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저항이 되려면..

꿈틀이
2024-03-23 22:05
56

아름다움이 저항이 되려면..

1.

작년 나의 글쓰기는 ‘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한 사유가 전체적인 주제였다. 처음부터 꼭 이렇게 써야겠다라는 다짐이나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세미나에서 선정한 책들을 읽으면서 자신을 해부하는 작업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나를 훑고 지나간 일들을 재해석하는 일은 지금의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몇 달전부터 바뀐 일상이 있다. 아침에 식구들이 먹고 남긴 음식으로 대충, 그야말로 때우기식으로 먹었던 식사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신선한 샐러드 채소와 삶은 계란, 검은콩을 삶아서 냉동 해두었다가 소량식 믹서기에 갈아서 우유와 함께 먹는다. 사실 좀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법은 꼭 사유의 폭을 확장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 능력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주 3회 정도는 요즘 너튜브에 떠돌아다니는 50분정도 소요되는 전신근력 운동을 따라서 꼭 하려고 애쓴다. 나를 알아가는 글을 쓰는 것만큼 운동이나 먹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어찌보면 관성적으로 살아가려는 내 몸과 마음에 균열을 내고 저항하는 일이며 나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2.

이번 <평비글 >세미나의 첫 번째 텍스트는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란다. 그리고 더 눈에 띄는 건 제목 위의 작은 글씨“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나는 이 문장에 더 관심이 갔다. 조지오웰은 알겠어. 오웰의 <동물농장>은 알레고리 작품으로는 대표적이다. 은유적 풍자로 극단적 이데올로기 시대를 비판한 조지오웰과, 장미, 그리고 리베카 솔닛은 어떤 조합으로 이 책을 구성했을까? 궁금했다. 전반부를 읽으며 약간 의아하다고 느껴지는 지점도 있었지만 ‘빵과 장미’ 부분에서 장미가 저항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쉽게 이해되었다. 빵도 중요하지만 장미와 같이 아름다움, 여성으로서의 욕구, 춤과 음악을 좋아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여성운동의 캐치프레이즈도 이해되었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의 첫 번째 텍스트로 선정되었나 라고 혼자서 오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내용은 너무 좋은데 앞부분과 연계성 있는 정리는 되지 않고 그렇다고 아예 상반된 개념들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이 책의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확연한 비판의 대상이었던 독재자 ‘나폴레옹’보다 비판도 저항도 하지 않고 체체에 철저히 복무하며 나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복서’라는 말(동물)이 자꾸 생각났다는 사실이다. ‘복서’는 근육질의 덩치도 좋으며 심성도 착한 숫컷 말이었다. 동물농장에서 공공의 적인 인간을 상대로 ‘공공의 선’을 실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고 받아들였다. 몸이 부서져라 노동에 시달려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는 멋진 풍차가 완성될 것이다. 그의 노년은 평화로울거라는 희망, 하지만 그는 마지막 몸둥이까지 독재자 나폴레옹의 술값으로 치뤄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저항하지 않는 것. 저항 자체를 모르고 눌려오는 압력에 아랑곳하지 않는 삶이라고 아무 의미가 없다고 또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우리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복서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문맹에다 사고의 폭도 좁다. 그는 동물농장의 우두머리가 누가 되든 그가 무슨 주장을 하든 철저하게 체제에 동조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에게 부족했던 건 ‘공공선’에 대한 고민과 질문이었다. 그리고 주위 친구들과 이 부분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복서’의 삶은 자신에게는 충실했으나 그건 비판 없는 근면과 성실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삶이라는 주제를 가져온다면 복서의 삶에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라는 명징성을 달아줄 능력이 나에게는 아직 없는 듯하다.

 

3.

<문학처방전>(박연옥.느린서재.2024) 이라고 작년 겨울 겸목샘의 새 책을 선물 받았다. 각 챕터마다 화자가 겪고 있는 질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아픈 신체, 마음의 본질에 대해 다가가보자는 방향성이 좋았다. 그 중에서 <누군가가 분투한 대가>라는 챕터에 황정은의 <일기>가 소개된 부분이 있었는데 읽으면서도 그랬고 읽고 난 후에도 뭔가 개운치 않았다.

