속에 잠자고 있으니 여름과 가을 동안은 땅 위가 비어 있게 된다. 그래서 장미를 심었다. 이름도 화려하고, 색깔도 다양한 사계장미 여덟 그루였다. 장미의 포기가 커질 것을 예상해서 드문드문 심었다.

첫해 오월에 장미들은 이름표에 담긴 사진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오묘한 색과 향을 가진 크고 탐스러운 장미가 피어나자 마당의 다른 꽃들이 빛을 잃었다. 아쉬운 것은 꽃 송이가 커서 한 가지에 한 송이 정도의 꽃을 피울 수 있었고, 큰 만큼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해서 한 달에 한 번은 웃거름을 주었는데도 잎과 줄기의 발육이 활발하지 못했다. 화려한 날도 잠깐. 장마가 오자 잎사귀에 까만 반점이 생기고 잎이 노랗게 떡잎이 지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일종의 곰팡이로 장미 흑반병이라고 했다. 약을 쳐야 하고, 병든 잎을 골라내야 하며, 장미 줄기들 사이에 통풍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여름이 되니 잎사귀에 꼭 누가 밀가루를 쳐 놓은 듯 하얀 가루가 생기기 시작했다. 또 찾아보니 장미 흰 가루 병이란다. 이 병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기에 약을 쳐 주어야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여름이 지나자, 더위에 시름시름 앓던 장미들도 새잎을 틔우고 끄트머리에 아름다운 꽃을 달기 시작했다. ‘장미가 계속 피네’ 하고 감탄하는 것도 잠시 장미의 잎사귀들을 잎줄기만 남기고 먹어치우는 애벌레가 나타났다. 나무젓가락을 들고 벌레들을 하나하나 잡아내고 또다시 살충제를 쳤다.

장미는 아름다운 만큼 병충해도 많고 지속적으로 돌봐야 하는 식물이었다. 내가 보았던 장미축제의 장미들은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피울 수 있었을까? 몇 년 전 장미 축제에 가서 빼곡히 식재된 각종 장미들 사이를 거닐며 사진을 찍던 기억이 났다. 그 장미들에게 농약을 얼마나 자주 뿌렸을까? 큰 꽃송이를 위해서는 거름이 얼마나 필요했을까? 3년이 지난 우리집 장미는 처음의 포기와 거의 비슷한(한 포기만이 커졌는데 이상하게 덜굴장미도 아닌 것이 덩굴장미처럼 번성하면서 꽃은 피우지 않고 있다. 무슨 변고인지?) 크기로 남아 여전히 엉성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간혹 놀랍게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는 잡초들이 쉴새 없이 날아들어 싹을 틔운다.

이 아름답지만 골치 아픈 식물을 어찌해야 할까? 다 뽑아버리고 병충해에도 강하고 관리도 필요 없는 야생화를 심어버릴까도 싶다가도 포기당 2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인 장미를 포기하려니 아까워서 그냥 둔다. 집에 덩굴장미도 두 그루가 있는데 야생장미에 가까운 찔레 장미종이라 병충해에도 강하고 줄기를 힘차게 뻗으며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아마도 계속 꽃 피우기 위해서 또 아름답고 오묘한 색깔을 내기 위해 여러 번 계량하는 과정에서 까탈스럽고 병충해에도 약한 품종이 된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레베카 솔닛이 방문한 콜롬비아의 장미농장에서 눈물로 키워지는 장미도 이런 품종이 아니었을까?

 

레베카 솔닛이 확인한 바대로 장미가 키워지는 과정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장미의 잘못이 아니고, 장미는 여전히 아름답다. 레베카 솔닛은 “오웰의 작품 상당 부분은 다양한 종류의 추악함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가 추악하다고 본 것은 그가 아름답다고 본 것의 잘 드러나지 않는 이면이었다.”(293쪽)고 이야기한다. 레베카는 “모든 ‘호의적’인 유토피아들은 완전성을 상정하지만 실제로 행복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는 조지 오웰의 산문을 인용하면서 “완벽한 것이 선한 것의 적이요. 적어도 기쁜 것과 자유로운 것의 적”(139쪽)라고 말한다.