 

“황정은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곤란함이 있다. 그의 윤리적 감수성은 베일 듯 날카롭고 그 날카로움에 피투성이가 안 될 자신이 없다. 알려고 하지 않는, 알지 않으려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투적인 어른’이라 질책하는 문장은 매섭다.< 문학처방전 p110>”

 

글을 쓰는 작가의 예리한 윤리의식은 독자로 하여금 찔림? 부끄러움? 또는 용기? 결의?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베일 듯이 날카로운 윤리의식, 그것도 글을 쓰는 작가의 윤리란 무엇일까? 아마도 작가 자신이 삶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명징성, 정확성, 진실성 등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 것들 가운데서 비로소 대상이 진실하게 재현될 수 있고 앎이 민주화되고, 사람들이 힘을 얻고 문들이 열리고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고 계약들이 준수하기 때문이다.<중략> 윤리와 심미성이 별개가 아닌 이 아름다움, 진실과 전일성의 언어적 아름다움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글쓰기에서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핵심적이 아름다움이다<오웰과 장미 p309>”

황정은 작가의 날카로운 윤리의식과 리베카 솔닛이 조지오웰의 작품과 삶으로부터 채취한 아름다움이 서로 겹쳐 보인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예리한 사유를 놓치지 않는 윤리와 같은 말인 듯하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의 옆에 살짝 드리워진 거짓을 알아채는 능력, 거짓의 알맹이에 감춰져 있는 아름다움을 끌어모을 줄 아는 능력이 윤리와 심미성이 결합된 아름다움인 것 같다. 아름다움이 저항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질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 속에 응축되어 있는 이러한 능력치들 때문인 것 같다.

 

 

 

댓글 4
  • 2024-03-24 00:15

    "거짓의 알맹이에 감춰져 있는 아름다움을 끌어모을 줄 아는 능력이 윤리와 심미성이 결합된 아름다움인 것 같다."는 말이 예리하게 다가오네요.
    일상에서 비굴하게 눈감지 않고, 거짓을 걸러내는 능력이 곧 아름다움인 것만 같아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어요.

  • 2024-03-24 02:09

    동물농장의 복서는 전체를 위한 희생의 상징으로 보였고, 힘이있는 복서를중심으로 조직이 생길거라는 기대를 초반에 했었어요~아쉽게도 복서는 동물농장에서 희생을 했지만...답답함이 계속 남았는데 비판없는 근면성실함의 표현으로 어떤 답답함인지 알것 같아요

  • 2024-03-26 19:49

    “아름다움은 일상의 예리한 사유를 놓치지 않는 윤리와 같은 말인 듯하다.” 두고 두고 이 말에 한번 머물러 보려고 합니다. 뭔가를 찌르는 말인 것도 같고, 한편으로 뭔가 틈이 없이 숨막히는 말인 것도 같아서….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과 아름다움 자체가 저항이 되는 법과는 또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제가 알쏭달쏭합니다.. 책을 좀 더 읽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과 저항에 파고들어 사유하는 꿈틀이님이 대단해보입니다.

  • 2024-03-27 16:22

    "아름다움은 일상의 예리한 사유를 놓치지 않는 윤리와 같은 말인 듯하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의 옆에 살짝 드리워진 거짓을 알아채는 능력, 거짓의 알맹이에 감춰져 있는 아름다움을 끌어모을 줄 아는 능력이 윤리와 심미성이 결합된 아름다움인 것 같다. 아름다움이 저항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질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 속에 응축되어 있는 이러한 능력치들 때문인 것 같다."

    여러 샘들의 이야기처럼 저도 이 부분이 좋아요! 리베카 솔닛의 정리가 아니라 꿈틀이님의 정리라서 그런 것 같아요. 늘 인풋한 내용에 대해 숙성된 아웃풋을 내놓는 '고성능'에 늘 놀라고 있어요^^ 자신감 갖고 팍팍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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