『오웰의 장미』는 많은 장에서 ‘1936년 봄, 한 남자가 장미를 심었다.’로 시작한다. 물로 그 남자는 조지 오웰이다. 오웰은 부정의하고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하는 현실참여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장미와 과일나무를 심고, 염소를 키워 젖을 짜고, 닭을 키웠다. 그는 농사일기, 가사일기를 쓰며, 자신이 보거나 들은 것을 아무 바람 없이 있는 대로 기록했다. 노동과 재배와 사소한 사건들의 짤막한 기술에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와 다르게 어떠했으면 하는 바람이 별로 들어 있지 않다. 오웰에게 지금 한가하게 정원 가꾸기나 이야기한다고 비난의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불의한 것을 교정하거나, 생산성 있는 글이 아니면 낭비요 게으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오웰은 이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지 않았다. 레베카는 이런 면모에서 또다른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을 읽어낸다.

오웰이 비판했던 전체주의 정권들은 패망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무한 증식을 기본 메커니즘으로하는 자본주의와 이에 동력을 제공하는 긍정성의 과잉이 결합된 시스템의 폭력은 오웰 시대의 전체주의를 능가한다. 각자의 감시자는 국가나 당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장착된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다. 한병철은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며,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 치닫고,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 지성사, 29쪽)이라며 이를 면역 저항을 유발하지 않는 ‘내재성의 테러’라고 표현한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시스템의 교묘한 논리를 나의 내면에, 우리집 정원에 불러 들인 것만 같다. 장미정원은 어느새 장미 축제의 모습을 기준으로 미완성의 상태로 여기게 되었고,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생산적이지 않다는 실망감에, 마당에 농약을 치고 있다는 죄책감까지. 나는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간간이 피는 장미들이 놀랄 만큼 아름다운데도 말이다. 심각한 것은 이 감정이 마당의 장미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이 사방에 핀 크로커스꽃을 보며 전쟁이라는 진흙탕 싸움에서 물 밖으로 코를 내밀어 지구가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음을 확인한 마음으로 ‘아무 바람 없이’ 따스한 봄볕 속에서 크로커스 구근을 심어본다.

댓글 3
  • 2024-03-24 02:31

    수영샘의 장미와 크로커스를 무심하게 키워보려는 마음이 오웰이 잠시 쉬어가는 그곳과 맞닿아
    보시길 저도 배래봅니다~

  • 2024-03-26 19:29

    치열하게 자신을 벼리는 수영샘을 보면서 제 무디어진 날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아무나 갖지 못할 정원일 수 있으므로 정원에서의 기쁨과 고통과 무수한 아름다움과 또한 그 이면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신선합니다.

  • 2024-03-27 16:49

    '장미축제'의 장미를 장미의 '기본'으로 보게 된 우리의 미감을 의심해봅시다. 장미축제의 장미처럼 만발하지 않아도, 피다 말아도, 그것대로 예쁠 수 있지 않나? 그러려면 수영샘처럼 약 처주고, 벌레 잡아주고 하는 손길이 가야 하는 일이고, 그 일들의 스토리텔링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34
냉혹함--살아가는 힘 (1)
먼불빛 | 2024.04.21 | 조회 21
먼불빛 2024.04.21 21
233
루시 바턴과 나 (1)
이든 | 2024.04.21 | 조회 18
이든 2024.04.21 18
232
엄마에게도 가슴 시린 연애와 이별의 시절이 있었다 (1)
유유 | 2024.04.21 | 조회 22
유유 2024.04.21 22
231
루시 바턴에게 배운 것들 (1)
겸목 | 2024.04.20 | 조회 30
겸목 2024.04.20 30
230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랑을 하니까요" (2)
꿈틀이 | 2024.04.20 | 조회 31
꿈틀이 2024.04.20 31
229
엄마의 황금시절
수영 | 2024.04.20 | 조회 16
수영 2024.04.20 16
228
아빠의 기억 (1)
단풍 | 2024.04.20 | 조회 19
단풍 2024.04.20 19
227
이해한다는 오해 (1)
시소 | 2024.04.20 | 조회 22
시소 2024.04.20 22
226
사용 목적이 명확한 사람 (5)
이든 | 2024.04.07 | 조회 60
이든 2024.04.07 60
225
소중한 마음의 여유 (1)
무이 | 2024.04.07 | 조회 27
무이 2024.04.07 27
224
경주의 추억 (5)
유유 | 2024.04.06 | 조회 43
유유 2024.04.06 43
223
누가 나를 규정하는가? (5)
수영 | 2024.04.06 | 조회 45
수영 2024.04.06 4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